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배우고 세상을 읽다

2021.9.8.수

영감이랑 학교 가는 길에 즐거운 구경을 했다.

매일같이 지나가던 길에 있는 식당 하나.

그 간판에 적힌 ‘오징어’라는 글자를 처음 읽었다.

“영감! 여기에 이런 게 적혀 있었네요~.”

그 옆에 보니 ‘고기’라는 글자도 보인다.

학교 가는 길에 가만가만 멈춰 서서

한 글자 한 글자 읽는 재미에 빠져

하마터면 지각할 뻔했다.

올해 70살이 된 나는 4개월 전 ‘성문 문해 학교’에 입학했다. 어릴 적엔 어머니 아버지가 안 계셔서, 커서는 일하느라, 결혼한 후에는 아이들 키우느라 못 배웠던 글을 이제 학교에서 한 글자 한 글자 배우고 있다. 입학식 첫날 얼마나 설레고 들떴던지.

학교에서 ‘소망의 나무’라고 적힌 책으로 수업을 한다. 1권부터 배우기 시작했는데 벌써 3권을 배우고 있다.

오늘은 쌍디귿을 배웠다. ‘따오기’ ‘따오기’ 교과서를 보고 몇 번이고 따라 적어본다. 돌아서면 까먹고, 돌아서면 또 까먹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금이라도 배워야지. ‘딸기, 떡…. 이게 이렇게 생긴 거였구먼.’ 말할 줄만 알았지 적어본 적이 없으니 잘못 알고 있던 것들도 많다. 메지밀이라고 불러오던 두유가 알고 보니 베지밀이었다. 학교에서 글을 배우며 지난 삶도 새로 읽고, 세상도 새롭게 배운다.

나는 학교가 좋다. 난생처음 일기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얼른 배워서 내게 온 편지 한 통 읽고 싶다. 손주들에게 편지 한 통 쓰고 싶다.

새롭게 익히고, 배우는 길을 함께 걷는 부부. 김금옥 씨와 그가 ‘영감’이라고 부르는 박연호 씨.
새롭게 익히고, 배우는 길을 함께 걷는 부부. 김금옥 씨와 그가 ‘영감’이라고 부르는 박연호 씨.

학교 마치고 영감이랑 집에 돌아가는 길.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영감한테 “오늘 잘 배웠지요? 힘들지는 않았고?” 하고 물으니 신나게 이야기보따리를 푼다. 거기에 내 이야기도 보탠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집에 도착해 있다. 내일은 학교에서 또 무엇을 배울까나? 내일은 길에서 또 무슨 글자가 보일까나?

내일도 영감이랑 12시에 학교로 가야지.

글 김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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