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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大義를 위하여 사심私心을 버리다Analysis of Mind
김성훈 | 승인 2022.06.29 09:55

통쾌함과 의욕, 삶의 교훈까지 주는 삼국지 속 전쟁 이야기

‘삼국지’에는 전쟁 이야기가 수도 없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하고많은 전쟁들은 단순히 병력의 많고 적음에 결판이 나지 않습니다. 보잘것없는 전력戰力이지만, 이를 규합하고 힘과 마음을 모아 강적들을 쳐부순 싸움들을 ‘삼국지’에서는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갈량의 데뷔전이자 유비군 3천이 조조군 10만을 물리친 ‘박망파 전투’, 조조가 특유의 속전속결 전법과 치밀한 용병술로 원소의 10만 대군을 무찌른 ‘관도대전’, 삼국시대 가장 유명한 싸움인 ‘적벽대전’ 등이 그것입니다.

모든 것이 열악한 상황에서 거둔 극적인 승리는 듣는 이에게 통쾌함을 선사하고 ‘우리도 한번 해 보자’는 의욕을 불러일으킵니다. 나아가 ‘저들은 어떻게 승리했을까?’를 고찰해 보면, 삶에서 만날 갖가지 어려움을 돌파하고 재앙을 피할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합비성 전투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서기 208년, 북방의 제후들을 완전히 제압하고 천하의 절반을 차지한 조조는 남쪽으로 말머리를 돌립니다. 만만찮은 군세를 보유한 형주邢州 자사 유표와, 훗날 삼국의 한 축을 이룰 오吳나라의 손권을 평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먼저 대군을 이끌고 형주로 달려간 조조는 뜻밖에도 칼 한 번 휘두르지 않고 형주를 손에 넣었습니다. 유표가 급사하면서 후계자가 된 그의 둘째 아들 유종이 조조에게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원래 있던 병력에 형주의 병사들까지 더해 세를 키운 조조의 칼끝은 오나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손권은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한 유종과는 달랐습니다. 조조의 라이벌인 유비와 동맹을 맺고, 주유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해 적벽赤壁에서 조조와 맞서게 했습니다. 주유는 조조가 보낸 첩자들을 역이용해 그를 감쪽같이 속여 넘기는 한편, 화공을 앞세워 조조의 군마와 전함들을 모조리 불태우니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적벽대전’입니다. 몇몇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이때 몰살당한 조조군의 규모를 100만 정도로 묘사하고 있지만, 역사서나 학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실제 병력은 24~25만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조조가 적벽대전을 가리켜 ‘20년 넘게 전쟁을 치렀지만 이토록 치욕적인 패전은 처음’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조조에게 있어 적벽의 패전은 좀처럼 회복하기 힘든 결정적인 치명타였음이 분명합니다.

주유는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수십만 대군과 함선 수천 척을 하룻밤 만에 모조리 불태우는 대승을 거뒀다. 사진출처: 영화 <적벽>

‘가문의 원수를 상관으로 모시고 싸우라니?’

이후 조조는 수년간 군사활동을 자제하고 병사와 군량을 비축하며 힘을 길렀습니다. 특히 오나라와의 국경에 있는 합비성合肥城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합비성은 오나라가 중원으로 진출해 천하를 도모하려면 반드시 차지해야 하는 요충지였습니다. 적벽에서 대승을 거둔 손권이 그 여세를 몰아 합비로 쳐들어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합비성 수비를 누구한테 맡길까?’ 고심하던 조조는 평소 신임하던 장료張遼를 사령관으로, 이전과 악진을 부장副將으로 삼아 합비성으로 보냈습니다. ‘삼국지’를 잘 아는 독자라면 고개를 갸우뚱할 인사人事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전과 악진은 일찍이 조조가 거병할 때부터 그를 따르며 일한 창업공신들입니다. 반면 장료는 원래 조조에게 패해 죽임을 당한 여포의 부하였습니다. 주인인 여포를 따라 참수당할 운명이었지만, 평소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조조가 ‘자네의 잘못은 오직 주인을 잘못 고른 것’이라고 두둔하며 부하로 삼았던 것입니다. 과연 조조의 사람 보는 눈은 틀리지 않아 이후 장료는 숱한 공을 세우며 조조의 기대에 부응했습니다.

‘출신과 연배를 따지지 않고 철저히 능력 위주로 인재를 기용한다’는 것이 조조의 방침이었기에, 그를 합비성 수비의 총책임자로 임명한 것은 당연한 처사였습니다. 하지만 후배, 그것도 한때 적이었다가 항복한 패잔병 출신이 상전이 되었다 생각하니 이전과 악진은 기분이 몹시 언짢았습니다. 더구나 이전의 숙부 이건은 여포군과 싸우다 목숨을 잃었으니, 이전에게 있어 장료는 가문의 원수나 다름없었습니다. 그 사실을 아는 장료 역시 사령관 자리가 불편하긴 마찬가지였지만, 생명의 은인인 조조의 명을 감히 거스를 수 없어 묵묵히 맡은 바에 충실하며 손권의 침입에 대비할 따름이었습니다.

1994년 중국 CCTV에서 방영한 드라마 <삼국연의> 속 합비성 전투.1. 조조가 보낸 서신. ‘장료, 이전은 나가서 싸우고, 악진은 성을 지키라’고 적혀 있다. 2. 장료(가운데)는 이전, 악진을 불러 조조의 명을 전하지만, 둘은 꿈쩍도 않는다. 3. 장료(왼쪽)가 ‘혼자서라도 목숨 걸고 성 밖에 나가 적을 치겠다’며 화를 내자, 둘은 용서를 빌며 함께 싸울 것을 맹세한다. 4. 이전은 손권군이 지나가길 기다렸다가 다리를 끊어 퇴로를 막아 승리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CCTV

7천 명으로 10만 대군을 물리치다

그러던 서기 215년, 적벽대전의 승리 이후 기회를 엿보던 손권이 마침내 10만 군사를 일으켜 합비성으로 진격해 왔습니다. 합비성의 수비병은 7천 명이 고작이었습니다. 장료의 눈앞이 캄캄해지려던 찰나, 마침 조조가 보낸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장료가 허겁지겁 뜯어보니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손권이 쳐들어오면 장료와 이전은 나가서 맞서 싸우고, 악진은 성을 굳게 지켜라.”

조조의 의중을 깨달은 장료는 즉각 작전회의를 소집했습니다. 그리고 이전과 악진에게 조조의 서신을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주공의 명이 이러하니, 악 장군은 이 성을 지켜주시오. 적은 먼 길을 달려와 피로할 테니, 그 틈을 타 이 장군이 나와 함께 기습을 가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소. 어서 나가 싸울 준비를 서두릅시다.”

하지만 이전은 입을 굳게 다문 채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악진도 “적의 수가 훨씬 많으니 차라리 우리 셋이 수비에 전념하는 편이 낫지 않겠소?”라며 엉뚱한 소리를 해댔습니다. 이전과 악진 모두 장료의 지시를 따를 수 없다는 태도가 역력했습니다. 부아가 치밀어오른 장료는 칼을 빼들며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찌하여 두 분은 대의大義 앞에 사사로운 감정을 내세우는 것이오? 내 명을 따르지 못하겠거든 그냥 이 성에 남아 계시구려. 나 혼자 나가서 한바탕 목숨을 걸고 싸워볼테니!”

이전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장료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장군! 나라가 위기에 처했는데도 감정을 따라 멋대로 행동한 소장의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시오. 손권을 물리칠 수 있다면 어떤 명이든 기꺼이 따르겠소이다.”

그런 이전을 본 악진도 잘못을 뉘우치며 함께 싸우겠다고 나섰습니다. 사사건건 맞서던 부장들이 금세 마음을 돌이키고 자신을 상관으로 예우하는 모습에 장료는 백만대군을 얻은 듯 용기가 불끈 솟았습니다. 지도를 펴보이며 자신이 세운 작전을 이전과 악진에게 설명했습니다.

적벽대전을 소재로 한 영화 <적벽> 포스터

“합비성과 손권군 진영 사이에 ‘소사교’라는 다리가 있소. 내일 이 장군은 병사들을 데리고 소사교 근처에 숨어 계시오. 악 장군은 적진으로 쳐들어갔다가 거짓으로 패해 쫓기는 척하며 적을 합비성 쪽으로 유인하시오. 우리 군세를 얕잡아본 손권이 다리를 건너 쫓아오거든, 그때 이 장군은 다리를 끊어버리는 거요. 퇴로가 막힌 손권군이 우왕좌왕할 때, 악 장군은 나와 합세하여 역습을 가합시다. 우리 셋이 이렇게 한뜻이 되었으니, 틀림없이 적을 박살낼 수 있을 거요.”

그동안 반목하던 세 장군이 한마음을 품은 걸 가상히 여긴 하늘의 도우심이었을까요? 작전은 기가 막히게 들어맞아 장료와 악진은 순식간에 적장 둘과 적병 수십 명을 쓰러트렸고, 뜻밖의 반격에 깜짝 놀란 손권은 가까스로 살아남은 장병들을 수습해 도망치기 바빴습니다. 이 전투로 기세가 꺾인 손권은 열흘 만에 병사들을 철수시켰습니다. 장료, 이전, 악진이 강적을 패퇴시킨 소식을 들은 조조가 크게 기뻐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세 사람에게 많은 상을 내리며 조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료는 부하 장병들을 잘 통솔한 데다 상대의 허를 찌르는 작전으로 멋지게 적을 물리쳤으니 장군의 상을 내리겠다. 이전과 악진은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는 큰일 앞에, 사심을 버리고 후배 밑으로 들어가 싸우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으니, 진정 ‘큰일을 먼저 생각한 큰 사람’이라 할 만하다. 그러니 자네들에게는 대인大人의 상을 내리겠노라.”

합비성 전투를 계기로 묵은 감정을 깨끗이 털어버린 세 사람은 그 후로도 합심해 일하며 많은 공을 세웠습니다.

‘합비성 전투’의 무대가 되었던 중국 허페이 시의 현재 위치와 오늘날 모습

대의大義를 위하여 사심私心을 버리다

합비성 전투의 뒷이야기는 ‘삼국지’를 읽는 독자들을 가슴 찡한 감동에 젖게 합니다. 7천 병력으로 10만 대군을 물리쳤다는 수치상 전적 때문이 아닙니다. ‘나라의 위기’라는 큰일 앞에 ‘저 사람은 내 후배이자 가문의 원수’라는 개인적인 감정과 원한을 뒤로하고 싸움에 임한 이전의 도량과 배포를 정확히 엿볼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도량과 배포는 우리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줍니다. 흔히 ‘사심私心을 버린다’고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내려놓기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 듯합니다. 일례로 한 남성은 술에 취한 채 택시를 탔다가 택시비를 냈냐, 안 냈냐를 놓고 기사와 실랑이가 붙었습니다. 파출소로 갔지만, 경찰들이 술에 취한 그의 말을 들어줄 리 만무했고 화가 난 그는 행패를 부리다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다음 날에도 분이 풀리지 않았던 그가 파출소 앞에서 분신을 기도하면서, 이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에 이르렀습니다. 억울함은 어느 정도 풀었지만, 화상이 악화된 그는 결국 숨을 거두었고, 아내와 아이들은 하루아침에 가장家長 없는 가족이 되고 말았습니다. 자기 기분과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극단적 행동으로 사랑하는 가족까지 불행으로 몰고간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이 잘못되었음을 발견하고 내려놓을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삼국지’ 속 영웅들의 마음가짐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는 길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이전은 ‘백만 대군을 뚫고 적장의 머리 베기를 주머니에서 물건 꺼내듯 한다’는, ‘삼국지’를 대표하는 맹장들보다 훨씬 더 멋지고 위대하게 느껴집니다.

글 김성훈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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