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20세기 들어 빠르게 발전한 산업 그리고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어느 나라보다 앞서는 세계 최강국이다. 그래서 미국인들의 삶은 굉장히 부유하고 풍요로울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선진국인 미국에서 봉사할 일이 있을까?’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는데 의외로 프로그램이 많고 다양했다. 봉사를 하는 동안 행복했다는 선배 단원들의 마음을 나도 똑같이 느껴보고 싶어서 미국으로 해외봉사를 지원했다.

고층빌딩이 빼곡히 솟아 있는 뉴욕 맨해튼의 전경, 눈부시게 화려한 라스베이거스! 미국에 가서 보니 ‘이래서 미국이라고 하는구나!’ 하며 부유한 나라인 것이 실감 났다. 하지만 정작 살고 있는 사람들의 개개인의 삶은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 집을 사면서 진 빚이 있었고, 광장이나 역 주변, 찻길에서도 구걸하는 홈리스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코리안 클래스를 홍보하다가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다.
코리안 클래스를 홍보하다가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다.

코로나가 줄어들지 않고 있을 때, 집에만 있어 답답할 미국인들을 위해 우리는 온라인 코리안 클래스를 시작했다. 참가자들이 한글, 댄스, 전통 음식을 적극적으로 배우며 너무 즐거워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댄스와 태권도교실도 했는데, 온종일 집에 있어 온몸이 찌뿌듯했을 아이들이 신나게 동작을 따라했다. 시간마다 나를 반겨주고, 귀기울여 이야기를 들어주고, 열심히 배우는 코리안 클래스 참가자들. 열린 마음으로 잘 따라주는 그들이 고마웠다.

거리에 울리는 캐럴이 마음을 설레게 하는 12월이 되었다. 우리는 엘파소에 가서 아기 예수의 탄생과 가족의 따뜻한 사랑을 뮤지컬과 오케스트라로 공연하는 ‘크리스마스 칸타타’를 하기로 했다. 초대장 5만 장을 만들어 일주일 동안 집집마다 다니며 공연 소식을 전했다. 상점들도 방문해서 홍보를 했는데, 의외로 상점 주인들이 부족한 내 영어로 하는 설명을 들어주려고 노력했다. “찾아와주셔서 고마워요. 몇 해 전에도 칸타타를 봤는데 감동스러웠어요. 이번에도 당연히 보러 가겠습니다!” 하며 기꺼이 후원을 해주고, 간식이나 음식을 주시는 분들도 있었다.

한번은 타코 가게에서 간식을 후원해주기로 했는데 행사 스케줄이 변동되어 약속 날짜보다 더 일찍 받아야 했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타코 가게에 가서 사정을 말씀드렸다. 날짜를 당겨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사장님은 아무 문제 없다는 듯이, 묵묵히 타코를 만들어주고 타코 속 재료까지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넓은 땅만큼 미국 사람들의 넓은 마음에 크게 감탄했고 감사했다.

어느덧 칸타타가 열리는 날이 왔다. 행사 당일 몰려온 관객 수는 무려 6천 명. 기적을 보는 것 같았다. 모든 관객들이 평온한 음악에 빠져들었고, 노래 가사, 뮤지컬 대사, 강연 한 마디 한 마디에 경청했다. 마지막으로 미국 국가 ‘God Bless America’가 끝났을 땐, 기립박수가 끊이지 않았다. 공연장은 감격한 관객들이 환호하는 소리로 가득했다.

코로나로 오랜 시간 근심했던 사람들이 아름다운 음악에 젖어 모든 걱정과 슬픔을 잊고 행복해하는 모습에 내 마음마저 따뜻해졌다. 가슴 벅찬 순간이었다.

자메이카에서 어린이 캠프를 한 뒤, 기념 촬영을 했다.
자메이카에서 어린이 캠프를 한 뒤, 기념 촬영을 했다.

미국 사람들은 키도 크고, 콧대도 높아 성품이 차가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 선입견이 실제 미국인들을 만나보면서 여지없이 허물어졌다. 그들은 참 밝고 자유롭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인사를 건네고, 지나가다가 눈만 마주쳐도 웃으면서 눈인사를 한다. 처음 보는 사람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옆에 앉은 사람에게 말을 걸지 않는 냉랭한 한국에서 살던 나로서는 처음엔 낯설었다. 하지만 매 순간 나를 반겨주고, 따뜻하게 다가와 이야기를 들어주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준 그들을 이젠 사랑한다. 한국에 돌아온 지금 그들이 많이 그립다. 언젠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오래오래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을 만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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