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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칼럼] 그러니, 어디든 떠나시라
박문택 | 승인 2022.07.14 09:48

“집 나가면 고생이다.”라는 말은 여행을 떠난 후 들뜬 기분이 조금 줄어들고 힘이 들거나 맘대로 안 될 때, 우리 머리에서 맴돈다. “우리 집이 최고야.”는 여행에서 돌아와 현관문을 열고 짐을 거실에 던지면서 가족 모두 이구동성으로 하는 소리다. 이렇게 우리는 늘 투덜거리면서도 또다시 떠나고 싶어 한다. 시간이나 돈이 없으면 가고 싶은 나라나 도시에 관한 책이라도 사서 본다. 알찬 여행이 되려면, 가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하고, 배우려면 사전에 더 많은 걸 알아보고 가야 한다는데, 어떤 때는 이런 말이 피곤하게 들린다. 그냥 쉬고 싶고, 일정도 널널하게 짜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막상 가면 또 욕심이 생긴다. 계몽사상을 강조한 시대를 거친 우리 세대는 ‘언제 또 온다고 쓸데없이 여유를 부리는 거냐?’, ‘쉬려면 집에 있지 왜 왔어?’라는 소리가 저절로 속에서 올라오고, 그 소리 때문에 게을러지기도 힘들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해외 출장이나 교육이 있으면 한 번씩 데리고 갔다. 나는 나도 잘 모르는 유적지에 대해서 인터넷으로 알아본 자투리 지식을 억지로 끼워 맞추어 마치 몇 번 가본 것처럼 그럴듯하게 아이들에게 설명한다. 옆에 있는 아내는 아주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날 보면서 “당신은 모르는 게 없네.” 하면서 감탄을 하지만, 세 아이들은 “아빠, 언제 가?”, “아빠, 너무 힘들어.”,

“아빠, 여기 뭐 하는 덴데?”라며 내 가슴의 의욕을 다 빼 내버린다. “다음부터는 너희들이 미리 알아보지 않으면 아빠가 절대 안 데리고 다닐 거야.”라고 엄포를 놓고, 여행을 다니면서 메모를 할 수 있는 수첩과 귀여운 볼펜을 사주고, 퀴즈를 맞히면 저녁에 상을 준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온갖 예약을 확인하고, 운전까지 해야 하는 나 혼자만 늘 바쁘다. 해본 사람은 안다.

이쯤 되면 여행이 싫어져야 하는데, 이상하다. 난 여전히 여행을 가고 싶다. 지방에 있는 법원이나 경찰서에 갈 때, 막간을 이용해서 그곳의 명소를 지나가면서라도 보고, 아니면 거기서 가장 유명하다는 돈가스라도 먹고 온다. 어쩌다 가족들을 데리고 갈 때도 이제는 퀴즈를 내거나 장황한 설명을 하면서 유식한 척하지 않는다. 그냥 같이 걷고, 같이 보고, 같이 할 수 있는 만큼만 이야기한다. 왜? 이런 것들이 아이들 마음속에 남아 있다는 것을 여행을 다녀온 지 한참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고3이 된 큰 녀석은 중1 때 독일 유대인 박물관을 다녀와 보고 느낀 것을 지금도 과제에 곧잘 써먹고, 중3이 된 둘째 녀석은 초등학교 1학년 때 홍천에서의 1박 여행에서 아빠가 ‘꿈’에 대하여 한 말을 기억하고 있다. 축구를 좋아하는 귀염둥이 막내 녀석은 지나는 길에 잠시 아무도 없는 월드컵 경기장 기념품점에 들러 대한축구협회 영문 이니셜 ‘KFA’가 새겨진 2천 원짜리 배지 하나를 사줬을 뿐인데, 지금까지 아빠가 최고라고 하며 무척 잘 따르고 있다.

나를 비롯해 우리 어른들은 참 참을성이 없다. 들어가는 게 있으면 바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뭐든지 소화를 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 숙성을 시키려면 시간이 걸리는 법인데, 그 재밌는 여행을 가면서도 수학여행에서도 하지 않는 닦달을 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마음을 바꾸니, 나도 편해졌다. 그런데, 요즘 옆에서 가만히 보니까 이제 아내가 아이들을 한 번씩 몰아붙이기 시작한다. 나는 모른 체하고 그냥 둔다. 엄마는 아빠인 나와는 조금 다르게 아이들 마음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벌써, 7월이 됐다. 여름방학이면, 내가 사는 부산에 ‘서울 사람들’(우리는 그렇게 불렀다)이 몰려왔고, 백사장은 수박 같은 사람들 머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우리 토박이들이 입는 수영복과 그들이 입는 것이 달랐고, 그들 옆에 가면 우리 모습이 왠지 없어 보였다. 도대체 수영을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늘 허리 정도에 찰랑거리는 수심에 만족해야 하고, 거기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여기저기서 해경 아저씨들이 호루라기를 불어댔다. 그게 싫어서, 우리는 아무도 없는 외진 곳으로 가서 까만 튜브 하나에 친구들 대여섯이 주렁주렁 매달린 채 놀았다. 그러다 피서철이 끝나 해수욕장이 폐장하면 비로소 우리는 ‘서울 사람들’이 놀았던 드넓은 백사장으로 가서 다시 주인 행세를 했다.

옛날의 7월로 되돌아갈 순 없지만, 우리는 새롭게 맞는 또 한 번의 7월에 추억을 쌓을 수 있다. 여행을 통해 아는 것이 많아지는 것보다는 사람 사이에서 따뜻함을 느끼는 게 훨씬 좋다. 물론, 가르치는 것도 괜찮다. 다만, 성급하게, 곧바로 성과를 보려고 하면 안 된다. 미안하지만, 그러면, 여행을 다 망친다. 여행은 반드시 사람을 바꾼다. 그러니, 어디든 떠나시라.

박문택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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