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씨드림 대표 변현단

아파트 베란다에 작은 텃밭을 꾸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농부가 아닌 도시 사람이라도, 가까운 마트나 인터넷을 통해 언제나 원하는 만큼 씨앗 구매가 가능한 시대다. 그런데 이때 ‘씨앗을 잘 보존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민간단체인 ‘토종씨드림’ 변현단 대표의 이야기이다. 그는 2008년부터 14년간 전국 곳곳을 누비며 ‘토종 씨앗’을 수집하고, 나누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그는 어째서 ‘토종 씨앗’을 그토록 소중하게 지키고자 하는 것일까?

Q. 집 앞에 밭이 굉장히 넓습니다. 대표님께서 직접 농사를 짓나요?

네, 집 앞뒤 모두 밭이에요. 약 2천 평 됩니다. 굉장히 넓지요? 토종씨드림 활동도 하고 농사도 지으려니 늘 시간이 부족해요(하하). 그래도 이젠 요령을 알아요. 씨앗을 받고 나누기 위해 농사를 짓는다는 목표를 중심으로 충실히 일합니다. 농사지으며 수확량이 어떤지 연구해서 정보 공유도 하고, 토종 작물을 활용한 음식도 만들어 보지요.

Q. 토종씨드림 활동을 위해 농사를 시작하셨나 봅니다.

그건 아니에요. 개인적인 이유로 2004년도에 귀농해서 그때 농사를 시작했어요. 몇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뤄 함께 농사를 지었어요. 그때만 해도 씨앗은 당연히 돈을 주고 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상추, 배추, 무, 쌈 채소 등을 주로 키워서 팔았는데, 재배 후에 바로 씨를 심어야 하니까 씨를 몇십 봉지씩 사놓곤 했죠.

한번은 농업기술센터에서 옥수수 씨앗을 얻어 농사를 지었는데, 농사가 무척 잘됐어요. 크고 단 옥수수를 얻었죠. 당시 상추, 무 등의 씨앗은 사야 한다는 걸 알았는데, 옥수수 씨앗은 살 생각을 못 했어요. 종종 제가 강원도에 가면 다음 농사 때 씨앗으로 쓸 옥수수를 매달아 놓는 걸 봤었거든요. 그래서 저도 옥수수를 매달아 뒀다가 다음 해에 그걸 땅에 심었어요. 그런데 옥수수가 뒤틀리고 난리가 났어요. 농업기술센터에 연락하니, 옥수수 씨를 그렇게 받아서 쓰면 안 되고 씨앗을 새로 샀어야 했대요. 받아서 다시 쓰면 퇴화하는 종자였던 거죠. 그때 처음으로 씨앗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어요.

무엇보다 농사를 짓는 데 씨앗 값이 너무 많이 들었거든요. 당시 이곳저곳에 물어가며 종자에 대해 알아보니 할머니들이 그러시더라고요. 옛날에는 씨를 파는 곳도 없었고, 씨가 없거나 부족하면 주변 이웃들에게 얻어 썼다고요. 그게 ‘토종 씨앗’이었던 거죠. 그즈음에, 국립농업유전자원센터에서 근무하셨던 박사님 한 분을 알게 되었어요. 그 만남이 계기가 되어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고, ‘우리가 토종 씨앗 수집을 해보자’ 하며 토종씨드림 활동을 시작했어요.

Q. 토종 씨앗이 일반 씨앗과 다른 점이 ‘씨를 받아서 쓸 수 있는가, 없는가’ 그 차이인가요?

‘토종 씨앗’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우리 땅에서 자라온 씨앗을 말해요. 토종 씨앗은 받아서 파종하면 발아가 되고 성질이 크게 변하지 않아요. 세대를 거듭하면서 그 땅의 기후와 환경에 적응한 씨앗이거든요. ‘지속가능한’ 씨앗인 거죠. 그뿐만 아니라 토종 씨앗은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도 일반 씨앗과 달라요. 아마 젊은 분들이 아는 콩은 흰콩, 검은콩, 완두콩 등 몇 종류가 되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토종 씨앗을 연구하니 콩만 해도 수천 종이 있더군요. 같은 콩도 지역과 농가에 따라 맛이 다릅니다. 이런 작물의 다양성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다양해야 지속가능하니까요. 가령, 가뭄이 닥쳐도 작물의 종류가 다양하면 어떤 건 망해도 어떤 건 살아남을 수 있어요. 꼭 나의 세대가 아니더라도 다음 세대를 위해 이 다양성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토종 씨앗을 설명할 때 ‘다양성’과 ‘지속성’ 이 두 가지를 주로 언급합니다.

1. 국내 토종 오이인 ‘조선오이’는 통통하고 길쭉하게 생겼다. 2. 은은가에서 열린 토종 학교. 작물 및 토양에 관한 이론 수업부터 밭 만들기 실습수업까지 알차게 진행된다. (사진제공 변현단)
1. 국내 토종 오이인 ‘조선오이’는 통통하고 길쭉하게 생겼다. 2. 은은가에서 열린 토종 학교. 작물 및 토양에 관한 이론 수업부터 밭 만들기 실습수업까지 알차게 진행된다. (사진제공 변현단)

Q. 지금까지 수집한 ‘토종 씨앗’이 얼마나 되나요?

1만 점 정도 모았어요. 정말 많지요? 비슷한 것도 꽤 있지만 농가마다 지역마다 토양마다 미미한 차이가 있어요. 대부분 시골 노인분들에게 얻은 씨앗이에요. 특히 할머님들요. 옛날의 맛과 향을 못 잊어서, 당신이 먹기 위해 토종 작물을 재배하는 어르신들이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씨앗을 조금씩 받았어요. 몇 알을 받는 거죠. 그래서 그걸 밭에 심고, 씨앗을 받아 토종 씨앗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나누기 시작한 거예요. 지금도 시간이 날 때마다 씨앗을 수집하기 위해 회원분들과 함께 전국을 다녀요.

Q. 씨앗을 1만 점이나 모으려면 함께하시는 분들이 많아야겠네요.

네, 도움 주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전국적으로 약 1만 5천 명이 토종씨드림 활동을 함께하고 있어요. 집중적으로 활동하시는 분들은 몇백 명입니다. 활동 과정을 먼저 간략히 설명해볼게요. 저희가 씨앗을 수집하면, 어느 지역에서 온 어떤 씨앗인지 분류해 ‘시드볼트’라는 영구보존시설에 먼저 보냅니다. 그리고 남은 씨앗을 심어서 작물의 수확량, 크기, 맛 등 특성을 조사하고 씨를 받아서 사람들과 나눕니다. 이 일은 이곳 ‘은은가’*에서 하고 있지요. 저뿐만 아니라 전국의 많은 분이 동참하고 계세요. 함께 심고 키우고 연구하면서 폭넓은 정보를 전하고 있습니다. (*은은가: 전라남도 곡성에 위치한 변현단 대표 농가의 이름이다. )

또한, 씨앗은 땅에 심길 때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거잖아요. 이를 위해 토종 씨앗과 농산물이 많이 알려지는 것이 중요해요. 종종 양평군처럼 지자체에서 토종 작물을 확산시켜보고 싶다고 제안을 해주시기도 해요. 또 개인적으로 토종 작물로 농사를 지어보고 싶다는 분들도 연락을 주시고요. 그럴 땐 제가 발 벗고 나서서 1년 농사 계획을 의논하고, 이를 어떻게 홍보할 것인지, 어떤 음식으로 먹을 수 있는지 등을 함께 고민합니다.

최근 친환경 농산물 소비가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인데요, 전체 농산물 소비 중 친환경 농산물 소비율이 10% 정도라고 해요. 그중 토종 농산물 소비율이 자급自給 포함해서 3%가 될 수 있다면 무척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토종 씨앗이 사라지지 않고 지속가능해질 테니까요.

지역 농가를 방문해 토종 종자 재배, 판매 및 활용법을 공유한다. 4. 맛도 모양도 다양한 토종 감자들. (사진제공 변현단)
지역 농가를 방문해 토종 종자 재배, 판매 및 활용법을 공유한다. 4. 맛도 모양도 다양한 토종 감자들. (사진제공 변현단)

Q. 토종 씨앗의 가치를 알아도,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데요. 대표님께서 토종 씨앗을 이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솔직히 저는 농사짓는 데 씨앗 값이 너무 많이 들어서, 경제적인 이유로 토종 씨앗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토종 씨앗을 수집하고, 연구할수록 경제적 가치 그 이상의 것들을 발견한 거예요. 우리는 씨앗을 먹고 살아가잖아요. 그 음식이 우리의 문화가 되고, 삶이 되고요. 그래서 ‘씨앗 하나가 없어진다는 것’ 혹은 ‘씨앗 하나가 계속 지속된다는 것’은 그 이상의 의미인 것이죠.

또한 ‘씨앗’은 원래 자연의 것이잖아요.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다음 세대의 씨앗이 나오고… 그 모든 것이 씨앗 안에 들어있어요. 그것이 실현되기까지 하늘의 도움이 필요하고, 약간의 노동이 들어갈 뿐이에요. 사실 그 권리는 인간이 아닌 자연에게 있는 거죠. 그래서 토종 씨앗을 필요한 분들에게, 농부들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이 준 씨앗을 심으면, 키울 때 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아도 잘 자라고, 사람 몸에도 더 좋아요.

이렇게 하나, 둘 토종 씨앗의 가치를 느끼고 그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면서 이 일을 계속하게 된 것 같아요. 사람들이 종종 저한테 희생한다, 고생한다고 말하는데 사실 저는 좋아서 하는 일이에요. 이 일하며 사는 게 즐거워요(하하).

아주 작은 볍씨, 납작한 호박씨, 큰 강낭콩 씨앗 등 씨앗의 크기와 모양은 다양하다. (사진제공 변현단)
아주 작은 볍씨, 납작한 호박씨, 큰 강낭콩 씨앗 등 씨앗의 크기와 모양은 다양하다. (사진제공 변현단)

Q. 어떤 즐거움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어요. ‘농부는 그냥 농부가 아니다.’ 흙에 씨앗을 심고 자라나는 걸 보면 그 속에 철학도 있고 과학도 있고, 지혜도 있어요. 저희가 일반적으로 먹는 오이랑 호박을 떠올려보세요. 대부분 싱싱하고 아삭한 젊은 오이랑 호박일 거예요. 늙기 전에 얼른 따서 팔아야 하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 토종 작물인 ‘조선오이’ ‘조선호박’은 늙도록 두면서 먹는 것들이에요. 늙을수록 영양도 많고 맛나요. 자연은 ‘늙음’까지도 지혜롭게 이용을 하는 거죠.

이번에는 콩을 이야기해볼게요. 콩을 하나 심으면 약 200개의 콩을 얻어요. 그런데 신기한 건, 검은색 콩을 심어도 그 안에 검정콩만 있는 게 아니라, 파란 콩도 있고 밤색 콩도 있고 굉장히 다양한 색이 나와요. 또 같은 콩을 심어도 토양이나 기후에 따라서 색과 모양이 바뀝니다. 그런 걸 보다 보면 이게 살아있는 생물학이고 과학이다 싶어요. 굉장히 흥미롭다니까요.

무엇보다, 한 생명의 생애를 지켜보는 것이 참 즐겁고 멋진 일이에요. 씨앗이 심기고 자라서 열매를 맺고 씨앗을 남기고 죽고, 그다음 세대가 다시 태어나 자라는 것을 보는데 그 과정이 무척 신비로워요. 자식의 일생, 손주, 증손주의 일생까지도 보니까요. 그래서 저희끼리는 종종 “이 가지는 몇 대손인가?” 하며 장난도 칩니다. 아무튼, 전 엄청난 자식들을 키우는 셈이에요.

마지막 질문으로 그에게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물었다. 그러자 그는 눈을 반짝이며 “씨앗 잡지, 씨앗 노래, 미술, 건축, 어린이 교육 등 씨앗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다.”라며 혼자 다 할 수 없으니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청년들이나 씨앗에 관심이 있는 분이 있다면 씨앗과 관련한 일을 함께하면 좋겠다고 언제든 환영이라고 말했다.

토종씨드림 대표이자 여덟 권의 책을 낸 작가, 대학에서 씨앗에 대해 가르치는 교육자로서 충분히 바쁘게 지내고 있음에도, 그의 마음에는 토종 씨앗을 알리기 위해 해야 할 일이, 하고 싶은 일들이 넘쳐났다.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마음을 쏟으며 살아가는 그의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그와 인터뷰를 마치며 그런 질문을 떠올렸다. ‘나에게는 소중하게 지키고 싶은 무엇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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