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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물론 마음까지 옮겨주는 일이죠일본어 통역사
고은비 기자 | 승인 2021.11.11 21:33

통역의 사전적 의미는 ‘말이 통하지 아니하는 사람 사이에서 뜻이 통하도록 말을 옮겨 줌’이다. 하지만 실제 여러 현장을 뛰어다녔던 신효원 통역사는 말뿐만 아니라, 마음을 옮기는 것이 진정한 통역이라고 말한다.

나는 한국인이지만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다.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경영 컨설턴트 회사에 입사한 나는 평범한 회사원이지만, 14년간 마음에 품고 꾸준히 해온 일이 있다. 한국어를 일본어로, 혹은 일본어를 한국어로 통역하는 일이다.

내 생에 첫 통역은, 10살에 일본 친구들과 함께 한국에서 열린 학생 글로벌 캠프에 참석했을 때였다. 캠프 첫날 일본 통역원이 도착하지 않아 내가 얼떨결에 통역을 맡게 되었다. 귀에 들리는 대로 통역했지만, 그땐 모르는 단어도 많았고 어른 강사 분이 말하는 내용의 의도를 알지 못해 진땀을 뺐다. 하지만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 진학하면서 어휘력이 크게 성장했고, 까다로운 행정 서류 번역은 물론 장시간의 강연 및 교육 회담도 통역할 수 있었다. 그 덕에 나는 다양한 경험을 하며 세상을 배울 수 있었다.

통역으로 얻은 소중한 경험  

고등학생 때, 가까운 아주머니가 아들의 학교 폭력 피해로 소송을 준비하셨다. 한국인 아주머니는 일본어가 서툴렀다. 소송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변호사와 상담하고 법정에서 진술도 해야 했기에 내가 통역을 도왔다. 그 일을 하면서 ‘생각 없이 휘두르는 주먹이나 거친 행동들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큰 아픔을 주는지, 한 가족에게 어떤 고통을 주는지’를 깊이 느꼈다.

한번은 지인의 추천으로, 포스코의 교육재단 회장님이 일본에 오셨을 때 통역을 전담한 적이 있다. 일본의 한 사립 고등학교를 둘러보고 교장 선생님과 면담을 갖는 스케줄이었는데, 그 일을 하면서 생전 처음으로 ‘좋은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고민해보기도 했다.

대학 시절엔 이런 일도 있었다. 가장 친했던 친구가 일본에서 양궁 선수로 활동했는데, 가끔 한국인 양궁 코치가 일본에 오면 내게 통역을 부탁했다. 나는 훈련 때마다 친구를 도왔고, 그 일을 계기로 해마다 한국에서 열리는 양궁 대표 선수 교류회에 통역사로 발탁되었다. 최근에는 도쿄 올림픽에 참석한 한국 양궁 국가대표 선수의 통역을 도우며 유명 선수들을 만나기도 했다.

대학 시절, 캄보디아로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현지 학생들에게 일본 문화를 소개하는 활동을 했는데, 통역이 아닌 진행자로 사람 앞에 서야 해서 무척 떨렸다. 하지만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준 학생들 덕분에 즐거운 시간이 됐다.

아버지가 내게,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

지금은 통역하면서 듣고 보며 얻은 것이 많고 그 시간들이 나에게 좋은 기회라는 사실을 알지만, 통역이 무척 버겁고 싫게만 느껴졌던 때도 있다. 우리 아버지는 선교사였고,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일본에 와서 활동하고 계셨다. 내가 12살이 되던 해부터 아버지는 설교할 때마다 나를 옆에 세워 통역하게 했다. 아버지가 한국말로 설교하면, 내가 일본어로 통역했다. 아버지도 일본어를 하실 수 있었지만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는 분들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부터 일요일에 친구들과 약속을 잡는다거나 논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아버지 옆에서 일요일을 보내며 불만이 쌓여갔지만 꾹 참았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즈음이었다. 어느 날 저녁, 아버지가 나를 불러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효원아, 아버지가 네게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어. 아버지는 네가 태어나기 전에 일본에서 사업을 크게 했어.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큰 병이 찾아와 죽음 앞에 서니 돈이 행복을 주지 못하고 힘이 돼주지 못하더구나. 그 뒤 예수님을 믿고 죄에서 벗어났는데, 너무 기쁘고 행복했어. 그래서 그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며 살기로 했지. 네가 태어날 때, 우리 아들도 나처럼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많은 사람에게 소망과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길 바랐지. 그런 마음으로 네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통역을 시켰단다. 네가 아버지 마음을 얼마나 이해할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행복하면 좋겠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네 행복을 전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그 일에 네 능력을 쓰기를 바란다.”

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놀랐다. ‘중학생 때 학교에서 매일 친구들과 싸우고 유리창을 깨는 등 문제를 일으켜 부모님이 학교에 자주 오셔야 했는데, 아버지는 그런 나를 향해 오래 전부터 꿈을 꾸고 계셨구나….’ 그때 어릴 적 공중목욕탕에서 아버지가 “나는 지금 훌륭한 일을 하고 있어. 미래의 일꾼 등을 밀어주니까.”라고 말하며 내 등을 밀어주셨던 일이 떠올랐다. 현재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가 열심히 공부하고 익혀서 얻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한국어를 잘하게 된 것도 일본어를 배운 것도 100퍼센트 나로 인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미래를 꿈꾸고, 나를 가르치고 이끌어준 부모님이 계셨기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그때부터는 통역하는 일이 짜증나거나 힘들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통역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것, 때론 통역으로 용돈을 벌 수 있는 것, 더 넓은 세상을 보고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 모두 감사했다.

공감하며 통역하는 즐거움

대학 시절엔 1년간 해외로 떠나 봉사를 하고 왔는데, 그곳에서 나만을 위해 살 때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살 때, 마음이 함께 연결될 때 얼마나 기쁜지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가 말하는 행복을 조금 알 것 같았다. 이후로는 아버지가 강단에 서서 설교할 때, 그리고 성도들과 이야기할 때 행복해하시는 모습이 자꾸 보였다. 그때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발견했다. 통역은 마음으로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100%는 아니지만 아버지가 어떤 마음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시는지 알고 그 메시지에 공감하자, 나도 기쁜 마음으로 통역할 수 있었다.

최근에 나는 취업한 회사가 있는 도쿄로 왔다. 자연스레 아버지와 떨어져 지내고 있지만 이곳에서도 종종 아버지가 내게 해주셨던 이야기를 생각한다. 또 통역을 할 때면 아버지 옆에 서서 즐겁게 통역하던 순간을 떠올려 보기도 한다. 지금의 나를 보면, 실수 많은 신입사원에 불과하고 마음의 폭도 좁은 여린 사람이다. 하지만 언젠가 많은 이들에게 행복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 나를, 철없던 나를 보며 아버지가 그리셨던 ‘멋진 메신저가 되어 있을 나’를 꿈꾼다.

글=신효원

고은비 기자  press49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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