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나는 오십이 넘은 나이에 남편 직장 때문에 몽골로 왔다. 코로나가 시작된 후라서 몽골의 모든 학교는 온라인 수업이었다. 한국에서도 청소년들을 위한 유익한 활동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매주 토요일마다 ‘코리아 아카데미’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온라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지금도 많은 몽골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코리아 아카데미에서는 ‘한국어 교실’을 비롯해 ‘아이스 브레이킹 게임’, ‘반별 토론’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특히 반별 토론 시간이 되면 많은 학생들이 자신도 발표를 시켜 달라는 눈빛을 보내며, 팔이 아플 텐데도 손을 내리지 않는다. “저는 어릴 때부터 담배를 피웠는데 끊을 수가 없어요.”라며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학생들도 많고, 또 “화를 너무 잘 내서 쉽게 가족들에게 상처를 줘요.”라고 말하며 조언을 구하는 학생들도 있다.

자신의 단점이나 약점을 감추지 않고 스스럼없이 꺼내놓는 학생들을 보면, 내 가슴은 마치 강한 자석에 이끌리듯 그 학생들에게 빨려 들어간다. 이들 중에 많은 학생이, 몇 평 되지 않는 동그란 ‘게르’에서 살아가지만, 그 ‘게르’ 안이 비좁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마음에는 ‘열정’과 ‘순수함’이라는 보석이 마음에서 반짝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학생들은 자신들에게 귀한 보석이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그런 몽골 학생들을 보다 보면 내 학창 시절이 떠오르곤 한다.

초등학교 새 학기 국어 시간이었다. 그날은 8일이어서 선생님이 반에서 8번 대 학생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하셨다. 난 58번이었다. “자, 이제 58번이 읽어보자.” 선생님의 말씀이 떨어진 후, 난 걸상을 뒷다리로 밀면서 일어섰다. 그때부터 책을 들고 있던 두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너무 떨어서 발음까지 이상해졌다. 마치 술에 취해 혀가 꼬부라진 듯한 소리로 책을 읽는 나를 본 친구들은, 배를 잡고 책상에 엎드려 깔깔대며 웃어댔다. 내 두 뺨은 벌겋게 달아오르다 못해, 화끈거리기까지 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다.’라는 말이 바로 그 상황이었다. 나에게 힘들었던 건 발표뿐만이 아니었다.

체육 시간에 누구나 한 번쯤은 뜀틀을 넘어 봤을 것이다. 한 줄로 서서 기다리다가 선생님의 “삑!” 하는 호루라기 소리에 맞추어서 한 사람씩 뜀틀을 뛰어넘는다.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심장은 쿵쾅거린다. ‘혹시나 뜀틀을 못 넘어서 친구들에게 웃음거리가 되면 어떡하지?’ 내 머릿속엔 온통 이런 두려운 생각이 가득했다. 엄청난 부담이 밀려왔지만 피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나는 뜀틀을 뛰기 위해, 후들거리는 다리로 도움닫기를 했다. “하나, 둘, 셋~!!” 역시나 실패였다.

뜀틀에 엉덩이가 걸렸고 엉치뼈가 “꽝!” 하고 부딪혔다. 내 뒤에서 깔깔거리는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렇듯 다른 사람 같았으면 아무렇지 않은 사소한 부담도, 나에게는 높은 뜀틀처럼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학창 시절 내내, 항상 웅크리고 숨어 지냈다.

몇 해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3m 6cm’이라는 뜀틀 뛰기 신기록 보유자가 나왔다. 그 사람은 마치 새처럼 높은 곳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그는 힘찬 도움닫기 후, 3분의 2 지점에서 디딤판을 밟았다. 디딤판은 그를 번쩍 들어서, 자신의 키에 두 배가 넘는 높이를 가볍게 넘었다. 무척 놀랍고 멋진 광경이었다.

어느 날, 내게도 멋진 ‘디딤판’이 찾아왔다. 바로 <투머로우> 잡지다. 늘 웅크리고 자신 안에 숨으며 학창 시절을 보내온 나였지만, 투머로우는 내 마음의 키보다 두 배가 넘는 높이로 마음껏 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 시작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연히 2012년 3월호 투머로우에 수록된 ‘배울 마음만 있다면 꼴찌 탈출’이라는 임영석 씨의 에세이를 읽었는데,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묻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다.”라는 글귀가 내 마음을 두드렸다. 오랫동안 ‘못하면 창피를 당할 거야.’라는 두려움 때문에, 배울 마음까지도 외면한 채 살아온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후부터 투머로우 책을 혼자 읽기가 아쉬웠고, 근처 도서관에서 투머로우 독서 토론 동아리를 시작했다. “좋은 글을 읽고 서로 나누면 내일이 달라집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몽골 남부에 위치한 도시 바양헝거르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 및 교사를 대상으로 독서토론 수업을 하고 있다. 지난 1년 반 동안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하다가 2주 전 처음으로 대면 수업을 진행했다.
몽골 남부에 위치한 도시 바양헝거르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 및 교사를 대상으로 독서토론 수업을 하고 있다. 지난 1년 반 동안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하다가 2주 전 처음으로 대면 수업을 진행했다.

동아리 회원 중에 어린 나이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젊은 부인이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들에게 무시당하고 왕따를 당하며 살았는데 유일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이 ‘게임의 세계’였다고 한다. 결국 게임에 중독된 부인은 남편을 만나 아이가 생긴 후에도 자신의 모든 시간과 돈을 게임에 다 쏟으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독서토론을 하고 난 후 “배울 마음만 있으면 꼴찌 같은 내 인생에서도 탈출하겠다는 희망이 생겼어요.”라며 발표를 했다. 이후 그녀는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며, 수필에 도전하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청소년들에게 글뿐만 아니라 밝은 마음을 가르치는 강사가 되었다. 그에게도 투머로우가 삶의 디딤판이 된 것이다. 디딤판을 밟고 자신의 키보다 높은 곳을 훌쩍 넘는 그 모습이 너무 멋졌다.

나는 투머로우를 통해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이런 멋진 광경을 자주 목격하곤 했다. 특히, 기숙학원에서 공부하는 재수생, 삼수생 학생들과 소년원의 청소년들이 변하는 모습을 볼 때면 무척 행복했다. 이 학생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는 ‘또다시 실패하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걸까?’라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투머로우 책에 나온 대학생들의 해외봉사 체험 수기를 읽으며 ‘다른 사람들도 넘어지는구나. 하지만 실패를 통해 배우고 또 도전하는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자신 또한 해외봉사를 떠나고 싶다고 표현하곤 했다. 그러더니 어느 날 한 명씩 해외로 봉사를 떠난다며 인사를 해왔고, 일 년 후에는 투머로우 책에 그들의 멋진 소감의 글이 실린 것을 보았다. 그렇게 나는 인생에서 ‘힘찬 도움닫기’와 ‘3분의 2지점의 디딤판’만 있다면, 누구든지 자신의 한계를 훌쩍 넘을 수 있다는 사실을 투머로우를 통해 발견했다.

최근에는 2021년 12월호 투머로우에서 코트디부아르 ‘조로 비 발로 장관’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그는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밝은 때가 언제인지 묻는 질문에 “고향의 농장에서 불우했던 청년들이 바르게 자라나고, 마인드교육을 받아 마음이 변하고 나아가 사회와 문화적 환경도 변해가는 겁니다. 저는 이 프로젝트가 완성될 시기가 내 인생의 가장 밝은 때가 아닐까 기대합니다.”라는 답을 했다.

그의 답변에서 그가 삶 속에서 만났던 고난과 역경을 이겨냈던 그 모든 시간들이, 결국 코트디부아르 청소년들을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속 그의 환한 미소가 더없이 멋져 보였다.

나는 자주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이 순수한 몽골의 학생들이 자신의 키보다 더 높이 뛰어 자유롭게 날 수 있도록 하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그랬듯 그들도 좋은 디딤판을 만난다면, 분명히 어떤 문제도 멋지게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나도 그들의 디딤판이 되어 주고 싶다. 그들이 디딤판을 딛고 자신의 키보다 더 높이 멋있게 날 수 있도록, 오늘도 나는 투머로우 속에 있는 글을 아주 잘게 곱씹어 본다.

글 김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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