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산불 현장에서 동네 주민을 구해낸 최동오

저녁 티비 뉴스에 귀를 반만 열어놓고 듣다가 “최 씨가 이웃을 대피시키는 동안 그의 집은 모조리 타버렸습니다. 하지만 최 씨는 사람을 살린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긴박한 순간에도 이웃을 먼저 생각한 최동오 의인義人 덕분에 유례 없는 초대형 산불 속에서도 단 한 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라는 리포터의 말에 반사적으로 화면을 응시했다. ‘자기 집이 불타 잿더미로 변했는데도 감사하다고 말하는 저분은 어떤 사람일까?’ 대한민국 아버지의 표준형처럼 생긴 그를 보며 투철한 봉사정신과 봉사 마인드에 대해 좀 더 듣고 싶었다. 순조롭게 연락이 닿았고, 마침 서울에 볼일이 있어서 온다는 그와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조용한 찻집에서 만난 최동오 씨는 키가 한 뼘이나 더 큰 아들과 함께였다. 그는 인사를 나누자마자, “가끔 오는 서울은 공기부터 달라요. 길 가는 사람들은 모두 바쁘게 걷고, 운전자들은 치열하게 차를 몰아서 끼어들 엄두도 못 내겠더라구요.” 하며 입을 연다. 그와 대화를 나눌수록 스무고개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투철한 봉사정신 뒤에는 자기 자신만 위해 살아온 이기적인 날들이 있었고 그로 인해 어둡고 지친 시간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다시 대화를 이어가 보니, 그의 삶이 감사의 세계로 뒤바뀌는 ‘마술 같은’ 순간도 있었다. 아, 그래서 그가 이런 말을 하고 이런 행동을 했구나, 싶었다.

직접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번 울진 산불이 유례 없이 길고 피해지역도 대단히 컸는데 신기하게도 단 한 명의 목숨도 앗아가는 일은 없었습니다. 마을로 다가오고 있던 산불을 처음 목격했던 그날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자세히 설명해주시겠어요?

지난 3월 5일 토요일 오전 10시로 기억합니다. 뒷산 중턱에서 불길이 빠른 속도로 마을을 향해 치닫고 있는 걸 보았어요. 팔구십 된 노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 자칫 ‘큰일나겠다’ 싶었습니다. 부리나케 119에 신고를 먼저 했습니다. 그리고는 마을로 뛰어가 ‘불이야!’ 하면서 고래고래 소리부터 쳤습니다. 모조리 태우고 내려오는 불길은 무척 거세고 속도도 빠르거든요.

집집마다 다니며 문을 열어 보니까 어르신들이 태연하게 방 안에서 티비를 보며 웃고 있었어요. 불길이 집 뒤에까지 바싹 다가온 상황을 전혀 모르시더라고요. 노인들을 한 분씩 업고 끌고 나와 길 건너 바닷가에 우선 모셔다 놓았어요. 제가 사는 온양2리에는 약 30가구가 있는데 그날 제가 집안에 있던 10명 정도를 모두 구해냈어요. 그런데 불길이 갑자기 방향을 바꿔 온양1리 쪽으로 넘어가는 게보였어요. 다시 그 마을로 달려가서 동네 어른들을 대피시켰죠. 노인들은 생각보다 동작이 느리고 순발력도 한참 떨어지기 때문에 마음처럼 몸이 잘 따라주질 못하세요. 그러니 제가 더 다급해서 어르신들께 큰소리로 성화를 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죄송스럽지요.

의인이라 불릴 만큼 정말 겸손하십니다. 본인이 3년간 공들여 지은 집이 불에 타고 있는데 사람 구해낼 생각만 하셨다고요?

생명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죠. 생명 없이 집이, 돈이, 논밭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다 잃어버려도 생명만 보존하면 된다. 생명을 잃어버리면 모든 게 끝이다.’ 그 생각이 그때 강하게 들었어요. 사람이 살기만 하면 땅이나 재산은 다시 마련하면 되는 것 아니겠어요? 제일 소중한 게 생명이라고 생각하니까 나도 모르게 마을 어르신들께 쏜살같이 달려갔던 것 같아요.

이웃사람들을 구출하는 동안 타버린 자신의 집을 바라보고 있다. 여러 방송사에서 현장 취재를 나와 그를 ‘의인 최동오’라고 소개했다.
이웃사람들을 구출하는 동안 타버린 자신의 집을 바라보고 있다. 여러 방송사에서 현장 취재를 나와 그를 ‘의인 최동오’라고 소개했다.

평소에도 봉사와 희생정신이 투철하셨는가 봅니다.

언감생심, 아닙니다. 저는 ‘나’만 중요한 줄로 알던 사람이에요. 맛있는 게 있으면 내 입에 먼저 들어가야 하고, 좋은 것을 보면 내가 차지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이 저 사람을 슬프게 할지, 아프게 할지 생각해 본 적 없는 매정한 아버지였어요. (옆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번엔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살신성인하는 모습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개인적인 사연이긴 한데, 제가 17년 전에 이혼을 했습니다. 아버지, 남편, 가장의 역할을 방치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다 보니 그런 결정을 했죠. 열심히 돈을 벌어도 네 식구 먹고살기가 시원찮은 상황에, 제가 무보수로 건축 현장에 가는 걸 보며 아내는 고개를 저었어요. 셋방살이 그만하고 내 집부터 마련하자고요. 저는 목수인데 그 기술로 자원봉사하는 것이 좋았어요. 또 일을 해도 하루 잘 벌어 하루에 다 쓰는 타입이었거든요. 자식의 미래, 부부의 노후를 걱정하고 준비하는 일은 아예 머릿속에 있지도 않았죠. 그냥 지금 눈앞에 일어나는 일 속에서 하루살이처럼 사는 것에 만족했어요.

1960년생. 환갑 나이의 그는 노령인구가 많은 온양리 마을에서 ‘청년 같은 아들’로 살고 있다. 역대 최대 규모에, 최장 시간 발생한 이번 산불에서 인명 피해가 ‘0’ 이 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1960년생. 환갑 나이의 그는 노령인구가 많은 온양리 마을에서 ‘청년 같은 아들’로 살고 있다. 역대 최대 규모에, 최장 시간 발생한 이번 산불에서 인명 피해가 ‘0’ 이 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남다른 희생정신에 대해 질문을 드렸는데 의외의 이야기를 해주시네요.

그렇죠? 제가 이혼하고 혼자 살면서 생각을 한번 해보았어요. ‘그때 내가 아들에게 왜 그랬지?’, ‘딸에게 그런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아내가 나 같은 남자와 살기가 힘들었겠구나!’ 그때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도 몰랐으니까 가족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어요. 그런데 온 가족을 고통 속에 몰아넣은 가정파괴범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어요. (이 말을 하면서 그는 눈시울을 붉히며 울먹거렸다.) 막상 헤어지니 아내와 자식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겠더라고요. 그때부터 내 입에 넣다가도 남의 입도 챙기게 되고, 내 기분 말고 상대방 기분도 살피는 일을 아주 조금씩, 천천히 배워갔어요.

이혼을 통해 무심했던 주변을 돌아보게 됐다는 말씀이신데, 요즘 이혼했다고 모든 분들이 그렇게 되는 것 같진 않습니다.

제 경우엔 하나님을 제대로 믿게 되면서 가능했어요. 그전엔 교회를 건성으로 다녔거든요. 목사님이 새로 오시면서 제 신앙이 잘못된 걸 분명히 지적해주고 가르쳐주셨어요.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가 중요해요. 그분은 제 생각에서 벗어나 하나님 마음의 세계로 옮겨 갈 수 있게 저를 이끌어주셨어요. 그때부터 심경의 변화가 오기 시작했어요. 엉터리 같은 나를 아빠로, 남편으로 알고 살아준 가족에게 너무 미안했고 그들의 말 못할 고통을 조금씩 알 것 같았어요. 한번은 내 건강을 생각해서 비싼 보약을 샀는데, 아내가 불쑥 떠오르더라고요. 내 입에 그것을 넣을 수가 없었어요. 아내가 사는 집 주소로 편지를 써서 보약도 같이 보냈어요. 태어나 생전 처음 해본 일이었어요. 나보다 남의 입장을 생각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봉사와 희생이라는 단어 근처까지 왔나 봅니다.(웃음)  

이번 산불로 집이 잿더미로 변하는 걸 보면서 속이 시원했어요. 내 속에 있는 더러운 찌끼들까지 다 불타버린 느낌이랄까요? 내가 원한다고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걸 경험했죠.   

울진이 고향이신가요?

아닙니다. 울산에 살았는데 울진에 있는 동생 일을 도우러 올라왔어요. 벌써 8년이 됐네요. 육지 안의 섬 같은 울진이 제겐 제2의 고향입니다. 동네에 아흔 살 되신 어르신이 계셔서 자주 안부도 여쭙고 음식도 해드렸더니 어느 날 아들 삼자고 하셨어요. 덕분에 제게 없던 아버지도 생겼죠.

노인이 많은 마을에서 아들처럼, 청년처럼 지내시겠네요.

예, 이번에도 아버지 집에 제가 호스로 물을 다 뿌려서 불이 옮겨붙지 않았어요. 저는 시간만 나면 동네 어른들을 찾아가 말벗을 해드려요. 노인이 되면 외로움을 많이 타고 사람을 그리워합니다. 또 밖으로 잘 다니지도 않으셔서 제가 안 들여다 보면 생사도 몰라요. 집에 가보면 아파서 혼자 사경을 헤매고 있는 분들도 있어요. 제가 병원에 모시고 가죠. 근데 제 직업이 목수가 아닙니까? 집 안팎으로 망가진 곳들을 보수해드릴 수 있어서 좋아요. 또 노인들에게 궂은 일은 제가 해드리기도 하고요.

노인들에게 하듯이, 손주 뻘 되는 청소년들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지식은 학교에서 다 가르쳐주잖아요. 여기에 청소년들이 마음의 세계까지 배운다면 좋겠습니다. 청소년들이 성장 과정에서 어려운 일을 만날 때 마음에 기준이 분명하면 방황하지 않고 무슨 일이든 힘있게 헤쳐나갈 수 있거든요. 지식만으로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어요. 그렇다면 마음의 세계가 뭐냐고요? 바람이 눈에 안 보여도 있는 것처럼, 마음의 세계도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어요.

만약에 어떤 사람의 근원에 대해 궁금할 때 그 사람의 족보를 보면 되잖아요. 그 사람 얼굴만 보고는 알 수 없지만, 족보를 보면 그가 누구의 몇 대손인지 상세히 알 수 있어요. 성경이 그래요. 사람의 마음이 어떤지 얼굴만 봐서는 모르죠. 그런데 성경에는 사람의 마음 세계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요. 청소년 시기에 많은 책을 읽겠지만, 성경책도 꼭 읽어서 자신의 마음 구조를 이해하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아버지와 아들이 근처 길을 나란히 걸으며 잠시 산책을 즐겼다. 이번 산불에서 생명을 구하려고 동분서주하는 아버지를 본 아들은 예전과 너무 다른 모습에 ‘설마’ 했다고 한다. 그랬던 아들이 어느새 아버지를 챙기고 함께 다니는 아들로 변해가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아버지와 아들이 근처 길을 나란히 걸으며 잠시 산책을 즐겼다. 이번 산불에서 생명을 구하려고 동분서주하는 아버지를 본 아들은 예전과 너무 다른 모습에 ‘설마’ 했다고 한다. 그랬던 아들이 어느새 아버지를 챙기고 함께 다니는 아들로 변해가고 있다.

최동오 씨를 만난 다음날, 오후부터 봄비가 창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울진 쪽을 향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SNS에도 바람이 비구름을 울진으로 보내주길 바란다는 국민들의 응원이 많았다. 그 간절함이 통했는지, 5,500만 평을 이미 화마火魔가 휩쓸고 간 울진에 17밀리미터의 단비가 내렸고 곧이어 산불이 꺼졌다는 속보가 나왔다. 뉴스를 전하는 앵커는 “다행히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는 말에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안부가 궁금해 전화를 했다. “어떠세요?” “마을 어른신들이 말하시길, 자네가 믿는 하나님이 비를 내려줘서 불이 꺼졌다며 좋아하시네요.” 한층 밝아진 음성에서, 인간이 망친 자연을 신이 고치신다는 희망을 느꼈다. 소실된 울진 땅에 다시 새순이 돋아나듯, 최동오 씨가 새로 지을 집에도 언젠가 헤어진 가족들이 찾아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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