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겨울철 빙판길을 걷다 보니, 권순진 선생의 ‘낙법落法’이란 시가 생각난다.

유도에서 맨 먼저 익혀야 할 게 넘어지는 기술이다

자빠지되 물론 상하지 말아야 한다

메칠 생각에 앞서 패배를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훈련

거듭해서 내쳐지다보면 바닥과의 화친이 이루어진다

몸의 접점이 많을수록 몸은 안전해지고

나아가 기분 더럽지 않아 안락하기까지 하다

–이하 생략–

시인은 유도의 넘어지는 기술을 묘사하며, 몸이 바닥과 만나는 면적이 넓을수록 안전하다고 가르쳐주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살얼음판을 만났을 때 무조건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러다 넘어지는 일이 불가피한 상황이 되면 그냥 ‘쿵’ 하고 살이 두꺼운 엉덩이 쪽을 바닥에 두면 된다. 손에 쥔 가방은 내던진 채, 뻣뻣한 목의 힘을 빼고 머리를 낮추면 더 좋다. 이렇게 넘어지면 크게 다치지 않는다. 그런데 몸을 가눠보려고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다가 낙상落傷의 정도가 심해진다.

우리가 살면서 넘어지는 곳이 어디 빙판뿐이겠는가. 가정, 학교, 직장 곳곳에도 ‘블랙아이스’는 존재하며, 내 마음속에도 넘어짐을 부추기는 약점과 상처들이 지뢰처럼 깔려 있다. 그곳을 지나다 넘어져서 ‘낙오자’라는 꼬리표가 붙더라도, 황급히 일어나지 말고 넘어진 그대로 있어 보자. 나에게 손을 내미는 누군가가 다가올 때까지. 그 손을 잡고 그 힘에 의지해 일어서는 것, 이게 넘어짐의 진면목이다.

미국 나사에서 우주비행사를 선발할 때 ‘실패 경험자 우대’가 채용 조건에 있었다. 국내 모 출판사도 직원 채용 시 꼴찌 경험자를 우대하기도 했다. 실패를 모르는 자신감보다 실패를 경험한 이의 겸허함과 자기성찰을 필수 요건으로 본 것이다.

지금 세상은 성공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기에, 우리는 실패를 성공의 들러리 정도로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삶에서 실패는 성공의 또 다른 모습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긴다’, ‘성공한다’, ‘일어나다’ 편에 서 있길 바라는데, 넘어지지 않고 실패하지 않는다면 일어나고 성공하는 일도 사실은 없는 것이다.  

<해리 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이 하버드 대학 졸업식에서 이런 축사를 했다.

“여러분이 하버드를 졸업한다는 사실에서, 저는 여러분이 실패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는 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공에 대한 열망만큼이나 실패에 대한 공포가 여러분의 삶을 좌우할 것입니다. 인생에서의 실패는 피할 수 없습니다. 실패 없이는 진정한 자신도, 진실한 친구도 결코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진짜 재능이며, 그 어떤 자격증보다 가치 있는 겁니다.”

이제 졸업하고 사회로 나가는 청년들에게 성공에 집착하지 말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모든 것을 성공과 결부시키려는 ‘생각’ 자체가 행복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우리는 넘어지는 훈련을 통해 비로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또 누구의 도움으로 일어설 수 있는지를 조금씩 알아가도록 만들어진 존재인 걸 기억하자.

 글 조현주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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