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나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한 NGO 봉사 단체의 막내 사원이 되었다. 이전 직장 동료들이 나에게 왜 그런 선택을 하느냐고 여러 번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유독 돈 모으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일하며 힘들어도 돈을 버는 게 좋았고, 그 돈으로 안정적이고 멋지게 살기를 원했다. 그런데 직장생활 4년 차에 접어들면서 조금씩 지쳐갔다. 그리고 고민 끝에 인생의 길을 바꿔보기로 결심했다. 돈을 조금 벌더라도 행복하게 일할 곳을 찾았고, 마침내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해 이직을 결정했다. 2021년은 새 직장에서 보낸 첫해였다. 나의 한 해를 돌아본다.

성과 위주가 아닌 일터로 이직하면 늘 평안한 분위기에서 보람된 일을 즐겁게 할 줄 알았지만, 새로운 일을 배우는 과정은 녹록하지 않았다. 가장 어려웠던 일은 한국에 온 중남미 학생들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대학생 시절에 해외봉사단원으로 볼리비아에서 1년간 지내다 왔지만, 스페인어를 쓰지 않은 지 6년이 흘러 단어가 잘 기억나지 않았다. 학생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스페인어를 다시 배워야 했다.

이외에도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돌발 상황들이 많았다. ‘미리 준비하면 잘할 수 있는데 행사를 왜 갑자기 진행하는 거야?’ ‘나는 이 일을 해본 적도 없는데 왜 날 시키지?’ 그런 상황들 속에서, 내가 원했던 이직의 기쁨을 누리기보단 불평을 잠재우는 데 에너지를 쏟아야 했다.

어느 날 아침, 업무 회의 시간에 팀장님이 이렇게 말하셨다.

“우리가 잘나서 혹은 못나서 이 일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일하다 보면 여러분처럼 막막할 때도 있고, 실수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무슨 특별한 재능이 있거나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데 이런 보람된 일을 하며 살 수 있어서 감사하다’라고 생각하면 힘이 나고, 일이 즐겁더라고요.”

그 이야기에서 나는 고민에서 벗어날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만 빠져 있어서 내 마음이 어려웠던 것이다. 팀장님처럼 생각을 돌려 보니 즐겁고 고마운 일들이 많았다. 나도 스페인어를 잘하거나 특별히 따듯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닌데도 그런 일들을 맡아서 하는 것이 무척 감사했다.

사진 왼쪽이 필자. 도미니카에서 전통곡 ‘por amor’를 연주해 큰 호응을 얻었다.
사진 왼쪽이 필자. 도미니카에서 전통곡 ‘por amor’를 연주해 큰 호응을 얻었다.

얼마 후, 나는 중미 봉사 파견 팀에 합류해 약 2주 동안 도미니카, 파나마, 푸에르토리코에서 청소년 및 지역 주민들을 위한 문화 행사와 캠프를 진행했다. 나는 캠프 기획을 돕기도 하고, 행사 때 무대에 직접 서서 플루트를 연주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무척 긴장했지만, 스무 번이 넘게 무대에 서면서 내 실력과 무관하게 나를 반겨주는 사람들의 마음을 느꼈고, 편안한 마음으로 연주할 수 있었다.

빠듯한 일정으로 진행된 활동들이 모두 끝난 후, 나는 나도 모르게 팀장님이 했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 일에 함께하는 것이 행운이라는 말을. 중미 출장 소식에 필요한 비용을 많이 걱정했고 내가 한 플루트 연주가 전문 음악가처럼 완벽하지도 않았지만, 좋은 뜻을 가진 팀과 함께하고 있다는 이유로 중미 사람들이 내게 마음을 열고, 고마워하고, 즐거워하는 걸 보고 느끼며 무척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왔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나는 팀장님이 하신 말을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올해 있었던 일들을 종이에 써가며 한 해를 결산해보았다. 월급이 줄었고, 신입사원이라 실수가 많았다. 전에는 이 두 가지만 보고 ‘올해는 적자’라며 울상을 지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모두가 아니라는 걸 안다. 월급이 줄어든 만큼 돈에 대한 걱정도 함께 줄었고, 일하는 속도가 느려진 대신 감사를 느끼는 속도는 아주 빨라졌다. 작년 12월엔 마음이 알 수 없는 공허함으로 가난했다면, 지금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올해는 아무래도 흑자가 분명한 것 같다.

글 우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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