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이번 호 표지 주인공은 푸에르토리코에서 봉사활동 중인 김은진 씨다. 한 달 전, 그가 메일을 보내왔다. “저는 이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가끔씩 부모님이 무척 보고 싶을 때가 있어요. 함께 살아도 서로의 마음은 모르던 우리 가족이 지난해부터 조금씩 서로의 마음을 표현하며, 점점 가까워졌거든요. 지금은 잠시 집을 떠나 있지만, 투머로우를 통해 부모님께 제 소식을 전하고 싶습니다.”라는 짧은 메모와 함께, 봉사 활동하며 배우고 느낀 점을 적은 한 편의 글이 첨부되어 있었다. 기자는 그가 전하고 싶은 소식은 무엇인지, 가족들과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직접 듣고 싶어 화상 인터뷰를 요청했다.

사진 중앙이 표지 인물인 김은진 씨. 멕시코 파견 봉사를 무사히 마치고 푸에르토리코로 떠나던 날, 동네 아이들과 짧은 작별 인사를 나눴다.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매일 ‘올라Hola!’ 하고 인사를 건네던 아이들이 무척 그리울 것 같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워 혼자가 편했던 그였는데, 이곳에서 어느새 수다쟁이가 되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고, 함께 웃고, 이야기하며 지내는 것이 즐겁다.
사진 중앙이 표지 인물인 김은진 씨. 멕시코 파견 봉사를 무사히 마치고 푸에르토리코로 떠나던 날, 동네 아이들과 짧은 작별 인사를 나눴다.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매일 ‘올라Hola!’ 하고 인사를 건네던 아이들이 무척 그리울 것 같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워 혼자가 편했던 그였는데, 이곳에서 어느새 수다쟁이가 되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고, 함께 웃고, 이야기하며 지내는 것이 즐겁다.

안녕하세요? 현재 해외에 있다고요.

네. 대학을 1년간 휴학하고 지난 2월에 카리브해에 위치한 섬나라, 푸에르토리코에 해외 봉사하러 왔습니다. 이곳 날씨는 한국의 여름날에 가까워서 반팔 반바지 차림이네요. 지금은 잠시 멕시코에 와 있습니다. 푸에르토리코를 비롯한 에콰도르, 멕시코, 코스타리카, 도미니카공화국 등 중남미 대륙에 파견된 단원들과 모여서 이곳에서 열릴 행사를 준비하고 있거든요.

바쁜 와중에 글을 써서 보내주신 거네요. 평소 글쓰기를 좋아하나 봅니다.

그건 아니에요.(웃음) 푸에르토리코 지부장님께서 저를 포함한 모든 봉사 단원들에게 매주 에세이 한 편씩 쓰는 과제를 주셨어요. 이곳에서 활동하며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자유롭게 써보라고 하셨는데 처음엔 무엇을 써야 할지, 어떻게 적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어요. 그런데 한 편 두 편 적다 보니 제 마음을 들여다보고, 표현하는 것에 재미가 있더라고요. 그렇지만 제 글을 잡지사에 기고할 용기는 없었어요. 지부장님이 무엇이든 도전해보라며 저를 밀어주셨죠.

해외 봉사활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색다른 도전을 하고 있네요.

네. 이곳에서 봉사하는 기쁨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과 나눌 때 더 행복해진다는 이야기를 지부장님께 들었어요. 그래서 저희는 봉사 활동을 하면서 한국 강사 분들을 줌으로 초대해 스피치 하는 법도 배우고, 글쓰기도 배우고 있어요. 에세이를 써서 첨삭도 받아봤어요. 말씀하신 대로 생각지 못한, 색다른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썼던 글 중, 가장 정성을 기울였던 글이 있다면요. 

‘바다’라는 제목으로 에세이를 쓴 적이 있어요. 푸에르토리코는 섬나라로 바다가 아름다운 곳인데요. 바다를 보면 어릴 적 추억이 생각나요. 제 고향이 남해인데요. 어렸을 때 종종 아빠랑 동생이랑 함께 낚시를 가곤 했어요. 그때 숭어가 바로 눈 앞에서 첨벙첨벙 뛰어 노는데도 잡지 못해서 아쉬워하던 장면, 썰물 때 갯벌 위로 오가며 고동과 홍합, 게를 잡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요. 그걸 글에 잘 담아보려 애를 썼어요.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추억에 젖게 되더라고요. 가족들도 그리워지고요.

아름다운 추억이네요. 집안 분위기가 화목할 것 같은데, 보내준 메일에는 오랜 시간 서로의 마음을 몰랐다고 했지요?

네. 한 집에 같이 살아도 마음은 끊어진 채 시간을 보냈어요. 특히 제가 그랬어요. 어느 순간부터 아빠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오해했고, 무엇보다 부모님에게 짐이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늘 제 마음을 눌렀거든요. 그런데 1년 전, 우연한 기회에 가족들과 대화를 하면서 오해가 풀려 잘못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그게 제 삶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이곳까지 올 수 있었어요.

어떤 기회가 왔었는지 궁금하네요.

저희 가족이 오랜 날 고민하던 문제가 하나 있었어요. 제가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거요. 학교에 가도, 학원에 가도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고, 누군가 저에게 말을 걸어도 대답을 잘 못했어요. 말을 하지 않고 살다 보니, 대학생이 되어도 제가 제 마음을 모르겠더라고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어요. 먼 미래를 생각해보니 이런 식으로 살 수는 없겠더군요. 그때 한 상담 선생님과 연결되어 만났는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하루는 선생님이 제게 ‘언제부터 말을 하지 않기 시작했어?’ 하고 물어보셨어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발단은 초등학생 때 친구와 다툰 뒤였더라고요. 더 이상 누군가에게 상처받기 싫어서 친구들과 말을 섞지 않았는데, 그게 오히려 편했어요. 그때부터 말이 없어졌고 늘 혼자 다녔어요.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노트에 써둔 기도문을 읽은 적이 있었어요. 저를 향한 걱정 어린 마음과 간절함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죠. 그걸 보고 ‘혼자 다니는 내 모습이, 입을 열지 않는 내 모습이 엄마를 이렇게 힘들게 했구나. 내가 문제구나’라는 생각이 밀려왔어요. 그때부터 제 나름의 방법으로 부모님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필요한 것이 있어도 어렵게 가계를 꾸리는 엄마를 알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힘들어도 표현하지 않았어요. 그게 엄마를 위하는 길이라 생각했죠.

그런데 선생님은 제 이야기를 들으신 후 그게 아니라고 하셨어요. “은진아, 내 이야기를 잘 들어봐. 엄마의 마음은 그렇지 않아. 엄마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네게 무엇이든 해주고 싶어 하셔. 네가 자유롭게 엄마에게 필요한 것을 말할 때, 네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할 때 더 기뻐하실 거야. 무엇이든 이야기해 봐.”

선생님 말씀이 은진 씨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선생님께서 저를 만날 때마다 그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러니 ‘내가 생각했던 게 정말 틀릴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엄마에게 다가가 소소한 일상 이야기부터 했어요. 함께 대화하는 시간이 차차 많아졌고, 엄마의 마음도 더 알게 됐어요. 엄마는 말없이 주눅들어 있는 저를 보면서, 일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잘 보살펴주지 못해서, 윽박지르면서 키워서, 너무 야단을 많이 쳐서 이렇게 된 것 같아 가슴이 아팠대요. 또 뭐든지 해주고 싶어서 제게 필요한 것이 없냐고 물어보면 늘 ‘엄마가 편한 대로요.’, ‘괜찮아요.’ 하고 답하는 것이 슬펐다고 하셨어요. 그 말을 듣고 너무 놀라서 ‘아니야. 엄마 탓 아니야.’ 하면서 왜 말을 하지 않기 시작했는지 제 이야기를 처음으로 털어놨어요. 선생님 말씀처럼, 제 생각이 틀렸더라고요. 엄마에게 작은 부담도 주기 싫어서 늘 잘하려고 했는데 그게 오히려 엄마를 아프게 했던 거였어요. ‘엄마는 이런 부족한 나를 늘 사랑하시는구나. 가족은 서로의 부족함을 가려야 하는 사이가 아니구나.’ 그걸 많이 느낀 것 같아요. 그때부터 제 마음을 가리거나 숨기지 않고, 엄마와 자유롭게 대화했어요.

지금은 가족이란 어떤 관계라고 생각해요?

어떤 허물도 문제가 되지 않는 사이, 무엇이든 품어줄 수 있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사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몰랐을 땐 저의 부족함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무뚝뚝한 아빠의 부족함도 원망했어요. ‘아빠는 왜 우리를 잘 챙겨주지 않는 거야? 왜 다정한 말 한마디도 안 해주는 거야? 아빠가 우릴 사랑하기는 하는 거야?’ 하면서요. 

그런데 하루는 엄마가 제게 이런 말을 하시더라고요. “은진아 네가 어렸을 때 아빠 건강이 좋지 못했어. 몸도 마음도 여유가 너무 없어서 너희를 잘 살피지 못했지. 그게 그렇게 후회되고 미안하다고 그러더라.”

그 말을 듣는데, 가장 먼저 ‘아빠가 나를 사랑했구나’라는 생각에 기뻤고, 한편으로는 아빠에게도 그런 아픔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아빠의 아픔도 내 아픔인데…’ 그런 줄도 모르고 아빠를 미워했다는 게 죄송했어요. 그날 후론 아빠에게 다가가서 조잘조잘 말을 건넸어요. 처음엔 어색해하시기도 했지만, 무척 좋아하시더라고요. 아빠는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잘 들어주세요. 되게 재미없는 주제도 엄청 진지하게 말씀하시죠.(하하) 그래서 아빠랑 이야기하면 즐거워요. 그렇게 엄마의 마음, 아빠의 진심을 만나면서 저에게도 많은 변화가 생겼어요.

그 변화의 일부가 해외봉사인가요?

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상담 선생님과 자주 대화하면서, 나만 특별히 못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각자의 어려움과 연약함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걸 알았어요. 그렇기에 누군가와 다투기도 하고 실수도 하며, 때론 서로 위로하기도 하고 도움을 얻으며 살아가는 게 삶이라는 것도요. 덕분에 ‘내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구나.’라는 긍정적인 결론에 도달했죠. 

그래서 전혀 다른 환경에서, 수많은 사람과 함께 부딪히며 살아가는 해외봉사 활동에 도전할 수 있었어요. 이곳에 올 때 그런 결심을 했어요. ‘내 한계를 뛰어넘고, 사람 만나는 법을 배우자. 한국에 돌아가도 이곳에서 배운 대로 살자.’ 여기 중남미 사람들은 눈 마주치는 사람마다 인사를 해요. 볼에 뽀뽀하는 인사도 하고요. 또 다가가서 말을 걸면 무척 반갑게 맞아줘요. 그래서 매일 새로운 사람들에게 다가가 친구 사귀기에 도전하고 있어요.

한국의 부모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엄마 아빠,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나의 부족함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품고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바탕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앞으로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전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글로 저를 표현하는 법도 배우고, 스페인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늘 응원해줘서 고마워요. 아, 언젠가 함께 아름다운 푸에르토리코 바다도 보러 와요! (웃음)

기자의 질문 하나하나에 신중히 답을 하던 은진 씨는 인터뷰 중 ‘제가 표현을 잘했는지 모르겠어요.’ 하며 되묻곤 했다. 그럴 때면 기자는 손사래를 치며 ‘아니에요. 정말 좋아요.’ 하고 답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말에 담긴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가 입을 열어 이야기할 때 가족을 향한 순수한 진심이 꾹꾹 담겨 있었다. 은진 씨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엄마 아빠 또한 그랬다. 모두 서로를 향한 사랑이 있었다. 우리는 종종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오해를 한다. 그 오해의 벽을 넘어 가족의 진심을 만난 은진 씨는 이제 사랑을 바탕으로 더 넓고 깊은 세계로 한 발짝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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