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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 하나를 품고 하와이로 간 사람들영화 ‘무지개 나라의 유산’ 이진영 감독
최지나 기자 | 승인 2022.03.28 14:59

아름다운 섬, 지상천국으로 통하는 ‘하와이’는 대한민국의 미주 이민사가 시작된 곳이다. 1903년 1월, 102명의 한국인은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하와이에 도착해 삶의 터전을 마련했고, 현재는 7만 명이 넘는 한국 이민자들이 이 곳에서 살고 있다. 이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현재 안락한 삶은 이민 선조들의 땀과 노력, 사랑 때문이었다.’고 말이다.

17년 전, 하와이로 이민 온 이진영 씨는 우연히 접한 한인 이민 역사를 듣고, 이민자의 삶을 기록하기로 마음먹었고, 2021년에 개봉된 영화 ‘무지개 나라의 유산’에 고스란히 담았다. 119년 전 하와이에는 어떤 씨앗이 심겨졌을까? 이진영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기자와 아나운서로 일하셨는데 이번에는 감독이 되어 영화 ‘무지개 나라의 유산’을 찍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저는 스물다섯에 하와이로 건너와 한국일보 하와이 지사의 기자를 거쳐 한인방송 앵커로 일했어요. 그렇다보니 국내외 다양한 분들과 인터뷰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죠. 한 번은 제가 몸담고 있는 방송국에서 오하나 퍼시픽은행 김창원 이사장 다큐멘터리 촬영을 했어요. 김 이사장님은 이민자들이 하와이에 잘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돕고, 이끌어주는 일을 하셨는데요. 제가 “평생 기부활동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이사장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어요. “저는 단 하루도 우리 이민 선조들이 하와이에서 흘린 피와 땀을 잊은 적이 없어요. 하루 열 시간씩 일하면서도 고국에 독립운동 자금을 보낸 그분들의 마음을요.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안락한 삶은 우리 선조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니 저 역시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 젊은 친구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은 선행이 아니라 어른 된 도리이자 책임입니다.” 그렇게 인터뷰를 마치고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사랑을 받았어요.”라고 제게 말하셨는데, 그 말이 오랫동안 귓가에 맴돌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이곳에 와서 늘 궁금한 게 하나 있었어요. ‘이민 선조들의 삶은 굉장히 척박하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었을텐데, 언어도 통하지 않고 기반도 없는 곳에서 후손들을 어떻게 기르셨을까?’ 후손 중 많은 분들이 존경받는 리더로 성장하셨어요. 아마 그분들에게 배울 수 있는 특별한 지혜와 가르침이 있지 않을까? 싶었죠. 현 세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선조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서 영화를 찍게 됐어요.

이진영
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에디터로 일하던 중 우연히 찾은 하와이에 반해, 하와이로 이주했다. 한국일보 하와이 지사를 거쳐 한인방송 앵커로 뉴스를 진행했다. 현재는 방송국을 떠나 영화 ‘무지개 나라의 유산’을 찍고 감독으로 데뷔해 제 2의 삶을 살고 있다.

Q. 영화에는 5명의 인터뷰가 담겨 있더군요. 다큐멘터리 형식을 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역사라는 것 자체가 어떤 사람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결말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전혀 다른 관점의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고요. 그래서 한 주제를 정하기보다는, 직계 자손들 중에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이민자의 삶을 다각적으로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6부작으로 된 ‘무지개 나라의 유산’에는 5명의 사람들이 등장해요. 그들은 1903년에서 1920년 사이 하와이로 건너온 한인 이민 1세의 직계 자손들이에요. 늘 ‘한국인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문대양 전 하와이 주 대법원장, 해리 김 전 힐로 시장 등 한인 사회뿐 아니라 미국인들에게도 존경받은 분들의 심층 인터뷰를 했어요. 이를 통해 이민 1세대의 삶과 지혜를 들여다보고 싶었거든요.

Q. 영화 촬영을 하면서 발견한 특별한 지혜는 무엇이었나요?

다섯 분 모두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점이 있다면, ‘나를 위해서 살면 행복하지 않다. 다른 사람과 함께, 타인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는 거였어요. 형태는 다르지만 다 같은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1900년대 초기는 일제 강점기 시대이다 보니, 이민자 분들의 몸은 하와이에 있어도 마음은 한국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번 돈의 절반 이상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보냈고, 독립운동 단체를 만들어 옷가지와 구호물품을 독립운동가들에게 보내셨어요. 또한 어떻게든 학교를 세워 한국사와 한국어 공부를 시켜서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하셨죠.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 희생했던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고 자라면서, 타인과 함께 어우러지며 사는 지혜가 가장 큰 정신적 유산이 아니었나 싶어요.

하와이의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 창립회원(1909)의 모습.
하와이 성공회 성누가교회 국어학교 학생 일동(1928). 이민자들의 자녀들은 이곳에서 한글과 역사를 교육받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지혜는 가족들의 희생과 사랑을 기억하는 것이었어요. 6부작 중 2부에 소개된 게리 박 작가는 할머니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제가 “할머니에 대한 각별한 감정을 가지고 계신데, 왜 할머니에 대한 글은 쓰지 않느냐?”고 여쭤봤어요. 그분께선 “할머니의 사랑을 온당히 표현해낼 재간이 없다.”고 하시더군요. 아무리 좋은 작가가 됐다고 한들 할머니의 사랑은 어떤 것보다 깊고, 어떤 글로도 할머니를 향한 경위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말씀을 덧붙이셨어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누구나 살면서 그런 사랑을 받았던 기억이 한번 쯤은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 분들의 이야기가 단순히 ‘이런 사랑을 받았구나.’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제 마음에 심겨져 있던 ‘아버지의 사랑’을 되새겨주었거든요. ‘나도 누군가에게 저렇게 소중한 존재였지.’라는 생각을 해보고, 더 나아가서는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더군요. 제 두 딸에게든, 누구에게든요.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참 행복했어요.

사랑과 지혜를 받아 성장하고, 잊지않고 기억하는 분들을 촬영하면서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지혜를 얻은 것 같아요.

Q. 이민자의 자손 모두가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중 많은 분들이 존경받는 인물이 되셨습니다. 그 이유도 특별한 지혜와 연관되어 있겠죠?

인터뷰를 한 모두가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희생과 사랑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이야기하셨는데요. 그들의 마음에 가족의 희생과 사랑이 고스란히 뿌리내렸을 뿐 아니라 거기서 한발짝 더 나아갔어요. 자신들에게 뿌리내린 사랑과 지혜를 어떤 방식으로든 성장시켰기에, 현재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지 않나 싶어요.

예를 들어 문대양 전 대법원장 같은 경우, 그 분의 아버지는 테일러샵을 운영하셨는데 언제든지, 누구라도 도움을 요청할 수 있게 가게문이 항상 열려 있었다고 해요. 영어를 잘 못하는 한국인들이 국가에서 날아오는 공문서를 가져가면 그걸 번역해주고, 때로는 영어로 글을 써주고, 통역도 해주셨데요. 늘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글을 모르는 사람들의 애환을 함께 느끼셨고, 문대양 씨가 대법원장이 된 후 미국 최초로 법정 내 무료 통역 프로그램을 개설하셨어요. 아버지가 하셨던 일을 더 발전시켜서 무료 통역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아버지가 하셨던 것 이상으로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미친 거죠.

이진영 감독과 인터뷰하고 있는 게리 박 작가(사진 맨 오른쪽)는 조부모님의 사랑과 희생이 현재의 삶을 지탱해주는 단단한 뿌리가 되었다고 했다.

Q. 그분들의 이야기가 감독님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 같습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항상 하는 고민이 있었어요. 저는 모든 사람들이 파라다이스라고 말하는 하와이에 살고 있고, 좋은 직장도 있고, 가족도 있는데 항상 뭔가 부족한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늘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끊임없이 생각했고,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을 것 같은 허함을 느꼈죠.

그런데 영화 촬영을 마치고 난 뒤부터 행복을 느끼는 일이 무척 많아졌어요. 어느새 비어있던 마음의 공간이 채워졌더라고요. 그 이유를 꼽으라면,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조사한 것도 있겠지만, 어찌됐든 이 시간을 보내면서 제가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아 온 사람인지 알게 됐기 때문이에요.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 얼마나 위대한 선조들이 있었는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랑과 희생으로 지켜진 소중한 존재인지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죠. 100년도 더 전의 일인데, 우리가 소중하게 지켜져온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을 소중하게 다뤄야 하는 것 같아요. 내가 받은 이 사랑을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고요.

Q.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사랑을 전하실지 궁금합니다.

‘무지개 나라의 유산’은 애초에 비영리로 기획된 영화였고, 제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라 많은 관심을 받을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그런데 영화가 개봉된 후에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시고, 관심을 보여주셔서 매우 감사했어요. 덕분에 영화제에서 상도 받고, 강연 초청도 받고요. 사실, 제가 한 것에 비하면 너무 분에 넘치는 사랑이었어요.

다큐멘터리 촬영 때, 문대양 전 대법원장이 하신 말씀이 있어요. ‘우리는 모두 지구라는 땅에 세 들어 살고 있으니 사는 동안 그에 대한 비용을 어떤 식으로건 지불해야 한다.’라고요. 그 말을 실천해보고자 청소년을 위한 작은 영화제를 마련했어요. 제가 받은 강연료에 조금의 사비를 보태 ‘무지개 나라 영화제’를 열었는데, 영화제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마음에 심겨진 소중한 씨앗을 발견하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이렇듯 앞으로도 제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가 받은 사랑을 전하지 않을까 싶어요.

하와이에 뿌리내린 커다란 나무는 119년 전에 심긴 씨앗에서 시작됐다. 그 씨앗이 커다란 나무가 되기까지, 수많은 선조들의 희생,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사랑,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헌신이 있었다. 얼핏 보면 다를 게 없어 보였던 나무는 어느새 깊은 뿌리를 내리고 무성한 잎을 가진 모습으로 성장했다. 많은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그늘을 제공하면서 말이다.

이진영 감독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그런 희생과 사랑으로 지켜졌다. 비단 하와이 이민자뿐 아니라 누구나 말이다. 이 감독은 그가 받은 사랑, 희생을 고스란히 씨앗에 담는다. 그리고 언젠가 무성히 자라날 것을 기대하며 심는다.

‘무지개 나라의 유산’은 하와이의 단편적 이미지 뒤에 숨겨져 있는 한국 역사를 기록한다. 1903년 조선 땅을 떠나 하와이로 간 이민 선조들의 땀과 노력, 사랑의 결실에 대한 다큐멘터리 시리즈로 6부작으로 이루어졌다. 1903년~1920년 사이에 한국에서 하와이로 건너간 최초 한인 이민 1세의 직계 자손 중 게리 박 작가, 해리 김 전 힐로 시장, 문대양 전 하와이 주 대법원장, 바이올린 연주자 마이클, 데이지 양 전 고려대 객원 부교수, 총 다섯 명의 심층 인터뷰가 담겼다. 

최지나 기자  4153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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