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 노영희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서 5년 연속 1스타를 차지한 한식당 ‘품 서울’. 예약제로 운영되는 ‘품 서울’은 매달 메뉴가 바뀐다. 신선한 제철 재료로 코스 요리를 만드는데, 원재료의 맛을 가장 잘 살릴 조리법을 찾기 위해 셰프 노영희 대표는 많은 생각을 하고 다양한 시도를 해본다. 손님들의 눈에 음식이 정갈하고 냄새로도 먹음직스러우며 입안에 닿는 맛은 섬세하고 건강한 기운이 느껴지도록 그는 따스한 마음을 담아 요리한다. 30년 넘게 식문화와 관련된 일을 하며, 한국의 맛을 알리고 있는 그를 만났다.

Q. 어떻게 요리를 시작하셨나요?

저는 잡지사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때 요리 파트를 담당했는데, 자연스럽게 ‘어떻게 하면 음식을 더 맛있어 보이게, 보기 좋게’ 잡지에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제가 대학생 때 꽃꽂이를 취미로 한 경험이 도움이 많이 됐지요. 그 방면으로 두각을 조금씩 나타내다 보니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기자 일을 접고 푸드 스타일리스트라는 생소하지만 새로운 길을 걸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푸드 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은 별로 인지도가 없었어요. 잡지사에서 같이 일했던 후배들과 촬영을 할 때 “선배가 요리를 직접 해보면 어때요? 더 좋을 거 같은데요?”라는 말을 종종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만들어놓은 요리를 보기 좋게 먹기 좋게 디스플레이하는 것을 넘어서 어느새 제가 요리까지 하고 있더라고요. 처음엔 외국 책들을 보며 따라하다가 1996년부터 한식을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했어요.

Q. 직접 요리를 하는 것과 푸드 스타일링과는 또 다를 텐데요. 한식당을 운영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요.

한식당을 열기 전에 주변 사람들을 불러서 밥을 많이 해먹였어요. 보통 한식당에 가면 음식들이 한꺼번에 밥상에 올라오잖아요. 그래서 상다리 부러지게 차렸다는 말도 하잖아요(웃음). 그렇게 먹다 보면 따뜻해야 맛있는 음식이 식어버리고, 차가워야 맛있는 음식은 때를 놓치기 십상이죠. 거기에다 손도 대지 않은 반찬들은 그대로 버려지고요. 저는 그게 아주 아깝더라고요. 음식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환경을 꼭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도 불합리하더라고요.

이런 문제를 어떻게 풀어볼까 생각해 보았어요. 큰 그릇에 담아 같이 먹는 것도 좋지만 음식물이 남는 것을 줄이고 과식을 막으려면 한 사람당 1인분씩 대접하는 것도 좋겠다 싶었어요. 오롯이 음식을 먹고 즐길 수 있도록요. 그리고 음식이 한꺼번에 동시에 나오는 게 아니라, 순서에 따라 내놓으니까 음식이 가장 맛있을 온도도 맞출 수 있고, 음식에 따라 색다른 그릇을 사용할 수 있어서 보는 맛도 더하더라고요. 이런 생각들을 정리해서 한식당을 열었습니다. 그게 벌써 13년 전이네요. 그때만 해도 한식을 코스로 먹는 게 생소했던 때라 많은 분들이 의아해하셨죠.

겨자소스를 더한 삼색밀전병말이. 그의 음식엔 많은 정성이 담겨 있어 정성껏 먹게 된다. 사진 권순철.
겨자소스를 더한 삼색밀전병말이. 그의 음식엔 많은 정성이 담겨 있어 정성껏 먹게 된다. 사진 권순철.

Q. 지금 들어도 우리의 전통 식문화에 변화를 준 생각입니다. 게다가 몇몇 대표 메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손님들에게 철에 맞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어서 13년 동안 매달 메뉴를 바꾸셨다고요.

우리가 지금 앉아 있는 이 스튜디오 이름이 ‘철든 부엌’입니다. ‘철들다’라는 뜻이 제철을 의미하기도 하거든요.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철이 안 들었다’고 표현할 때 나잇값을 제대로 못 한다는 뜻으로 사용하잖아요. 그것처럼 재료에도 다 제철이 있고, 제철이 됐을 때 맛과 향, 영양소가 가장 풍부해지는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은 제철 음식이라는 개념이 모호해지고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어느 계절에 꼭 먹어야 하는 음식들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저는 그걸 부각시키고 싶었습니다. 어느 때에 가든 상관없이 같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 말고, 산과 바다, 논과 밭에서 그 계절에만 나는 재료들로 ‘철을 느낄 수 있는’ 식당으로 자리 잡길 바랐습니다. 그랬기에 13년 동안 매달 메뉴를 바꿀 수 있었지요. 물론 그 가운데에는 시기마다 같은 메뉴도 있긴 합니다.

Q. 한 달이 생각보다 빨리 돌아옵니다. 매달 그렇게 하는 게 쉽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다가올 달을 미리 생각하고 준비하는 건,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를 보고 배웠습니다. 이제 곧 설이지요?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는 설 한 달 전부터 엿을 고고, 강정을 만들고, 가래떡도 미리 뽑아 꾸덕꾸덕하게 마르면 떡국을 썰어서 준비해 두셨습니다. 두부도 만드시고요. 설 전날이면 온 가족이 둥그렇게 모여 앉아 만두를 빚곤 했고요. 시간이 제일 많이 걸리는 것부터 하나하나 준비하다보면 설이 되었지요.

제가 7남매의 막내였어요. 어머니는 조부모님을 모시고 있어서 매일 기본적으로 11명이 먹을 끼니를 준비하셨습니다. 우리 어렸을 때에는 외식문화도 보편적이지 않았고 배달 음식이라고는 자장면 정도밖에 없었기에, 무조건 삼시 세끼를 집밥으로 해결해야 했으니, 아침 먹고 돌아서면 점심 준비를 해야 했지요. 어머니께서 미리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 가족은 아마 쫄쫄 굶었을 겁니다. 그런 삶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준비할 수 있었던 것 같네요.

Q. 정말 그랬던 때가 있었네요. 2월엔 어떤 음식이 생각나시나요?

2월이면 봄나물이죠. 양력 1월과 2월 사이에 설날이 있잖아요. 설이 왔다는 건 봄이 시작됐다는 겁니다. 제일 추웠던 때가 지나고 봄이 오면, 추위를 견디고 나온 봄나물이 향긋하니 맛이 좋습니다. 그리고 2월은 대게가 철입니다. 대게를 이용한 전채 요리를 준비해 식당을 찾아주신 손님들에게 대접하면 입맛 돋우기에 안성맞춤이지요.

Q. ‘품 서울’ 10주년을 맞아 요리 150여 가지가 담긴 책을 출간하셨고,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요리 방법을 전하고 계십니다.

요즘 유치원에 ‘장 담그기’라든지, ‘김치 담그기’라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요. 어린아이들이 어떤 형태로든 전통음식을 만들어본 경험이 있으면 된장찌개나 김치를 확실히 잘 먹는답니다. 예전처럼 김치를 담그거나 장을 만드는 문화들이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지만, 만들어본 경험이 음식을 대하는 태도를 만들지요.

사실 저 어렸을 때만 해도 중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가정 실습 시간이 있었어요. 그래서 모든 학생이 음식을 만들어본 적이 한 번쯤은 있었어요. 엄마를 도와 식사 준비도 해보고요. 요리라는 게 직접 경험해봐야 좋은 건지 아닌지도 알고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도 알 텐데, 요즘엔 경험하지 않으니까 도전할 생각조차 아예 안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매일 끼니를 정성스레 만들지는 못해도 주말에 한 번쯤이라도 음식을 해서 먹어보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유튜브를 시작했어요. 혼자 사는 사람들도 한번쯤은 도전해볼 수 있게 하려고요. 특히 혼자 사는데 김치 담가 먹는다는 게 좀 부담스럽잖아요? 그래서 무 하나로 깍두기를 담근다든지, 배추 두 포기로 김치 담그는 방법 등을 유튜브에 올렸습니다. 생각보다 쉽고, 재미있게 할 수 있어요.

이렇게 한식 레시피를 하나씩 알려드리니까 외국에 계신 분들이 많이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외국에서 오래 살고 계신 한국 분들은 한국의 맛이 그립기도 하고, 해보고 싶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기도 하니까요. 또 어떤 분들은 ‘이거 그냥 봐도 되는 거냐’고 묻기도 하세요. 다른 사람들은 비싼 돈을 내고 배우는 거니까요. 그런데 저는 더 많은 사람이 더 좋고 맛있는 음식을 해서 먹으면 좋겠어요. 한국에 살든 외국에 살든 먹고 싶을 때 언제든지 따라 해먹을 수 있게요. 그러다 보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즐거움을 느끼시지 않을까요?

Q. 대표님 말씀처럼 더 많은 사람들이 요리하는 즐거움을 느낄 것 같습니다.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이 있나요?

올해 해야 되는 일 가운데 하나가 김치 1,000포기를 담가 기부하는 거예요. 올해 만나는 사람들에게 계속 이야기하며 지키려는 일이지요. 맛있는 김치를 여러 사람이 맛볼 수 있게 하고 싶어요. 요즘 젊은 친구들이 김치를 잘 안 먹는다고 하는데, 그건 다른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맛이 없어서 안 먹는 거 같아요. 저와 같이 일하는 직원들이 대부분 20대 친구들인데, 맛있는 김치는 잘 먹거든요. 어떤 방식으로 김치를 기부할지 아직 정하진 않았지만 계획하고 있고요. 또 다른 건 요리학교를 세우는 거예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왜 신선한 재료를 사용해야 하는지’, ‘왜 정석으로 요리해야 하는지’를 알리고 싶어요.

Q. 신선한 재료를 사용해야 하는 건 쉽게 이해가 가지만, 왜 정석대로 요리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진짜를 제대로 할 줄 알면 응용력이 생겨요. 우리가 학교 다닐 때 ‘기본기가 튼튼해야 한다’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잖아요. 음식도 마찬가지예요. 기본원리를 제대로 알면 응용력이 생기고 새로운 음식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어요. 그런데 기본기가 안 잡혀 있고, 기본을 그냥 넘어간 사람들은 그다음에 어떤 음식도 제대로 할 수 없어요. 음식의 기본기 몇 가지를 제대로 익혀놓으면 어떤 요리든지 잘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진짜를 배우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도 최대한 ‘진짜’ 와 비슷하게 만들어낼 수 있어요. 음식을 제대로 먹었을 때 어떤 맛을 가졌는지 아니까요.

노영희 씨와 인터뷰하는 동안 기자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계속 들었다. 제철 음식, 가장 맛있는 음식의 온도,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 등,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들인데 왜 깊이 생각하지 못했을까?’ 하는 물음이었다. 그는 그냥 해도 맛있는 음식을 한 번 더 생각해서 손님에게 대접한다. 그 그릇엔 음식뿐 아니라 그가 전하고 싶은 마음도 담겨 있다.

그의 어머니가 이른 새벽 일어나 열한 식구의 식사를 준비했던 것처럼, 그는 손님들을 위해 새벽부터 장을 본다. 신선하고 맛이 제대로 든 재료를 준비하고,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요리할지 고민한다. 노영희 씨의 마음엔 ‘음식을 먹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그 마음이 음식을 어떻게 만들지, 음식을 어떻게 담을지 깊게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녀의 깊은 마음 덕분에, 푸근함을 한껏 느끼고 온 날이다.

취재 최지나 기자 사진 박종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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