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셰익스피어 <베니스의 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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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대표적인 희극 작품 중 하나인 ‘베니스의 상인’은 16세기 유럽, 그 중에서도 상인들로 붐볐던 이탈리아의 베니스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희극은 베니스의 거상巨商인 안토니오에게 그의 친구 바사니오가 찾아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가난한 상인인 바사니오는 벨몬트에 살고 있는 거부 상속인인 포셔에게 청혼하기 위해 안토니오에게 큰돈을 빌려 달라고 부탁한다. 외국으로 보낸 상선에 전 재산을 투자한 안토니오는 고민 끝에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을 찾아간다. 샤일록은 평소 자신을 혐오하고 자신의 옷에 침을 뱉던 안토니오가 찾아와 돈을 빌려달라고 하자, 그에게 이렇게 제안한다. 

“그럼 선심을 좀 쓰겠습니다. 그리고 농담 삼아 말씀드리는 건데, 만일 나리께서 차용증서에 명시된 대로 지정된 날짜와 장소에서 돈을 갚지 못하실 경우 위약금으로 나리의 몸 어디에서든 내가 원하는 곳의 1파운드만 주시는 게 어떻습니까?”

안토니오는 샤일록과, 돈을 빌리는 대신 그 돈을 갚지 못하면 1파운드의 살을 준다는 계약을 맺는다. 이후 돈을 빌린 바사니오는 구혼에 성공하지만, 안토니오가 소유한 배가 선적물을 싣고 항해하다가 난파돼 기한 내에 빚을 갚지 못하게 된다. 그즈음 샤일록에게도 문제가 발생한다. 샤일록의 딸 제시카가 재산을 몰래 챙겨 자신이 사랑하는 베니스 사람 로렌조와 멀리 떠나버린 것이다. 그때 샤일록에게 안토니오의 배 난파 소식이 들려온다. 샤일록은 차용증서에 적힌 내용을 들이밀며 안토니오를 법정에 세우고, 그의 살을 도려내기 위해 칼을 간다. 이 소식을 들은 바사니오가 서둘러 달려오지만 도울 길이 없다. 세 배의 돈을 돌려주겠다고 해도 샤일록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그때 바사니오 몰래 베니스로 와서 남자로 변장한 포셔가 재판관으로 법정에 등장한다.

포셔: 저 상인의 살 1파운드는 원고의 것이오. 본 법정이 그걸 인정하고, 법이 보장한다!

샤일록: 과연 공정한 판사님이시다! 판결이 났다. 자, 각오하라.

포셔: 잠깐, 유대인은 정의로운 재판을 요구했다. 이 증서에는 단 한 방울의 피도 원고에게 준다는 말이 없다. 여기에는 ‘살 1파운드’라고만 적혀 있으니 살을 1파운드만 잘라가라. 만일 그 이상 또는 그 이하의 살을 도려낸 결과 그대는 사형에 처해질 것이고, 그대의 전 재산은 몰수당할 것이다.

판사의 판결에 당황한 샤일록은 안토니오의 살을 도려내는 것을 포기하고 돈을 받겠다고 한다. 하지만 재판관은 계약서에 명시된 대로 샤일록이 가져갈 수 있는 것은 1파운드의 살밖에 없음을 상기시키며, 얼른 안토니오의 살을 도려내라고 부추긴다. 분통이 터진 샤일록은 그냥 법정을 나가려고 한다. 그러자 재판관은 “외국인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베니스 시민의 생명을 노렸다는 사실이 판명될 경우 가해자 재산의 절반은 피해자에게 돌아가고, 나머지 절반은 국고에 귀속되게 되어 있다.”라고 말한다.

안토니오의 살 한 파운드를 도려내려 하는 샤일록.영화 '베니스의 상인(2005)' 중.
안토니오의 살 한 파운드를 도려내려 하는 샤일록.영화 '베니스의 상인(2005)' 중.

일순간에 모든 재산을 잃게 된 샤일록은 “목숨이든 뭐든 다 가져가시오. 용서도 바라지 않소.”라고 하며 자포자기한다. 그러자 안토니오는 샤일록에게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권하고, 자신의 친구 로렌조의 연인이자 샤일록의 딸인 제시카에게 재산을 물려준다는 양도증서를 쓴다면 책임을 더 이상 묻지 않겠다고 말한다.

샤일록은 양도증서를 집으로 보내 달라는 말을 남기고 법정을 빠져나간다.

인간 샤일록, 그에게 필요한 명재판은? 

학창 시절, 샤일록과 안토니오가 얽힌 재판의 판결 과정이 흥미진진해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안토니오가 죽게 생겼네’ 하고 조마조마하다 포셔가 나타나 재판의 판도를 뒤집었을 때 무릎을 치며 감탄했다. 그땐 <베니스의 상인>이 흥미로운 명재판과 반전이 있는 재미있는 작품으로 기억되었다. 그런데 얼마 전 독서 토론을 위해 책을 다시 읽었을 땐 다른 내용들이 눈에 띄었다. 특별히, 샤일록의 대사에서 읽을 수 있는 그의 삶이 마음에 남았다.

<베니스의 상인>은 세계적인 고전인 만큼 수많은 각도의 해석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포셔의 재판은 진실로 지혜로웠는가, 아닌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에 못지않게 논란이 많은 주제가 바로 ‘샤일록은 정말 악인이었는가, 아닌가?’이다.

셰익스피어가 이 작품을 집필한 때는 영국이 엘리자베스 여왕 치하에서 상업이 아주 발전하던 시기였으며, 기독교인이 유대인을 차별하던 시기였다. 영국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유대인을 배척하고 차별적으로 대했다. 유대인은 토지를 소유할 수 없었고, 주로 무역업에 종사하면서도 길드에서 배척당했다. 이 때문에 고리대금업으로 손을 뻗는 유대인이 많았다.

샤일록: 그자는 내 사업을 방해해 큰 손해를 보게 했고, 내가 손해를 보면 좋아라 웃어댔고, 이익을 보면 경멸했소. 내 장사를 방해하고, 친구 사이를 이간질하고, 내 적들을 충동질했소. 그런데 그 이유가 뭔 줄 아시오? 내가 유대인이기 때문이오!

샤일록과 베니스의 재판관으로 변장한 포셔.영화 '베니스의 상인(2005)' 중.
샤일록과 베니스의 재판관으로 변장한 포셔.영화 '베니스의 상인(2005)' 중.

안토니오가 샤일록을 향해 침을 뱉거나 무시하고 그의 사업을 방해하는 등, 극 중에서도 베니스 사람들이 유대인을 경멸하는 모습이 곳곳에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배경을 알면, 샤일록을 단순한 악역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바라볼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샤일록을 정말 악한 사람이라고만 할 수 있는가?’라고 묻고 새롭게 해석하는 이유다.

샤일록, 그 사람이라고 해서 밝고 행복한 삶을 꿈꾸지 않았겠는가. 그가 지독한 고리대금업자가 된 것은,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차별 받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뒤틀린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그는 자신을 멸시하고 밀어내는 사회에서 고개 숙이지 않고 살려고 안간힘을 쓰며, 그렇게 사는 자신이 베니스의 보통 시민들보다 더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뿐인 피붙이 딸조차 자신을 밀어내고 베니스 사람에게 가버렸을 때, 샤일록은 분노했다. 모든 것을 걸고 복수를 향해 돌진했다. 자신을 개처럼 취급하면서 자신에게 도덕과 윤리를 들이밀고 자비를 말하는 베니스의 심장을 도려내겠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하지만 포셔의 등장으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을 때 그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부탁이 있습니다. 여길 떠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몸이 좀 불편해서요. 양도증서는 집으로 보내주시면 거기서 서명하겠습니다 (샤일록, 비틀거리며 퇴장).”

샤일록은 이 마지막 대사를 끝으로 무대에서 사라진다. 그토록 살아남으려 했던 곳에 더 이상 머물지 못하고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그려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 후로 샤일록은 어떻게 살았을까?’

‘재산을 다 잃고 살아야 할 이유도 잃어 스스로 삶을 마감하진 않았을까?’

‘자신을 조롱하는 사람들에게 끔찍한 복수를 하고 자신도 죽음을 택했을까?’

‘그에게 행복으로 가는 길은 없었을까?’

언젠가 지방에서 열린 북토론 행사에 참석했을 때 웃음이 순수한 어느 중년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선한 인상을 가진 그가 한 첫 이야기는 믿기 힘들었다.

“저는 살인에 살인미수범이었습니다. 아내가 카바레에 춤추러 다니는 것을 안 뒤, 그걸 부추긴 처형과 말다툼을 벌이다 살인을 저지르고 말았지요. 교도소에서 지내며 제 삶은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출소해도 살인자인 저에게 누가 직장을 주겠습니까? 어차피 망친 인생, 나를 그렇게 만든 사람들에게 다 복수하고 내 삶도 끝내야겠다고 다짐했지요. 그런데 그때 교화위원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왜 그렇게만 생각해요?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기뻐해줄 부모가 없으면 얼마나 서글프겠어요? 꽃다발을 들고 가서 짜장면을 함께 먹으며 축하해 주면 아들이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아들에게 결혼하고 싶은 아가씨가 생기면, 돈을 모아두었다가 좋은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사주며 며느리가 될 아가씨에게 우리 아들을 잘 부탁한다고 하면 아들이 얼마나 좋겠어요? 큰 것을 해주진 못해도 작은 행복을 만들어갈 수 있어요.’ 목사님이 생각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이야기를 듣고, 저도 작지만 행복한 삶을 꿈꿀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마음이 밝게 바뀌니 그동안 어둡기만 했던 세상이 다르게 보이더군요. 그 뒤 저는 모범수로 출소했고, 좋은 아내를 만나 결혼해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모양이 있다. 그 안에서 오늘을 살며 더 나은 내일을 꿈꾼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어떤 경우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을 맞닥뜨리기도 한다. 평범한 가정의 가장으로 작은 행복을 이루며 살고 싶었지만 살인자가 되고 만, 앞에 이야기한 어느 중년 아저씨의 삶이 그랬다. 자신을 비웃는 베니스 사람들에게 잔인하게 복수하려고 했다가 오히려 모든 재산을 잃고 만 샤일록의 삶도 그랬다.

전혀 생각한 적이 없는 상황이 펼쳐지면 대부분의 사람은 어찌 할 바를 모른다. 그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려고 하고, 그것이 안 되면 비틀거리다 주저앉고 만다. 이제 자신의 삶은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극단적인 길로 가고 만다. 교도소에서 복수의 칼을 갈았던 남자는 자신의 인생이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가 내린 결론을 뒤집어주는 사람을 만나 사랑하는 자녀와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진실로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판결이 그의 마음을 바꾸었고, 그에게 새 삶을 가져다주었다.

살아야 할 의미를 잃고 비틀거리며 법정에서 나가는 샤일록.  그 또한 그대로 주저앉을 수밖에는 없었을까. 살인수의 격한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행복한 삶을 꿈꾸게 해준 목사님처럼 그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이야기는 없었을까?

“샤일록 씨, 그토록 큰 증오를 가슴에 품고 살며 얼마나 괴로웠소? 당신이 꿈꾼 복수는 실패했지만 설령 성공했다 해도 마음이 평안하지는 않았을 거요. 누구든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날 때 비로소 쉴 수 있다오. 사람은 외모도, 지능도, 출신도 차이가 있어서 차별이 없을 수 없지만, 창조주가 만든 햇볕은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내리쬐고 비는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내리며 공기는 모든 이가 공평하게 마시며 살지 않소. 우리 마음이 세상과 인간을 만든 창조주에게 돌아갈 때 차별에서 벗어나 편히 쉴 수 있소.”

경쟁하거나 반목하지 않고 모든 것을 누리며 기쁘게 사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샤일록이 알았더라면, 그 사실을 가르쳐주는 사람을 만났더라면, 샤일록은 그날 옅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을 것이다. 가진 것이 없으니 좀 고된 일을 하며 살아도, 진심으로 서로 위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황량했던 마음에 따스함과 행복이 차츰 차올랐을 것이다. 어느 날엔 ‘딸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만 생각했는데 딸도 나 같은 아버지 밑에서 마음고생이 많았겠구나. 지금은 결혼해서 잘살고 있을까?’ 하며 마음으로 딸의 행복을 빌었을 것이다.

나는 누군가가 샤일록에게 내려줄 또 다른 명재판, 그가 진정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주는 판결은 무엇일지 생각하며 책장을 덮었다.

글쓴이 심문자

서울과학기술대학 사회교육계발원에서 독서교육을, 방정환 교육센터에서 부모교육을 하고 있다. 예루살렘 라디오 ‘북적북적 북클럽’진행자이다. 독서지도사, 청소년상담사, 독서논술교사 등 책과 관련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베니스의 상인>은 영국이 낳은 세계 최고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이다. 총 5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포샤’와 ‘바사니오’의 사랑 이야기, 그리고 ‘안토니오’와 ‘샤일록’의 재판 이야기가 맞물려 전개된다. 지금까지도 영화 및 연극, 소설 등으로 재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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