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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아빠 그리고 우리들의 아버지Mind Essay 영화 ‘빅 피쉬’
오한길 | 승인 2022.05.03 11:27

어린 시절 5월은 가정의 달이었다. 이맘때면 가족이 함께 운동장에서 굴렁쇠를 굴리고 돗자리에 앉아 엄마가 싸주신 도시락을 먹으며 보냈다. 평생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서른이 넘은 나의 5월은 차가운 소파에 앉아 커피를 들이키는 모습이다. 그리고 부담스러운 아버지와의 통화를 뒤로 미루고만 있다. 아버지와의 대화가 투 샷 커피보다 더 쓴지, 핸드폰 화면의 통화 버튼을 선뜻 누르지 못했다.

무심코 돌린 채널에서 영화를 한다. ‘빅 피쉬’, 제목을 보니 어릴 적에 어머니가 ‘마음을 알려주는 영화’라고 말씀하신 게 생각났다. 그 당시 내게는 지루한 줄거리였나? 왜 안 봤는지 되짚어보던 중 ‘자신의 아버지를 못마땅해 하는 아들’ 윌이 화면에 나왔다. ‘아, 그래서 안 봤구나.’ 싶었다.

영화 빅 피쉬는 아버지 에드워드와 아들 윌의 이야기다. 윌은 진실과 사실을 중요하게 다루는 기자다. 그래서인지 허풍이 많은 아버지를 싫어한다. 허풍은 아버지들의 특권인 걸까? 우리 아버지도 허풍이 많으셨다. 하지만 윌의 아버지 허풍은 평범하지 않았다. 젊은 에드워드는 소란을 피우는 거인과 담판을 지어 마을을 구해냈고 마녀를 만나 자신의 죽음을 미리 봤다며 떠벌렸다. 아들이 태어나는 날, 같이 있지 못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강가의 큰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느라 못 갔다는 허풍을 둘러댔다.

“저는 아버지를 모르겠어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윌이 영화에서 하고 있다. 죽음을 앞둔 침대에서 아버지와 대화해보려고 하지만 진지함과는 거리가 먼 허풍쟁이 아버지를 아들은 끝내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윌에게도 아버지가 삼키지 못할 정도로 썼나보다.

아버지의 임종을 기다리며 어릴 적 살았던 집에 머물던 윌은 물건을 정리하다가 하나둘씩 아버지의 과거를 찾아낸다. 진짜 거인과 마녀가 있었을까? 반전을 기대했지만, 내 생각과 다르게 윌이 찾은 아버지의 과거는 허풍이 맞았다. 다만 거짓은 아니었다. 수소문 끝에 윌은 아버지가 만난 마녀를 찾아가 아버지의 진실, 그리고 진심을 듣게 된다.

윌의 아버지 에드워드, 그는 참 좋은 사람이었다. 어떠한 아픔도, 슬픔도 그의 입을 통과하면 한 편의 영화 같은 이야기로 변했다. 장애를 가진 사람은 거인으로, 아픔을 가진 여인은 숲속의 마녀로 말이다.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아들이 태어나는 날에도 일을 해야만 했던 아버지는 거대 물고기와 싸운 영웅으로 재탄생된 것이다. 이러한 아버지의 과거를 알고 혼란스러워 하는 윌에게 숲속의 마녀가 말한다.

“네 아버지의 삶에 진짜로 존재하는 건 너였단다.”

에드워드의 임종이 다가왔다. 침대에 누워 아버지는 아들에게 질문한다. “내가 죽는 거니?”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된 윌은 귀에 대고 죽음이 아닌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아들 윌이 임종을 앞둔 아버지 에드워드와 아름다운 마지막을 함께하는 모습.

나에게도 아버지는 에드워드와 같은 허풍쟁이였다. 물론 나의 아버지는 거인을 만나거나 물고기를 해치우는 영웅담을 늘어놓지는 않으셨다. 내가 생각한 아버지의 허풍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과 말들이었다. 아버지는 내게 항상 슈퍼맨처럼 보이길 원하셨다. 문제는 내가 보고 느끼는 아버지가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아버지의 허풍이 차라리 술에 진탕 취해 길에서 주정부리는 아저씨의 허풍이었으면 좋았겠다 싶었다.

급식비 없이 학교가는 것이 부끄러울 나이가 될 때쯤 아버지와 마음의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현실과 다른, 동떨어진, 그저 희망뿐인 아버지의 허풍 가득한 말들은 내게 아버지를 외면하게 만드는 빌미를 만들어주었다. 안 될 거면서, 못 할 거면서, 왜 쓸데없는 말씀만 하실까? 그때부터다. 아버지의 말씀이 듣기 싫어 대화를 멈췄다. 윌의 마음을 나는 안다. 그런데, 윌은 나와 다르게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했다.

윌이 이해한 아버지는 내가 생각한 아버지와 달랐다. 허풍이라 생각했던 아버지의 말과 행동들은 거짓된 모습이 아닌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왜 쓸데없는 말씀만 하실까? 라는 내 질문에 윌이 답해주는 것 같았다. 허풍이라 생각했던 아버지의 말과 행동들은 허풍이 아니었고, 아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고통과 슬픔을 감추고 행복을 이야기해주던 에드워드였다.

나 또한 그렇게 아버지가 되어가겠지. 내 아이들에게 고통과 슬픔을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을 테니까, 사랑을 허풍으로 바꿔 말하는 아버지가 될 게 분명하다. 우리의 모든 아버지들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기에 그 많은 허풍을 이야기하시는 걸까? 매번 아버지의 사랑을 거짓으로 매도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다. 빅 피쉬 영화가 끝났다. 이제 핸드폰 화면을 아버지 통화로 넘겨야겠다.

글  오한길 (자유기고가)

오한길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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