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OK WHAT I SEE

나는 애당초 남태평양에 위치한 ‘피지’로 해외봉사를 가고 싶었다. 아름답고, 청정한 그곳에선 코로나에도 자유롭게 해외봉사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비자가 나오지 않았고, 차선책으로 푸에르토리코라는 나라를 가기로 했다.

푸에르토리코라는 나라가 무척 생소했던 나는 인터넷에 하나씩 검색을 했다. 그때마다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은 거칠다.” “대체로 사람들이 차갑다.”라는 평이 많이 보였다. 그 글을 읽으며, ‘나는 낯도 많이 가리는데, 괜히 이곳으로 가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은 누구보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들이었다. 푸에르토리코 공항에서 낑낑대며 짐을 내리자, 어디선가 현지인이 다가와 나의 짐을 같이 찾아주고, 옮기는 걸 도와주었다. 그 이후로 나는 그들이 누구에게나 친절히 도움을 주고, 누구를 만나도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이런 성품을 가져서인지, 이곳에는 왕따 문제가 없다고 한다. 학교에서도 누구나 친구가 되고, 친하게 지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들 덕분에 낯을 가리던 내가 어느새 푸에르토리코 사람처럼 먼저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푸에르토리코 학생들과 스틸드럼을 치며 즐거운 시간를 보냈다.
푸에르토리코 학생들과 스틸드럼을 치며 즐거운 시간를 보냈다.

이곳에서 가장 놀랐던 일을 꼽으라면, 푸에르토리코와 대한민국이 한국전쟁으로 연결된 나라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이다. 71년 전, 6만 1천 명의 푸에르토리코 용사는 한국전쟁에 참전했고,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싸우셨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한국’을 많이 알고 있어서 의아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유가 자신의 가족, 친척들이 젊음을 바쳐 지킨 나라다 보니, 알고 있는 것이 당연했다.

푸에르토리코에 오지 않았다면 몰랐을 역사적 사실을 배우면서, 그분들의 희생을 마음에 새기고 감사를 표현할 수 있어서 기뻤다. 시간이 흘러도 이 시간을 잊지 않고,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한 순간이었다.

글 이로데 (푸에르토리코 해외봉사 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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