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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참여로 거듭난 하이라인 파크High Line Park
김연아 | 승인 2021.11.16 17:11

사람이 살면서 생로병사生老病死를 거치듯이, 도시도 생명체처럼 탄생과 성장 그리고 전성기 이후에 소멸하는 사이클을 가지고 있다. 우리 인생은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 그런데 도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 같다가도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발길을 재촉하는 무언가에 의해 드라마틱하게 부활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한때 화려했던 도시가 자연재해나 산업구조의 변화로 갑자기 쇠락의 길을 걷는 반면, 초라했던 지역이 새로운 문화를 덧입으면서 사람들에게 각광받는 장소 이른바 핫플레이스hot place로 부상하기도 한다.

국가나 도시가 하나의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는 이 시대에,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Guy Sorman은 문화의 역할에 대해 “옛날에는 국가의 운명을 왕이 좌우했지만, 지금은 국가 이미지 즉 문화가 좌우한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현대 사회에서의 문화는 중요한 마케팅 수단이다. 과거에는 도시 재생의 기준을 얼마나 빨리, 얼마나 튼튼한지에 두었지만, 지금은 문화와 예술을 통한 감성적 접근과 적극적인 주민 참여에 더 무게를 두는 추세다.

빌바오를 문화 도시로 재탄생시킨 구겐하임 미술관. 사진 속 인물은 건축 설계를 맡은 프랭크 게리.

철강 도시의 영예를 버리고 문화 도시로 태어난 빌바오

이런 도시 변화의 성공적 사례로 빌바오Bilbao시가 있다. 18세기까지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최대 도시로서 인근에 철광석이 풍부해 철강 산업이 크게 발달했던 빌바오는 주변 도시에 ‘콧대 높은’ 곳이었다. 경제적으로 넉넉해서 살기 좋은 곳이었으나, 어느 날 폐광이 하나둘 이어지면서 침체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대로 가면 소멸해버릴 위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1970년대 경제위기가 몰아쳐 더 급격히 쇠하면서 빌바오 시는 사느냐 죽느냐를 놓고 획기적인 결정을 내린다. 철강 도시로 알려진 과거의 영예를 버리고 문화 도시로 탈바꿈하기로 정한 것이다.

18세기까지 철강 산업이 발달해 부유했던 도시, 빌바오.

미술관으로서 고부가가치를 가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분관을 빌바오에 유치하는 것이 오로지 살 길이었다. 급기야 시 재정을 털어 1억 달러로 유치권을 따냈고, 유명 건축가 프랭크 게리에게 설계를 의뢰해서 드디어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Museo Guggenheim Bilbao’을 1997년에 개관했다. 그 당시 전 세계 문화애호가들이 빌바오 개관식에 참석하려고 몰려들었고, 문화여행 상품으로도 인기가 높아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이후 빌바오는 매년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명소로 변했고 문화 도시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했다. 미술관을 보러 오는 관광객들 덕분에 숙박업, 식당과 카페, 기념품점, 여행 코스 등 관련 업종과 시설물들이 함께 커져갔다. 개관 10년 만에 2조 원이 넘는 경제효과를 가져온 이 사례는 미술관 건립이 도시 재생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음을 확실히 증명해주었다. 그래서 어떤 건축물이 도시 부흥 효과를 일으키는 현상을 ‘빌바오 효과’라고 부른다.

뉴욕에서 아름다운 노을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공원

도시 재생의 또 다른 독보적인 사례로, 미국 뉴욕의 공중 공원 ‘하이라인High Line’이 있다. 18세기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한 뉴욕은 물자 수송을 위해 9미터 높이에 고가 철도를 설치했다. 1934년 뉴욕 남서부 첼시Chelsea 지역에 만든 ‘하이라인’은 한동안 뉴욕의 경제 성장을 상징하는 주요 시설물이었다. 하지만 자동차가 등장하고 정보화 시대로 바뀌면서 철도는 교통수단의 우선순위에서 점점 밀려났고, 탄생한 지 46년이 된 1980년에 운행이 중단되었다.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로에 잡초가 무성해지고 쓰레기가 쌓이면서 우범지역으로 천덕꾸러기가 된 고가 철도는 도시 경관에 피해를 준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존폐 여부를 놓고 철거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1999년 공청회가 열렸다.

오랫동안 뉴욕의 역사성을 고민해오던 주민들은 철거에 반대하는 ‘하이라인의 친구들Friends of High Line’이라는 비영리단체를 만들었다. 10여 년 동안 힘겨운 조율과 조정을 통해 2009년 새로운 공원으로 거듭난 하이라인은 지금 뉴욕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도심 속의 오아시스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시민들은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도심 한가운데에서 야생화가 핀 조용한 쉼터를 이용할 수 있고, 관광객들은 다양한 예술작품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공원은 녹지를 중심으로 높은 빌딩들이 주변을 둘러싸는 형태인데, 하이라인 공원은 철도를 따라 만들어졌기에 빌딩 사이를 오솔길 같은 공원이 끼어들어간 모습이다. 게다가 허드슨 강으로 떨어지는 일몰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뉴욕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지는 노을을 감상하고 또 다른 한쪽으로는 빌딩 숲을 보며 공중 정원을 걷는 동안 보행자는 배경으로서의 멋진 뉴욕을 즐기는 관람객이 되기도 한다.

공원 근처로 또 다른 볼거리가 생겨나고  

하이라인 공원은 그 주변에도 볼거리가 많다. 가장 미국적인 미술관으로 손꼽히는 휘트니 미술관이 있으며, 오레오 과자로 유명한 나비스코의 옛날 비스킷 공장을 리모델링한 첼시마켓도 있다. 이렇게 낡은 고가철도가 탈바꿈해서 만들어진 하이라인 공원은 매년 5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뉴욕의 대표적 관광지로 자리매김하였다.

고가 철도를 되살려 만든 공중 공원 ‘하이라인 뉴욕.’ 노을 감상에도 좋은 곳이다.(Photo by Iwan Baan)

하이라인을 성공으로 이끈 요소는 무엇일까? 공공예술public art, 조경horticulture, 디자인design, 역사history 등 4가지가 아닐까 싶다. 그 가운데 필자의 눈길을 가장 끄는 요소는 역사다. 과거의 철로 일부를 고스란히 남겨서,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장소의 역사성을 체험하게 해준다. 또 철로의 형태에서 가져온 디자인 모티브는 장소의 정체성을 더욱 분명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하이라인의 친구들’이라는 단체는 계획도 비용도 경험도 없지만 오직 꿈을 좇아 ‘No plan, No money, No experience, But dream’을 모토로 삼고 있다. 이들은 불과 2.3킬로미터 길이의 철도를 오로지 꿈으로 일궈내는 과정을 밟았다. 즉, 단번에 바꾸지 않고 1년에 평균 230미터씩 느릿느릿 10년간 재건해갔다. 이런 사실만 보더라도 하이라인은 단순히 공원을 만들겠다는 의도로 지어진 것이 아님을 느끼게 된다. 역사적 가치를 존중하면서 자연과 인공이 함께 결합해가는 새로운 차원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서울의 이미지를 새롭게 바꾼 두 사례 

우리나라에도 도시 재생의 사례가 있다. 대표적인 경우로 청계고가와 서울로가 있다. 산업화가 진행되던 1970~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하늘 위로 지나가는 콘크리트 고가차도는 근대화의 상징이었다. 실제로 고가차도들은 주요 지점들을 파이프처럼 연결하며 교통난을 해결해주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서 기능보다는 도시 미관을 더 중시하게 되었고, 지역적 이기주의가 커지면서 고가도로는 자기네 아파트나 상가에 들어올 햇빛과 조망권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취급받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를 몸소 겪은 대표적인 고가차도가 청계고가이다. 이 고가는 도심으로 몰리는 교통량 처리에 큰 역할을 담당했지만, 2003년엔 청계천 복원 사업의 하나로 철거되었다. 도시 발전의 상징물이 시설 낙후를 이유로 ‘애물단지’가 되었고, 특히 강남 지역 개발로 종로구와 중구가 있는 구도심이 쇠퇴하면서 철거된 것이다. 그 대신 자연환경과 역사문화의 복원을 취지로 살아남은 청계천이 도심 한가운데 휴식 공간을 제공하는 동시에 새로운 관광 명소가 되었다.

한편, 1970년대에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하면 길 건너편에 압도적으로 서 있는 직육면체의 대우빌딩과 함께 눈에 들어오는 고가도로는 발전된 서울의 첫 얼굴이었다. 실제로 남대문시장 상인들이 상품을 싣고 나르며 경제를 키워가는 데에 서울역 고가는 든든한 다리 구실을 했다. 그 고가를 보면서 서울은 무언가 바쁘게 돌아가는 곳, 발전하고 있는 곳이라는 분위기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교량의 안전성에 문제가 생기면서 서울시는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를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서울로7017 프로젝트’를 준비했고, 2017년 5월 마침내 새로운 공중 공원으로 탄생하였다. 오래된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옛것을 살리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것에 비중을 둔 ‘서울로7017 프로젝트’는 2018년에 리콴유 세계도시상을 수상했고, 미국 <타임>지에 ‘꼭 방문해야 하는 세계 명소 100선’으로 선정되었다.

옛것을 살리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데 비중을 둔 서울역의 공중 공원 ‘서울로7017’

그렇다면 마음의 재생은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될까?

도시 재생 주기에 따르면 도시는 쇠락하기 전에 화려한 전성기를 누린다. 우리 인생도 어려운 시절이 지나가고 성공을 맛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가능성을 신뢰하게 된다. 크든 작든 전성기의 도래가 자신의 능력에서 비롯되었다고 믿음으로 인해 자만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높아진 마음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받아들이는 교류를 불가능하게 막고, 결국 원하지 않던 실패의 길로 가서 다시 좌절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사이클을 반복한다.

하지만 실패했을 때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겸허한 마음을 품는다면 악순환을 벗을 수 있다. 진심으로 해주는 주변의 조언을 받아들이고 모든 것에 배울 마음을 가진다면 마음 안에 새 힘이 공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없던 새 힘이 들어오면 소망이 가득한 마음이 되어 새롭게 변화할 수 있다. 단, 여기에서 필요한 전제는 자신에게 거는 기대가 무너져야 하는 것이다. 마치 스페인의 빌바오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쓸모없는 폐광 지역으로 전락한 빌바오는 아무리 노력해도 이전의 영광스런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았다.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외부의 힘인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 유치와 프랭크 게리라는 유명 건축가의 도움을 받았고, 그 결과 매력적인 도시로 거듭났다. 부정적이고 어두운 마음도 밝고 건강한 힘과 연결되면 절망이 소망으로 바뀌어 새로운 힘을 얻는다. 이것이 우리 마음에 작용하는 사이클이다.

지금 여러분 마음의 사이클은 어느 과정에 있는가? 고통 속에 있든지 전성기를 누리고 있든지 마음의 순환 사이클을 기억한다면, 지금 이 상태의 원인은 무엇이며 그 다음 단계가 무엇인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도시가 유기체처럼 쇠락과 재생을 반복하듯이 살아 있는 우리 각자의 마음에도 아름답고 멋진 재생의 기회가 찾아오길 기대한다.

글쓴이 김연아

공간디자인에 흥미가 많아 대학과 대학원에서 실내건축디자인을 전공했다. 박사학위는 건축공학으로 받았다. 백화점 디자인실에서 다년간 실무경험을 쌓았고, 고등학교 기술가정교과서 저술에 참여했으며 <실내디자인론>을 공동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대학에서 오랫동안 강의를 하면서 디자인의 본질인 아이덴티티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해왔다. 대구경북 건축경관심의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대안학교 링컨하우스대구스쿨 교장으로 재직 중이다.

김연아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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