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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 않은 꽃을 생각했습니다시인 이용진
최지나 기자 | 승인 2022.04.15 14:30

봄이라기엔 다소 바람이 쌀쌀한 날, 인사동 골목길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이용진 시인을 만났다. 등단 후 첫 시집을 내기까지 26년이 걸렸다는 그는, 바라는 순간이 누구에게는 조금 일찍 올 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좀 늦게 올 수도 있다며 운을 뗐다. 그리고 긴 시간 동안 그는 시 쓰기를 멈추지 않았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시의 소재를 찾으며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다만 그가 기다리는 순간이 오지 않아 ‘선택이 잘못된 건 아닌지’, ‘능력이 부족한 탓인지’ 생각도 했지만, “낡았다는 건/ 아직 가져 보지 못한 색깔을/ 새로 하나 얻은 것”일 수도 있다며, 기자의 질문에 하나씩 답했다.

1995년 ‘세계의문학’으로 등단하시고, 2021년에 첫 시집을 내셨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며 시집을 내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사진=박종도 기자

첫 시집을 출간하기까지 26년이 흘렀네요. 제 경우에는 직장생활도 늦게 시작했고, 결혼도 늦었습니다. 또 결혼하고 10년 뒤에 아이를 낳았으니, 이 또한 늦었지요. 제 친구들의 자녀들은 이제 대학을 졸업하거나, 결혼 준비를 하는데 말이죠(하하). 남들보다 조금 천천히 살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저도 빨리 시집을 내고 싶었는데, 제가 쓴 시가 시간이 흐른 만큼 나이를 먹다 보니, 저는 그것대로 좋더라고요. 젊을 때의 패기나 반짝거림은 줄었지만, 이것은 이것대로의 맛이 있더라고요.

어떻게 지냈냐고 물어보셨는데, 등단 후 시 발표는 거의 하지 않았지만 시 쓰기를 멈추지는 않았습니다. 시기마다 틈이 있기도 했으나 마음속에서 시를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직장에서 일하고, 아이를 키우고, 책 읽고, 여행하고, 사람을 만나는 일상 속에 시가 있다고 생각해서, 일상을 경험하며 드는 생각을 하나씩 시로 꺼내놓으며 지냈습니다.

시집을 펼치면 “나의 우경입영遇景入咏은 한 송이 꽃, 한 포기 풀에 있다.”라는 시인의 말이 나옵니다. 일상의 경험을 시로 꺼내는 것과 상통하는 말인 듯 싶습니다.

우경입영遇景入咏이란 경景을 만나서 영咏으로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이때 ‘경’이란 경치나 사물, 현상을 말하고, ‘영’이란 시나 노래, 그림처럼 예술적 표현 방식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제게 ‘경’은 작은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같이 사소한 경험, 일상의 흔적, 한마디 말, 한 줄의 글, 한 소절 노래, 환한 웃음 등과 같이 작은 것들이었습니다.

사실 처음엔 멋있는 것을 멋있게 표현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시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어요. 시뿐 아니라 저 역시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멋있는 표현을 하려고 노력했어요. 굳이 안 써도 되는 표현을 써가며 멋지게 치장을 하는 거죠. 의도적으로 화려한 꽃을 피우려 했죠.

그런데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기쁜 날도 있지만 우는 날도 있고, 평범할 때도, 신비로울 때도 있지요. 이런 일상생활이 시를 쓰는 데 도움을 줬어요. 존재하지 않는 멋을 나타내려 하지 않고, 삶 속에서 흘러가는 이야기를 써보았죠. 그러니까 더하기보단 빼고, 지우게 되더군요. 어깨에 들어간 힘이 빠지니, 생활이 달라 보이더군요. 사소한 것을 잘 보는 눈이 커진 거죠.

시집에 일상이 담겨 있군요. 책 제목이 ‘아직 피지 않은 꽃을 생각했다’입니다. 제목에 담긴 뜻을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꽃이 핀다’라는 건 절정의 순간이잖아요. 인생에 비유하자면 가장 화려하고, 빛나는 순간이겠죠? 그런데 살다 보니 꼭 그런 것만이 꽃이 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누구에게나 가장 빛나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고, 그 빛나는 순간을 드러내 그 모습으로 인정받기도 하지요. 하지만 때론 내 인생의 절정의 순간이 언제 왔었는지 모르고 지나갈 때도 있더군요. 혹은 아직 오지 않았을 수도 있고요.

꽃을 피우기 위한 과정에서 우리는 꽃이 필 미래를 꿈꿔요. 인생에서 추구하는 방향, 가치를 향해 계속 가는 거죠. 꽃을 피우는 과정이 빠르게 지나가거나 늦을 수도 있고, 꽃 자체가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고, 혹은 화려하고 소박하고의 차이가 있겠지만, 각자의 내면에서는 자기가 피우고 싶은 꽃들이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누군가에게 ‘꽃을 피웠다.’고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진정으로 피우고 싶은 꽃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 결말을 향해 계속 나아가는 것이 어쩌면 인생의 과정하고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시를 쓰고, 제목을 정했습니다.

늦게 시집을 낸 것에 대한 후회는 없으신지요?

‘더 일찍 시집을 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왜 그때는 그 선택을 안 했지?’ 당연히 생각하죠. 생각했지만, 이미 시간은 흘렀고 달라지지 않을 뿐이죠. 뭐든지 늦었던 제가 자연스럽게 지나오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늦었지만 그 늦은 대로 한 선택에서 행복을 찾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후회는 들더군요. 저와 비슷한 시기에 등단을 한 분들의 시가 점점 좋아지는 걸 볼 때, ‘나는 뭐 하고 있나?’ 하며 비교가 되더라고요. 시집을 자주 내다보면 그만큼 점점 시가 좋아지더군요. 성장이 부러웠어요. ‘난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나는 왜 이런 눈을 갖지 못했을까?’ 하는 자책도 생기고요. 마치 재능이 없는 것처럼요. ‘글꽃’이라는 시를 보면, 화분에 심은 꽃이 피지 못하고 시들어버린 이유가 흙이 메마르고 물과 햇빛이 부족해서라고, 그러니까 제가 심은 시가 피지 못하는 이유가 결국 부족한 제 능력 탓인 거죠. 그런데 꽃을 심지 않자니 뭔가 아쉬운 거예요. 이제 그만할까 하다가도 아니야, 나는 내 꽃을 피우면 되지, 다른 꽃에 맞출 필요가 있느냐 하면서 볼펜을 한 움큼 쥐어 화분에 심는다는 내용이에요.(하하)

이렇듯 인생을 돌아보면 후회스러운 게 한두 개가 아니죠. 깨끗하게 지우고 새로 그리고 싶은 것이 많아요. 타인에게 상처를 줬던 일, 잘난 척했던 날, 실수 등등이 그래요. ‘복기’라는 시가 있어요. 바둑을 두고 나면 기사들끼리 처음부터 다시 보잖아요. 이게 잘못됐다, 여기서 몇 점, 저기서 몇 점 하면서요. 바둑판을 싹 걷어내고 다시 두는 것처럼, 삶도 다시 두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러면 더 잘 둘 것 같지만 그렇게 할 수 없잖아요.

지금까지 인생이란 그림을 잘못 그려오기도 했고, 의도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보기도 하죠. 그렇다고 그림을 그리지 않을 이유는 없는 거죠. 지금부터 다시 그려요. 지금까지 그려왔던 것들이 얼룩이라면, 그 얼룩이 아름다운 무늬로 남을 수 있도록요.

이야기를 듣고 보니, 빠르면 빠른 대로, 느리면 느린 대로 꽃이 핀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때가 달라서 서글플 때가 있잖아요. 늦은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저는 우리 사회가 잘못된 척도를 만들어놨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사회의 가치가 평균적으로 고정화되어 있는 거죠. 예를 들어,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들어가고, 좋은 학벌, 많은 연봉을 받아야 활짝 핀 꽃이라는 기준이 있기 때문에,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죠. 자연스레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고,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도달하려고 하니까, 뒤처지거나 도달하지 못하면 서글프죠.

그런데 전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어떤 꽃을 피우느냐가 중요한 거죠. 예를 들어서 누군가는 장미꽃을 피우고 싶고, 누군가는 코스모스를 피우고 싶고, 누군가는 국화를 피우기도 하죠. 장미꽃만 꽃이 아니잖아요. 아름답다고 칭송하는 꽃을 찾을 게 아니라 내가 피우고 싶은 꽃을 피우는 게 더 소중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다면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꽃을 피우지 않을 이유는 없는 거죠. 다양한 꽃이 세상을 더 아름답게 하지 않을까요?

이용진 시인과 인터뷰를 마치고,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 된 그의 아들 이야기를 나눴다. 주말이면 함께 카페에 가서 아들은 숙제를 하고, 자신은 글을 쓴다는 그는, 아들이 없었을 때도 행복했지만, 지금은 비교도 안될 만큼 행복하다고 했다. 밤이 되면 아들과 아내와 함께 누워 그들의 숨소리에 귀 기울이며 ‘이보다 더 가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한다는 이용진 시인. 조금 늦었더라도 결국 행복의 꽃을 피운 그가, 늦은 만큼 오래오래 행복을 누리길 기대해 본다.

1995년 ‘세계의문학’으로 등단한 이용진 시인의 첫 시집 ‘아직 피지 않은 꽃을 생각했다’가 시인동네 시인선 163으로 출간되었다. 등단 이후 26년 만에 세상에 첫선을 보이지만 여전히 살아있고, 여전히 아름다운 이 시집은 시와 삶을 향한 시인의 치열한 육박을 보여준다. 시에 대한 생각이 오랜 시간 내면화된 터라 어떤 걸림이나 어려움도 없다. 그 자체로 시의 진경을 보여준다. 시를 읽으면 누구를 막론하고 고개를 주억거릴 터이다.

최지나 기자  4153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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