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엔지니어 조근식

“안녕하세요? 옆집 아주머니가 사장님을 강력히 추천하네요(호호). 저희 집도 잘 부탁드립니다.”

“맘 카페에서 보고 연락드려요. 사장님이 마무리를 깔끔하게 잘 하신다고요.”

전기 엔지니어 조근식 씨는 종종 낯선 번호로 이런 전화가 걸려온다. 그는 5년 전 사업을 시작한 이래로 홍보 한번 제대로 한 적 없지만 ‘마무리 잘하는 사장님’으로 입소문이 나 코로나 시기에도 수많은 러브콜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낸다. 그에게 어떤 남다른 사업 비결이 있는 걸까?

인터뷰 일정 잡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무척 바쁘신가요?

한 달 전부터 예약하고 기다리는 분들이 많다 보니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네요(웃음). 며칠 동안 답변할 말을 새벽에 차분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하늘아래전기’라는 간판을 걸고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전기에 관련된 모든 일을 하는데요. 쉽게 말해 한국전력공사에서 보낸 전기를 선으로 연결하고 또 연결해 천장의 전등 혹은 책상 위의 노트북까지 전달되도록 하는 일을 하는 것이지요.

종종 제 솜씨가 좋아 일이 잘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저보다 기술이 뛰어난 분들은 아주 많습니다. 그럼에도 제게 연락을 주는 분들이 끊이지 않는 건 아주 작은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작은 차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저는 작업을 마친 뒤 문제가 없는지 두세 번씩 다시 점검합니다. 그리고 작업 현장을 꼭 청소합니다. 하루나 이틀 뒤에는 고객에게 연락해 불편한 사항은 없는지, 이상은 없는지 물어보고요. 또한 일과 직접적인 상관이 없더라도 고객이 전기에 관한 궁금한 점을 물어보면 상세히 대답해 드립니다. 어떨 땐 작업하는 시간보다 대답해 드리는 시간이 길 때도 있지요(웃음).

하나하나 보면 사실 대단한 일이 아니라 다 작은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 사소한 것들에 마음을 기울일 때, 큰 차이가 만들어지는 것을 봅니다. 겉으로는 크게 보이는 것 같지 않은데 그 부분이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더라고요. 그게 제 사업 비결의 전부입니다.

조근식 씨가 작업했던 현장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카페, 가정집, 은행, 공연장이다. 화려하고 예쁜 외관이 완성되기까지는 수많은 이들의 손길이 필요하다. 특히, 전기는 안전과 직결되는 것인 만큼 보이지 않는 곳의 작업이 무척 중요하다. 그는 전기 작업의 최우선은 언제나 안전이라고 말한다.
조근식 씨가 작업했던 현장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카페, 가정집, 은행, 공연장이다. 화려하고 예쁜 외관이 완성되기까지는 수많은 이들의 손길이 필요하다. 특히, 전기는 안전과 직결되는 것인 만큼 보이지 않는 곳의 작업이 무척 중요하다. 그는 전기 작업의 최우선은 언제나 안전이라고 말한다.

사업 비결을 이렇게 공개해도 괜찮은가요(웃음)?

제가 연구해서 터득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듣고 배운 것이니까요. 저도 이런 마음으로 일한 지 5년밖에 안 되었습니다. 전기 일을 시작하기 전에 저는 편집 디자이너로 오래 일했습니다. 그때 다녔던 회사의 사훈社訓이 ‘큰 수익을 남기자’보다 ‘좋은 책을 만들자’는 것이었어요. 거기서 일하면서 ‘나는 의미 있는 일을 해. 사명감으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야’라는 생각이 무척 강해졌습니다.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도 없고, 사람들의 마음을 살필 줄도 몰랐지요. 또 사람들이 제게 하는 말을 달갑게 듣지 못했어요. 실제로는 꽝이면서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지낸 거죠. 그래서 오랫동안 같은 자리를 맴돌면서 지냈습니다. 알 수 없는 마음의 갈증이 일어나는데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지요.

그렇게 지내다 30대 후반에 디자이너 일을 그만두었어요. 다른 일을 알아보는 동안 일용직을 하면서 몰랐던 세계를 봤습니다. 하루는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채비를 하고 지하철을 탔는데 사람이 꽤 많은 걸 보고 놀랐습니다. ‘이분들은 몇 시에 일어나는 걸까?’ 그리고 공사장에서든 농장에서든 생계를 위해 처절할 정도로 온종일 일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이분들에 비하면 나는 굉장히 나태했는데 내가 괜찮게 일하는 사람이라고 착각하며 살았구나.’

그렇게 3개월을 보낸 후 전기 일을 본격적으로 배웠습니다. 그리고 사업 준비를 시작했는데, 그때 ‘내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사업을 해야 하지?’라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공부해서 전기 기사 자격증은 땄지만, 저보다 일을 잘하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겠습니까. 또 사업이 처음인 만큼 바른 자세를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즈음에 한 강연을 듣고 그대로 실천에 옮겼는데, 그게 지금의 사업 비결이 됐습니다(하하).

그 강연이 어떤 내용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짚신 장수 아버지와 아들’ 예화가 있었습니다. 짚신 장수 아버지와 아들이 짚신을 만들어 시장에 나가 팔면 아버지가 만든 짚신만 잘 팔렸답니다. 아들이 짚신을 아무리 공들여 만들어도 결과는 늘 똑같았죠. 아들이 그 이유를 가르쳐 달라고 해도 아버지가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가 되자 아들은 다급히 그 비결을 물었습니다. 아버지가 힘겹게 마지막 숨을 넘기며 “털… 털… 털…”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아들이 그 말을 듣고도 이해를 못하다가, 우연히 아버지가 삼은 짚신을 살펴보았습니다. 잔털이 하나도 없이 말끔했습니다. 아버지는 짚신을 삼은 뒤 짚신에 남아 있는 지푸라기 잔털을 일일이 잘라 냈던 거죠. 그래서 맨발로 신어도 깔끄럽지 않았어요. 잔털이 있고 없고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차이였지만 사용자 입장에서는 큰 만족을 주는 부분이었죠.

강연을 듣고 저는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보다 기술이 남달랐던 것이 아니라, 마음이 달랐구나. 아버지는 짚신을 신을 사람들 편에서 세밀하게 생각했구나. 그리고 그걸 소비자들이 다 느끼는구나.’ 그때부터 저를 찾아주는 고객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작은 것 하나하나에 마음을 쏟기 시작했지요.

신기한 것은, 일명 ‘털털털 마인드’가 고객들에게만 통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저를 찾아주는 손님이 많아지고 사업 규모가 커지니까 저와 함께 일할 분들이 필요했습니다. 저 혼자선 일할 수 없으니 그분들의 마음도 얻어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함께 일하는 전기 기사들을 대할 때에도 손님을 대하듯 작은 것 하나하나 신경을 썼습니다. 더 나은 식사 환경을 고민하고, 사람을 부를 때면 꼭 ‘님’이라는 호칭을 붙이고, 효율적인 업무를 위해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전달사항들을 미리 정리해 문자로 보내고요. 정말 신기한 건, 그런 작은 것들이 그분들의 마음도 움직인다는 겁니다. 일하다 보면 종종 다른 현장에 나가 있는 기사님들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나 일 다 끝났는데 뭐 도와줄 거 있어요? 내가 갈게요.” 그런 연락을 받으면 고맙고, 힘이 납니다.

누군가는 스쳐지나갔을 작은 일들이 삶에 여러 변화를 가져왔네요.

네. 예전에 저는 우유부단했어요.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까 ‘여기로 가야 하는지, 저기로 가야 하는지’ ‘이게 정말 그런지, 아닌지’ 늘 헛갈렸어요. 그러다 우연히 ‘내가 성실하고 괜찮은 사람이 아니다. 나태하게 살았다’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제 삶의 여러 모습들 가운데 한 가지를 본 거죠. 그런데 그 한 가지를 제대로 보고 나니 적어도 일에서는 제가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배웠고, 배운 걸 실행했더니, 그것이 삶을 바꿔가는 걸 봅니다. ‘하나만 제대로 배워도 달라진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작은 것들이다’ 등 누구에게나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도 하나둘 늘어가고요.

작은 배움 하나가 둘이 되고, 셋이 되면, 그 변화의 크기가 어마어마해지겠네요.

그렇겠지요? 하하. 지금 제 모습이 예전과 비교해 무척 달라진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특히, 가족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살피는 데에 무척 서툽니다. 최근에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더 적어졌습니다. 실제로 저는 무심한 아들, 남편, 아버지예요. 그래서 늘 미안하고, 또 그런 저를 지지하고 응원해 주는 가족들이 무척 고맙습니다. 요즘 저는 계속 이런 고민을 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연말에는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겠다. 어떻게 보내야 하지?’ 주변에 물어보니 함께 앉아 대화하는 것이 먼저라고 하더군요. 가족들이 제게 하는 말에 귀 기울이고, 제 마음도 표현하며 올해 남은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이런 부분을 또 하나 배우면 더 행복해지겠지요(웃음).

인터뷰 막바지에 그에게 “주변에서 사장님의 마인드를 배우려는 사람이 많을 것 같습니다.”라고 하자,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많은 기사님들에게 권했어요. 이거 하나만 배워도 다르니 해보라고. 그런데 딱 한 사람이 받아들였어요(웃음). 이해해요. 저도 마흔이 되어서야 하나 배웠으니까요. 쉽고도 어려운 일이지요.”

길을 몰라서, 혹은 길을 잃어서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을 때 ‘여기가 끝’이라고 여겨 주저앉기 쉽지만, 그때 자리에서 일어나 나아가는 사람도 있다. 조근식 씨가 그런 사람이었다. 그가 큰 결심이나 각오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길이 틀렸음을 발견했을 때 분명히 돌아섰고, 좋은 것을 배운 뒤에는 실행에 옮겨 배운 것을 잘 마무리한 사람이었다.

오랫동안 같은 자리를 맴돌며 알 수 없는 마음의 갈증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와 같이 해보면 어떨까? 잘 마무리된 배움 하나가 둘이 되고 셋이 되면, 삶 전체가 행복하게 바뀌어갈 것이다.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