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에 상영된 영화 한편으로

최근 뉴스에는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러시아와 서방 간의 갈등이 주요 소식으로 오르내린다. 언제 발발할지 모르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태세에 따라 세계 증시는 등락을 반복하고, 주요 국가들은 팽팽한 회담을 거듭하고 있다. 그런데, 전쟁의 기운은 오늘에 와서 급작스레 생긴 일이 아니다.

2014년, 우크라이나 남부 지역에 위치한 크림반도를 두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에 이미 영토 분쟁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 크고 작은 교전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수많은 국민들은 집과 직장,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다. 유엔 보고에 따르면, 실향민이 14만 명에 이르고 민간인 1만 3천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돈바스 지역에서 약 4시간 정도, 거리로는 300km 떨어진 곳에 상주하던 기자는 최근 이 지역에 불고 있는 훈훈한 소식을 듣고 취재에 나섰다. 우크라이나 현지 목회자들이 주축이 되어 전운이 감도는 돈바스 지역의 시민들에게 영화 한 편을 상영했다는데, 이 영화를 본 많은 이들이 새로운 소망을 찾았다고 전했다. 팬데믹과 전쟁으로 어느 때보다 더 추운 겨울을 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국민들에게 이 영화가 어떤 역할을 한 것일까?

영화 순회 상영을 시작한 이유

우크라이나는 우크라이나 정교, 가톨릭, 개신교 등 기독교가 문화의 중심이다. 그렇기에 크리스마스가 중요한 기념일 중 하나다.  기독교의 크리스마스는 12월이지만, 정교회의 크리스마스는 1월이라서, 우크라이나는 겨우내 크리스마스 시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곳을 가든 크리스마스 정취를 느낄 수 있을뿐더러 예수의 탄생과 관련된 여러 공연들이 열린다. 그중 가장 규모가 크고, 해마다 인기를 더해간 공연을 꼽자면 ‘크리스마스 칸타타’이다. 오페라, 뮤지컬로 구성된 이 공연은 특히 노래와 춤을 사랑하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최근 코로나 팬데믹으로 2년간 공연이 중단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크리스마스 칸타타’가 ‘포 언투 어스’라는 영화로 제작됐고, 개봉하자마자 이탈리아 베수비오국제영화제, 프랑스국제영화제, 미국뉴욕독립영화제 등 여러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예수님의 사랑과 소망을 전해주는 이 영화를 관람한 우크라이나 목회자들은 마음이 하나가 되었다. “올겨울,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영화다. 가족, 친구, 그리고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자!”라고 의기투합하여, ‘포 언투 어스’ 영화 순회 상영을 시작했다.

러시아와 접경을 이루고 있는 돈바스 지역은 현재 내전중이라 출입이 불가하다. 그래서 그 지역을 둘러싸고 있는 도시들을 돌며 영화 상영 투어를 했다.
러시아와 접경을 이루고 있는 돈바스 지역은 현재 내전중이라 출입이 불가하다. 그래서 그 지역을 둘러싸고 있는 도시들을 돌며 영화 상영 투어를 했다.

전시 상황에서도 영화 상영은 계속되고

우크라이나 전역은 크게 서부, 북부, 동부 세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영화 순회 상영을 위해 우크라이나 목회자들은 팀을 짜서 세 지역으로 각기 떠났다. 그렇게 시작해 1월 중순부터 2월 초까지 총 3주간 행사를 진행했다. 그중 가장 오래 머물며 영화 상영을 많이 한 곳은 바로 돈바스 지역이다. 이곳은 지금도 전시 상황이어서, 바다에 러시아 함대가 보이고, 총소리도 들려온다. 날아온 미사일로 무너진 건물에서 예배를 드리는 교회,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돌보는 고아원 등 이 지역에는 전쟁의 상흔으로 가득하다. 주민들은 오랜 삶의 터전이었던 이곳을 당장 떠날 수 없기에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언제라도 자신의 집과 직장, 더 나아가 가족까지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득 안고 있다. 전쟁의 고통은 비단 보이는 곳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이런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는 우크라이나 목회자들은 교전으로 출입이 불가한 곳을 제외하고, 돈바스 지역 주변 도시들인 포크로프스키, 크라마토르시크, 슬라뱐스크, 마리우폴 등 총 2,500km에 이르는 거리를 다니며 희망을 전하는 영화를 계속 상영했다.

폭격으로 1층을 제외한 나머지 건물이 날아갔다. 폐허가 된 건물은 아직 복구되지 못했다. 그나마 천장이 남겨진 1층 공간은 교회로 사용되고 있다.
폭격으로 1층을 제외한 나머지 건물이 날아갔다. 폐허가 된 건물은 아직 복구되지 못했다. 그나마 천장이 남겨진 1층 공간은 교회로 사용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상영된 크리스마스 영화‘포 언투 어스’. 예수의 탄생을 담았다.
우크라이나에서 상영된 크리스마스 영화‘포 언투 어스’. 예수의 탄생을 담았다.

따뜻한 사랑으로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다

동부 투어 팀이 방문한 도시는 총 11곳이다. 도시별로 여러 장소의 문을 두드렸다. 전쟁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군부대를 시작으로 교도소, 대학교, 문화회관, 교회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와 고아원, 노인보호센터, 마약 알코올중독 치료센터와 같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회복지시설을 찾았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누구보다 바쁘게 하루를 움직였다고 한다.

투어 팀의 일원이었던 료냐 나메르축leonid Nomerchuk 목사는 “사실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는 일념으로, 한겨울에 교전 지역 주변을 방문한다는 계획이 무모한 건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런 걱정은 모두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영화를 본 사람들 모두 하나같이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다며 행복해했고, 자신들의 가족, 지인들에게도 이 영화를 보여주길 원하며 장소를 물색해 주었습니다. 어떤 도시에서는 영화를 관람한 관객 중 한 분이 다른 도시의 중독재활센터와 고아원을 소개해주어 다음 투어 일정을 잡기도 했고요, 상영 소식을 듣고 노인보호센터에서 직접 연락을 주셔서 영화 상영을 하러 가기도 했습니다. 매일 어느 곳으로 갈지 몰랐지만, 어딜 가든 즐겁게 영화를 봐주셔서 감사했습니다.”라며 순회 상영의 소감을 말했다.

우크라이나에는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고아들이 많다. 사랑과 관심이 고픈 그들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을 가르쳐준 ‘포 언투 어스’. 영화를 보고 환한 미소를 되찾은 그들의 모습이다.
우크라이나에는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고아들이 많다. 사랑과 관심이 고픈 그들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을 가르쳐준 ‘포 언투 어스’. 영화를 보고 환한 미소를 되찾은 그들의 모습이다.

또한 고아원을 방문한 마랏Marat 목사도 한 아이의 소감을 전해 주었다. “영화에 어린 목동 형제가 나옵니다. 그들의 대화 중에 ‘형, 예수님도 양 똥 냄새나는 마구간에서 나셨어!’ ‘좀 더럽고 냄새나면 어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태어나셨는걸’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그 장면을 본 이 아이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탄생하셨어요. 우리를 이렇게 사랑해주는 분이 계시다니, 무척 행복해요.’라고 말하더군요. 이 이야기를 들은 고아원 원장님은 ‘부모를 잃고 한창 사랑이 고픈 아이들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그걸 채워줘야 할지 몰랐는데, 아무래도 이 영화가 아이들의 마음에 사랑을 가득 채운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사랑을 전해주고, 희망을 주어서 정말 감사합니다.’라며 고마움을 전해 주셨습니다.”

다른 팀원이었던 료냐 쉬투르막Leonid Shtyrmak 목사는 잊을 수 없는 방문지로 군부대를 꼽았다. “언제라도 교전에 투입될 수 있는 곳이기에 이곳 부대원들은 날마다 긴장 속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군부대를 찾아가면 비장해지곤 했는데요. 그래서 웃음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영화를 시작했습니다. 신기한 것은 영화가 시작되면서 굳어 있던 부대원들의 눈빛과 표정이 부드럽게 풀렸습니다. 웃음소리도 들리고요. 마지막엔 크게 박수를 칩니다. 영화가 끝나면 군인들이 무뚝뚝한 말투로 이렇게 말합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꼭 와주십시오.’라고요. 어깨를 툭 치며 장난을 치고 친근함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노인보호센터, 마약중독센터, 교도소, 군대, 학교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영화 상영을 했다.
노인보호센터, 마약중독센터, 교도소, 군대, 학교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영화 상영을 했다.

그들이 전해준 소식에는 ‘포 언투 어스’ 영화가 가진, 마음을 녹이는 따뜻한 온기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사랑이 담겨 있었다. 3주 동안 3백 회가 넘는 순회 상영을 통해, 1만 3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았다. 또한 팀마다 최소 1,500킬로 미터가 넘는 거리를 다녔다. 그렇게 만난 관객들에게 언제 다시 찾아올 수 있을지 날짜를 정할 순 없지만 언젠가는 꼭 다시 오겠노라는 약속을 남겼다.

우크라이나에 교전이 얼마나 계속될지는 아무도 모르고, 더 큰 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기자의 눈으로 본 우크라이나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냉혹하고 차가운 상황이지만, 영화를 통해 그들 마음에 새겨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가 불안의 시대를 견딜 힘이 될 것이며, 곧 불어올 순풍을 잠자코 기다리게 해줄 것이다.

취재 이영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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