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포크 테일러 김동현

‘사람이 멋있고, 아름다워지는’ 것이 좋았던 김동현 씨는 ‘멋’을 가장 쉽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옷이라 생각했고, 막연하게 옷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 의류디자인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조용하고 정적인 걸 좋아했던 그와 유행에 따라 빠르게 변하는 옷은 잘 맞지 않았다. 그는 ‘변하지 않는 멋은 없을까?’ 고민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군에서 막 제대한 그는 집에 걸려 있는 오래된 양복 한 벌을 보았다. 양장사였던 할아버지가 만드신 그 양복은, 수십 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답고 멋있었다. 그는 그렇게 양복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2014년, 그는 양복의 고장인 런던으로 떠나 비스포크 테일러링을 배웠고, 400년 역사가 깃든 수제 양복 거리인 *새빌 로에 위치한 ‘캐드 & 더 댄디Cad & the Dandy’에서 테일러로 일했다. 한 사람만을 위한 옷을 만들고 마지막 한 땀을 매듭짓기까지, 김동현 씨가 만드는 옷의 처음과 끝이 궁금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새빌 로의 유일한 한국인 테일러라고 들었습니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어땠나요?

새빌 로에 있으면서 영국 사람으로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나라면 한복을 만드는 외국인에게 선뜻 한복을 만들어 달라고 맡길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한국에서 온 이방인에게 양복을 맡기지 않을 이유가 너무 많은 겁니다. 그래서 동양인이지만 영국적인 옷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제가 만든 옷이 누가 봐도 영국적이라면 누구든지 옷을 맡기겠다는 확신이 섰거든요.

*새빌 로 - 런던 중심부 메이페어에 있는 새빌 로Savile Row는 양복 거리로 유명하다. 100m도 채 안되는 이 거리에 400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테일러 전통이 숨쉬고 있다. 

저는 옷 속에 배인 그들의 문화를 배우기 위해 영국 사람처럼 먹고, 입고, 움직였습니다. 헌팅 블레이저를 입고 사냥을 가보고, 보팅 블레이저를 입고 조정 경기를 해보고, 트위드를 입고 스코틀랜드에 가보았습니다. 장소에 맞는 옷을 갖춰 입는 것만으로도 그곳의 분위기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옷 입는 법도 제대로 배울 수 있었고, 만들 때 주의해야 할 점도 터득해갔습니다. 그처럼 대부분의 시간들을 양복 문화를 흡수하는 데 할애했습니다.

하지만 열정을 쏟아붓는다고 해서 기회가 생기는 건 아니었습니다. 새빌 로에는 이미 유능한 테일러로 넘쳐났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한 땀의 바느질도 허투루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일을 맡든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거기에 한국인의 장점인 빠릿빠릿한 면도 보여주었죠.

처음엔 바지 수선부터 시작했습니다. 허리 품을 늘리거나 줄이고 기장을 맞추는 등 간단한 일을 했는데, 몇 번 시켜보곤 다른 일도 주었습니다. 납기일에 맞춰서 빨리빨리 해야 하는데, 제가 손이 빠르니까 “조끼도 해볼래?” 하면서 주고, 바느질이 야무지니까 “코트도 해볼래?” 하면서 새로운 일감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만든 옷을 만족스럽게 보면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계속 옷을 만들 기회가 오니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차츰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비스포크 테일러로서 한 사람을 위한 옷을 만드시는데, 그 시작과 끝이 궁금합니다.

비스포크 수트는 ‘말해진 대로’라는 뜻의 ‘Been spoken for’에서 유래했습니다. 즉, 옷을 입을 손님과 테일러의 대화로 하나의 옷이 탄생한다는 겁니다. 저 역시 손님을 만나면 가장 먼저 이야기를 나눕니다. 고객이 어떤 옷을 입고 싶은지, 언제 입으려고 하는지, 용도가 무엇인지를 파악하죠. 동시에 취미나 평소 좋아하는 옷의 스타일도 물어보면서 고객의 성향과 습관을 알아봅니다. 그렇게 얻은 정보로 그 사람만을 위한 옷을 생각하다 보면 그분의 이미지와 라이프 스타일이 잘 드러난 옷이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그러면 그것을 토대로 옷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손바느질부터 패턴과 마감까지 오직 하나의 옷을 위해 집중합니다. 그리고 몇 차례의 가봉을 거쳐 손님에게 갈 준비를 마칩니다.

저는 비스포크 수트의 완성이 마무리 매듭을 짓거나 단추를 다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잘 만들어진 옷이 손님에게 전달되고 손님이 그 옷을 입을 때, 그제야 옷이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손님이 찾아가지 않는다면 그 옷은 미완성일 뿐이죠. 다행히 제가 만든 옷 중에 아직 미완성으로 끝난 옷은 없습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옷에 대한 지식이 있든 없든 손님은 그 옷에 들어간 테일러의 노력과 고민을 다 읽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옷은 마무리됐지만 다른 옷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 손님이 다시 찾아오거든요.

새 옷을 입을 때 힘없이 툭, 단추가 떨어진 경험이 있는지 모르겠다. 기분 좋게 새 옷을 입다가도 그런 일이 생기면 속에서 쓴소리가 올라온다. 그래서 늘 옷의 마무리는 단단한 마감이라고 생각했다. 야무지게 달린 단추, 정리된 실밥, 잘 덧된 안감같이 말이다. 그런데 김동현 씨가 말하는 마무리를 들으며 그뿐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다시 그 옷을 입고 싶어지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마무리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어렵게 자리 잡은 영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2020년 초부터 전 세계가 코로나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그 여파로 제가 다니던 양복점을 포함해 새빌 로의 대다수 양복점이 문을 닫았습니다. 2020년 3월쯤에 완성한 수트를 마지막으로 거의 3개월 정도 옷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이후 양복점 문을 다시 열었을 땐, 의사와 간호사들을 위한 마스크와 병원복을 만들었습니다. 그 시간을 지나면서 ‘이 상황이 계속 지속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이대로 양복을 입을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닐까 불안하기도 했고요. 그 와중에 정말 다행스럽다고 생각한 건, 양복의 본고장에서 옷을 배우고 테일러링을 직접 해보고자 했던 소기의 목적을 이뤘다는 것이었습니다. 코로나 시대가 조금이라도 빨리 왔다면 그 기회조차 없었을 테니까요. 그렇게 정리하니 영국 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김동현 씨는 세빌로 협회가 2년마다 주최하는 ‘황금가위상’ 대회에서 최종 25인에 선발되었다. 그가 만든 옷을 입은 모델의 모습.
김동현 씨는 세빌로 협회가 2년마다 주최하는 ‘황금가위상’ 대회에서 최종 25인에 선발되었다. 그가 만든 옷을 입은 모델의 모습.

한국에서는 어떻게 지내시나요?

올 초에 한국에 들어왔는데, 영국과 마찬가지로 한국도 상황이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테일러링 기술이 미래에도 필요할지, 제가 진짜 하고 싶은 건 무엇인지 계속 되물었고, 많은 고민 끝에 제 고유의 브랜드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양복의 아름다움은 잘 꿰매진 바느질과 옷의 실루엣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양복에 녹아 있는 문화적 정취, 역사의 흔적, 인문학적 해석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6년 반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제가 양복에서 찾고자 했던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과 멋을 영국에서 배웠다면, 이제는 한국에 하나씩 소개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 그는 이태원에 ‘트란퀼 하우스’라는 테일러 샵을 오픈했다. 20대에는 그토록 배우고자 했던 테일러링 기술과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영국에서 찾았다면, 지금은 자신이 찾은 아름다움을 어떻게 한국인의 정서에 맞게 전할지 고민한다. 그가 한국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건, 20대에 하고 싶었던 일을 이루고 마무리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가 30대에 이루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어느 날에 그는 또다시 새로운 시작점에 서 있을 것이다.

취재 최지나 기자 사진 송명자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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