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의 삶은 늘 부담스럽고 힘들다. 2001년에 기적적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지만, 경찰서를 다니고 재판에 참석하고 또 결과를 기다려야만 하는 시간들은 항상 나를 초조하게 했다. 사건이 종결되어도 진행 중인 사건들이 더 많아서, 일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는 끝이 없는 것 같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의 사활死活이 걸려 있는 문제를 내가 잘 처리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가슴에 통증을 느끼거나 몸에 이상 증세가 나타날 때도 있었다. 이런 것은 나뿐만 아니라 동기 변호사들도 느끼는 증상이었다. 그래서 우리 변호사들의 소원은 빨리 이 일을 그만두는 것이다. 그런데, 변호사를 그만두려면 지금 더 변호사 일을 더 열심히 해서 먹고살 것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 그러니 결국 변호사를 영원히 그만두지 못한다는 농담을 하곤 한다.

며칠 전 저녁에 초등학교 3학년인 막내아들이 나에게 말했다. “아빠는 자주 놀러 다니는 것 같아.”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유를 물었다. “아빠가 제주도 갔다 오면서 초콜릿을 사 왔잖아.” 내가 다른 도시에 가는 목적은 법원이나 경찰서에 다녀오는 일이고, 빈손으로 올라오기가 뭣해서 공항이나 역에서 아이들 줄 초콜릿과 빵을 사 오는 건데 막내는 내가 제주도에 놀러 갔다가 사 오는 줄로 아는 모양이었다. 나는 굳이 너희들을 위해서 아빠가 밖에 나가 고생한다는 뉘앙스를 풍기지 않는다. 아빠의 고생스러운 마음이 아이들에게 전달되는 것보다 아이들의 맑은 마음이 나에게 들어오는 것이 훨씬 좋아서다. 그래서 철없는 아이들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게 하나도 서운하지 않다.

대신, 나는 아이들이 좀 컸다고 튕겨도 볼에 입을 맞추고 두 팔로 꼬옥 끌어안는다. 집에 가면 아이들이 나를 보면서 즐거워하고 나도 아이들을 보면서 즐거워한다. 우리 가운데 안 좋은 일이 생겨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속상함이 사라지거나 작아진다. 일 년을 기다려 나온 새 차가 고속도로에서 당한 사고로 공장에 들어가 언제 나올지 모른다고 해도 그냥 웃고, 꿈에서 가족들을 지키려고 악당에게 한 발차기가 그만 문을 들고차 발등이 시퍼렇게 멍든 이야기를 하면서도 또 웃고, 아이들과 족구를 하다 종아리 근육이 파열되어 아내가 붕대를 감아 줄 때도 우리는 배꼽이 빠질 정도로 함께 웃었다.(누구한테 말하기도 민망하지만, 세 가지 일은 지난 한 달 동안 나에게 일어난 실화들이다.)

아이 셋이 다 같이 집에서 지내는 유일한 기간이 여름이어서 나는 여름이 시작되는 6월이 무조건 좋다. 더위, 땀, 땡볕 이런 것들, 옛날에는 체질상 정말 적응하기 어려웠는데, 이제는 아무래도 괜찮다. 여름 동안 아내는 아이들을 먹이기 위해 맛있는 음식을 많이 할 것이고, 나도 아이들 틈에 끼어 같이 먹을 것이다. 집을 떠나 살면서 어려웠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서로를 위해서 동그랗게 둘러앉아 같이 기도할 것이다. 공부하느라 시간이 없다고 하겠지만, 나는 억지로 데리고 나가서 자전거를 타고, 한강 편의점 앞까지 가서 즉석 라면을 끓여 먹을 것이고, 아이들의 어깨를 주물러 줄 계획이다.

가족이 소중하다고 말하더라도, 실제 가족을 소중하게 대하지 않으면 그건 진심이 아니다. 가족 사이에 서로에 대한 목적을 두면 그만큼 사이가 멀어진다. 밖에서 홀대를 받아도 집에 와서 으슥해하는 아이들을 보면 아빠는 할 수 없는 일이라도 몸을 사리고 싶지 않다. 아이들도 같다. 또래들 사이에서 열등감을 느끼고 어려움을 겪다가 자신을 최고로 여겨주는 엄마 아빠를 보면 미안해하면서도 고마워한다. 아무리 집안일을 열심히 해도 티가 나지 않아 우울해하는 아내에게 고생한다는 말 한마디 건네는 것만으로도 아내는 처진 어깨를 펴며 가족들을 위한 희생에 보람을 느낀다.

지난 2년 반 동안 코로나가 우리에게 많은 변화와 어려움을 가져왔다. 언제 세상살이가 편할 때가 있었든가 떠올려 보면 그런 날은 없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 코로나나 다른 일로 받은 아픔과 상처를 딛고 가족들이 함께 마음을 모으게 되면 그것만큼 행복한 것이 없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5월에 이어 6월도 가정의 달이 계속된다.

글 박문택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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