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 칸지 무랑기, 나미비아 여성의 롤모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막 위에 세워진 나라 ‘나미비아’는 그곳 현지어로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황량한 사막은 마치 광대한 모래 바다와 같다. 우리나라보다 면적이 여덟 배 넓으나 인구는 대구시 규모인 250만 명이다. 아무것도 없는 땅에 인적까지 드문 나라의 발전을 위해, 하게 게인고브 나미비아 대통령은 다른 길을 모색했다. 자연환경에 의존해 살아가던 전통 방식에서, 누구도 섣불리 가기 어려운 방향으로 생각을 돌린 것이다. 그중 하나가 고등교육 개발과 우주산업 부처를 신설하는 것이었다. 초대 장관으로 임명된 이타 칸지 무랑기 박사는 투철한 자기관리로 나미비아 여성들에게 롤모델이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지금에 오기까지의 인생과, 특히 청소년기를 어떻게 보냈는지 직접 듣고 싶어서, 두 나라 사이의 1만 3천 킬로미터 거리를 단숨에 뛰어넘어 온라인 화면 앞에서 마주했다.

장관님, 한국의 투머로우 독자들을 위해 나미비아의 이른 아침에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맡고 계신 일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부처의 정식 이름은 고등교육 훈련혁신부MHET입니다. 크게 고등교육, 기술직업교육과 훈련, 과학기술과 혁신이라는 세 가지 영역을 관할합니다. 그동안 중점적으로 해온 프로젝트는 여러 기술대학에 통일된 커리큘럼을 제시해주는 것과, 강사를 자체적으로 양성할 시스템 구축입니다. 그리고 통신이나 자연재해, 건강과 같은 문제를 우주 과학과 기술 발전으로 해결하는 정책도 개발했습니다. 이제 우주 과학 기술은 나미비아 국민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분야가 되고 있습니다.

매우 포괄적이면서 미래지향적인 일을 하고 계시는군요. 혹시 인생의 어느 모퉁이에 장관이라는 꿈을 심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아니오. 장관직을 꿈꿔본 적은 없어요. 보츠와나와 나미비아 대학에서 오랫동안 교편을 잡고 있었고, 그것이 천직인 줄 알았습니다. 저는 청소년 교육과 인적 개발에 관련된 일을 해왔고, 대학을 떠나 다른 곳에서 일한 경험도 없습니다. 그래서 장관으로 발탁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저를 임명한 대통령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일합니다. 때로 어려운 문제들도 있지만 물러서지 않고 부딪칩니다.

오전 5시 기상으로 하루를 여는 그는 매일 많은 공식 일정을 소화한다. 집무실에서 투머로우와 화상 인터뷰하는 모습.
오전 5시 기상으로 하루를 여는 그는 매일 많은 공식 일정을 소화한다. 집무실에서 투머로우와 화상 인터뷰하는 모습.

도전하는 자세로 일하신다니 말씀만 들어도 힘이 납니다. 강단에서 대학생들을 가르치실 때엔 특히 무엇을 강조하셨나요?

요즘 젊은이들이 도전정신이 없다고 하는데요. 예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제가 젊었을 때도 청년들이 도전하지 않는다고 했거든요. 도전정신은 특정 연령대와 상관없이 그 사람이 처해 있는 환경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고 최선의 노력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면 똑같이 따라가게 됩니다. 하지만 리더가 진정성 없는 태도를 취한다면 주변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비슷한 길을 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내가 따르고 싶은 존재가 가까이 있어야 도전에 대한 동기 부여를 줄 수 있어요.

제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 특히 강조한 것은 네 가지입니다. 첫째는 삶의 목표를 갖는 것이에요. 목표가 없으면 젊은이들이 인내하고 기다려야 할 이유가 없고 도전할 가치도 느끼지 못해요. 두 번째는 집중입니다. 삶의 방향을 잡기 위해 집중이 필요합니다. 특히 청소년은 삶의 목적조차 확실치 않으므로 집중이 더 필요합니다. 세 번째는 진실성으로,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할 일이 반드시 생깁니다. 그때 진실과 정직, 헌신 같은 가치들은 삶을 지켜주는 기준이 됩니다. 네 번째는 결단력입니다. 일을 미루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결단해야 행동합니다. 특히 리더의 결단력이 뛰어날 때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리더를 따라 함께 가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장관님은 청소년 시절을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저는 나미비아 동쪽에 있는 보츠와나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1992년 나미비아로 이사를 올 때까지 아버지와 삼촌들, 외할머니까지 대가족이 사는 전형적인 헤레로Herero 부족 농가였습니다. 저는 8남매 중 둘째였는데, 두 살 때 자식이 없는 큰아버지에게 입양되었습니다. 친부모님, 언니, 동생들과 한울타리에서 살았으나, 명분상 큰아버지의 외동딸로 자라야 했지요. 지금도 키가 크지만, 어릴 땐 정말 꺽다리에 깡마른 소녀였어요. 그때 우리 집은 행복했고, 먹을 것도 넉넉해서 여럿이 살기에 좋은 환경이었어요.

학교에 갈 나이가 되어 입학했고, 저는 모든 과목에 흥미가 넘쳐서 공부를 잘했습니다. 수학만 제외하고요. 그때는 수학을 싫어했는데, 나중에 많이 후회했습니다. 공부를 좀 해보니 수학이 모든 학문의 기초인 것을 알았거든요. 수학이 싫어도 그 생각을 누르고 공부를 했어야 했죠.(웃음) 제가 지금 맡고 있는 기술 혁신 분야에도 수학적 개념이 필요하더라고요.

나미비아 대학 리더들을 위한 학생기업가정신 프로그램 SEP 행사장에서 연설중인 모습.
나미비아 대학 리더들을 위한 학생기업가정신 프로그램 SEP 행사장에서 연설중인 모습.

수학 외에 인생을 살면서 다른 어려움은 없었나요.

그 질문에 언뜻 두 가지가 떠오르네요. 둘 다 제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지만 신기하게도 답은 ‘열심히 공부하는 것’ 하나뿐이었어요.(웃음) 첫 번째는 중매결혼으로 제가 원치 않는 삶을 살 뻔 했던 사건입니다. 우리 부족의 결혼 문화는 근친혼입니다. 제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이미 부모님은 이모의 아들과 정혼을 해두셨습니다. 세상에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평생 살 남편이 정해져 있던 거죠.

이런 상황에서 저는 정말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모든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고 매 학년마다 줄곧 1등을 했어요. 친아버지는 제가 공부를 계속하도록 응원해주셨어요. 고등학교 졸업 시험을 통과했을 때가 기억납니다. 이모가 ‘우리 아들은 교육을 받지 못했는데 왜 딸을 대학까지 보내려고 하냐’며 따졌습니다. 그때 친아버지가 단호한 입장을 보이셨어요. ‘우리 집안을 살릴 아이다. 교육을 계속 받게 하자. 그러고 나서 결혼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제가 가진 잠재력을 알아봐주고 믿어준 친아버지가 정말 고마웠습니다. 대학생이 된 저는 뛰어난 성적 덕분에 석사와 박사 과정까지 계속 공부할 수 있게 되었어요.

양아버지도 공부를 그만두고 결혼시키라고 했지만, 친아버지가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으니 더 공부하게 두자’며 설득해 주셨어요. 다행스럽게도, 정혼한 오빠의 나이가 점점 많아지고 저를 기다리는 데 지쳐 다른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원치 않던 결혼에서 저를 구해준 것은 뜻밖에  ‘학교 성적’이었죠.

두 번째 어려움은 학비 문제였습니다. 소를 방목해 살아가는 우리 집에서 비싼 대학 등록금을 대줄 수 없었어요. 그런데 제 성적표가 저를 다시 한 번 도와주었습니다. 저는 장학금을 받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갈 기회도 생겼습니다.

왼쪽부터 아들, 남편, 막내딸, 시동생, 그리고 장관. 아들은 멀티미디어 분야에서 일하며, 막내딸은 현재 영국에서 법회계학과를 졸업하고 취업했다.
왼쪽부터 아들, 남편, 막내딸, 시동생, 그리고 장관. 아들은 멀티미디어 분야에서 일하며, 막내딸은 현재 영국에서 법회계학과를 졸업하고 취업했다.

공부도 잘하고 지혜도 남다르셨네요. 결혼 문화를 정면으로 거부하지 않고도 자신의 삶을 성취해가는 모습이 귀감이 됩니다. 이후에 결혼하셨고 자녀들을 직접 키우셨지요.

네, 저도 집에서는 아내이고 엄마이며, 이젠 귀여운 손주들을 둔 할머니입니다. 우리 집의 가훈은 ‘웃음과 존경심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엔지니어 출신인 남편과 저는 맞벌이 부부였어요. 삼남매를 키우면서 우리 부부는 열심히 일도 했고, 그 모습이 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되길 바랐어요. 자녀들에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또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지 일상의 삶 속에서 알고 체화體化하도록 가르쳤습니다.

어렸을 때 양아버지께서 일을 마치고 오시면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저도 나중에 가정을 갖게 되면 해보고 싶었지요. 그래서 저녁식사를 가족과 같이 하면서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대화를 나눌수록 관계가 친밀해지고, 누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 가족으로서 어떻게 도울지 함께 고민했습니다. 지금은 세 자녀가 커서 모두 독립했고, 안부를 물을 겸 통화를 자주 합니다.

NUST 나미비아 과학기술대학 졸업식을 축하하기 위해 참석한 무랑기 장관(맨왼쪽)
NUST 나미비아 과학기술대학 졸업식을 축하하기 위해 참석한 무랑기 장관(맨왼쪽)

자녀들에게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셨고, 지금은 나미비아 여성들의 롤모델이십니다.

여성 리더는 나미비아뿐 아니라 전 세계 여성들에게도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여성은 타고난 선생이자 리더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전 세계 리더들에 대해 조사를 좀 해본다면, 오늘날 리더들 중에 한부모 가정에서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고 자란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을 발견할 겁니다. 즉, 여성은 리더를 키워내며, 여성은 리더의 역할도 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성이 스스로 리더가 되는 것을 주저하는 게 가장 애로사항입니다. 우리 나미비아에서는 여성이 남성과 동등합니다. 모든 학교는 남녀공학이며, 학생들은 남녀 차별 없이 지식을 넓히고 서로의 생각을 교류, 수용하는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의 마인드교육이 나미비아 대학에 진출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제가 2015년과 16년 두 차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마인드교육의 우수성에 대해 알았습니다. 나미비아 대학생들에게 이 교육을 하면 나라까지도 달라지겠다는 확신이 섰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교육팀을 여러 차례 초빙해 강연을 들었습니다.  지금은 나미비아 대학을 포함한 여러 대학에서 마인드교육을 하고 있으며, 교도소에서도 이 교육을 도입했습니다. 앞으로는 ‘학교 밖 청소년’들을 가르쳐서 그들의 마인드가 변화되도록 할 것입니다.

마인드교육의 가장 큰 효과는 ‘변화’라고 합니다. 장관님도 경험한 바가 있으신지요.

저도 오랫동안 교육개발 관련 학문을 해왔기에 마인드교육 내용을 보고 개발자가 특별한 분이겠다 싶었습니다. 세계장관포럼에 참석해서 행사 진행을 가까이서 살피고, 참석한 청소년들이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보며 정말 감탄했습니다. 장관, 시장, 대학 총장 등 전 세계 리더들을 모아놓고 매년 이런 행사를 순조롭게 한다는 것은 남다른 지혜가 있어야 하고, 또 은혜를 입어야 하며, 다른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탤런트가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 모든 능력이 마인드교육 개발자인 박옥수 목사님께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 만나보니, 그분보다 제가 키는 컸으나 지혜의 키는 그분이 훨씬 더 컸습니다. 목사님은 우리 삶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항상 연결되어 있음을 제가 보고 배울 수 있었지요.

아프리카 남쪽 광활한 나미브 사막엔 소수스블레이, 데드블레이, 듄45 등 아름다운 곳들이 많아 최근에 매력적인 여행지로 떠오르고 있다.
아프리카 남쪽 광활한 나미브 사막엔 소수스블레이, 데드블레이, 듄45 등 아름다운 곳들이 많아 최근에 매력적인 여행지로 떠오르고 있다.

인생의 행복은 무엇인가,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제게 행복이란, 어디로 가고 싶은지 목적지를 아는 것입니다. 출발점과 목적지 사이의 여행이 바로 우리의 인생 아닐까요? 목적지를 향해 가는 여행에는 필요한 것들이 있어요. 아내와 남편, 좋은 친구, 사랑하는 자녀, 존경하는 스승, 동료 등 많은 이들이 서로 돕고 이끌며 여행길을 갈 때가 행복입니다.

모니터를 사이에 두고 만난 무랑기 장관은 전 세계 여성들에게 본보기가 될 리더였다. 그의 말대로라면, 청소년들의 도전 의욕 상실은 그런 태도를 배울 사람이 주변에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보고 배우며 성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혹은 닮으려고도 하고 혹은 거부하기도 하며 삶의 형태를 만들어간다.

사람은 다 주위 사람의 영향을 받으며, 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무랑기 장관이 공부를 잘했다 해도 아버지의 후원이 없었다면, 나미비아의 일반적인 정혼 풍습을 따라 공부를 멈추고 이모의 아들과 결혼해야 했을 것이고, 인생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펼쳐졌을 것이다. 사람은 각기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고, 좋은 만남과 후원 속에서 그 재능을 피워간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좋은 영향을 준 분들에게 고마워하며, 자신도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행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결이다. 내가 행복하다면, 그것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만든 행복이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과 함께하는 것을 소중히 여긴다. 주위에 불행한 사람이 있으면 행복하게 해주려고 노력한다. 주위가 행복해지면 내가 더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주위 사람과의 연결을 바탕으로 ‘목표, 집중, 진실, 결단력’과 같은 삶의 철학을 가진 무랑기 장관. 그이처럼 더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려고 달려가는 사람이 진정 행복한 사람이다.

글 조현주 발행인  현지 진행 김상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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