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뉴욕의 맨해튼에는 고층건물이 많다. 그렇게 높다란 빌딩 숲 가운데엔 나지막한 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걷고, 달리고, 때로는 잔디밭에서 앉아 쉬거나 호수를 바라보며 사색에 잠긴다. 한 해에 4,200만 명이 방문한다는 이 공원의 이름은 센트럴 파크Central Park이다.

1850년대 초반, 뉴욕 주의 행정부는 시민들이 스트레스를 풀고 재충전할 공원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도심에서 좀 떨어진 땅을 부지로 선정했고, 이곳에 미국 최초로 조경 공원을 만든다는 법까지 제정했다. 이어서 디자인 공모전을 열었는데, 조경가 옴스테드가 응모한 ‘시골 들판처럼 손대지 않은’ 디자인이 뽑혀서 지금과 같은 형태의 센트럴 파크가 만들어졌다. 1876년의 일이다.

그 후 세월이 흐르면서 회전목마, 스케이트장, 동물원 같은 놀이 시설이 추가되었는데, 처음에 정한 ‘시민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유해환경을 넣지 않는다’는 설립 기준을 그대로 지켰다. 150년의 공원 역사를 훑어보면 군사 요새나 도로를 신설하라는 입김이 있었고, 경제 대공황 시기엔 관리자 없이 방치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자연과 교감하는 공원의 역할에는 변함이 없었다. 주변의 여러 유혹과 압박에도 공원이 그대로 유지되어온 비결은 무엇일까? 청정한 녹지가 주는 가치와 그 위력을 정확하게 알고 신뢰해서가 아닐까 싶다.

센트럴 파크가 들어설 당시를 한번 상상해 보자. 시민들을 위한다는 데엔 대부분 찬성했겠지만, 몇몇은 투자의 측면을 강조했을지도 모른다. 개발자의 눈엔 100만 평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공원이 ‘생산성 없는, 노는 땅’으로 비쳐졌을 것이고, 고층아파트나 상가를 지어 경제적인 가치를 높이자는 의견을 냈을 법하다. 게다가 그 수익금으로 공원 관리비를 충당한다면 매우 합리적인 발상으로 들렸을 것이다. 만약에 그 말대로 공원 귀퉁이에 상가를 짓고 아파트를 분양했다면, 오염으로부터 소음으로부터 온갖 스트레스로부터 사람들을 지켜주려는 공원의 존재 이유는 퇴색되지 않았을까. 센트럴 파크를 디자인한 옴스테드가 ‘지금 이곳에 공원을 만들지 않으면 100년 후에는 이 넓이의 정신병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언급한 것처럼, 쉼터는 우리 일상에 반드시 있어야 한다.  

도시마다 있는 공원처럼, 우리 개개인의 마음에도 공원과 같은 쉼터가 필요하다. 당장의 효과를 놓고 보면 성공에, 재산증식에, 건장한 풍채에 투자하는 것이 현명해 보이지만,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마음속 공원이 당장 필요한 것이다. 그 공원은 어떠해야 할까? 사랑을 받고, 그 사랑 안에서 쉬면서 감사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사랑을 받는가? 어리고 약할 때, 못나고 부족할 때 사랑의 눈길과 손길이 우리에게 이어진다. 그 사랑의 힘으로 잘 살다가 어느 날 성공 궤도에 오르면 사람들은 사랑을 주는 자가 되려고만 한다.

마음의 공원은 지금 자신의 능력과 지위에 상관없이, 사랑을 받으려는 사람들에게 허용되는 곳이다. 가진 재산과 이룬 성공을 다 내려놓고, 아무것도 없던 모자란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만 그곳을 찾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삶이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음을 정확히 아는 그들은 공원의 위치도 정확히 안다. 우리가 마음의 공원을 찾아가는 것은, 남보다 앞서가기 위해 경쟁하고 그럴싸하게 보이려고 애쓰던 데에서 벗어나 새소리, 풀내음, 바람의 촉감에 경이를 느꼈던 작고 부족한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여정이다. 내 존재의 근원을 알게 하는 출발 지점이 바로 마음의 센트럴 파크인 것이다. 우리 몸이 자연에서 쉬듯 마음은 사랑 안에서 쉬어야 한다. 새해를 맞아 많은 계획을 하겠지만, 사랑이 가득한 마음의 센트럴 파크도 자주 찾아가보길 바란다.

글 조현주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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