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_ 졸업

2021년 크리스마스 이브, 우리 학교는 다른 고등학교보다 조금 이른 졸업식을 했다. 그날 울고 웃으며 보냈던 중·고등학교 6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초등학교 졸업 후 나는 음악 중학교에 진학했다. 내가 음악을 좋아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평소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나를 보며 부모님이 ‘음악을 하면 좀 차분해지지 않을까’ 기대하셨기 때문이다. 사실 난 별 생각이 없었다. 다만 음악에 흥미가 있었기에 수업 시간이 지루하진 않았다.

전공으로 트럼펫을 배웠는데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얼마 후 그곳에서도 크고 작은 소동을 피우기 시작했고, 결국 일반 중학교로 전학을 가야 했다. 그 후 방황은 더 심해졌다. 지금 돌아보면, 초등학교 저학년 때 왕따를 당한 뒤 ‘사람들에게 강하게 보여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부모님은 나 때문에 학교에 자주 불려오셨다. 엄마는 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또 무슨 사고를 친 걸까?’ 하며 가슴이 철렁하셨다고 한다. 정말 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다. 그러다 3학년 때 꽤 심각한 일에 휘말렸고, 그제야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지? 좀 다르게 살고 싶다. 행복해지고 싶다.’ 그런 마음이 들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시작한 음악

그즈음, 우연히 음악 중학교 선생님을 만났다. 문제만 일으켰던 나를 반기지 않을 거라는 내 예상과 달리 선생님은 나를 무척 반가워하셨고, 이따금 전화를 주셨다. 선생님에게 내 삶의 고민을 이야기하면 감사하게도 늘 경청해주셨고, 자신의 일처럼 생각해주셨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음악을 다시 해보면 어떻겠냐고 진지하게 권하셨다. 소질이 있으니 잘할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 처음엔 적잖이 놀랐다. 다시 음악을 할 생각은 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한편에서 이런 생각이 올라왔다. ‘늘 내가 원하는 대로만 살았는데 이번엔 다른 사람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면 어떨까?’ 곰곰이 생각하면서, 어두운 지난 날들에도 내가 밝고 단순했던 순간은 좋은 음악을 듣거나 피아노를 치거나 노래를 부를 때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친구들보다 많이 늦은 출발이고, 규칙을 지켜야 하는 기숙사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자신은 없었지만, 행복해지고 싶어서, 새로운 길을 가보고 싶어서 음악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내게 일어난 꿈같은 일들

음악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나는 다른 세계로 넘어온 것마냥 무척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트럼펫을 다시 연주하고, 때론 친구들과 함께 합창을 하고 있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선생님들은 내게 “태준아, 트럼펫 소리가 정말 좋다. 좀 더디더라도 계속 해보자. 최고의 트럼페터가 될 수 있어!” 하며 격려해주셨다. 그런데 연습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생각지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치아 부정교합 때문에 한두 시간 연습하고 나면 잇몸에 상처가 생기고 피가 났다. 아파서 연습을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었다. 병원에도 가보았지만 교정하기 쉽지 않다는 진단을 받았다.

오랜 시간 연습하며 나날이 실력이 느는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며 나는 다시 실망했다. ‘역시 나는 안 되나 보다’라는 생각에 연습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때 선생님들이 늘 “아니야, 태준아. 포기하지 마.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나는 네가 최고의 연주자가 될 수 있다고 믿어. 같이 고민해보자.”라고 하셨다. 그 말에 용기를 얻어 다시 도전했다. 이후에도 내가 안 된다고 포기하려 할 때마다 선생님들은 내게 늘 같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신기하게도, 선생님들과 함께 계속 연습하고 고민하면서 아픔을 덜 느끼며 연습할 수 있는 연주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뒤늦게 깨달은 재미있는 사실은, 부정교합 덕분에 내 트럼펫 소리가 오히려 더 풍부하게 난다는 것이다. 그 후 내게 꿈같은 일들이 일어났다. 고등학교 3학년 막바지에 학교 정기 연주회 오디션에 합격해 난생처음 솔리스트로 무대에 서게 된 것이다. 얼마 후에는 대전 예술의전당 청소년 음악회 오디션에 합격했고, 큰 무대에서 친구들과 함께 트럼펫을 연주할 수 있었다. 부모님과 선생님 모두 무척 기뻐하셨고, 나도 믿기지 않을 만큼 가슴 벅차게 행복한 순간이었다.

지난해 12월, 새소리음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3년간 동고동락했던 친구들과 함께. 오른쪽 첫 번째가 필자.
지난해 12월, 새소리음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3년간 동고동락했던 친구들과 함께. 오른쪽 첫 번째가 필자.

더 넓은 세계로

고등학교 졸업을 며칠 앞두고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나를 정말 사랑했구나.’ ‘학교가 정말 나를 위하고 생각해줬구나.’ 문제투성이었던 나를 포기하지 않고 내게 최고의 연주자가 될 거라는 꿈을 심어주셨던 선생님, 늘 우리를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고민하시던 선생님들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그리고 돌아보니, 초등학생 때에도 중학생 때에도 언제나 나를 좋은 길로 이끌어주려고 했던 분들이 계셨음을 깨달았다. 나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으로 느끼는 분들이 계셨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그 영향으로, 나도 모르게 내가 그분들과 닮은 꿈을 꾸게 되었는지 모른다. 나는 지금 ‘음악으로 누군가를 위로하고, 행복을 전해줄 수 있는 최고의 트럼페터’를 꿈꾼다. 내 트럼펫 연주를 통해 누군가 웃을 수 있고 즐거워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면 어디든지 달려가 연주할 수 있는 트럼페터가 되고 싶다. 이제 나는 지난날의 소중한 추억들을 가슴에 품고 곧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정든 학교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무척 섭섭하지만, 더 넓은 세계로 가기 위해 나는 고등학교 졸업을 즐겁게 맞이한다.

글 김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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