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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날 오후
배은미 | 승인 2022.05.20 16:50

얼마 전 ‘소철’을 그렸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우리 가족이 시어머님 집에서 함께 살던 때가 떠올라서였다. 어머님은 평소에도 화초를 좋아하셔서 볕 잘 드는 베란다엔 무슨 꽃인지도 모를 꽃들이 늘 피어있곤 하였다. 그중 제일 오래되고, 큰 화분이 있었는데 그것이 소철이었다. 어머님은 아버님이 은퇴하시며 회사에서 가지고 오신 화분이라고 설명해주셨다.

찬바람이 불던 어느 겨울, 나는 소철을 거실로 들여놓았는데 웬걸, 잎이 시들시들 누레지더니 심지어 다 말라버리고 말았다. ‘큰일이다’ 싶어 안절부절못하던 나에게 어머님은 “괜찮다. 봄이 되면 다시 잎이 나온다.”라고 하셨다. 그리고 어머님 말처럼 이듬해 봄, 따듯한 볕에 새순이 돋았다. 그러더니 하루가 다르게 자랐고 다시 푸른 잎이 무성한 소철이 되었다.

소철은 생명력이 무척 강한 식물이라고 한다. 좋지 않은 조건 속에서도 마침내 푸른 잎을 내고, 자라나는 소철을 보며 ‘아버님은 회사에서 이 소철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궁금했다. 삶의 풍파 속에서도 새순을 내고, 푸른 잎을 피워내듯 살아오셨을 아버님의 삶이 불현듯 떠올랐다.

나는 문화원에서 보태니컬 아트를 가르친다. 수강생들은 대부분 다양한 연령대의 어머님들이다. 자식들을 키우고, 거두느라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 분들이 많은데, 어느 누구도 자신의 늦은 시작을 탓하는 사람이 없다.

거칠고 무디어진 손으로 아이처럼 색연필을 들고 설레 한다. 흰 종이 위에 사각사각 예쁜 꽃을 피워낸다. 그리고 이 그림들은 가족 카톡방으로 바로 배달된다. ‘와 정말 엄마가 그렸어요?’ ‘멋져요~’ ‘예뻐요!’ 엄마는 가족들의 응원 한마디에 싱글벙글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내 얼굴에도 웃음이 번진다.

5월이다. 예쁜 꽃 화분과 맛난 음식을 준비해서 그리움과 기다림을 키우고 계실 어머니를 찾아뵐 생각이다.


글과 그림 배은미
서양화를 전공했으며, 작품 활동을 했다. 최근, 작품으로서의 그림만이 아닌 삽화, 미술치료, 보태니컬 아트, 캘리그래피 등 많은 사람과 쉽게 공유할 수 있는 활동에 관심을 갖고 있다. 보태니컬 아트란 식물(학)이라는 뜻을 가진 보태니컬Botanical과 예술, 미술을 의미하는 단어 아트Art가 결합된 말로 식물의 특징을 살펴서 이를 미학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꽃 한 송이 한 송이를 자세히 관찰하다 보면, 다양한 색과 형태, 선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곤 한다. 자연은 가장 훌륭한 미술 선생님이다.

배은미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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