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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이 인생과 닮았다면, 즐거움의 이유도 닮았을 거예요프로 기사棋士 임상규
최지나 기자 | 승인 2021.11.18 08:41

나무판에 가로 열아홉, 세로 열아홉 줄이 그어지면, 그곳은 흰 돌과 검은 돌의 싸움터가 된다. 그 싸움터에선 단 한 번의 싸움도 같은 적이 없다. 그렇기에 정답도 없다. 자신의 차례마다 최적의 수手를 놓아야 하기에, 하나의 돌이 바둑판에 놓이기까지 돌을 잡은 사람은 끝없이 고민하고, 상대의 수를 읽으려고 한다. 마침내 싸움이 끝나고, 상대보다 많은 집[戶]을 차지한 사람이 승자가 된다.

두 사람이 마주앉아 흑·백의 돌을 놓는 바둑은 오래 전부터 사랑받아 온 승부 놀이다. 많은 사람들이 바둑을 즐기며, 그 가운데에는 바둑을 업으로 삼는 프로 기사棋士들도 있다. 한국기원에서는 해마다 프로 기사를 뽑는데, 올해 입단 대회에서는 5명의 프로 기사가 탄생했다. 가장 먼저 프로 기사가 된 건 임상규 씨였다. 그가 걸어온 바둑의 세계는 어땠을지, 인터뷰를 요청했다.

Q. 프로 기사가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지난 입단 대회의 마지막 바둑은 수없이 두었을 바둑들 가운데 유난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프로 기사 임상규입니다(하하). 말씀하신 대로 입단 대회 결정국이 지금까지 둔 기전棋戰(바둑이나 장기의 승부를 겨루는 일)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판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처음부터 판세를 유리하게 이끌어가고 있었는데, 형세가 유리하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좀 느슨해졌습니다. 아니나다를까 기어이 큰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바둑은 한 수에 판세가 뒤집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실력이 좋은 상대일수록 한 수의 힘은 커지죠. 상대가 제 실수를 놓치지 않고 정확히 응징했고, 상황은 역전됐습니다. 한 수에 20집 가량이 불리해졌습니다. 그 상황이 처음에는 너무 당황스럽고 바둑을 접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추스르고 천천히 따라갔습니다. 승패보다 바둑에 집중하면서요. 그런데 상대 기사가 그런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임하는 제 모습에 오히려 당황했던 모양입니다. 제가 조금씩 따라잡아 결국 1집 반 차이로 이겼습니다. 계가計家(바둑을 다 둔 뒤 승부를 가리기 위해 집 수를 헤아림) 를 마치고 나니 실감이 나더군요. 정말 기뻤습니다. 꿈에 그리던 프로 기사가 된 순간이었으니까요.

Q. 1집 반이면 아슬아슬한 승부였네요. 프로 기사가 되려고 16년을 준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힘들진 않았나요?

바둑을 좋아하시던 아버지를 따라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기원棋院을 드나들었고, 부모님의 권유로 4살 때 바둑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각종 시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두각을 나타냈고요.

제가 9살 때 서울에 계신 장수영 사범님이 저를 보러 안동으로 오셨고, “서울로 올라와서 프로 기사를 준비하면 좋겠다”고 권유하셨습니다. 어린 나이에 그게 뭔지 정확히 몰랐는데(하하), 제가 서울에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부모님 품을 떠나 9살 때부터 프로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저처럼 어릴 때부터 프로 기사를 준비하는 친구들은 보통 15살부터 데뷔합니다. 제 주변에서 같이 준비하던 친구들 역시 그랬고요. 동문 수학하던 동료들이 한 명씩 프로 기사로 데뷔하고 몇몇은 국가대표로 선발되는데, 아무것도 되지 못한 제 모습을 보면서 제 자신의 재능을 의심하는 시간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묵묵히 지켜봐주시는 부모님께도 죄송하고요. 자연히 꼭 입단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습니다.

2019년에 있었던 아마추어 바둑대회에서 생애 첫 우승을 했다.경기를 응원하러 오신 어머니와 함께.

Q. 제법 오랜 시간을 그렇게 보냈을 텐데, 어떻게 이겨내셨나요?

제가 16살 때부터 입단 대회에 나갔습니다. 입단 대회에만 10번을 나갔고, 다른 시합까지 합치면 더 많을 겁니다. 그리고 출전한 만큼 떨어졌습니다. 계속 떨어지다 보니 ‘완벽하게 준비해야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어 바둑 공부에 더욱 매진했습니다. 포기할 순 없으니 최선을 다해 바둑을 두었습니다. 그럴수록 입단에 대한 간절함은 커지고, 덩달아 부담감과 두려움도 커졌습니다. 시합에 나가면 바둑을 평안하게 두어야 하는데, 알면서도 감정 조절이 안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합에서 지고 입단에 실패하면 바둑을 그만두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입단 대회를 앞두고 바둑을 두는 이유를 깊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대회 전에 마음이 불안해 저를 오랫동안 알고 계시던 분을 찾아가 상태를 말씀드리자, 그분이 “바둑 두는 이유를 입단에 두지 마라.” 하셨습니다. 처음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습니다. 지금까지 입단만을 향해 달려왔으니까요. 그런데 그 말이 ‘입단이 정말 내 삶의 목표인가?’ 되짚어보게 했습니다. 전 바둑을 둘 때 즐겁고 그 순간들이 소중한데, 입단이라는 목표 때문에 중요한 것들을 잊고 사는 제 모습이 보이더군요. 그래서 생각을 바꿨습니다. 목표가 입단이 아니라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요.

올해 초까지만 해도 ‘입단할 때까지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바둑에 매진하자’는 마음으로 견뎠는데, 몇 달 전부터는 견디기보다 즐기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임상규 씨는 함께 공부한 동료들보다 느린 걸음으로 바둑의 길을 걸어왔다. 결승점에 다 왔나 싶어서 고개를 들어보면, 이상하게 결승점은 더 멀어져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을 다시 걸어야만 했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그때마다 그는 더 열심히, 더 완벽하게 바둑을 준비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발견한 다른 목표는, 한 수로 판세가 전부 바뀌듯 그의 바둑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그는 입단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또 떨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났고, 바둑 두는 순간을 즐겼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입단’이라는 문을 지나 있었다.

Q. 임상규 씨의 이야기를 들으니 바둑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바둑의 묘미를 꼽자면 어떤 것입니까?

바둑은 수담手談이라고도 일컫습니다. 상대와 서로 말하지 않지만 바둑돌을 놓으면서 대화를 이어간다는 뜻입니다. 남녀노소 누구와도 바둑을 둘 수 있고, 말을 잘 못하는 어린아이와도 바둑을 두며 교류할 수 있습니다. 바둑을 두는 상대가 누구든지 그가 두는 수를 보며 그 생각과 마음을 읽을 수 있는데, 이게 참 재밌습니다. 제가 4살 때부터 바둑을 좋아했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바둑에서 경우의 수가 우주의 수소 원자 수보다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단 한판의 바둑도 같은 바둑이 나온 적이 없으니, 매번 다른 바둑을 둘 수 있는 것도 바둑의 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바둑이라는 게 정답이 없는 세계이다 보니 그 순간을 더 집중해서 즐길 수 있습니다.

Q. 많은 분들이 인생을 바둑에 비유하더군요. 임상규 씨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바둑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합니다. 잘 풀릴 때도 있지만 안 풀릴 때도 있고, 잘 풀리다가도 보란 듯이 역전을 당하기도 합니다. 팽팽하게 주거니 받거니 하며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고요.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에 여러 가지 감정이 오갑니다. 정말 희로애락을 다 느낍니다. 그래서 인생을 바둑에 비유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말들 가운데 바둑 용어가 꽤 있습니다. 욕심을 지나치게 부린 수를 가리키는 ‘무리수’를 비롯해 ‘정석’, ‘국면’ 등 자주 쓰이는 용어가 많습니다. 이 또한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상황들이 바둑과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Q. 프로 기사가 되셨는데,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합니다.

바둑 두는 즐거움을 다시 찾고 이제 막 입단도 했는데, 아쉽게도 군대에 갑니다. 바둑만 두며 20년 넘게 살았기에 군대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하하).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하면, 더 넓어진 바둑 무대에서 다양한 시합을 하고 싶습니다. 어떤 상대를 만나든지 그 기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있을 것이니 그 순간의 행복을 충분히 맛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바둑을 두다 보면 한 수 배우는 날도 있고, 행운이 따르면 높은 곳에 서는 날도 있겠죠? 그땐 지금 느끼는 것보다 더 깊은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지 않을까 싶습니다.

누구에게나 삶은 싸움터다. 패배자가 되지 않으려고 쉼 없이 달린다. 그런데 빨리 달려본 사람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들을 보지 못한 채 지나쳤는지 알게 된다. 임상규 씨 역시 그랬다. 바둑 기사로 살아남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하고, 입단이라는 목표만을 향해 달려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숨이 턱밑까지 차올라도 멈추면 안 될 것 같은 불안함에 계속 달렸다. 그동안 그는 자신이 바둑을 두는 진짜 이유를 잊고 있었다.

인터뷰를 마친 뒤 나의 하루를 뒤돌아보았다. 오늘 달리느라 놓친 건 무엇인지, 패배자가 되면 불행할 거란 생각에 멈추는 법을 잊어버린 건 아닌지 생각하면서 말이다. 임상규 씨가 찾은 행복이 바둑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게다. 그가 찾은 행복이 인간의 보편적 삶에도 깃들길 바라며, 찬찬히 숨을 내쉬어본다.

임상규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4살에 바둑을 시작했다. 송현초등학교에 다니던 중 9살에 서울로 전학해 본격적으로 바둑에 입문했다. 장수영 바둑도장에서 프로 기사를 준비했으며, 이춘규 7단과 박영롱 5단에게 지도를 받았다.

최지나 기자  4153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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