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_ 졸업

4년 동안 다닌 대학을 이제 곧 졸업한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고 자란 고향을 벗어나본 적이 없던 나였다. 그래서 대학은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 같았다. 그런데 어느새 그 미지의 세계에서 시간을 다 보내고 졸업이라니…, 새삼스럽다. 대학을 졸업한다는 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장했다는 게 뿌듯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일을 하는 첫걸음을 내디뎌야 하기에 겁이 나기도 한다.

‘이제 시작될 나의 미래는 또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하며, 대학 시절을 돌아본다.

게임이 전부였던 중학생

중학생 때까지 나는 학교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을 만큼 게임에 중독되어 있었다. 온종일 게임 생각만 하다 보니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것도 어렵고, 공부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특히 부모님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 부모님이 강제로 컴퓨터 게임을 못 하게 하는 날이면 큰 소리가 오갔다. 그럴 때마다 ‘절대 하지 않을 거야.’ 다짐했지만 몇 시간 후 나는 어김없이 게임을 하며 날을 새웠다.

하루는 거울 속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았다. ‘부모님께서 그렇게 싫어하시는데 나는 왜 계속 게임만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어 게임을 멈추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멈추지 못했다. 그런 내가 싫어서 눈물이 쏟아지는데도 내 손은 계속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내가 게임을 좋아해서 하는 줄 알았다가 하고 싶지 않은데도 멈추지 못하는 걸 경험하며, 게임을 하는 게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부모님에게 말씀드렸고, 오랜 상의 끝에 언제든지 게임을 할 수 있는 환경에서 벗어나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기숙형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나에게도 꿈이 생기다

기숙형 학교의 모든 것이 내게 생소했다. 중학교 시절까지 나는 친구들과 게임 이야기를 하며 친해졌고, 만나면 항상 PC방에 갔다. 하지만 이 곳에서는 쉬는 시간마다 각기 좋아하는 운동을 하며 친구를 사귀었다. 나 역시, 평상시에 자주 하지 않았던 운동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어울렸다. 하지만 워낙 체력이 안좋다보니, 선생님께서 아침마다 함께 등산을 해주시며 나의 체력을 길러주셨다. 그렇게 체력이 좋아지고, 친구들과 어울려 운동을 하다 보니 게임이 아닌 다른 데에서 즐거움을 느꼈다. 그리곤 생소하기만 했던 학교생활에도 어느새 적응해 있었다.

하루는 엄마와 통화하던 중 엄마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엄마는 요즘이 가장 행복해.”

“왜?”

“네가 전화할 때마다 너무 행복하다고 말하니까. 그곳에서 지내는 게 좋아?”

엄마의 갑작스런 질문에 ‘내가 그랬나?’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나는 이곳에서 누구보다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게임 생각을 하지 않았고, 친구들과 운동도 하고, 처음으로 공부도 하며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있었다. 그 사실을 발견하고 나니 선생님들께 너무 감사했다. 어느새 나를 바꿔놓았으니 말이다. 나를 지켜봐주시고, 공감해주시고, 이끌어주신 선생님들을 생각하니 존경스럽고, 나도 선생님이 되어 나 같은 학생들을 이끌며 살고 싶어졌다.

나는 공부에는 별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사극’을 좋아해서인지 역사를 알아갈 때에는 흥미로웠다. 유일하게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과목이 ‘역사’여서 역사교육과에 진학해 교사가 되기로 했다. 꿈이 생긴 이후로 열심히 공부했고, 역사교육과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 과제를 이유로 동기들과 많은 역사유적지를 다니며 즐겁게 역사를 배웠다.
대학 시절, 과제를 이유로 동기들과 많은 역사유적지를 다니며 즐겁게 역사를 배웠다.

새로운 친구 그리고 배움

대구에 처음 도착했을 때,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이라 걱정이 많았다.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우선 친구를 사귀는 것이었다. 그래서 첫 수업 때 동기들이 하는 자기소개를 유심히 듣고, 얼굴을 외우려고 노력했다.

수업을 마치고는 자판기 앞에 모여 커피를 마시고 있는 친구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그게 계기가 되어 나를 포함해 우리 4명은 대학 시절을 함께 보내는 친구가 됐다. 대구에서 자란 이 친구들은 의리가 얼마나 끈끈한지, 혼자 타지에서 온 나를 많이 챙겨주었다. 학교 주변에 있는 맛집 투어를 다니고, 시험 기간이면 도서관에서 함께 밤도 새웠다. 과제도 함께 하고, 방학 때면 봉사활동도 하면서 꿈을 키워나갔다. 그 친구들이 있어서 나의 대학 생활은 크고 작은 즐거움들과 따뜻한 추억들로 채워졌다.

대학 생활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은 ‘긍정의 힘’이란 강연을 들은 것이다. ‘부정적인 사고가 아닌 긍정적인 사고를 할 때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강연의 핵심 내용이었다. 강연을 들은 뒤 ‘대학생 때 아니면 언제 해볼 수 있을까?’ 싶은 일들에 도전했다. 학교에서 진행한 교내 대회뿐 아니라 교외 공모전에 지원하고, 평소에 미루던 한자 자격증에도 도전했다. 처음엔 학과 공부도 소홀히 할 수 없어서 ‘내가 무리했나?’ 싶었지만, 긍정의 힘을 실제로 느껴보고 싶었기에 끊임없이 도전했다. 그 결과 모든 대회에서 입상할 수 있었고, 몇몇 대회에서는 수상의 영광도 누렸다. 한자 자격증도 취득했다.

대학을 다니며 얻은 가장 큰 자산이 뭐냐고 묻는다면, 친구와 새로운 배움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친구들과 함께 했던 시간이 정말 행복했고, 조금 부담스럽지만 계속 도전하는 즐거움을 맛보며 살았으니 말이다.

내 모습을 들여다 본 해외봉사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나는 터키로 해외봉사를 떠났다. 고등학생 시절에 다녀온 터키 여행이 인상 깊었기에, 이번에는 봉사하며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생각에 들떠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같이 봉사하러 간 봉사단원 누나와 다투며 서로 감정이 상하는 일들이 잦았다. 누나는 나와 다툴 때마다 한국으로 돌아가려 했고, 나는 억울한 마음에 누나에게 마음의 날을 더 세웠다. 그걸 지켜보던 지부장님이 내게 “너는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지 모르는 것 같다. 봉사를 하며 그걸 좀 배웠으면 좋겠다.”라고 하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무전여행을 떠났고, 그 여행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내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걸 경험했다. 버스에서 만난 친구는 내가 묵을 곳을 대신 알아봐주었고, 한 아주머니는 한국 요리를 찾아 ‘닭볶음탕’을 만들어주셨다. 1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내 머릿속에는 걱정이 가득했지만, 많은 걱정들을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덕분에 무사히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그 여행으로,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았는지 돌아볼 수 있었다. 내가 지금껏 누린 많은 것들이 누군가의 희생이나 도움으로 생긴 것들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나는 자주 다투던 누나에게 사과했고, 삶의 태도를 바꿔나갔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돌아보고, 고마움을 표현하면서 말이다.

다시 시작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에 교사로 채용된 나는 2월부터 그곳에서 지낸다. 꿈꾸던 일을 시작한다는 게 아직도 얼떨떨하지만, 나처럼 게임 중독에 빠진 학생이나 갈피를 잡지 못하는 학생들을 이끌어줄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렌다. 물론 초짜 교사라 많은 부분을 배워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학생은 서투른 내게 상처를 받기도 하겠지만, 그때마다 내 모습을 돌아보며 더 성장하는 교사가 되길 꿈꾼다.

글 이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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