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시장에 가서 과일 한 상자를 샀다. 위에는 아주 튼실하고 잘 생긴 것들이 있고, 그 아래에는 작고 맛도 덜해 보이는 것들이 골판지를 사이에 두고 나뉘어 있었다. 외할머니 떡도 커야 사먹고,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데, 아래칸의 왜소한 녀석들을 보니 순간 내가 잘못 골랐나 싶었다. 

과일 상자를 선선한 베란다에 놓고 돌아나오면서 ‘이런 마음은 어디에서 온 걸까?’ 생각해 보았다. 물건의 가치를 겉으로 드러나는 요소들, 예컨대 크기나 빛깔, 모양새, 냄새 같은 것으로 가늠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 기저에는 다시, 열등한 것이 하필 왜 내게 왔냐는 손해보지 않을 심리가 깔려 있고, 그건 성패를 가를 때 늘 성공의 자리에 서고 싶은 이기적 본성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이왕 내친 김에 이런 생각의 꼬리를 잡고 따라가 본다.

모든 사람이 더 나은 것, 더 좋은 것을 원하므로 농부는 자신이 키우는 과일을 크기든 모양이든 색깔이든 뭐라도 더 돋보이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비닐을 씌워 코르셋 입히듯 어릴 때 원하는 모양을 잡고, 먹음직한 빛깔을 내려고 볕을 따라 돌려주거나, 당도를 높인다고 종이봉투로 감싸두기도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상품성을 올릴 수 있다. 

이제 우리 집에 온 과일들이 살았을 과수원으로 내 마음을 옮겨본다. 상자에 담기는 과일들은 상자 속 자리가 다를 뿐, 그래도 농부의 선택을 받은 것들이다. 그 과수원에는, 플라스틱 박스에 마구 담겨서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과일도 있었고, 따는 인건비도 안 나온다며 나무에 달린 채 까치밥이 되는 녀석들도 있었다. 까치에게도 선택받지 못해 그냥 땅에 떨어져 거름이 되는 과일도 보이고….

어떤 과일이든지 출발선은 같다.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 햇빛을 받고 바람을 맞으면서 자신의 크기를 키워간다. 또 색깔을 곱게 만들어가며 맛도 숙성시킨다. 그런데 마지막 수확 때 차이가 벌어지는 것은 애초에 됨됨이가 달랐던 것인지, 자라는 과정에서 이파리에 가려 햇빛을 충분히 받지 못했는지, 벌레가 먹었는지, 그 낱낱의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과일의 입장이 되어 보니, 못생긴 과일일수록 나뭇가지에서 어딘가로 옮겨갈 때 더 큰 감사를 느낄 것 같다. 어떤 날은 천둥이 치고 또 어떤 날은 큰비가 내려 고통스런 기억도 있었지만 햇빛을 받고 바람을 맞으며 살았던 것에 한없는 고마움을 가질 것이다. 모양이 곱지 못해 상품 가치가 없을지라도 배고픈 누군가에게는 맛있는 먹을거리가 될 수 있음에 감사할 것이다.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이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듯이,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못생긴 과일이 맛 없기도 하고 꿀맛이 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은 성공을 향해 나아간다. 누군가에게 인정 받고 박수 받는 언젠가를 꿈꾸며, 맨 앞줄에 서고 뭐든 잘하려고 한다. 하지만 타고난 능력이 부족해 따라가지 못하고, 의지가 약해서 인내보다 포기를 택한 사람은 성공과 멀리 떨어져 살아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성공의 의미를 다른 관점으로 보면 그도 성공한 사람이다. 부족한 자신에게 쏟아진 부모의 사랑이 뛰어난 사람에게 쏟아진 사랑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말이다. 그런 사람은 거저 받은 감사가 마음에 남아 늘 고맙고 행복하다고 믿는다. 

다시 과일 상자를 열어본다. 먹음직스럽게 익은 과일도 좋지만, 모양새가 빈약한 과일도 좋아 보인다. 그 과일에게도 똑같은 바람이 지나갔고, 똑같은 햇살이 비췄을 것이다. 잘 생긴 모양과 향기를 가진 과일이나 자잘해서 맛이 덜 든 과일도 다를 게 없구나 싶다. 과일 상자 안에서 특상품 과일들이 부르는 멋진 노랫소리와 못난 과일들이 부르는 감사의 노랫소리가 하모니를 이루며 울려 퍼진다. 대지에 결실이 가득 찬 가을이 좋다.

글 조현주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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