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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행복을 배우는 과정이 아닐까요?르노코리아 자동차 바이어 이경원
고은비 기자 | 승인 2022.06.07 16:33

‘해방’이란 구속이나 억압, 부담 따위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을 뜻한다. 일상에서는 자주 쓰지 않던 이 단어가 최근 SNS와 각종 미디어에서 자주 등장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스스로 ‘나는 무엇에 묶여 있는가?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는 요즘, 그 고민으로 오랜 나날을 보내왔으며 마침내 그 답을 얻은 사람을 만났다. 현재 르노코리아자동차에서 근무하는 이경원 씨를 소개한다.

이경원 대구 출신으로 경북대학교를 졸업했다. 2008년,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다녀왔으며, 현재는 르노코리아자동차에 입사해 배터리 담당 바이어로 일하고 있다. 과거에는 삶의 부족함을 ‘만회’하거나 ‘극복’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으나, 지금은 모든 일을 ‘즐거움’과 ‘배움’으로 접근하고 있다.

‘해방’에 대한 고민을 하셨다고요.

그 단어가 무척 철학적이네요.(웃음) 조금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제가 사는 방식이 싫어서, 답답해서 좀 달라지고 싶어서 오랫동안 발버둥 치며 고민했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아요. 저는 성격이 무척 내성적이고, 콤플렉스도 많았어요. 작은 키에, 곱슬머리에… 제가 저를 봐도 너무 볼품없어 보였거든요. 그러니 친구를 사귀는 게 무척 힘들었어요. 다가가서 친해지는 것도 힘들었지만, ‘저 사람이 나를 무시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저를 괴롭혔거든요. 사람들과 대화 한마디를 나누지 않는 날도 많았죠. 그런 제가 싫었어요. 성격 좋은 사람이 부러웠고, 좀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저를 고쳐보려고 오랜 날 무던히도 애를 썼죠.

‘더 나은 삶’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시기가 길었나 봅니다.

학창 시절부터 직장에 적응할 때까지 마음 편한 날이 거의 없었어요. 처음에는 외향적인 친구들 흉내를 내보려고도 했는데 전혀 소용이 없더군요. 오히려 그 여파로 제가 더 입을 다물게 된 것 같아요.(웃음) 그러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좋은 대학에 가면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어’ 하면서 공부에 몰입했어요. 우울하고 답답한 제 인생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었죠. 하지만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도 ‘나’라는 사람이 달라지진 않더라고요. 사람 관계가 여전히 힘겨웠어요. 그래도 제게는 ‘좋은 직장에 가면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어’라는 마지막 끈이 있었어요.  사람들과 잘 어울리든 말든 동아리, 취업 스터디 등 대외 활동이라면 뭐든 악착같이 했어요. 누구보다 열심히 취업 준비를 했고. 목표로 삼았던 르노코리아자동차에 입사했습니다.

무척 뿌듯했겠네요.  

네, 부모님도 굉장히 기뻐하셨어요. ‘이제 이렇게만 쭉쭉 나가면 내 인생도 잘 풀리겠다.’라며 만세를 외쳤어요. 그런데 생각지 못한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더군요. 신입사원들은 대부분 긴장하는데, 저는 그 정도가 너무 심했어요. 회의에 참석하고 나오면 그 내용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였죠. 거의 매일 혼이 났어요. 시간이 흐를수록 더 나아져야 하는데, 오히려 더 위축되고 말았죠. 특히나 저는 자동차 부품 관련 협력사 분들을 만나 협상하는 일을 해야 했기에 그런 제 모습이 큰 스트레스였어요.

처음에는 집을 나서기 전에 ‘할 수 있다!’며 주문을 걸어봤지만, 사무실 문을 여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 아무런 의미가 없었죠.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듯한 사람들의 눈빛과 끝없는 자책이 저를 계속 눌렀어요. 그 상태로 1년이 흐르니, 아침에 눈을 뜨는 게 두려울 정도였어요.

좀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데, 이젠 무엇을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막막했어요. 하루는 출근을 앞두고 ‘그냥 다 포기해 버리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의외의 연락을 받았어요. 7년간 서로 왕래가 없던 대학 선배가 불쑥 전화를 걸어 와 안부를 묻더니 “대학 시절 활동했던 해외봉사 단원들이 동문회를 여는데, 같이 참석할래?”라고 하는 거예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제 앞길을 틀어준 한마디였어요.

타이밍이 절묘하네요.

그렇지요?(웃음) 제가 대학생 때 여러 활동을 했는데, 그중 하나가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자원봉사를 떠난 것이었어요. 앞서 말한 것처럼, 동아리며 취업 스터디며 정말 다양한 대외 활동을 마구 했는데, ‘하길 잘했다’고 유일하게 꼽는 활동이었죠. 아프리카에서 정말 소중한 추억들을 많이 얻었거든요. 바쁜 삶 속에 묻혀, 그날 일들은 잊은 채 살고 있었는데, 전화를 받으니 그 시절이 그리웠어요. 가겠다고 답을 했죠. 그리고 선배를 그곳에서 만나, 정말 오랜만에 원 없이, 투명한 대화를 나눴어요.

1.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같이 지냈던 동생, 친구, 형과 누나들. 총 18명의 동료 단원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누군가와 대화하고,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을 맛보았다. 사진에서 맨 왼쪽 앞줄이 이경원 씨.
2. 숙소에서 조금만 걸어 나가면 동네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달리기 시합도 하고, 사진도 찍으며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천진하게 놀곤 했다.

투명한 대화는 구체적으로 어떤 대화일까요.

있는 그대로 말해도 거리낄 게 없는 대화요. 선배와 아프리카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는데 무척 즐거웠어요. 아프리카는, 제가 태어나 말을 가장 많이 했던 곳이거든요. 저를 따듯하게 환영해주던 동기들, 현지인들 덕분에 어디서든 입이 아플 때까지 말을 했어요. 일요일 아침마다 어린이 캠프에 참여할 아이들을 데리러 40분간 걸어가며 나눈 대화들…. 체험 여행을 떠났을 때 작은 시골의 학교 강당에서 짧은 강연을 했던 기억도 나더군요. 그때 제가 ‘저는 키는 작지만, 많이 먹어요.’ 하고 소개했더니 아이들이 크게 웃었어요. 그 시절로 갔다가, 다시 귀국 후의 삶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말하기 시작했어요. 직장 생활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게 처음이었어요. 그전까지 나를 정말 한심하게 볼까 봐 직장 동료들에게 괜찮은 척하고, 부모님 주름살 깊어질까 봐 가족들에게도 숨겼었거든요. 말하고 나니까 속이 후련했어요. 제 이야기를 편하게 들어준 선배가 고마웠죠. 그 후로, 선배와 안부를 주고받기 시작했어요. 덕분에 봉사단 선후배들과 연결되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때부터 회사 팀장님이나 동료들이 ‘네가 이제 마음을 잡았나 보다.’ ‘뭔가 달라 보인다.’라는 말을 제게 했어요.

어떤 변화의 계기가 있었나요?

특별한 계기나 사건은 없었어요. 봉사단 선후배들과 화요일마다 만났어요. 비슷한 또래의,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자유롭게 대화하는 자리였어요. 가끔 후배 단원들을 위한 이벤트를 열기도 하고, 청소년 행사를 보조하는 일도 하고요. 그 시간이 제게는 무척 각별했어요. 매주 화요일만 기다릴 정도였습니다. 하루는 출근하기 전에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봤어요. 여전히 곱슬머리에, 키는 작았죠.(웃음) 그런데 그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제 표정은 이미 달라져 있었거든요.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글쎄요. 주변에 좋은 분들이 생겨서가 아닐까요. 진심으로 저를 아껴주는 친구들, 배울 점이 많은 선배님이 많거든요. 한번은 제가 직장에서 크게 야단을 맞았는데, ‘나는 왜 늘 이렇게 부족한가?’라는 제 1호 고민을 화요 모임에서 털어놓았어요. 그랬더니 선배들이 각자의 경험담을 들려줬어요. 어떤 분은 ‘내가 부족하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묻고, 배우면서 오히려 동료들과 가까워졌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팀장님이든, 후배든 마음을 열고 묻기도 하고, 감사한 것도 표현해보라고 조언을 해주셨어요. 제가 그대로 한번 해봤어요. 지적받을 때, 움츠러들지만 말고 주변 사람들을 찾아가 묻고, 잘못된 건 고쳐보고, 배우기 시작했어요. 저도 그게 되더라고요.(하하) 그렇게 몇 년이 흘러가면서 제 삶에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났어요.

언제든지 그만둘 생각을 하던 제가 직장에서 무사히 진급했고, 최근에는 팀의 실적을 관리하는 일을 맡으면서 매달 본부장님을 뵙고 보고하는 일도 해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해서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고요. 또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돈도 많이 벌어 기부도 하고 싶고, 유익한 다른 활동을 해볼 꿈이 생겼어요.

종종 후배 봉사단원들을 찾아가 응원 메시지를 전한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떨리긴 하지만, 동문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자기로부터의 해방, 그 자체이네요.

네, 해방을 얻었죠. 돌아보면 저는 온몸에 힘을 주고 ‘별 볼 일 없는 사람’ ‘볼품없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무지 애를 쓰며 살았던 것 같아요. 내가 봐도 부족한 점이 많았으니까요. 인생의 좋은 패를 쥐어보려고 많은 시간을 쏟아왔어요. 그게 나를 지키는 길이라 여겼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그런데 그 생각이 틀렸더군요. 괜찮아야 한다는 그 생각이 오히려 저를 옭아맸으니까요. 

동문회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한 가지 명확하게 알게 된 사실이 있어요. “내가 남아공에서 즐거웠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공감하며 즐거워하고, 그들에게 때론 박수도 쳐주며, 즐겁게 살아갈 수 있던 사람이었지. 산다는 게, 이 맛이었지!” 내가 누구보다 높냐, 낮냐 혹은 얼마나 많은 커리어를 가지고 있느냐보다 누군가를 만나 감사를 느끼고, 공감하는 행복을 마음껏 누리며 사는 그 자체가 사실 소중한 거였어요. 이제는 제 시간을 그런 행복을 느끼는 데에 쓰고 있습니다.

예전의 이경원 씨처럼, 답답한 삶에서의 해방을 찾고 있을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지금 당장, 눈앞이 캄캄해도 너무 절망하지 마세요. 우리가 보지 못한 것들,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들이 정말 많으니까요. 어느 날 제가 사회 부적응자가 되어 힘든 날을 보내기도 했지만, 예상하지 못한 기회로 새로운 사람이 되어,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사는 날도 오더라고요.(웃음)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크게 여기지 않았던 경험과 추억이 헝클어진 제 인생에 뼈대를 잡아주기도 했어요.

그러니까 힘든 일, 짜증 나는 일, 절망스러운 일을 만날 때 혼자서만 싸매고 어려워하지 않기를 바라요. 많은 사람과 함께함으로써 나와 다른 ‘또 다른 시각’을 받아들이길 원해요. 이건, 제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합니다.

인터뷰 끝에 이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좀 오래 걸리더라도, 문제의 현상이 아닌 본질을 꿰뚫어 봐. 그게 더 빠른 길이다.” 선배 기자들이 종종 해주던 말이었는데, 이경원 씨의 ‘해방기’가 꼭 그 문장과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우리는 종종 눈앞에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만 몰두하느라 ‘진짜 내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놓치곤 한다. 이경원 씨도 그렇게 오랜 날을 헤매었지만, 어느 날 가슴 벅찬 행복을 느꼈을 때 그가 그토록 고민하던 문제가 모두 풀어지는 걸 보았다. “특별한 걸 한 적이 없었어요. 그냥 함께했을 뿐인데 제가 바뀐 거예요.”라던 그의 말을 여러 번 곱씹어 보았다.

고은비 기자  press49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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