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 여행가 정연주

시기마다, 사람마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다양하다. 정연주 작가의 경우, 그 이유가 음식이라고 말한다. ‘한없이 먹는 것을 생각하며 돌아다녔던 자신의 미식 여행 기록’을 책으로 출판해 미식 여행의 다채로운 즐거움을 전하며 사는 그를 만나본다.

Q. 미식 여행, 생각만 해도 즐겁습니다. 하지만 음식은 여행 중 일부로 여기는 경우도 많은데요. 특별히 ‘음식’에 여행의 방점을 두는 이유가 있는지요?

제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같은 장소로 떠나더라도, 떠나는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보고 싶어 하는지에 따라 달라지잖아요. 저는 요리, 음식에 관련된 모든 게 재미있고 즐거워요. 그런 저의 기질을 알고 요리 학교에 입학했고 그 후로 줄곧 음식에 대해서 생각하며 살아왔어요. 요리 잡지 에디터로 근무하기도 하고, 지금은 요리 관련 책을 번역하거나 직접 쓰는 일을 하고 있지요.

물론, 일하는 것과 여행할 때 음식을 대하는 태도는 전혀 다르긴 하죠. 아무튼 음식을 너무 사랑하는 제가 여행할 때 먹을 걸 중심으로 생각하고 고민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제 일상과 같죠.(웃음) 

사무실 근처에 위치한 카페252에서 크로와상 샌드위치를 시켰다. 오랜만에 즐겨보는 브런치 타임이다. ⓒ박종도
사무실 근처에 위치한 카페252에서 크로와상 샌드위치를 시켰다. 오랜만에 즐겨보는 브런치 타임이다. ⓒ박종도

Q. 작가님이 처음 떠난 여행지는 어디였나요?

온전히 제가 주체가 되어 떠났던 여행의 시작은, 일본이었어요. 고등학생 때부터 일본 노래, 가수 등을 좋아해서 늘 일본이 궁금했어요.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혼자 일본으로 떠났죠. 그 시절엔 해외 유명 디저트, 요리 등의 브랜드가 한국이나 중국보다 일본에 먼저 진출했어요. 유행도 더 빨랐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일본을 자주 드나들면서, ‘도쿄에 어떤 식당이, 무슨 메뉴가 새로 생겼지?’ 하고 미식의 변화를 쫓아다녔어요. 직장인이 된 후로는 같은 음식도 편의점이 아닌 전문으로 하는 가게를 찾아갔어요. 하지만 최근에는 새로운 음식 문화나 트렌드가 일본이 아닌 한국으로 먼저 들어오는 경우가 늘고 있어요. 이젠 새로운 문화를 보러 가기보단, 범위를 좁혀서 일본 특유의 혹은 전통 음식을 찾아다녀요. 미각의 촉수를 더 예민하게 사용하면서요.

지금까지 서른 번 정도 일본을 다녀왔는데, 가도 가도 볼 게 많고 재미있어요. 그건 아마도 제가 그 사회 안에 섞여 들어갈 수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일본어를 쓸 줄 알고, 제 외모도 일본인을 닮았다는 소리를 자주 듣거든요.(하하)   

프랑스 파리에서의 추억을 담은 사진이다. 1. 파리 미슐랭 레스토랑인, 네오 비스트로의 애피타이저. 나뭇잎을 닮았다. 2. 파리에는 오리고기 맛집이 많다. 함께 나온 감자 그라탱과 곁들여 먹으면 더 맛있다. 3,4. 마트에 들어서서 앙증맞은 모양의 래디시 다발과 호박을 닮은 토마토를 보면 내가 진짜 여행 중이구나 싶다. 5. 걷기 좋은 센 강 ⓒ정연주
프랑스 파리에서의 추억을 담은 사진이다. 1. 파리 미슐랭 레스토랑인, 네오 비스트로의 애피타이저. 나뭇잎을 닮았다. 2. 파리에는 오리고기 맛집이 많다. 함께 나온 감자 그라탱과 곁들여 먹으면 더 맛있다. 3,4. 마트에 들어서서 앙증맞은 모양의 래디시 다발과 호박을 닮은 토마토를 보면 내가 진짜 여행 중이구나 싶다. 5. 걷기 좋은 센 강 ⓒ정연주

Q. 나라마다, 기대하는 바에 따라 여행 동선도 달라지겠군요.

맞아요. 나라의 특성상 음식에 대한 애정이 깊고 음식문화가 발달한 나라가 있는가 하면, 식食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는 나라도 있어요. 후자의 경우 ‘그런 환경에서 이들은 무엇을 먹는가?’ ‘마트에서는 무엇을 파는가?’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동선을 짜는 거예요. 그것도 나름의 재미이죠.

하지만, 어느 나라든 동선을 짜는 기본 규칙은 비슷해요. 우선, 식당 영업시간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그 근방에 괜찮은 맛집 식당을 최대한 많이 찾아두어야 해요. 많이 찾아두다 보면, 길거리를 거닐다 봐두었던 식당을 우연히 만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저는 맛집을 찾을 때 리뷰를 꼭 확인하는데요. 한국 사람들의 리뷰뿐만 아니라, 현지인들이 가장 많이 쓰는 온라인 미식 사이트가 무엇인지 알아둬서 잘 활용하는 편입니다. 리뷰는 평점이 좋다 나쁘다에 치중하기보다 리뷰를 직접 하나하나 읽어보는 게 더 필요해요. 하지만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해가도, 실패할 수는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내가 볼 때 이게 괜찮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었는데, ‘이게 별로였구나’ ‘이곳은 이런 포인트로 장사를 했구나’ 왜 실패했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알게 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거든요. 

아! 그리고 꼭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이 ‘우리 위장 크기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에요. 한 지역 안에서 두 끼 이상의 음식점을 찾아두면 좀 곤란해요. 너무 배가 불러서 먹지 못할 수도 있거든요. 음식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도록 거리상 적당히 떨어져 있는 곳으로 맛집 동선을 짜두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동선 중간중간에 미술관이나, 요리책을 서핑할 수 있는 서점 등을 넣어두는 편입니다.

Q. 여행을 다녀온 후, 두고두고 생각났던 음식이 있다면요? 

파리의 ‘바게트’요. ‘진-짜 맛있다’라는 문장밖에 생각나지 않네요.(하하) 제가 한국에서 프랑스 요리 공부를 마치고, 막내 고모와 함께 첫 프랑스 여행을 떠났어요. 제가 먹고 싶은 요리 리스트가 얼마나 길었는지 몰라요. 그때만 해도 바게트에 큰 관심이 없었어요. ‘먹어보면 좋긴 하지만, 다른 음식 들어갈 배도 없는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다 한번은 프랑스 유명 빵집인 ‘에릭 카이저’에서 샐러드를 시켰는데, 바게트 반 통을 무료로 끼워줬어요. 자리에 앉아서, 사진을 찍고, 별생각 없이 바게트 껍질 부분을 조금 뜯어서 입에 넣었는데, 그게 너무 맛있는 거예요.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먹어버렸죠. 그날 이후, 매일 바게트를 하나씩 먹으며 지냈어요.(웃음)

집에 오고 나서도 바게트를 자주 떠올렸어요. 바게트 자체가 많은 걸 담고 있어요. 파리가 정말 걷기 좋은 도시거든요. 센 강은 한강에 비하면 작은 ‘하천’ 정도의 크기에요. 그리고 그 주변 두 블록 안에는 반드시 바게트를 파는 곳이 있어요. 사실 바게트는 굽고 나서 4시간 이상 지나면 딱딱해지는데, 그곳은 대부분 사람이 아침저녁으로 갓구운 빵을 사서 그 자리에서 바로 먹을 수 있는 환경인 거예요. 또한, 프랑스 사람들은 음식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요. 전문적으로 요리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누구든 ‘자신만의 맛집’이 있어요. 그냥 맛집도 아니고 ‘진저 브레드 맛집’ 같이 구체적인 음식 종류별로요. 그래서 누구와 만나도 ‘나만의 맛집’에 대해 서로 열띤 토론을 할 수 있을 정도예요. 즉, ‘파리의 바게트를 먹고 싶다’라고 말할 때 그 안에는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 ‘사람들과 음식 이야기를 마음껏 나누던 분위기가 그립다.’ 등 많은 것들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Q. 작가님은 다녀온 여행지가 그리울 때는 어떻게 하세요?

그럴 때는 요리를 시작해요. 현지에서 먹은 음식을 집에서 재현하는 거죠. 바게트도 그래요. 그곳에 다녀온 이후, 최근까지도 한국에서 바게트를 직접 만들어보고 있어요. 작년 11월부터는 발효종도 키워가며 열심히 도전 중이죠.

저는 여행지에서 돌아오기 전에 마트나 재래시장을 들러 새로 맛본 양념 및 향신료나 조리도구 등을 꼭 사요. 그곳에서만 얻을 수 있는 현지 레시피를 담은 요리책도 꼭 구매하고요. 때론 우연히 만난 현지인에게 색다른 레시피를 얻기도 합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요리하다 보면, ‘이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리가 있고 ‘이건 전혀 모르겠다.’ 싶은 게 있어요. 그땐 정보를 더 찾아봐요. 다양한 레시피를 공부하면서 이 요리의 가장 기초, 기본이 무엇인지 파악해요. 그러다 보면, 현지 음식과 완벽히 똑같이 만들지는 못해도, 추가하거나 때론 더해가면서 혹은 응용해서 변형해보기도 하면서 요리를 할 수 있어요. 만약, 실패하면 왜 실패했는지 분석해보고요. 이것도 일종의 여행인 거죠.

Q. ‘음식’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형태의 여행을 할 수 있네요. 해외가 아닌 국내에서도 이런 미식 여행을 즐길 수 있을까요?

네. 무조건 비싸고 희한하며 귀한 음식을 먹어야 좋은 여행이 되는 건 아니에요. 지금 내가 먹고 싶은 음식, 내게 필요한 음식을 고민하면서 한 끼를 먹는 게 중요하지요. 저도 한때는 해외여행에만 집중하던 때가 있었어요. 해외여행을 계획하는 몇 달 동안 여러 정보를 검색하며 여행 준비하는 재미로 삶을 살았어요. 여행을 다녀오면, 곧바로 또 다음 여행을 생각하며 살고요. 국내에 있는 동안 해외여행만 바라보면서 살았던 거예요. 그런데 코로나 시기 해외에 나가지 못하면서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내가 살아가는 이 삶도 어떻게 보면 하나의 여행이잖아. 지금 이 삶을 즐기는 방법을 고민해본 적이 있었던가?’

하루는 일이 너무 안 풀려서, 월차를 낸 적이 있었어요. 절에 들렀다 집에 오는 길에 잠시 서점에 들러 요리책을 둘러보고, 평소 먹고 싶었던 음식 한 끼를 먹었는데 그 작은 것에도 쌓였던 스트레스가 해소되더라고요. ‘일상에서도 즐길 수 있는 것이 있구나. 이것도 여행이 되네’ 싶었죠. 늘 해외여행만 생각하며 살았을 땐 여행을 일종의 도피 수단으로 여겼다면, 지금은 여행이란 일상을 더 건강하게 만들고, 더 즐겁게 살아가기 위한 수단으로 그 의미가 달라졌어요.

Q. 우리 삶에 여행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우리는 눈앞에 있는 일이나 문제 등에 매몰되기가 쉬워요. 이 일을 어떻게든 해내야 할 것 같고, 해결해야 할 것 같고, 이거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히는 거죠. 저도 일과 제가 분리되지 않아서, 번 아웃Burn out이 쉽게 오는 사람이었어요. 먹는 게 좋아서 푸드 에디터가 되고, 요리 작가로 일했는데 정작 내 밥은 못 챙겨 먹고 살았죠. 그래서 여행이 꼭 필요했어요.

삶에 새로운 변화를 주기 위해서는 내 주변을 완전히 바꾸어야 해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일상을 완전히 바꾸는 건 어렵잖아요. 그래서 전혀 다른 환경으로 내가 움직여보는 거예요. 여행이란 건, 제가 푹 빠져 있는 일상에서 저를 억지로 떼어놓는 일이에요. 멀리서 내 삶을 바라보고, 생각하기에 아주 좋은 조건이죠. ‘내가 이건 좀 잘못 생각했구나’ ‘이건 잘했구나’ 혹은 ‘내가 너무 시야가 좁았구나.’라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는 거예요. 시야가 좁을 때는, 절망스럽고 어려움이 되었던 일들이 멀리서 보면 전혀 다르게 보이기도 해요. 그러면, 여행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분명 차이가 있어요.

그리고 두 번째로는, 여행은 나를 알게 되는 과정이기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여행은 시간도, 돈도, 자원도 모두 한정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잖아요. 그 속에서 실패로 속상해하기도 하고, 때론 생각지 못한 것에 즐거워하기도 하지요.

그 시간을 통해 내가 무엇에 기뻐하며 슬퍼하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어요. 나에 대해 알아갈수록, 삶의 기반, 저의 기반이 단단해지고 확실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진로 고민이 많은 청소년 시기에 여행을 떠나기 어려운 현실이, 깊이 고립되기 쉬운 현실이 아쉽기만 합니다. 하지만, 만약 시간을 낼 수 있다면 단 하루라도 가까운 곳이라도, 여행을 떠나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맛있는 음식과 함께요.

정연주 씨는 여행 가서 순 먹기만 하느냐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데, 억울할 따름이라고 했다. 그의 말에 동의했다. 그에게 음식만큼 재미있고 무궁무진한 세계는 없는 듯했다. 먹고 싶은 음식을 동력으로 삼아 일상으로부터 잠시 떨어져 새로움을 맛보고, 그간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지친 몸을 음식으로 힐링하는 시간. 그것이 그가 말하는 여행이었다.

우리는 늘 유용하고, 뛰어난 것들로 삶을 꽉꽉 채워야 한다 생각하지만, 실제론 ‘무용한 것’같아 보이는 시간이야말로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무엇인가에 매몰되어 지친 사람이 있다면, 가까운 곳으로 미식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그의 말처럼 비싸야만, 맛있어야 할 이유도 없다니. 해볼 만하지 않은가.

온갖 날의 미식 여행

한없이 먹는 것만 생각하면서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는 음식 여행자의 기록이다. 다양한 음식을 맛보는 미식 여행을 통해 그 동안 소홀했던 나 자신을 오롯이 보살피는 맛있는 여행 에세이집.
 
정연주
 
요리하는 작가이다. ‘르 코르동 블루’에서 프랑스 요리를 공부하고, 요리 잡지 <CookAnd>에서 에디터로 근무했다. 현재 번역가이자 프리랜서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용감한 구르메의 미식 라이브러리>, <빵도 익어야 맛있습니다>, <프랑스 쿡북> 등을 옮겼고 <아니요, 그건 빼주세요>에 작가 1인으로 참여했으며 <온갖 날의 미식 여행>을 썼다. 음식이 얼마나 재미있고, 다양한 경험이 될 수 있는지 알리겠다는 각오로 요리에 관한 책을 오래오래 펴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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