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강사 이미선

이미선 씨에게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묻자,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하는 일은 소설 ‘행복한 왕자’에 나오는 제비가 하는 일과 비슷해요. 제가 배우고 있는 좋은 마인드를 사람들에게 부지런히 전하며 살고 있으니까요(웃음).” 그는 어떤 일을 하며, 무엇을 느끼기에 자신의 직업을 이렇게 소개하는 걸까? 

하고 계신 일에 대하여 설명이 조금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하하).

네, 저는 서울 동대문 지역의 ‘행복나눔’ 후원회와 ‘맘북인사이트’라는 인성 교육팀에서 강사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주부 독서 토론 모임, 다문화 엄마들과 함께하는 낭독회 토론 모임을 비롯해 일부 지역 아동센터에서 어린이 인성 교육도 합니다. 올해는 특별히 구청의 지원을 받아 토요일마다 줌으로 ‘독서 인성 리디자인’이라는 프로젝트도 하고 있습니다.

이외에 서울 보호관찰소 관찰위원이라서 종종 보호관찰 대상인 청소년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활동하다 보면 보람도 있고 재미있으니까 힘든 줄도 모르고 하는데, 과로로 뻗기도 합니다(웃음).

언제부터 마인드교육과 인성교육에 관심을 가졌나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좀 남다른 분을 만난 후부터였어요. 저는 마흔이 되도록 혼자 살다 가, 16년 전에 사랑스런 아들 둘을 단번에 얻은 ‘새엄마’예요. 결혼할 땐 ‘나만 잘하면 언젠가는 알아주겠지. 행복하게 살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현실로 마주한 새엄마의 삶은 녹록하지 않더군요. 크고 작은 어려움이 많았어요. 그 무게를 혼자서 감당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목사님을 찾아뵈었어요. 제 이야기를 털어놓자 웃으며 이렇게 이야기하시더라고요.

“아들에게 솔직하게 이런 이야기를 해봐요. 아들아, 네가 운이 좋지 않아서 새엄마랑 사는 거고, 나도 마찬가지야. 내가 친엄마랑 똑같이 한다는 건 거짓말일 거야. 그래서 우리는 서로 노력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어.”

제가 집에 가서 아들에게 그대로 이야기했어요. 신기한 건, 아들에게 그 말이 통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아들도 제가 고맙지만 솔직히 친엄마와는 다르잖아요. 그런데 친엄마와 같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에 늘 무언가 불만스럽고 섭섭했던 거예요. 그 일을 계기로 두 아들과 대화를 많이 했지요. 그 후에도 큰아들이 사춘기 때 말썽을 일으킨 적이 있어요. 학교를 자퇴하려고 할 정도로 심각했어요. 그때도 그 목사님이 생각나 아들을 데리고 갔지요. 아들은 ‘틀림없이 혼나겠구나’라고 생각했대요. 그런데 목사님이 “이야, 너 아무나 못 하는 걸 하는 것 보니 똑똑하구나. 하하. 너 멋진 아이가 될 거야.”라고 칭찬을 해주시는 거예요. 아이가 자기를 다르게 보는 사람을 만나니 마음을 활짝 열더라고요. 그때부터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어요.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크게 놀랐어요.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에게 어떤 마음을 넣어주느냐에 따라 다르구나.’ 그런 마인드를 배우고 싶더라고요. 그러다 2013년에 국제 마인드 인성교육원에서 강사 교육을 한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했고, 바로 지원했지요.

종종 학교에서 강연을 할 때가 있다. 부천의 초등학생이든 동대문의 중학생이든 모든 아이들은 순수하다. 무엇이든 그대로 흡수하는 아이들에게 더 좋은 것, 진짜 중요한 것을 알려주고 싶다.
종종 학교에서 강연을 할 때가 있다. 부천의 초등학생이든 동대문의 중학생이든 모든 아이들은 순수하다. 무엇이든 그대로 흡수하는 아이들에게 더 좋은 것, 진짜 중요한 것을 알려주고 싶다.

그때부터 배우고 싶었던 ‘마인드’에 대해 알게 되셨겠네요.

맞아요. 마음은 형체가 없어서 눈에 보이진 않지만, 흘러가는 길이 있다는 걸 배웠어요. 교육을 받으며 특히 제 마음에 깊이 새겨진 마인드가 ‘참된 지혜는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것이다’라는 것이었어요.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마음이 콕콕 찔렸어요. 제가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어린 시절에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았거든요. 욕심이 많아서 탁구, 고전 무용, 웅변, 글짓기 등 뭐든 했어요. 결과가 잘 나오기도 했고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가 잘난 사람인 줄 알았지요. 그런 데 살면서 보니, 그 마음 때문에 사람들과 많은 부딪힘이 발생하더군요. 하지만 구체적으로 왜 그런지는 몰랐는데, 강연을 들으며 그 이유를 찾은 거죠. ‘내가 지혜 없이 살았구나’ 싶었어요.

강사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그 말을 크게 체감했어요. 강연에 앞서 주제를 선정하고 그와 맞는 예화도 정리해야 하는데, 제가 아는 게 없더라고요. 또, 아는 것 같아도 정확하게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고요.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책을 많이 읽기 시작했어요. 시간만 나면 도서관으로 향했고, 장르를 불문하고 수많은 책을 꺼내들었어요. 안 읽던 신문도 읽고요(웃음). 그러다 자연스레 도서관 관장님과 친해졌고, 이를 계기로 주부 독서 토론 모임을 시작했어요. 또, 마음 맞는 선배 강사와 팀을 이뤄 여러 곳을 다니면서 ‘작은 도서관 학부모 교육’ 강연 프로젝트도 했지요.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아는 폭이 좁은 제 모습을 보고 대학원 공부도 했어요. 덕분에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지요. 그 모든 것이 제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시작된 변화들입니다.

강사로 활동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실 텐데, 주로 어떤 이야기를 하시는지요?

사고력, 연결, 교류, 소통 등 주제는 무궁무진해요. 하지만 주로 제 경험을 이야기하다 보니 ‘삶과 사람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주제로 강연할 때가 많아요. 제가 오목눈이와 뻐꾸기 이야기를 다룬 <오목눈이의 사랑>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어요. 실제로 뻐꾸기는 오목눈이의 둥지에 몰래 자기의 알을 낳아요. 뻐꾸기 알은 먼저 부화해서 오목눈이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 떨어트려요. 그 사실을 모르는 오목눈이는 몸이 부서져라 큰 새끼를 먹여 살리죠.

그런데 뻐꾸기 새끼는 제 어미의 소리가 들리면 한 치의 미련도 없이 바로 떠나요. 새들이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무척 슬프고 원망스러운 상황인 거죠. 그런데 이 소설에선 오목눈이가 원망만 하지 않고 자신이 품은 새끼를 직접 찾아가요. 먼 길을 날아가면서, 왜 뻐꾸기들은 남의 둥지에 알을 몰래 넣었다가 부화한 새끼를 데려가는 건지, 왜 오목눈이들은 봄에는 자기 새끼를 품지만 여름에는 뻐꾸기 새끼를 품어 키울 수밖에 없는지 이해하게 되지요.

소설을 읽으며 오목눈이의 삶과 제 인생이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그런데 오목눈이는 저와 달리 자신이 품은 새끼의 마음으로 날아가서 보더라고요. 그날 저도 아이들의 입장은 어땠을지 생각했어요. ‘나만 힘든 게 아니라 아이들도 힘들었겠구나. 내가 잘 가르치려고 하는 게 오히려 갑갑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구나.’

그리고 자연의 섭리, 창조주의 섭리에 대해 생각했어요. 저는 살면서 ‘왜 하필 나만?’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럴수록 불행의 늪으로 더 들어가더라고요. 그런데 책을 읽으며 내 인생만 유독 억울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인생이 섭리 가운데 있고,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죠. 그때부터 사람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모난 점만 보이지만 저 사람 속에도 반드시 존재의 섭리가 있겠구나’ ‘저 어려움을 그냥 만난 것이 아닐 수 있겠구나’ 하고요.

그래서 만나는 아이들이나 학생들이 다 예뻐 보여요. 좀 거친 아이를 만나도 ‘저 친구,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겠다. 그 모습을 보면 다들 얼마나 기뻐할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상담할 때 헬렌 켈러나 타이슨처럼 좋은 스승을 만나 삶이 달라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 모습이 연약하고 볼품없을지 모르지만 좋은 멘토와 연결되어 힘을 공급받아 살면 달라질 수 있다고 이야기해요.

다문화 가정의 엄마들과 모임을 할 때면, 아이들은 한국말을 잘하는데 엄마들은 서툴다 보니 소통에 문제가 있어서 속이 상한다는 이야기들을 해요. 그때 저는 이렇게 말해요. “우리가 부모 입장에서 아이들에게 해준 것만 말하며 바랄 때가 많은데, 아이들에게 공감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도 하고,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기도 해봐요.” 얼마 전에 한 엄마가, 들은 대로 딸에게 했더니 그 후로 딸과 마음이 아주 가까워졌다고 좋아하며 말하더라고요.

이미선 씨는 지금처럼, 오래오래 이 길을 걷고 싶다고 말한다.
이미선 씨는 지금처럼, 오래오래 이 길을 걷고 싶다고 말한다.

삶이 변하는 사례도 많을 것 같네요.

감사하게도, 그런 일이 종종 있었어요. 몇 년 전에 보호관찰 대상 학생과 오랜 기간 상담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 학생은 아버지와 할머니랑 살고 있었는데, 사람들과 말을 거의 하지 않더라고요. 한번은 상담 기간 중에 인성 교육팀에서 주최한 ‘북 콘서트’를 함께 관람했어요. 공연 주제가 ‘아버지와 가까이’였고, 마음에서 아버지와 담을 쌓고 살던 사람들이 아버지의 진심을 만난 이야기가 이어졌어요.

그걸 본 후 아이가 제게 “선생님, 저는 아버지의 마음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라며 입을 열더군요. 그날 저도 제 이야기를 했어요. 아들과 마음으로 만났던 일을 말하며 가족의 진짜 마음, 진심을 만나는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했지요. 그날 그렇게 상담을 마쳤는데 아이가 집에 돌아가 아버지와 대화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할머니가 고맙다는 연락을 주며 눈물을 흘리셨어요. 그 후로도 종종 연락을 주고받는데, 지금은 학교에 잘 다니고 있다고 해요. 대학도 꼭 갈 거라고 하고요(웃음).

그런데 강연을 하면 할수록 가장 많이 변하는 사람은 제 자신인 것 같아요. 최대 수혜자가 저인 셈이죠. 이제는 사람들을 만나면 장난으로 이렇게 말해요. “여기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나일 걸?” 진짜 그래요. 살면 살수록 내가 모르는 것들을 발견하면서 배워가는 것이 즐겁고, 주변 사람들이, 남편이, 아들들이 부족한 저를 따라주고 지지해주는 것도 너무 고마워요.

앞으로 어떤 활동을 이어가고 싶으신지요?

사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이야기에 경청하고, 제가 듣고 배운 마인드 가운데 그들에게 전할 수 있는 마인드가 있으면 전하는 게 다라고 할 수 있어요(웃음). 그 이야기를 누군가 받아들여서 삶에 변화가 일어난다면 더없이 행복하지요.

다만, 작은 바람이 있다면 아프리카에 자주 가고 싶어요. 전에 둘째 아들이 아프리카로 유학을 가서 남편과 함께 아프리카에 간 적이 있어요. 그때 작은 마을을 방문했는데, 너무나 열악하게 사는 그곳 아이들을 보고 ‘드넓은 세상과 다양한 삶에 대하여, 그리고 자신들이 얼마나 많은 꿈을 꾸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배운 행복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라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어요. 그래서 그 후로 국내 봉사단체가 아프리카로 간다는 소식을 들으면 자진해서 함께 따라가곤 했죠. 가면 갈수록 아프리카가 좋아요. 얼른 가서 아프리카 학생들을 만나 강연하고 싶어요.

이미선 씨는 ‘함께하는 것’보다 ‘혼자 편하게 있는 것’을 원래 좋아했고, 좋은 옷이나 물건을 사는 것이 삶의 즐거움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마인드 강연을 하며 함께하는 것이 좋아졌고, 강연하는 즐거움에 빠져 사는 동안 삶이 단순해진 자신의 모습을 보면 무척 신기하다고 말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말한 행복한 왕자와 함께했던 제비가 떠올랐다. 왕자의 마음을 사람들에게 전하다 왕자의 아름다운 마음에 동화되어, 따뜻한 이집트로 날아가려던 것도 잊은 제비. 자신을 위하는 것보다 사람들에게 따스함을 전하는 기쁨이 더 커져버린 그 제비 말이다.

취재 고은비 기자   사진 박종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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