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버 조현인

그날그날 겪은 일과 감정을 글로 풀어내는 일기. 기자는 ‘일기’ 하면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학교 숙제로 일기를 써가면 선생님이 “참 잘했어요”라는 도장을 쾅 찍어주셨다. 때로는 나의 일기를 읽고 느낀 점을 짧게 적어주시기도 했다. 그러다가 방학이 오면 날마다 써야 하는 일기가 어찌나 쓰기 싫던지, 한참을 미뤄두었다.

기자처럼 학교 숙제로 일기를 처음 시작했지만, 직접 쓰는 손글씨가 재밌고 스스로 한 편의 글을 완성한다는 것이 즐거워 16년이 넘게 일기를 써왔다는 조현인 씨를 만났다. 날마다 기록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그녀의 일기장이 궁금해 살짝 들여다보았다.

ⓒ조원더 wonder
ⓒ조원더 wonder

조현인 씨의 2021년 첫날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일기장을 들여다봐도 될까요?

2021년 1월 1일의 일기를 보면, ‘올해를 어떻게 살아볼까?’라는 고민과 새해를 향한 기대가 잔뜩 적혀 있어요.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올해는 이런 걸 해봐야지’라는 계획들을 세웠는데, 결론적으론 ‘너무 애쓰지 말고 하던 대로만 하자’더군요(하하). 그리고 새해 첫날을 가족들과 보냈는데요. 어떤 음식을 먹었고 무슨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 빼곡히 적었어요. ‘무엇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기록해 놓으면 그 시간이 더 오래 기억돼요. 그날을 더 특별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죠.

오랜 시간 일기를 썼는데,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하루에도 많은 일을 마주해요. 그 일이 좋은 때도 있지만 좋지 않은 때도 있고요. 사실 좋지 않은 감정을 그 자리에서 해소하면 좋겠지만 느낀 대로 다 표현하며 살진 않다 보니, 제 안에 그 감정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때가 있어요. 그런 날, 일기에 오늘 있었던 일과 감정을 풀어 쓰다 보면 ‘왜 내가 이렇게 느꼈는지’ 들여다볼 수 있어요.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다면 잘 보이지 않았을 감정들의 실마리가 보이고, 엉켜 있던 실타래가 풀리듯 풀리더라고요. 그렇게 안 좋은 감정들을 흘려보낸 경험이 많아서 좋았어요. 물론 좋은 일은 또 좋은 일대로 기억하고요.

그리고 저는 일기를 쓸 때, 보통 있었던 일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중심으로 적는데요. 적고 나면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하면서요. 그리곤 어떤 생각에 빠져서 막 끌려가고 있는 저를 발견해요. 일기를 쓰다 보면 나라는 사람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나’와 ‘생각’을 분리할 수 있게 되는 거 같아요. 내 안에는 여러 생각이 있고, 그중 하나에 빠져 있는 제 모습을 보는 거죠. 그런 저를 계속 마주하다 보니, 빠져 있는 생각에서 헤어나오는 것도, 생각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것도 수월해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좋은 점을 꼽으라면, 오랜 시간 동안 ‘나’에 대해 쓰다 보니 누군가에게 ‘나’를 말하고 쓰는 것이 어색하지 않아요. 그래서 유튜브나 블로그를 꾸준히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어쩌면 일기가 저의 창작의 원천이자 출발점이 아닐까 싶네요.

하루를 정리하고 마무리한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이 있을 텐데요. 다음 날을 시작할 때 다른 점이 있을까요?

하루가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잖아요. 제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일들이 하루에도 무수히 생기는데,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 일들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거 같아요. 아무래도 하루에 일어난 일들을 정리하면 내 마음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고, 마음의 중심을 다시 잡을 수 있어요.

그래서 그 다음 날도 ‘오늘 하루도 내 마음에 달려있겠다’라는 걸 알고 시작하니까 예상치 못한 일을 만나도 마냥 휩쓸려가지 않는 것 같아요.

현인 씨도 일기를 쓰고 싶지 않은 날이 있었나요?

당연히 있죠. 몸이 피곤하거나 힘들 땐 쉬어갑니다. 그래도 ‘오늘은 일기를 쓰고 싶지 않다’라기보단, ‘오늘은 쉬어야지’라고 생각해요. 일기를 공간으로 본다면, ‘내가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쉴 때도 편안하게 쉴 수 있어요.

일 년간의 기록을 훑어보면 올해 특별한 일이 무엇이었는지, 시작과 끝도 잘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올해 가장 특별한 일을 꼽으라면, ‘첫 독립’인데요. 일기를 들여다보면 첫 독립을 하기까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준비를 했는지 자세히 알 수 있어요. 독립하기 전에는 회사까지 왕복 3시간이 걸렸는데, 지금은 왕복 30분으로 줄어 생활이 180도 바뀌었더라고요. 일기를 보면 어떻게 바뀌었는지 자세히 알 수 있죠. 현재는 가족이 아닌 친구와 같이 살고 있는데, 덕분에 코로나 시국에도 외롭지 않게 보낼 수 있었어요. 친구가 키우던 고양이 두 마리도 새로운 가족이 됐는데, 그들과 보낸 시간도 곳곳에 적혀 있답니다.

2021년의 마지막 일기는 어떤 내용을 담고 싶으신가요?

아마 마지막 날을 어떻게 보냈는지 하나하나 적어두지 않을까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2021년이니, 그날을 특별하게 기억하고 싶어서 더 상세하게 적을 것 같아요. 그리고 2021년의 저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을 거 같아요. ‘올해도 수고했다’라고 나를 다독이고, 위로하는 말을 적어두려고 해요. 그래야 2022년도 더 힘차게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하루가 모여 1년이 되고, 1년이 모여 인생이 됩니다. 그 인생의 기록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현인 씨에게 일기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나를 더 나답게 만들어주는 것’이라 생각해요. 기록할 땐 최대한 그 시간에 집중하려고 해요. 핸드폰도 멀리 치워놓고요. 내 앞에 놓인 건 일기장과 저 자신뿐이고,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기록이니 일기장에만큼은 솔직하게 모든 걸 쓰려고 노력하죠. 그런데 때때로 일기장에조차도 솔직하지 못한 저를 발견할 때가 있어요. 그때도 ‘이조차 내 모습이구나, 나답구나’ 싶어요. 일기의 내용과 상관없이, 기록하는 그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차츰 ‘나’를 알아가는 거죠. 많은 분이 ‘일기를 쓰면 인생이 달라지나요?’라고 물어보시는데, 하루아침에 인생이 바뀐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삶의 방향이 건강한 쪽으로 이끌려가는 것 같아요.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는 각자 다르지만, 누구에게나 하루가 주어진다. 그리고 그 하루를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누군가는 바쁜 일상에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기도 하고, 누군가는 자신만의 루틴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기도 한다. 조현인 씨는 하루를 일기 쓰기로 마무리하는 걸 선택했다. 그냥 지나갈 수 있는 하루를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16년 간의 기록물이 생기고, 자신의 내면을 일기장에 털어내며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어린 시절처럼 일기장을 검사하는 선생님이나 숙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현인 씨처럼 하루를 일기로 정리해보는 건 어떨까.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하루를 돌아보고 끝맺는 건 좋은 것 같다.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