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투머로우

상단여백
HOME People
그가 미소 짓기 시작했다브라질에서 정말 행복한 남자 말씨우 마찌우지
조현주 기자 | 승인 2022.06.07 16:34

우리는 살면서 기쁜 일들도 만나지만, 슬프고 힘든 일들도 만난다. 슬프고 힘든 일들 앞에서 어떤 해결도 할 수 없을 때가 더 많다. 인생의 어려움을 피할 수는 없지만, 어려움을 받아들이는 모양은 사람마다 같지 않다. 어떤 이는 죽음 앞에서 끝없이 오열할 수 있고, 어떤 이는 정해진 섭리라며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죽음 자체를 즐거워할 사람은 없다. 2년 반 동안, 코로나는 지구 위 모든 사람들에게 불안과 불편의 상처를 남겼다. 우리나라와 대척점에 있는 브라질은 상황이 더 심각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고, 슬픔과 아픔과 두려움을 경험해야 했다. 코로나로 정말 소중한 것을 잃었지만, 그로 인해 삶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한 행복한 남자를 소개한다.

브라질 상파울루의 본지 특파원이 유튜브 영상 하나를 보내왔다. 그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무릎을 꿇고 손을 들고 기도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들은 살아서 울부짖고 있지만, 곁에 다가온 죽음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가족이 코로나에 걸려 입원하면 면회를 갈 수 없었고, 거기서 죽으면 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 사랑하는 부모님, 사랑하는 자식이 외롭게 눈을 감는데도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에, 정이 많은 브라질 사람들은 더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차를 세우고 길에 구푸리고 앉아 절규했던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 마음에 공포와 슬픔을 쏟아붓던 코로나가 이제 뒷걸음치며 슬슬 사라지고 있다.

오토바이를 무진장 좋아하는 남자

코로나가 삶을 관통하면서 상처를 입은 수많은 브라질 사람들 중에 말씨우 마찌우지Márcio Mattiuzzi 씨가 있다. 그는 상파울루 시에서 제법 규모 있는 건축자재 납품 회사를 두 남동생과 같이 운영한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동생들과 달리, 아직 미혼인 그는 비교적 시간 여유도 있고 생활도 단출하다. 유일한 취미라면 퇴근 후에 오토바이를 즐기는 일이다. 

밤낮이 정반대인 시차에 맞춰 약속을 잡고, 그와 줌 화상으로 만났다. 인터뷰를 하면서 왜 오토바이를 타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아드레날린!”

그는 한 마디로 간결하게 답했다. 과격한 운동으로 몸을 격렬하게 움직일 때 분비되는 아드레날린은 뇌를 흥분시켜 우리의 기분을 아주 좋게 해주는 호르몬이다. 오토바이 타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하고 남을 단어였다.  

평범한 가정에 맏아들로 태어난 그는, 풍족하진 않아도 부족한 줄은 모르고 자랐다고 한다. 신중하게 행동하고 부모님을 따르는 ‘착한’ 아들로 살아온 그가 부모님 뜻을 거스른 일이 있었다. 자전거를 사러 갔다가 오토바이를 타고 집에 들어온 날이었다. 위험한 물건이라며 사고나기 전에 바퀴부터 찢어버리겠다고 화를 내시는 어머니께 동네에서만 조심해서 타겠다고 애걸했다.

그런데 오토바이의 맛을 점점 알아갈수록 사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이 많아졌다. 돈을 보태 더 나은 기종으로 바꾸고, 동네를 벗어나 옆 도시에도 가보았다. 한번은 모터바이크 채널에서 생생한 체험담을 들었다. 브라질에서 알래스카까지 오토바이로 다녀온 남자가 여행에서 생긴 에피소드들을 재미나게 이야기했다. 그 남자처럼 브라질 국경을 넘어 멀리 가보고 싶었다. 이 꿈을 이루겠다고 결심한 그는 돈을 모으고 치밀하게 계획도 세워갔다. 여행 날짜에 맞춰 휴가를 낸 날, 그는 새로 장만한 1600cc 오토바이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두둥두둥 두두두둥’

 낮게 울리는 엔진 소리에 심장이 엇박자로 같이 뛰었다. 해안선을 따라 기분 좋게 달리며 온몸의 세포들을 흔들어대는 바람결을 느꼈다. 아름다운 남부 도시 뽀르뚜 알레그리를 거쳐 목적지인 우루과이까지 왕복 3,500km의 먼 길을 그는 즐겁게, 무사히 여행했다. 혼자 보기 아까운 기막힌 절경을 ‘혼자’ 보면서 말이다. 

코로나 등장으로 평온했던 그의 삶이 뒤집히다

22년 동안 큰 사고 없이 오토바이를 탄 그에게 코로나 바이러스는 호의적이지 않았다. 연로하신 아버지가 친구분들과 북쪽 지방을 여행하고 오신 뒤 피곤하다고 하셨는데 이내 확진자로 판명났다. 병원에 가기 싫다고 하셨지만, 삼촌의 권유로 입원을 했다. 가족 면회는 불가능했고 담당 의사가 전화로 아버지의 상황을 알려주었다. 병세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니 곧 퇴원하시겠지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심장 쇼크로 세상을 떠나셨다. 

임종을 직접 본 것도 아니고, 병원에서 전화로 알려준 내용을 듣고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2020년 5월, 입원 2주째 되는 날에 아버지는 유언 한마디 남기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 마침 그날은 어머니가 세상에 태어나신 생신날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죽음에 어머니와 둘째 동생은 울 수 없을 때까지 목 놓아 울었다. 장례식을 마칠 때까지 마음이 어수선하더니 그도 결국 코로나에 걸렸다. 병원에 안 가고 견디려니 몸도 마음도 아팠다.

같이 살아온 가족이라고 해서 죽음 앞에 반응하는 방식이 다 같지는 않다. 누군가는 끝없이 오열하고, 또 누군가는 사람이 세상에 왔다가는 일은 정해진 이치라며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두 유형 중에서 그는 후자에 더 가까웠다. 아버지의 죽음을, 꽃이 피고지듯 자연의 과정으로 감정의 큰 동요 없이 받아들였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브라질 거리의 모습이다. 그때는 병원에 입원했다가 살아서 나오면 다행이지만, 거기서 죽으면 감염될까봐 그대로 매장을 시켰다. 임종도 보지 못한 채 부모를 잃고, 남편을 잃고, 아내를 잃은 수많은 사람들은 슬픔을 견디지 못했다. 사진에서처럼, 길가에 무릎을 꿇고 손을 들어 간절히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모든 사람은 삶의 어느 지점에서 죽음과 한 번은 만나게 되어 있다. 아버지는 코로나로 만날 지점이 예상보다 약간 당겨진 것이다. 아버지가 싫은 것도 아니고, 그의 성품이 매정해서도 아니다. 죽음은 그냥 죽음이었다. 생과 사의 문제를, 당장 풀지 못해 접어둔 수학문제처럼 그는 마음속에 넣어두었다.

그보다 급한 것은 아버지가 남긴 회사를 동생들과 같이 운영해가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생전에 세 아들에게 ‘일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항상 쉬지 말고 일하라.’고 하셨다. 실제로 아버지의 회사는 바쁘게 돌아갔다. 여기저기 건설 현장에서 모래와 자갈을 계속 주문했고, 군부대에 납품할 건축자재들도 챙길 것이 많았다.

당장은 물러받은 회사의 대표로 일하고 있지만, 머지 않아 두 동생에게 다 맡기고 떠날 생각을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제가 이루고 싶은 또 다른 꿈이 생겼어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온 대도시 말고, 치안도 안전한 작은 도시로 가서 조용하게 살겠다는 꿈이에요. 팬데믹 전부터 저는 이사갈 곳을 알아보며 떠날 준비를 조금씩 해왔어요. 아버지도 안 계시니 꿈을 실행할 때가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2년 전 브라질에는 코로나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고, 총성 없는 공포 속에서 모두 적잖은 두려움을 느끼며 살고 있었다.

1. 말씨우 씨와 이상수 특파원(사진 오른쪽)이 ‘따봉’ 포즈로 촬영을 했다. 그를 추천한 이유를 물으니, 건축자재에 관해 취재하다 알았는데 만날수록 마음의 온도가 올라가는 따스함을 그에게서 느꼈다고 한다.
2. 아버지로 물려받은 회사에서 현재 대표로 있는 말씨우 씨는 모래와 자갈, 시멘트 등을 건설 현장과 군부대에 납품하는 일을 하고 있다.

남을 위해 죽는 ‘가치 있는’ 죽음도 있구나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 가서 설교를 들었다. 그 내용 중에 그가 알고 있던 죽음과 다른 죽음이 있었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 때가 되면 죽는 줄 알았는데, 예수 그리스도는 내 죄를 씻기 위해 대신 죽음을 선택했다.  

“누군가를 살리는 ‘가치 있는’ 죽음도 있구나. 예수의 죽음이 내 죄를 모두 씻었고 영원히 살게 하셨구나!”

십자가의 죽음이 자신과 무관하지 않음을 깨달은 그는 생각에 잠겼다. 죽음 속에서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 삶을 위해 죽는다는 역설逆說의 세계도 알 것 같았다. 자신의 생명을 드려 인류를 살린 그리스도의 가치로운 죽음이 나를 의롭게 했다는 사실이 믿어졌고 기뻤다. 그리고 너무 고마웠다. 그러면 아버지의 죽음도 나와 무관한 게 아니었나? 그제서야 아버지의 죽음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되짚어보았다. 아버지는 사업체만 남겨준 게 아니라 다른 좋은 것들도 이미 아들에게 다 주었다.

‘아버지는 살다가 그냥 돌아가신 게 아니었어. 최선을 다해 사셨고 나를 향한 사랑과, 따뜻한 기억들을 남겨주셨어. 앞으로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될까?’ 목숨을 내놓을 수는 없지만, 그도 의미가 있는 일에 자신의 시간과 돈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요즘 말씨우 마찌우지 씨의 오토바이는 650cc이다. 원래 혼자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고, 빈 말이라도 “뒤에 탈래?” 하며 권하지 않았다. 사람들과 엮이고, 뭉치는 삶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필요하다면 오토바이에 누군가를 태우겠다고 말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목적지가 달라지다

원래 그는 혼자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고, 빈 말이라도 “뒤에 탈래?” 하며 권하지 않았다. 사람들과 엮이고, 사람들과 뭉치는 삶이 부담스럽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필요하다면 뒷자리에 누군가를 태우겠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만을 위하고 자신만의 기쁨만 누리던 세계로부터 터벅터벅 걸어나와,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란다. 

요즘 그가 다니고 있는 교회는 예배당을 증축 중이다. 공사에 필요한 모래와 자갈을 그에게 주문하면 어느 현장보다 먼저, 빨리 가져다준다. 작은 덤프 트럭에 모래를 잔득 싣고 와서 마당에 부어놓은 뒤 씨익 웃고 가는 말씨우 씨. 어느덧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목적지가 달라졌다. 멋진 숲길이나 해안도로보다 목사님과 상담하러, 예배에 참석하러 오토바이의 핸들을 돌릴 때 아드레날린이 솟는 걸 느낀다. 본인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지만, 숨겨둘 수 없는 감사와 기쁨이 그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본다. 코로나 때문에 힘든 일을 겪었지만, 코로나 덕분에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말씨우 마찌우지 씨처럼, 혼자 묵묵히 자신의 신념을 따라 살던 사람들에게 코로나는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삶인지를 정확히 가르쳐 주었다.

글 조현주 기자  현지진행 이상수 특파원

조현주 기자  realantique@nate.com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조현주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