가수 겸 작가 김현성

지난 연말에 가수들을 위한 오디션 프로그램인 ‘싱어게인2’을 보다가 반가운 얼굴이 나왔다. ‘헤븐Heaven’이란 노래로 잘 알려진 김현성 씨였다. 성대결절로 가수를 그만두었던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한 음 한 음을 내뱉었다. 심사위원 석에 앉은 가수들은 그의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고, 오랜만에 얼굴을 비춘 덕분에 시청자 게시판과 유튜브에는 그를 응원하는 글이 쇄도했다.

문득 김현성 씨의 근황이 궁금해 찾아보니, 현재 그는 가수 겸 작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2015년에 첫 출간을 했고, 지난 4월에 <어린 새>라는 그림책을 세 번째로 냈다. 이 책에는 그의 자전적인 요소가 담겨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밀려와 기대와 혼란이 엉켜있을 때, 이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지금도 조급함과 막연함이 엄습해오면 이 이야기를 떠올리곤 한다.’라는 그를 만나 책 이야기에서 가수로 걸어온 길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어린 새> 신간에 대해 듣고 싶어 왔습니다.

이번에 나온 <어린 새>는 사실 8년 전에 완성한 글이에요. 그때 당시 다른 소설을 쓰고 있었는데, 좀처럼 풀리지 않고 막혀 있는 상태였어요. 안 그래도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는데, 제가 기대한 것만큼 성과가 나지 않았어요. ‘어린 새’를 쓴 날도, 제가 어디선가 한참 글을 쓰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는데, 그날 밤 마음이 무척 불안하더군요. ‘내가 잘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어느 정도에 와 있는 걸까?’, ‘내가 바라는 그런 작가는 언제쯤 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함이 밀려왔어요. 그런 제 모습이 마치 어린 새 같았는데, 그 순간에 첫 단어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단번에 이야기가 떠오르더군요. 이건 남겨야겠다 싶어서 곧바로 완성해두었죠.

책에 보면, 어린 시절 날개를 다쳐 비행에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잖아요.

하늘을 날고 싶지만, 아직 너무 작고 어린 새는 충분히 자라지 않은 날개로 비행하다 다치고 말아요. 날개를 다친 어린 새에는 가수로서 성대를 다쳐 노래 부를 수 없었던 시절의 제 모습이 투영되어 있어요. 그리고 글을 쓰게 된 후, 빨리 작가로 성장하고 인정받고 싶은데 그렇지 못한 제 모습도 담겨 있지요. 이 이야기는 간절한 꿈 앞에 좌절하기도 하고, 불안에 떨고 있는 저에게, 제 안에 있는 무의식이나 또 다른 자아가 건네는 위로예요. “괜찮아. 지금까지 잘해왔어. 조금 늦더라도 괜찮으니까 할 수 있어. 흔들리지 말고 계속해.”라며 들려주는 이야기에요. 다른 어떤 글보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글이라서, 저뿐 아니라 누군가를 위로하는 힘이 있을 것 같아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더라고요. 그래서 동화책으로 만들자는 제의를 받았을 때 무척 기뻤어요. 그림 작가님도 글과 잘 맞는 그림을 그려주셔서, 제가 생각했던 메시지가 책에 온전하게 담겨 굉장히 만족합니다.

위로가 전해져서 그런지 책장을 덮고 나서도 한참 여운이 남더라고요. 특히 ‘두려움이라는 통증이 사라지고 어린 새는 누구보다 멋지게 하늘을 날았어’라는 대목이 인상 깊었어요.

날개의 상처가 아물어도, 날지 못하는 이유가 있더라고요. 다른 이유보다 심리적인 트라우마가 다시 날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못 보게 하는 것 같아요. 어린 새를 날지 못하게 한 건 다친 날개가 아니라, 다시 바다에 곤두박질 칠 것만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어요. ‘두려움이라는 통증이 사라지고’라는 말처럼, 머릿속에 늘 맴돌았던 두려움을 극복해낸 후에야말로 어린 새는 다시 날 수 있었어요. 이제 날 수 있으니 여러 가지 삶의 변화가 찾아오겠죠.

<어린 새> 그림, 책고래 제공
<어린 새> 그림, 책고래 제공

사실 현성 씨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가수로 남아 있어요. 어린 새가 그랬듯, 다시 가수 활동을 하기로 마음먹기까지 많은 두려움을 극복해냈을 것 같아요.

이 이야기를 하자면 가수가 됐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가야겠네요. 음악을 시작하고 가수가 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요. 1997년 8월에 열린 강변가요제에서 금상을 수상하고, 그해 10월에 가수로 데뷔했으니까요. 정말 평범한 대학생에서 반년 만에 데뷔했고, 1집 데뷔곡 ‘소원’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사실 처음 활동할 땐 데뷔곡으로 사랑받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무게감이 점점 커졌어요. 인기를 얻지 못하면 가수 활동을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아니까 그때부터는 간절해지더라고요. ‘죽기 살기로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했었어요. 그렇게 4집 앨범이 나왔고, ‘헤븐’이란 노래로 큰 사랑을 받았죠.

큰 사랑을 받으면서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하셨겠네요.

맞아요. 사랑받은 만큼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각오로 쉬지 않고 노래했어요. 점점 목 상태가 안 좋아지는데도 제대로 관리를 하지 못하고 바쁘게만 살았어요. 최상의 컨디션이 아니다 보니, 무대에 올라갈 때도 행여나 실수할까봐 긴장 상태로 올라간 적도 많았어요. 앨범 활동을 마치고 회복기를 가졌어야 했는데, 쉼 없이 다음 앨범 작업에 매진하면서 목소리를 잃었어요. 정말 최선을 다했던 거 같은데, 저에게 가장 소중한 목소리를 잃으니까 너무 힘들고 지치더라고요. 그때가 서른한 살이었는데, ‘10년간 정말 열심히 살았다. 이제 내려놔야겠다.’는 마음으로 가수 활동을 접었어요. 그 후론 더 이상 음악을 듣고 싶지도, 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그만큼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없다는 좌절감이 컸던 거 같아요. 허밍으로조차 부르지 않았죠.

대학 음악 동아리 활동을 하며 음악에 빠지게 된 그는 ‘노래’만 하며 지냈다. 노래 부르는 게 너무 좋았지만, 내향적인 성격에 가수는 그저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런 그에게 기회가 왔고, 어느새 대중에게 사랑받는 가수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열심’이 독이 되었던 걸까? 좋은 노래를 하기 위해 쉼 없이 노력한 그는 결국 그토록 좋아했던 노래로 목소리를 잃었다.

가수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입학하셨어요. 글을 쓰고자 했던 계기가 있었나요?

어릴 때부터 책을 읽는 걸 즐겼어요. 갑자기 가수가 되고 노래에만 빠져 살았지만요. 어떻게 보면 뒤늦게 제가 좋아하는 것을 다시 찾아갔죠. 제가 좋아하는 책을 쓴 사람들처럼,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대학원에 들어갔어요. 공부를 마친 뒤엔 ‘나는 앞으로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야겠다.’ 생각했을 만큼 그 시간이 즐거웠어요.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글을 쓰면서 힘든 시간도 많이 잊고 살았는데,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흐르더라고요. 8년 정도를 그렇게 살았던 거 같아요. 영화 시나리오도 쓰고, 드라마 대본도 쓰면서 지냈는데, 이상하게 작가 계약 직전까지 갔다가 계약이 어그러지는 일들이 생기니까 힘들기도 했어요.

그 시기가 <어린 새>의 글을 쓰신 때군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송 출연을 하셨어요. 다시 노래한다는 게 하나의 두려움을 벗어던진 거네요.

‘슈가맨’이나 ‘나는 가수다’와 같은 방송 프로그램처럼, 예전에 활동했던 가수들을 다시 소환하는 게 인기를 끌었어요. 저도 섭외 요청을 받았지만, 여전히 목소리에 대한 걱정이 많아서 거절했었는데, 주변 분들이 많이 격려해주셔서 다시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시간이 많이 흘러서 어느 정도 회복되지 않았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고요. 그런데 결론적으로는 목소리가 회복되지 않았어요. 기대해주신 분들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마음처럼 잘 안되더라고요. 그렇게 또다시 노래와 담을 쌓았는데, 아쉬움이 크더라고요.

그래서 ‘싱어게인2’에 출연하게 됐어요. 가수로 다시 활동하고 말고를 떠나서 저를 따라다니는 ‘실패한, 비운의 가수’라는 꼬리표를 떼고 싶었어요. 잘하고 싶은 것보다 사람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었어요.

그 무대를 보고 많은 분이 응원과 격려를 보냈어요.

녹화 당일, 예상보다 따뜻한 분위기에 위로받고 왔어요. 방송 나가고 난 후에도 많은 분이 저를 기억하고 계시고, 응원해주셔서 놀라기도 했고요. 가만히 있으면 안될 것 같아서 바로 보컬 선생님을 찾아갔어요. 어떻게든 지금보다 나아지고 싶었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지금 소속사 대표님이 전화를 해주셔서 다시 가수 데뷔를 준비하고 있어요. 병원을 찾아가서 목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받아 치료받으며 지내고 있어요.

가수의 길을 새롭게 걸을 준비 중이신데, 가수로서 이루고 싶은 꿈도 있겠지요.

소속사에서 연락이 왔을 때, ‘다시 노래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가수라면 어찌 됐든 노래를 잘 해야 하잖아요. 예전에 잘했다는 것과는 상관없이 지금 무대에서 잘 보여줘야 하니까요. 그런 고민을 많이 했는데, 한편으론 ‘내가 남길 수 있는 노래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 기회를 놓치면 두 번 다시 기회는 없을 것 같아서 잡았고요.

많은 시간을 에둘러왔어요. 가장 좋아하는 것들을 못하는 힘든 시기도 겪었고요. 그 시간이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을 거 같아요.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 문학의 아름다움도 느끼고, 회사 생활하면서 다양한 경험도 해보았어요. 이런 경험들이 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고 여겨요. 그리고 저는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혼자 고민하고 결정해버릴 때가 많았어요. 좋아하는 게 생기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푹 빠져 지내기도 하고요.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그때 좀 물어보면 좋았을 텐데...’ 하는 후 회가 생기더라고요. 어려운 시간을 보냈기에 저의 고민을 공유할 방법을 배울 수 있었어요. 혼자 고민할 땐 ‘내 생각이 맞다.’라고 여겨서 뒤도 돌아보지 않았는데, 누군가와 공유했을 때 ‘내 생각이 틀릴 수 있다.’라며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묻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지켜가면서 문제도 해결하는 지혜를 배울 수 있는 거 같아요. 더 많은 조언을 받아들였더라면 더 값진 경험을 많이 하지 않았을까 싶고요.

아마 지금부터는 좋아하는 것들을 하면서 더 많은 경험을 하지 않을까 싶네요. 책도 꾸준히 쓰실 거고요.

다시 가수의 길에 매진하고 있는 시점에서, 글쓰기는 더 멀리 보고 있어요. 예전에 썼던 <이탈리아 아트 트립>의 후속편도 생각하고, 꼭 완성하고 싶은 소설도 있고요. 제가 50대가 되면 그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소설이 나오면 다시 인터뷰하러 올게요.”라는 인사로 인터뷰를 마친 뒤, <어린 새> 책을 다시 읽어보았다. 거기엔 둥지나무가 등장하는데, 둥지나무는 어린 새에게 말한다. “네가 날지 못하는 건 두려움 때문이야. 두려움은 네가 누구인지 잊게 하지.”라고. 그 말을 들은 어린 새는 ‘죽게 될 거야. 차가운 바다에 곤두박질치고 말 거야.’라는 생각을 ‘다시 날 수 있어.’라는 생각으로 받아치며 날갯짓을 시작한다. 그렇게 다시 하늘을 날게 된다.

김현성 씨에겐 영원히 노래할 수 없을 것 같은 이유가 있었다.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목소리, 비운의 가수라는 꼬리표…. 이런 것들을 마주할 때마다 고통스러웠다. 노래를 부르며 많은 사랑을 받고 행복했지만, 그로 인해 받은 상처도 깊었다. 하지만 그를 다시 노래 부르게 한 건, 예전과 같은 기량이나 뛰어난 테크닉이 아니라 그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이었다. 둥지나무처럼 ‘다시 노래할 수 있다고, 너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는 다시 노래를 부른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과 손잡고 재기한 행복한 사람이다. 아마 지금 그는 새로운 날갯짓을 하며 삶의 변화를 느끼고 있다. 둥지 밖을 벗어났으니 어떤 음악을 전해줄지, 어떤 소설을 전해줄지 기다려 본다.

김현성
1997년 강변가요제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가수에 데뷔했다. 10년 동안 가수생활을 하며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지만, 성대결절로 인해 음악활동을 멈췄다. 그후 작가로서 글을 쓰며 지냈다. 그의 저서로는 <당신처럼 나도 외로워서>, <이탈리아 아트 트립>, <어린 새>가 있다. 최근 다시 가수의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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