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늦은 봄날이었다. 수원교도소의 교무과장님이 나에게 전화를 했다.

“목사님, 수원교도소에 한번 와주세요.”

그때 내가 극동방송에서 방송 설교를 하고 있었다. 이분이 그 방송을 듣고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가, 교도소에 들어온 잡지에서 다시 내 글을 보았다. 교도소에서는 반입되는 모든 우편물을 검사하는데, 한번은 ‘기쁜소식’이라는 잡지가 들어와 이분이 내용을 살피다가 거기에 내 글이 실린 것을 본 것이다. 이분이 잡지사에 내 연락처를 물어 나에게 전화를 했다. 며칠 후, 생전 처음 교도소에 찾아가서 교무과장님을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교무과장님은 나에게 재소자들을 위해 성경 공부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때부터 매주 월요일이면 오후에 수원교도소에 찾아가서 재소자들과 성경 공부를 했다. 5년을 그렇게 보내고, 내가 서울에서 대전으로 내려간 뒤에는 대전교도소에서 또 5년 동안 성경 공부를 했다.

일러스트=안경훈
일러스트=안경훈

그런데 죄명이 뭐예요?

수원교도소에서 성경 공부를 할 때 아주 성실한 재소자 한 명이 있었다. 그는 내가 볼 때 ‘저렇게 착한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선량했다.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렇게 착하고 진실한 사람은 처음 만나본 것 같았다. 그가 성경 공부에 참석해 성경을 배우면서 예수님을 믿고 죄를 사함 받았다.

한번은 그와 함께 이야기하다가 ‘이렇게 착하고 진실한 사람이 무슨 죄를 지어서 교도소에 왔을까?’ 하고 궁금한 마음이 일어났다. 재소자에게 죄명을 묻는 것이 교도소에서는 실례이다. 내가 굳이 알려면 교무과 사무실에 가서 얼마든지 물어볼 수 있었지만, 나는 그에게 직접 물었다.

“그런데 형제는 죄명이 뭐예요?”

둘이 재미있게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느닷없는 내 질문에 그의 얼굴이 빨개지더니 모깃소리만큼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살인에 살인미수입니다.”

“예? 형제가 사람을 죽였다고요? 또 살인하려다 미수에 그쳤다고요?”

파리 한 마리 죽이지 못할 것 같은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죽였는지 믿어지지 않았다. 그날은 어색한 가운데 이야기를 마쳤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에 칼이 들려 있었다

내가 수원교도소에 가면 교무과장님이 자신의 사무실을 상담실로 쓰게 해주었다. 나는 성경 공부를 마치고 재소자들과 그곳에서 자유롭게 개인적인 상담을 할 수 있었다. 하루는 그와 만나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 그는 자신이 어떻게 사람을 죽였는지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그의 이름은 김재용이었다. 그는 부유하진 않았지만 결혼해서 아들 딸 낳고 부산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아내가 뭔지 모르지만 자기를 속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괜찮겠지’ 했지만 정도가 점점 심해졌다. 나중에서야 아내가 춤을 추러 다닌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프리카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춤이 삶의 일부다. 북소리만 나면 그들은 궁둥이를 뒤로 빼고 손을 흔들면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들은 춤을 추면서 자신이 겪고 있는 슬픔을, 아픔을, 애달픔을 다 날려보낸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중년 부인이 춤을 춘다는 것은 별로 이미지가 좋지 않다. 어두컴컴한 실내에서 낯선 남자와 손을 잡고 춤을 추기 때문이다.

아내의 그런 모습을 상상하면 이 사람이 화가 이만저만 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춤을 추러 다니지 말라고 했다. 아내는 그러지 않겠다고 하고는 또 춤을 추러 다녔다. 제발 그만하라고 소리를 치고 간절히 부탁해도, 소용이 없었다. 가정에 평안이 사라지고 불안감이 계속 감돌았다.

어느 날 알게 된 사실은, 처형이 춤추는 곳에 아내를 데리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언니가 자꾸 가자고 해서 같이 간다며 아내는 그 사실을 털어놓았다. 이 사람이 처형 집으로 찾아가 애타는 심정으로 부탁했다.

“처형, 부탁이 있습니다. 제발 우리 집사람 데리고 춤추러 다니지 말아 주세요.”

그는 절박한 마음으로 부탁했는데 처형이 심한 말을 쏟아냈다.

“내 동생을 고생만 시키는 주제에, 네까짓 게 뭔데 날더러 이래라 저래라 해?”

너무 모욕적인 이야기를 듣자 그 순간 정신이 핑 나가버렸다. 그 뒤에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에 칼이 들려 있고 앞에는 처형이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었다. ‘아, 내가 사람을 죽였구나….

어떡해야 하지?’ 모든 것이 소용없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칼을 들고 밖으로 뛰어나가 “다 죽여버릴 거야!” 하고 칼을 휘두르다 경찰들에게 잡혔다.

재판을 앞두고 변호사가 그를 찾아왔다. 그는 변호사에게 “나는 당신이 필요 없어! 사형을 당할 거니까!”라고 소리쳐 돌려보냈다. 다음에 온 변호사도 그렇게 돌려보냈다. 세 번째 찾아온 변호사는 두 변호사와 달랐다. 그가 필요 없다고 소리치자 이렇게 반응했다.

“내가 변호비가 탐나서 당신을 찾아온 줄 알아요? 당신 변호해서 받는 돈은 나한테 술값도 안 돼요! 젊은 사람 인생이 불쌍해서 도와주려고 하는데 무슨 말이 그리 많아요?”

변호사가 진심으로 자기를 위하려는 모습을 보고 그가 자세를 바꾸었다. 아무 소리 하지 않고 변호사를 따랐다. 변호사가 마음을 써서 그를 변호해 사형을 면하고 교도소에 수감되어 형을 살았다.

그가 최고의 모범수가 된 가슴 아픈 이유

이 사람은 수원교도소에서 ‘대대장’으로 최고의 모범수였다. 수원교도소에서는 수감 생활을 아주 잘하는 사람에게 윗옷 가슴에 벌을 한 마리씩 달아주는 관례가 있었다. 벌이 두 마리가 되면 교도소 안에 어느 곳이든지 혼자서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가슴에 벌이 한 마리인 사람은 벌이 한 마리인 또 다른 사람과 짝을 이루면 벌 두 마리가 되어 어디든 같이 다닐 자유가 주어졌다. 그런데 이 사람은 가슴에 벌이 세 마리나 되었다. 자신은 물론, 벌이 없는 재소자 한 사람까지 데리고 다닐 자유가 있었다.

내가 월요일마다 성경 공부를 하러 가면 이 사람이 모든 부분을 도왔다. 자유롭게 다니면서 재소자들을 불러 모으기도 하고, 모인 사람들을 정돈시켜 앉히기도 하고…. 나는 성경만 가르치면 되도록 그가 모든 일을 대신해 주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정말 가깝게 지냈다.

나중에 그가 어떻게 최고의 모범수가 되었는지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사형은 면했지만 마음에는 절망이 가득했다.

‘내가 여기서 나간들 누가 살인자에게 일자리를 주겠는가? 나가봐야 비참하게 살 뿐이다. 이미 망가진 인생, 빨리 나가서 나를 이렇게 불행하게 만든 사람들을 다 죽이고 나도 죽어야겠다.’

교도소에서 빨리 나가 복수하고 자신의 인생을 끝내버리려고, 그는 모범수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다른 재소자들을 도우면서 그는 헌신적으로 살았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도 그는 천사처럼 선하게 보였는데, 마음에는 전혀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아름답게 사는 인생 2막 이야기

교도소에서 10년 동안 재소자들을 가르치면서 나는 많은 사람을 만났다. 재소자들에게는 특별한 면들이 있는데, 성경 공부를 하는 동안 마음이 바뀌는 것을 보면 정말 기쁘고 즐거웠다. 20명, 30명, 40명이 모여 성경 공부를 하다가, 내가 해외에 갈 일이 많아지면서 어쩔 수 없이 성경 공부를 중단했다.

원하지 않았지만 인생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살인자가 되었고, 교도소에서 빨리 나가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린 사람들을 다 죽이고 자기도 죽으려고 했던 김재용. 누구도 이 사람을 바꿀 수 없었지만 그가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변했다. 우리같이 더럽고 추한 인간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준 예수님의 사랑을 알면 변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그리고 몇 년 뒤, 그는 출소해서 부천에 있는 교회에 다니며 새 삶을 시작했다.

평생 살인자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그가 마음이 바뀐 뒤엔 재혼해서 좋은 가정을 이루었다. 그의 아내도 그처럼 마음이 곱다. 두 사람은 지금도 얼마나 행복하게 사는지 모른다.

수원교도소에서 성경 공부를 했던 때가 얼마 전인 것 같은데 세월이 많이 흘렀다. 며칠 전, 어떻게 지내는지 그에게 전화를 했다. 주차장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거기서 받는 돈으로 가족이 생활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했다. 자녀들도 잘 자라서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그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에게도 연락해서 물어보니, 누구보다 성실하게 교회를 위하며 산다고 했다. 얼마 전에는 그 교회의 장로로 안수도 받았다고 했다.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깊은 사랑을 받으면 사람은 변한다

성경에 보면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등등의 법이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게 살아서 사람이 변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죄인이든지 예수님의 뜨거운 사랑을 받을 때 변한다. 교도소에서도 재소자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 거친 마음이 꺾이고 어두운 생각이 바뀌는 것을 보았다.

내가 목회자로 일하면서 정말 감사한 것이 있다. 나는 사람을 바꾸거나 변화시킬 수 없지만, 내가 예수님에게 받은 사랑을 전했을 때 다른 사람들도 같은 사랑을 느낀다는 것이다. ‘나같이 더러운 인간’을 사랑한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으면 어두운 자신의 삶을 끝내고 새 마음을 갖는 것이다.

예수님을 알고, 죄를 사함 받아 그 사랑을 깊이 느낀 사람은 이전처럼 살려고 해도 살 수 없는 것을 보았다. 이런 사람이 남을 위하며 밝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았다. 김재용은 출소하고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한결같이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하고 자신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서 봉사하며 지내고 있다. 그의 삶을 보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삶은 잘하려고 애써서 변하는 것이 아니다. 깊은 은혜를 입고 뜨거운 사랑을 받으면, 악한 일을 하라고 해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변한다. 마약에든 도박에든 게임에든 빠져서 정상적으로 살지 못하는 사람도 큰 사랑을 받으면 마음이 감동해 변하는 것을 본다. 예수님의 사랑이 그런 사랑이다.

글쓴이 박옥수  

국제청소년연합 설립자이며 목사, 청소년 문제 전문가, 마인드교육 개발자이다. 성경에 그려진 마음의 세계 속에서 사람의 마음이 흘러가는 메커니즘을 찾아내, 이 내용을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나를 끌고 가는 너는 누구냐>, <신기한 마음여행>, <마인드교육 원론> 등 자기계발 및 마인드교육 서적 15권, 신앙서적 64권을 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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