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투머로우

상단여백
HOME People
행복은 지족知足하는 것이다필리핀 경찰청장 귈리에르모 로렌조 엘레아살
조현주 | 승인 2021.11.01 12:00

지난 7월, 글로벌 온라인 행사에서 제복 차림의 그가 연설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짤막한 스피치에도 단호한 목소리와 형형한 눈빛이 살아 있어 군인정신을 떠올려 주었다. 군인정신이란 명예를 존중하고 투철한 충성심과 용기, 죽음을 무릅쓰고 책임을 완수하는 애국정신을 말하는데,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인구 1억 명이 넘는 필리핀의 치안을 책임지는 그 자리에 오기까지 그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왔는지 궁금했다. 매일의 일정이 촘촘해서 만나기가 쉽지 않았지만, 현지 특파원이 직접 찾아뵙고 인터뷰를 했다.  

귈리에르모 로렌조 엘레아살 Guillermo Lorenzo T. Eleazar
현재 22만 명의 경찰을 지휘하고 있는 필리핀 경찰청장Chief of the Philippine National Police. 1965년 생으로 필리핀 육군사관학교를 1987년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좌우명은 ‘무슨 일을 하든지 온 마음을 쏟아서 해라’이다. 2016년부터 안티사이버범죄 위원장을 역임했고, 케손시 경찰서장을 맡으면서 첫 ‘별’을 달았다. 2018년, 칼라바르손 도경찰서장에 임명되었다. 2019년에는 최고 기사(cavalier)상을 수상했으며, 같은 해에 메트로 마닐라의 범죄율 60% 감소라는 큰 공로를 세웠다. 2021년, 제 26대 필리핀 경찰청장으로 임명되었다.

한국에서는 경찰이 인기 높은 직업입니다. 그래서 경찰이 되려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청장님에게도 경찰이라는 꿈이 있었습니까?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고등학생 때 아버지께서 “네가 육군사관학교에 합격할 수나 있을 것 같아?” 하시면서 자주 놀리듯이 말씀하셨어요. 그것이 제게 도전정신을 심어준 듯합니다. 아무래도 아버지께서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였기 때문에, 자식들 중에 군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저희 9남매 중에 7번째인 제가 그 길을 가게 되었네요.

저는 도시와 멀리 떨어진 시골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딱까와얀Tagkawayan이라는 곳이었어요. 제가 태어날 당시에 인구가 3만 명 정도였는데 50년이 더 흐른 지금도 고향은 5만 명이 조금 넘는 여전히 평화로운 시골입니다. 제일 더운 5월엔 섭씨 31도, 아무리 추워도 온도계 수치가 22도 밑으로 내려가지 않고, 일 년에 200일 이상 비가 오는 온난다습한 곳입니다. 그런 땅에서 우리 가족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았습니다. 저는 부모님을 볼 때마다 자식을 향한 사랑과 책임감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아버지는 대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우리가 모를 어려움을 많이 겪으셨을 겁니다. 시골의 삶이 넉하지는 않았지만, 제 기억엔 즐겁고 재미난 일들이 많았습니다. 식구가 11명이면 1개 분대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사회생활의 모든 것들을 터득했습니다. 서열을 지키고 질서를 중시하는 것을 몸에 익 혔고, 양보와 독점 사이에서 갈등도 했습니다. 거절과 타협하는 지혜를 배우고 결국엔 희생을 통한 공유가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알아가며 성장했습니다.

필리핀 육군사관학교 홈페이지에 보면 학교를 빛낸 인물들 중에 청장님 사진도 나옵니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치안본부에 임관하셔서 여러 지역, 다른 지위에서 일해 오셨습니다. ‘나라’를 향한 특별한 사랑이 없다면 어려울 임무입니다.

애국심을 갖는 데엔 아버지의 영향이 컸습니다. 전쟁을 경험한 아버지는 나라의 소중함을 우리들에게 자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관학교에서 보낸 4년 동안 국가를 위하는 마인드가 확실해졌습니다. 

1,470미터 고지대여서 ‘필리핀의 여름 수도’로 알려진  바기오Baguio 시에 자리한 필리핀 육군사관학교는 미국의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가 지향하는 신념과 가치가 같습니다. 우리는 학업도 하면서 군사훈련을 받았는데, 머리로 되뇌고, 말로 반복하고, 마음에 새긴 것이 있습니다. “우리 생도는 거짓말, 부정행위, 도둑질을 하지 않으며 그런 행동을 하는 이들을 용납하지 않는다.”라는 명예 수칙Honor code입니다. 학교는 학생들의 인성, 학업, 군사, 신체가 균형 있게 성장하도록 명예 수칙을 가르쳤고, 이 수칙의 준수로 부정부패에 대한 저항력을 키워왔습니다. 이런 것들이 애국심의 기반을 형성했다고 봅니다.

바기오 시에 위치한 필리핀 육군사관학교의 전경. 엘레아살 경찰청장이 4년간 공부하면서 군인정신과 애국심을 배운 곳이다.

2019년에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서 메트로 마닐라의 범죄율을 60퍼센트나 감소시켰고, 이 공로로 ‘가장 신뢰받는 경찰서장’ 상을 받으셨습니다. 이런 결과를 이끌어낸 비결과 과정이 궁금합니다.

마약사범 체포를 방해하는 불량 경찰들을 색출해내고, 악명 높은 마약거래 범죄자들을 체포할 수 있도록 작전을 치밀하게 수행했습니다. 이를 위해 저는 가장 먼저 ‘청결강화정책Intensified Cleanliness Policy’을 펼쳤습니다. 이 정책은 ‘깨진 유리창의 법칙’을 적용시킨 것입니다. 낙서나 유리창 파손 등의 경미한 범죄를 방치하면 큰 범죄로 이어진다는 이론인데요. 총체적 위기는 조그만 실수를 용납하고 방치하는 데에서 비롯됩니다.

전국의 경찰서는 경찰청의 창문에 해당합니다. 경찰에 대한 인식이 만들어지는 첫 접점이지요. 시민들에게 첫인상을 주는 곳이고, 지역의 평판이 형성되는 곳입니다. 경찰서를 보면서 시민들은 경찰에 대한 신뢰를 갖습니다. 민원이 있을 때 시민들은 경찰청 본부로 오지 않고 동네 경찰서로 먼저 가잖아요.

청결강화정책은 크게 3영역으로 나눴습니다. 첫째는 경찰서 사무실 및 관할구역을 청결하게 유지하는 정책입니다. 경찰서 입구에 담배꽁초와 쓰레기가 흩어져 있고 불쾌한 냄새가 난다면 시민들의 신뢰를 얻기 어렵습니다. 두 번째 영역은 이권이 개입된 경찰 채용 시스템을 개혁하는 정책이었습니다. 경찰들이 권력을 남용하는 문화를 없애고, 부정부패 등 내부적인 갈등 요소도 줄이고자 했지요. 자격을 갖춘 신입 경찰을 선발해도 나태하고 게으르며 금전을 갈취하려는 상관들이 위에 버티고 있다면 경찰의 악한 영향력은 사라질 수 없습니다. 마지막 영역은 사회 청결강화정책으로, 사회의 평화와 질서 유지를 거스르는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입니다. 길거리 범죄, 불법 마약, 공산주의, 테러, 사이버 범죄, 그리고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문제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경찰 채용 시스템 개혁이라고 하시니, 어떤 사건이 생각납니다.  부정을 저지른 경찰의 멱살을 잡고 청장님이 호통치는 모습을 유튜브에서 보았습니다. 현지어를 쓰셔서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청장님의 표정은 “우리가 배운 정신을 어디다 팔아먹은 거야? 그걸 버리면 경찰은 모두 인간 쓰레기야!” 하면서 엇나가는 아들을 나무라는 아버지 같았습니다.

그때 저는 도경찰청장으로 있었습니다. 경찰은 어디를 가든 하는 일이 모두 범죄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학교에서 생도들은 거짓말, 부정행위, 도둑질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철칙으로 배웠습니다. 그래서 이를 어길 경우, 받게 될 처벌보다 평생 따라올 불명예를 더 부끄럽게 여깁니다.

어느 신입 경찰이 마약 용의자를 풀어주겠다는 조건을 걸고 가족으로부터 금품을 갈취한 사건이었습니다. 단독 범행이 아니고 고참 경찰들이 뒤에 버티고 있었지요. 윗물이 흐리면 영향을 받습니다. 그 고리를 끊어주고 싶었어요. 앞날을 보지 못하고 행동한 신입 경찰에게 제가 호통을 쳤습니다. 정신 차리라고요! 그 일이 보도되고 인권위원회와 국제 인권 단체들로부터 비난의 화살이 많이 날아왔습니다. 부하에게 폭언을 하고 인권을 침해했다고요. 하지만 다른 동료 경찰들을 위해서, 시민들을 위해서, 또 나라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몇몇 권리들을 침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정의가 더 우선되어야 하는지 늘 생각합니다.

현재 인구 1억이 넘는 필리핀의 치안을 책임지고, 22만 명 경찰들의 지휘 감독을 맡고 계십니다. 필리핀 경찰의 수장으로서, 청장님의 비전을 알고 싶습니다.

1987년 소위로 임관해 다음 달에 임기가 끝납니다. 경찰청장으로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38년 동안 경찰 생활을 돌아보면 우리에게 필요한 시스템은 이미 다 구축되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내부청결정책으로 효과적인 관리 감독과 올바른 리더십을 발휘하고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그늘진 부분과 각종 범행 현장을 다루다 보면 범죄를 예방할 근원적인 대책이 무엇일까 더 고민하고 모색하실 것 같습니다.

필리핀은 1965년 마르코스 대통령이 집권하기 전까지는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였습니다. 마르코스 정권이 21년 간 독재와 부패를 계속하면서 경제가 무너졌고, 이후 부정부패가 만연해졌습니다. 범죄는 강력한 법적 구속으로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사람들이 부정과 부패를 싫어하고 거부하는 내면적 항체를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별 하나였을 때(지금은 별 넷) 부패방지위원장과 같이 마약사범 교육을 했습니다. 국제청소년연합 마인드교육팀과 함께 누에바 에시하Nueva Ecija에 있는 최대 마약수용소에서 교육을 실시해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경찰청에서도 그 교육을 시행할 수 있도록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협력해 가려고 합니다.

마약사범뿐 아니라 비행 청소년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의 사랑과 격려가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잘못된 길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가족이 나를 항상 후원해주고 있다는 확신을 갖는 것이 범죄 예방에 매우 중요하고 올바른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청장님도 가족이 있으실 텐데, 가정을 잘 이끌어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십니까?

부모님이 저를 그렇게 키우셨듯이, 저도 아내와 네 자녀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가장 우선임을 강조합니다. 전능하신 분의 가르침과 인도를 받으며 사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입니다. 인생의 시련이 내게 찾아올 것을 알고 기다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시련이라는 말 앞에 ‘예기치 않았던’ 이라는 표현을 쓰지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일어날 때 내가 믿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합니다. 그리고 가족 간에 대화를 원활하게 합니다. 서로 이야기하면 공감하게 되고, 관계도 좋아집니다. 저는 그렇게 가정을 이끕니다.

부하들과 함께 있을 때 ‘군인정신을 잃어버리면 다 잃은 것이다’라고 강조하는 그는 ‘무슨 일을 하든지 온 마음을 쏟아서 해라’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청장님께서는 행복을 무엇이라고 하시는지 말씀해 주세요.

행복이란 내가 가진 것에 대한 ‘지족’contentment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문화가 다르고 성장 배경이 다르고 처한 형편도 다르지만, 현재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만족한다면 그것이 행복이라고 믿습니다. 쉽게 말해서 지금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행복해집니다.

그의 답변에 성경에서 사도 바울이 말한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스스로 만족하는 것을 자족自足이라고 한다면, 지족知足은 재산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자신에게 주어진 몫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뜻한다. 이 땅에서의 행복과 불행을 넘어 마음의 평정을 누리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글을 쓰면서 종종 ‘구글 어스’를 불러내 그가 살고 있는 필리핀으로 날아가 보았다. 높은 상공에서 내려갈수록 초록색 표면에 나무들이 하나둘 모습을 나타내고 건물 지붕도 보였다. 점점 육지로 다가가서 그가 뛰놀았을 고향 마을을 둘러보았다. 사방이 숲으로 푸르른 그곳에서 그는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사는 가치를 배웠을 것이다. 마우스를 움직여 이번에는 청년 시절 애국심을 키워간 육군사관학교 캠퍼스를 두루 돌아보고, 그가 지금 몸담고 있는 수도 마닐라의 경찰청 건물도 찾아가 보았다. 한 인생이 거쳐 온 곳곳을 따라가며 그의 올곧은 정신과 따스한 삶을 느껴보는 것은, 글을 쓰면서 누리는 오롯한 선물이었다.

글 조현주 발행인   현지 진행 김진은 특파원

조현주  realantique@nate.com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조현주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