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Therapy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는 20세기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로 <수레바퀴 아래서>를 비롯해 <데미안> <싯타르타> 등 유명 작품을 남겼다. 그중 장편소설 <수레바퀴 아래서>에는 자전적 요소가 많이 들어 있다. 헤세는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수도원에 입학했지만, 시인을 꿈꾸며 7개월 만에 도망쳐 나온다. 이후 서점 직원과 기계 공장의 수습 직공으로 일했으며, 한때 신경쇠약증에 걸리는 등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보냈다.

헤세의 삶과 닮은 소설 주인공의 이름은 ‘한스 기베란트’이다. 그는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였다. 당시 부자가 아닌 집안의 재능 있는 아이에게는 하나의 좁은 길만 주어졌다. 시험을 봐서 신학교에 들어간 다음, 튀빙겐 대학에 입학하여 목회자나 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한스가 그 길을 걸어갈 주인공이라고 기대했다. 시험의 압박은 가볍지 않았다. 하지만 한스는 어른들의 가르침대로 그날을 꿈꾸며 공부에 매진했다. 그 결과 2등으로 신학교에 합격한다. 그는 모든 마을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었다. 

1등을 다짐하며 마울부론 수도원에 있는 신학교에 입학한 한스는 그곳에서 ‘하일러’라는 친구를 만난다. 자유분방한 그는 특별한 몽상가요, 천재적인 시인이었다. 한스는 자신과 전혀 다른 하일러를 줄곧 생각했고, 어느새 두 사람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Anna Boberg, Landscape with a Village
ⓒAnna Boberg, Landscape with a Village

그러나 학교에서는 둘의 만남을 달가운 시선으로 보지 않았다. 한스는 학교에서 모범생이었지만, 하일러는 방탕한 시인으로 통했다. 뛰어난 성적을 내는 것에만 몰두했던 한스는 하일러와 함께할수록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즐거움을 맛보았다. 우정에 열중할수록 학교생활은 점점 서먹해졌다. 교장 선생님은 성적이 떨어진 한스를 불러 수레바퀴에 깔리지 않으려면 하일러를 멀리하고 공부에 집중하라고 충고한다. 그즈음 알 수 없는 하일러의 우울함이 더욱 커져갔다. 목회자가 되려는 친구들에게 ‘어른이 두려워서 공부하는 불쌍한 소년들’이라고 비난한 하일러는 동급생들과 선생님들에게 미움을 받는다. 급기야 하일러는 학교의 명령보다 자신의 의지가 강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도주하고, 그 사건으로 퇴학을 당한다. 시간이 흐르자 하일러의 도주는 차츰 과거의 이야기가 되고, 마침내 전설이 된다.

하지만 학교에 남겨진 한스는 극심한 우울함에 빠지고, 성적 또한 곤두박질친다. 사람들은 그에게서 등을 돌린다. 두통, 우울함과 신경쇠약으로 휴양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은 한스는 학교를 그만두고 집으로 온다.

한스의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아주 신경질적으로 맞았다. 마을 사람들 또한 한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삶의 목표를 잃은 채 방황하면서 종종 죽음을 생각한다. 고향에서 첫사랑 엠마를 만나 잠시 사랑과 희망을 엿보지만 결국 그녀로부터 버림받고 더 깊은 상실의 늪에 빠진다.

그는 아버지의 제안으로 취직해서 기능공으로 일한다. 어느 주말,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한스, 다음날 그는 시체로 발견된다. 자살인지 사고사인지 밝혀지지 않은 채 소설은 이렇게 비극으로 끝난다.

어느 길로 가야 행복할 수 있냐는 물음에

나는 수년간 고등학교에서 독서 토론 수업을 하고 있다. 토론 수업에 앞서 학생들에게 도서를 선택해오라는 과제를 내주는데, 해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작품이 <수레바퀴 아래서>이다. 시공간적 배경은 다르지만, 현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과 공감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반응은 사뭇 진지하다. “저도 원하지 않는 공부만 하고 있으니 너무 답답해요. 한스처럼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하일러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원하는 것을 하며 살고 싶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안정적인 길을 포기하는 건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어떻게 살아가는 게 행복한 삶인 걸까요?”

사람은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공부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얻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그런 삶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면 안정적인 삶의 틀에서 벗어나 마음이 원하는 길을 찾아 모험을 떠나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삶의 길을 수십 번 수백 번 고민하며 살아간다.

주인공 한스 또한 행복하게 살고자 했다. 행복을 얻기 위해 어른들의 가르침대로 최선을 다해 공부해 신학교에 입학했고, 때론 그보다 더 행복감을 가져다주는 친구와의 우정에 푹 빠지기도 했다. 퇴학을 당한 후에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기계공으로 일하면서 평범하게 살아가려고 노력도 한다. 하지만 그는 결국 행복을 찾지 못한 채 죽음으로 향한다.

마치 한스가 하일러를 만났을 때처럼, 이 책을 읽고 삶의 길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학생들에게 나는 이렇게 묻는다. ‘하일러 못지않게 행복한 삶을 찾고자 고민하고 노력했던 한스는 왜 고통스러워야만 했을까?’ ‘하일러처럼 살아야만 행복할 수 있는 걸까?’ ‘행복은 어디에 있는 걸까?’

ⓒOlga Wisinger-Florian,Hay Cart
ⓒOlga Wisinger-Florian,Hay Cart

<수레바퀴 아래서> 토론 수업을 할 때면 생각나는 학생이 있다. 그는 가정불화와 가난으로 오랫동안 방황했는데, 그런 그가 언제부터인가 음악에 흥미를 느꼈고 그 길을 가겠다고 말을 꺼냈다. 이를 들은 부모님과 선생님은 불투명한 길을 가겠다는 그를 말리기 바빴다. 결국 음악 관련 학과에 진학하는 것으로 타협을 했고, 그 학생은 버티다시피 하며 무사히 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그는 간간이 학교로 소식을 전해왔다. 밴드를 결성해서 활동한다, 어느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음악 카페를 하려고 한다….

얼마 전 학교에서 열린 도서 행사에서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축하 공연에서 노래를 부르며 그가 짧게 멘트를 남겼다.

“저는 제 삶이 너무 불행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걸 다 하고야 말겠다는 마음이 강했죠. 처음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밴드 활동도 하게 되어 무척 즐거웠어요. 하지만 생각지 못한 실패들이 찾아왔고, 절망했어요. 또 언제나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불안하게 살았죠. ‘이 길이 맞는 걸까?’ 고민도 많이 했어요. 그러다 어머니의 소개로 상담 선생님을 만났어요. 그분은 저를 만날 때마다 ‘네가 무엇을 해도 괜찮아. 그런데 네 노래가 참 좋아. 네가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노래를 하면 좋겠다.’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제 마음이 좁아져 있어서 보지 못했던 가족의 사랑을 느끼게 해주셨어요. 그러는 동안 불행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제가 행복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요. 지금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노래를 하고 있어요.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이전과 비슷하지만, 제 마음이 밝아지니 무척 행복해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오래전 그와 어른들 사이에 일어났던 공방전이 떠올랐다. 그때 서로 ‘남들처럼 공부는 해야만’, ‘내가 원하는 길을 가야만’ 행복 할 수 있다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하지만 그를 행복하게 한 것은, 어떤 길이냐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네가 잘하거나 실패하거나 네게 등을 돌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 즉 네가 이미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 그래서 네가 무엇을 해도 괜찮으니 열심히 하라’는 가르침이었다.

ⓒEdward Stott, A Spring Idyll
ⓒEdward Stott, A Spring Idyll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그 학생처럼 나를 사랑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알게 될 때 혹은 주변에서 나를 위하는 따듯한 마음을 느낄 때 깊은 행복을 경험한다. 그래서 어려울 때 선뜻 손을 내밀어준 사람을, 모두가 자신을 문제아라고 말할 때 ‘너도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선생님을, 모든 일에 실패하고 돌아온 자신을 말없이 따듯하게 맞아주는 부모님의 품을 잊지 못한다.

평소에 자신을 향한 사랑이나 배려, 따스함 등을 충분히 느끼며 사는 사람은 마음의 바탕이 풍요롭다. 때문에 어떤 일을 하다 어려움을 만나거나 실패하면 힘들고 아프긴 하지만 털고 다시 일어나는 것을 본다. 반대로 따스함을 느껴본 적이 별로 없는 사람은 마음의 바탕이 가난하기에 행복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또 잃어버리지 않을까?’ 마음을 졸여야 한다. 그러다 실패를 만나면 ‘내게 남은 것은 이것밖에 없었는데 이제 내게는 아무것도 없구나’ 하며 좌절하고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한스는 후자에 속했다. 그는 총명했고 행복한 길을 찾기 위해 오랜 날 고민했지만, 마음 바탕에 흐르는 감사나 사랑의 물줄기가 메말라 있었다. 행복의 길을 찾다가 실패하고 쓰러져 울고 있을 때,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때, 거기에서 그를 잡아줄 수 있는 마음의 터가 없었다.

이런 상상을 해보았다. ‘한스의 마음에,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버지의 사랑이 흘렀다면 어땠을까?’ 한스의 아버지가 하루하루 빠듯하게 사느라 아들에게 따듯한 말 한마디 할 여유가 없었겠지만, 큰 기대를 걸었던 아들의 실패가 속상했을지라도 아들에게 속상함만 표현하지 말고, 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헤아려 주었다면 어땠을까? 사랑을 말해주었다면 어땠을까? “아들아, 많이 힘들었지? 이제 괜찮아. 그리고 너를 사랑하는 내 마음은 변함이 없단다.” 이렇게 말이다. 한스의 마음에 ‘아버지가 나를 혼내실 때도 있지만, 아버지는 나를 정말 사랑하시는 분이야’ 하고 사랑이 흘렀더라면, 홀로 괴로워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 사랑이 마음의 바탕이 되어 언젠가 다시 일어나 그의 뛰어난 재능을 꽃피웠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실패해서 무너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지탱해 줄 따스함이 없어서 무너지는 것 같다. 그런 이유로 나는 진로를 두고 고민하는 학생들을 만날 때면 이렇게 말한다.

“너는 소중한 존재야. 무엇을 해도 좋아. 지름길로 가도 좋고, 길을 잠시 잃어도, 조금 돌아가도 괜찮아. 무엇을 하든지 최선을 다하되, 네 마음의 터가 풍요롭길 바란다.” 그 말에 담긴 진심이 그들의 삶 속에 오래오래 흐르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글쓴이 심문자

서울과학기술대학 사회교육개발원에서 독서교육을, 방정환 교육센터에서 부모교육을 하고 있다. 예루살렘 라디오 ‘북적북적 북클럽’ 진행자이다. 독서지도사, 청소년상담사, 독서논술교사 등 책과 관련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헤르만 헤세<수레바퀴 아래서>

독일계 스위스인으로, 소설과 에세이, 시를 쓴 헤르만 헤세는 성장하는 청춘들의 고뇌와 인간 내면의 양면성에 대한 고찰을 통해 휴머니즘을 지향한 작가이다. 그가 1906년에 발표한 <수레바퀴 아래서>는 대표적인 자전적 소설로 상반된 성격의 두 인물을 설정해 자신이 십대 시절 겪었던 내면의 갈등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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