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지도사 심문자

책과사회연구소가 발표한 ‘코로나19와 읽기 생활 변화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 영상 플랫폼 이용 시간뿐 아니라 읽기 관련 시간도 크게 증가했다고 한다. 책을 읽거나, 온라인 독서 모임 등에 대한 관심도가 증가한 것이다. 독서지도사 및 독서논술교사인 심문자 씨 또한 코로나 이후 더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왜 독서 모임을 찾을까? 그곳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궁금증을 안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독서 토론 활동이 코로나 이후 더욱 활발해졌다고요.

그렇습니다. 실제로 지난해가 제일 바쁜 해였다고 느낄 만큼 다양한 독서 모임이 증가했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과 독서 논술 수업을 하는 것 외에는 모두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는데, 그럼에도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습니다. 특히 서울과기대 사회교육개발원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책읽기를 통한 마음의 면역력 높이기’ 독서 교육이나 방정환 교육센터에서 진행한 부모 독서 교육 모두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 덕분에 최근엔 ‘독서지도사 자격증 취득 과정’ 수업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실, 바쁘게 살다보면 무언가를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없잖아요. 거기에다 코로나 이후 누군가를 만나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도 현저히 줄어들었고요. 물론 자기 계발을 위해 독서 토론을 시작하는 분들도 있지만, 최근에는 그런 이유보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싶어서 혹은 인생에 대한 깊은 고민을 나누고 싶어서 오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저 또한 그런 이유로 독서 토론을 시작한 것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토론을 위한 토론이 아닌, 인생의 문제와 갈등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될까?’ ‘어떻게 하면 이곳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눌 수 있을까?’ 하며 더 좋은 토론 방식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토론을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나요?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충분히 알아야 의견도 생기고 질문도 할 수 있기에 ‘작가, 작품 줄거리, 시대 배경’을 이해하는 과정이 선행됩니다. 이를 바탕으로 느낀 점, 자신의 삶과 닮은 점, 의문점 등을 자유롭게 발표하고요. 그러다 토론 주제로 적절한 내용을 하나 선정해 그것을 중심으로 깊이 있게 혹은 확장시키는 방향으로 발표를 이어나갑니다. 주로 작품 속 인물들 삶의 모습을 중심적으로 읽고 이야기합니다. 책 속 주인공의 모습이 결국 우리 삶 이야기니까요.

그래서 책이라는 거울에 비쳐진 자신의 모습을 솔직히 털어놓습니다. 우리 인생을 이야기하는 장이 되는 거죠. 이야기하면서 ‘소설 속 인물이 왜 그랬을까?’ ‘그의 선택이 정말 행복으로 가는 길이었을까?’ ‘다른 결말은 없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요. 그렇게 같이 이야기해가다 보면, 혼자 읽고 생각할 때와는 전혀 다르게 각기 자신이 알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해요. 그러는 동안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깨지고, 사고가 깊어지고 넓어지면서 마음이 새로워지고요.

최근에는 어떤 책으로 토론을 했나요?

며칠 전에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을 읽고 토론했어요. 이 소설은 평범한 30대 여성이 가부장적 사회를 살아가며 느끼는 갈등과 상처를 다룬 작품이에요. 책을 읽고 한 분이 결혼 이후 겪었던 아픔과 상처에 대해 발표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서로 상처를 꺼내놓으며, 그 상처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이야기를 나눴지요. 그러다 한 분이 ‘누구나 상처받지 않고 살 수는 없는데 상처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상처 대처법에 관해 ‘내게서 올라오는 일부 생각은 감정에 치우친 잘못된 생각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혼자 고민하지 말고 도움을 청해야 한다’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죠.

그날 토론의 마무리는 이랬어요. “우리는 살면서 원치 않는 상처를 받고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은 슬픔과 절망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그런 아픔을 통해 다른 사람과 연결되면서 자신만을 고집하는 좁은 세계에서 벗어나 삶이 새로워지는 기회가 된다. 그런 과정을 거쳐 상처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타인을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다.” 토론을 처음 시작했을 때와 많이 달라지지 않았나요? 혼자가 아니라 함께 토론하다 보면 사고가 더 깊고 객관적으로 진행되고, 그렇게 하면서 우리가 행복해지는 걸 느껴요. 그래서 저는 사고가 깊어질수록 행복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해요.

심문자 씨는 4년째 예루살렘라디오에서 '북적북적 북클럽' 코너 진행을 맡고 있다. 매주 국내에서 활동 중인 독서 클럽 회원들을 초대해 한 권의 책을 소개하고, 감상을 나눈다. 라디오 부스로 향할 때는 무척 긴장되지만, 책 이야기를 시작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즐겁게 이야기를 주고받는다고 한다.
심문자 씨는 4년째 예루살렘라디오에서 '북적북적 북클럽' 코너 진행을 맡고 있다. 매주 국내에서 활동 중인 독서 클럽 회원들을 초대해 한 권의 책을 소개하고, 감상을 나눈다. 라디오 부스로 향할 때는 무척 긴장되지만, 책 이야기를 시작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즐겁게 이야기를 주고받는다고 한다.

사고가 깊어지면 행복에 가까워진다고요?

예. 공부하거나 일할 때에도 ‘이 일의 핵심이 무엇인가? 이게 정말 그럴까? 이것이 최선인가? 다른 방법은 없을까?’ 이렇게 사고하며 일하는 사람은 그냥 일하는 사람과 다르잖아요. 행복해지는 데에도 사고가 필요해요. 행복하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올바르게 아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자신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행복을 바르게 찾아갈 수 있겠어요? 그런데 그것은 그냥 알아지는 것이 아니거든요. 한번은 어떤 분이 토론 수업에 처음 들어온 날, 남편이 너무 미워서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이혼하고 싶다고 했어요. 그런데 독서 토론을 꾸준히 함께 하면서 처음으로 ‘그렇다면 나는 남편에게 좋은 아내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해요. “제가 남편보다 훨씬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저도 이기적인 면들이 있는데 모든 문제를 남편 탓으로 돌렸죠. 그런 점들을 생각하다 보니, 그런 저를 참아준 남편이 고맙기도 했어요.” 지금은 아이가 대학에 입학했지만 두 분이 함께 살고 있지요(웃음). 조금 다른 결말을 썼죠. 내가 옳지만은 않다는 것, 내가 부족하기에 상대의 부족함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 나에게 모자람이 있기에 도움 받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 등, 자기 자신을 아는 만큼 행복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해요.

듣다 보니, 누구보다 선생님이 독서 토론을 오래했으니 그만큼 많이 사고하고 많이 행복해졌을 것 같습니다.

정말 그래요. 매일 토론할 때마다 더 행복해져요(하하). 책을 펼쳐서 읽고 이야기하다 보면, 지난 시절 제가 정말 지독하게 고민했던 부분들이 생각나요. 저는 오랫동안 혼자 책을 읽으며 많은 고민을 했거든요. 저는 은행이 좋은 직장이라고 해서 은행원이 되었다가,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삶이 싫어서 대학원에 들어가 현대문학을 공부했어요. 그 후 결혼도 하고, 학원 사업을 하며 정신없이 일하며 돈을 벌기도 했지요. 아이들 공부시킨다고 극성맞은 엄마도 되어봤고요. 늘 ‘내가 이렇게 하면 행복해질지 몰라’라는 기대와 함께 무엇인가를 시작했지만, 처음에는 좋다가 나중에는 공허함을 느꼈어요. 특히 일하면서 돈 때문에 서로 경쟁하고 속이는 인간관계에서 상처도 많이 받았지요.

그 수많은 시간들 속에서 틈틈이 많은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했어요. 나름 정말 열심히 했죠. 그런데 혼자 생각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어요.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지는 것 같았죠. 그게 다라고 생각하니 절망뿐이라 우울증도 오려고 했어요. 나이가 좀 들어서야 ‘나 혼자 생각해서 될 일이 아니구나’ 하며 두 손 두 발 들었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토론하고 생각하는 일을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크고 작은 변화들이 시작되었어요.

어떤 변화가 시작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예전에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이라는 소설을 굉장히 인상 깊게 읽었어요. 특히, 주인공이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려고 애쓰다가 자신의 노력으로는 더 이상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단념하면서 ‘이제 은혜의 세계로 돌아가겠다’고 하는데, 그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지만 굉장히 흥미롭게 느껴졌거든요. 그러곤 잊고 지냈는데, 어느 날 그 책으로 토론하다가 애매했던 부분이 정리되었어요.

사람들은 대부분 ‘얼마나 많이 가졌고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행복의 크기가 정해진다’는 삶의 규칙을 마음에 품고 살아요. 그런데 그런 규칙에서 벗어나서 보면, 사실 더 크고 가치 있는 것들은 값 없이 주어지더라고요. 비나 공기나 햇빛은 잘난 사람에게나 못난 사람에게나 똑같이 주어지잖아요. 우리에게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값 없이 주어지고 있는지 몰라요. ‘어쩌면 인생은 내가 노력해서 쟁취하는 게 핵심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것들을 감사히 누리며 사는 것이 핵심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이런 섭리가 성경에 더 깊이 담겨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돈‧지식‧좋은 인간관계 등이 행복의 조건이라면 제가 그 어떤 조건도 언제나 지켜낼 수 있다고 말할 수 없더라고요.

그러니 늘 조마조마하며 살아야 했지요. 그런데 바람이나 햇빛, 내가 쓰는 시간, 사랑 등 더 큰 것들이 제게 값 없이 주어지고 있었던 거죠. 그것이 저에게는 정말 놀라운 발견이자, 변화의 시작이었어요.

이외에도 앞에서 말씀드린 부인의 이야기처럼, 저도 독서 토론을 하면서 내가 가족들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되돌아볼 수 있었어요. 그동안 ‘이렇게 해야 한다’며 내가 내린 정답만 내밀었던 게 미안했어요. 토론을 하면 할수록 내가 모르는 게 많고, 내가 잘못 생각하는 것도 많다는 것을 알았어요. 한번은 아들에게 그 마음을 표현하자 아들이 “다시 태어나도 엄마 아들 할래요.”라고 답을 주는데 너무 행복했어요. 가족이 마음으로 가까워졌어요.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될 때 느끼는 행복이 커요. 그래서 활동 범위를 점점 넓혔는데, 어느새 10년이 넘도록 활동을 이어오고 있네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요?

이 일을 오래 하고 싶어요. 제가 진행자이긴 해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가 배우는 것이 정말 많거든요. 그리고 토론 전에 좀 울적한 일이 있더라도, 사람들과 자신의 삶을 꺼내놓고 한바탕 이야기하면 어느새 제 마음이 밝아지거든요(웃음). 앞에서 이야기했지만, 최근에 독서지도사 양성 수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수업 방식은 기존의 독서 토론 방식과 유사해요.

그걸 함께 반복하고 익히는 과정이 필요하니까요. 약 100명이 참석하는데, 모두 열정적으로 배워요. 그 이유가 궁금해서 한 분에게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셨어요. “제 나이가 60이 넘었어요. 몸이 약하니까 혼자 있을 때가 많고, 사람들을 만나도 할 말이 없었어요. 그런데 지인의 소개로 이 수업을 들으면서 제 마음이 푸근해졌어요. 내가 부족해도, 나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나 새로워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고요.

사람들에게 할 말이 정말 많아졌어요. 그래서 열심히 배워 독서지도사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과 토론하고 싶은 꿈이 생겼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뭉클했어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수업을 듣는 모든 분들이 독서 토론을 통해 함께 생각하고 배우면서 행복해지길 바라요. 그래서 정말 아낌없이 모든 걸 알려드리고 있고요. 아무튼 저는 이 일을 오래오래 하고 싶어요. 하면 할수록 제가 행복해지니까요.

인터뷰 날, 그에게 ‘독서와 토론이 사고력과 뗄 수 없는 것이어서 독서 토론 활동을 오래 해온 심문자 씨를 찾아왔다’고 하자, 그가 웃으며 “사고란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것이에요.”라고 했다. 처음에는 그 말이 의아했는데, 그와 대화를 나누며 그 짧은 문장 안에 그의 삶이, 그리고 독서 토론을 하며 만났던 많은 사람들의 삶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을 했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생각이 짧아서 상처나 슬픔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몰랐구나. 그래서 힘들었던 것이구나.’ 혹 상처로 인한 아픔에서 벗어날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면, 그가 말하는 행복으로 가는 사고법을 배워보면 어떨까.

취재 고은비 기자   사진 배효지 기자 장소협찬 독립서점 다정한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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