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서기관 이종흔

세상에는 수많은 직업이 있고 각기 역할도 다르다. 그중에 검찰 수사관은 피의자의 죄목을 입증해 처벌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좀 더 밝고 순조롭게 돌아가도록 기여한다. 이 일에 인생을 걸고 달려온 29년 경력의 이종흔 서기관. 그가 만난 피의자들 중에는 해악을 끼치려고 의도한 사람들도 있지만, 원치 않던 죄에 연루되어 삶의 방향을 틀어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을 하는지 들어본다.

이종흔 1993년 검찰공무원 시험에 합격, 1994년 부산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밀양, 울산, 제주를 거쳐 지금은 마산에서 검찰 수사서기관으로 있다. 2018년 사무관에서 서기관으로 승진하면서 25년 가까이 해오던 수사업무에서 손을 떼고 지금은 근무하는 검찰청의 검찰행정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이종흔 1993년 검찰공무원 시험에 합격, 1994년 부산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밀양, 울산, 제주를 거쳐 지금은 마산에서 검찰 수사서기관으로 있다. 2018년 사무관에서 서기관으로 승진하면서 25년 가까이 해오던 수사업무에서 손을 떼고 지금은 근무하는 검찰청의 검찰행정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검찰 수사관은 어떤 일을 하며 왜 이 직업을 택하셨는지요? 이 분야를 잘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검찰청에는 다양한 직렬의 직원들이 있는데요. 크게는 검사와 검찰 수사관들이 일하는 법무부 소속 기관입니다. 검사는 수사를 책임지는 단독 헌법기관입니다. 하지만 모든 수사업무를 혼자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검찰 수사관이 사건관계인 조사, 피의자 검거, 범죄정보 수집, 각종 압수수색, 현장검증, 부검 참관 등 수사의 많은 부분을 담당합니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저는 취직 준비를 하던 중에,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친구를 따라 같이 시험에 응시했는데 운 좋게 340 대 1의 경쟁을 뚫고 합격했습니다. 입사 후, 처음 조사한 사례가 폭행을 해놓고 잡아떼는 전과 5범의 구속 피의자였어요. 그때 와이셔츠가 땀으로 다 젖을 만큼 긴장했던 걸로 기억합니다.(웃음) 그 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햇수로 29년이 흘렀네요.

오랫동안 일을 해오셨는데 수사관의 업무에 필요한 자질은 무엇일까요?

우선, 수사하는 사건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과 직관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다음으로 요구되는 자질은 ‘리걸 마인드Legal Mind’입니다. 사건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법에 위반되는지 법리法理 검토를 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법적 지식과 소양을 말합니다. 위법 행위라도 관련법이 없으면 처벌할 수 없거든요.

이를 형사법의 대원칙인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라고 합니다. 밤새워가며 수사해놓고도 법 적용을 잘못해서 무죄가 되거나 아니면 아예 *기소조차 못해 보는 경우도 생기거든요.

*기소 : 수사 후 범죄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될 경우, 사건을 법원의 재판에 넘기는 절차

또한 사건을 제대로 밝히겠다는 의지와 끈기, 사건 처리 과정에서 외압을 받거나 부정한 청탁이 오더라도 타협하지 않는 청렴한 자세도 필요합니다. 여기에 하나의 자질을 더 보탠다면, 저는 인간 본성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사건사고는 결국 사람의 마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이해하시는지요.

수사를 하다 보면 사람의 이율배반적인 면모가 자주 보입니다. 처벌을 면하려고 쉽게 진술을 번복하고, 증인들을 매수하고, 공범과 말을 맞추거나, 변호사를 선임하여 의도적으로 거짓 진술을 하는 일들이 정말 다반사거든요. 그런 모습을 보며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거짓되고 나약한지 알게 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아무리 잘못했다 해도 흥분하는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됩니다. 저도 초반엔 다양한 사건들을 접하면서 감정이입이 되거나 과몰입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지금은 처음부터 ‘모든 인간은 거짓되고 나약하다.’는 전제를 깔고 수사에 들어갑니다. 그래야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수사도 그르치지 않아요.

실제로 고소고발 사건들을 보면, 그 누구보다 가까운 동업자, 친구, 가족들이 엉켜 있어서 안타까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가장 가깝고 친했던 사람들이 욕심과 이기심, 미움과 오해로 인하여 어느 순간 가장 미워하는 증오의 대상으로 변한 거죠. 우리는 누구나 죄를 지을 수 있지요. 본성 자체가 선량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서기관님도 자신이 나약하고 거짓된 존재인 것을 경험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중학생 때까지는 성격이 매우 쾌활해서 친구들과 잘 어울렸습니다. 제가 재미있게 읽은 책에 대해 쉬는 시간에 교실에서 이야기하면 친구들이 거기에 푹 빠져 다음 수업을 잊어버릴 정도였어요. 스토리텔러 같다고나 할까요?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엔 꽤 자신이 있었죠.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고 어느 날부터 갑자기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할 수 없었어요. 일상적인 몇 마디 말고는 대화다운 대화를 이어가기가 힘들었습니다. 입을 열려면 가슴부터 뛰고, 얼굴이 화끈거려 말을 더듬거렸어요. 결국엔 필요한 말 외엔 거의 입을 닫고 지냈죠.

사실, 언어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해소시키고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게 해주는 수단이잖아요? 그런데 정확한 원인도 모른 채 소통할 수 없으니까 스트레스가 쌓여갔고 성적은 점점 떨어졌습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시절이라 극단적인 상상도 할 만큼 하루하루가 힘들었어요. 당시엔 심리 상담을 받는다는 건 생각도 못하던 때라서, ‘시간이 약이겠지.’ 하며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혼자 고통을 겪었어요.

2017년 일본 도쿄 근처 ‘아타미’라는 작은 도시에 가서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다.
2017년 일본 도쿄 근처 ‘아타미’라는 작은 도시에 가서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다.

지금은 말씀을 잘 하시네요. 그 증상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대학생 때부터 증상이 약해지긴 했지만, 욕구불만과 스트레스로 인한 마음의 후유증은 여전했어요. 불면증으로 답답한 가슴을 추운 겨울밤에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식히는 날들도 있었죠. 졸업 후 검찰공무원이 되었지만 말을 제대로 못할 거라 생각하니 범죄자들을 제대로 수사나 할까 싶어 걱정도 했습니다. 다행히 직장에 빨리 적응했고 말하는 것도 점점 좋아졌습니다.

저는 앞에서 말씀드린 사춘기와 젊은 시절에 겪었던 고통 외에 크게 일탈도 해본 적이 없는, 겉으로는 평범한 모범생이었어요. 그런데 마음속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늘 ‘왜 살아야 하는가, 대체 인생의 목적지는 어디일까, 무엇이 삶을 힘들게 하는가?’ 하면서 풀리지 않는 원초적 의문들로 괴로워했어요. 잿빛 어둠 속에서 사는 느낌이랄까요?

하시는 일은 박진감이 넘치는데 속마음은 점점 미궁으로 빠져가고 있었네요.

그렇게 인생에 대한 해답을 찾던 중, 제 마음의 문제들이 우연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궁극의 진리를 만나기 위해 이런 어려움이 주어졌고 그것이 창조주의 섭리였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죠. 저를 휘감고 있던 의문들이 풀리면서 해방과 자유의 기쁨을 마음 깊은 곳에서 느꼈습니다. 그때부터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고, 신의 존재를 믿지 않던 제가 자연스럽게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프랑스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인생에서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패 후의 회복 탄력성이다.’라고 말합니다. 회복 탄력성은 고난과 절망에서 회복되어 제자리로 돌아오는 힘을 의미하죠. 회복 탄력성을 되찾는 길은 첫째, 자신이 얼마나 나약하고 부족한 존재인지 그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런 부족한 자신을 아무 조건 없이 받아주는 사랑을 발견하는 것이고요. 젊은 시절, 스스로 해결할 수 없던 인생의 회의懷疑로 제가 얼마나 나약하고 부족한지 발견했고, 그런 나를 조건 없이 받아주는 창조주의 사랑을 발견하면서 오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람은 여러 모양의 아픔과 고통을 겪지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해 느끼는 원초적 아픔이 마음에 견디기 힘든 고통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알았다. 자신의 삶에서 가치를 느끼지 못하면 타인의 삶에서도 가치를 느낄 수 없다. 그러면 세상은 희뿌연 회색빛이 되고 만다. 그럴 때 만나는 조건 없는 사랑은, 대지를 감싸 생명이 피어나게 하는 따뜻한 봄기운처럼 삶 전체에 생기가 돌게 한다. 자신의 삶뿐 아니라 모든 사람의 삶을 가치 있게 느끼게 해준다. 그가 찾은 마음의 평안은 자신은 물론, 그가 만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고 있다.

그 경험이 서기관님이 일하시는 데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요.

제가 15년차로 부산동부지청 수사과에서 근무하던 때였는데요. 40대 중반의 은행 직원이 억대의 뇌물을 받아 수사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피의자는 순간의 욕심을 뿌리치지 못해 뇌물을 받았지만, 막상 받으니 겁부터 나서 그 돈을 승용차 트렁크에 둔 채로 1년 가까이 불안에 떨며 지냈습니다. 구속되기 전, 조사 과정에서도 피의자는 손발을 극도로 떨면서 심한 불안감을 보여 혹시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피의자가 혼자의 생각 속에 빠지지 않도록, 낮에는 조사를 하고 저녁엔 전화를 걸어 장시간 통화를 했습니다. 제가 어려웠던 경험들도 이야기해주면서 그 어려움이 어떤 노력이나 결심으로 해결된 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면서 자연스럽게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아무 대가도 없이 얻은 자유였기에, 그 피의자가 구속이 되어도 마음만은 자유를 누리게 하고 싶었습니다.

조사를 받는 피의자들이 지금보다 더 밝은 삶을 살기를 진심으로 바라시겠죠?

네. 특히 청소년이나 젊은이들 중에서 의도치 않았는데, 또래 집단에 휩쓸려서 충동적으로 범죄에 빠지는 걸 보면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그들을 그냥 두면 나쁜 길에서 벗어나지 못해 결국 전과자가 됩니다. 저는 이런 청소년들에게 마음이 먼저 범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걸 설명하고 가르쳐주려고 합니다.

조사를 마치면 항상 마지막에 “피의자는 유리한 증거나 더 하고 싶은 진술이 있는가요?”라고 물어봅니다. 그러면 열에 아홉은 “앞으로는 죄를 짓지 않고 성실하게 살겠습니다. 선처를 바랍니다.”라고 외운 듯이 대답합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잘못한 행동을 반성하고 선처를 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데…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겨울엔 모든 것이 얼어붙듯이, 자신이 불행하거나 억울하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거칠고 어둡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크고 깊은 사랑 안에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면 삶도 해빙기를 맞아 자연스럽게 따뜻해지지요. 피의자들에게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에 대해 말해주고 싶은 겁니다. 비록 몸은 감옥에 갇혀 지내더라도 마음만큼은 자유롭게 살길 바라면서요.

일을 하실 때, 사람의 잘못을 처벌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편견이 들어가지 않도록 어떤 주의를 기울이시나요?

수사는 숨겨진 실체를 발견해서 범죄를 밝히는 것이기 때문에 의심의 촉수를 내려선 안 됩니다. 수사관도 신이 아닌 사람입니다. 성급한 결론으로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여러 각도에서 사건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깊이 사고하면서 빠진 부분을 체크해야 합니다. 

한때 검찰 수사관들이 공명심에 들떠서 사회적 이슈가 되는 비중 있는 사건을 얼마나 많이 처리하고, 또 얼마나 많은 범죄자들을 구속하였는지 무용담처럼 서로 이야기하곤 했었어요. 검사들도 실적 때문에 그런 유능하고 경험이 많은 수사관들과 같이 일하고 싶어 해요. 저도 처음에는 그런 실적을 올리려 애쓴 적도 있었어요.(웃음)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가벼운 사건이라도 한 사람의 인생이 좌우되는 일이라서 세심하게 살피고 또 살핍니다. 누구라도 승복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결론을 내는 데 수사 방향을 모으고 다각도로 생각을 합니다.

울산지검 근무 시절, 점심 식사 후 직원과 같이 찍은 사진.
울산지검 근무 시절, 점심 식사 후 직원과 같이 찍은 사진.

후배 수사관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으시다면요.

인생은 절대 혼자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저와 연관된 모든 사람들은 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서로 보완하면서 같이 살도록 신이 맺어준 특별한 인연들입니다. 사람에 대한 신뢰를 가지면 인생이 행복해집니다. 또한 온화함과 단호함으로 사람과 교류를 하면 내가 어려울 때, 아니면 상대방이 어려울 때 서로에게 힘이 됩니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모습에 쉽게 속아 넘어갑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오해하고 마음을 닫고 살 때가 많아요. 직장 생활을 오래 하면서 제가 분명히 깨달은 한 가지는, 내가 옳다는 생각을 고집할 때 스스로 고립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누구와도 상생하기 힘들어서 외롭게 살아갑니다.

이종흔 서기관은 거짓말과 진술 번복을 일삼는 피의자들의 말을 그대로 믿지도 않지만, 그들을 조사하는 자신도 선량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인간의 본성이 나약한 걸 알기에, 힘들어 쓰러져 있거나 앞날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조사할 때는 그냥 모르는 척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퇴직하고 나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추운 날 손에 쥔 찻잔처럼, 그의 답변은 따뜻했다. “나처럼 정확한 이유를 몰라서 마음이 불안한 청소년들에게 내가 발견한 아주 쉽고 확실한 해방의 출구를 가르쳐주면 좋지 않겠어요? 교도소와 소년원, 학군단, 군부대를 찾아다니며 기회가 닿는다면 인성교육으로 재능기부를 하고 싶어요.” 그가 앞으로 만날 젊은이들이 긍정적으로 변해갈 모습을 상상하니, 벌써부터 기뻐진다.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