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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뛰어봐, 힘들면 멈춰도 되니까Life style #1 러닝크루
최지나 기자 | 승인 2021.08.09 08:42

최근 SNS를 기반으로 함께 뛰는 사람들이 늘었다. 인스타그램 같은 온라인 공간에 달리기 일정을 올리면 댓글이 달리고, 같은 장소에 모여 뛰기 시작한다. 이렇게 정기적으로 달리기를 하는 모임인 러닝 크루Running crew는 혼자서도 할 수 있는 달리기를 더 즐겁게 할 수 있도록 해준다.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7월, 달리기를 좋아하는 96년생들의 모임 ‘96러너스’에서 김민기, 장은서, 최승민 씨를 만났다. 그들이 만끽하는 달리기의 즐거움을 전한다.

사진 왼쪽부터 ‘96러너스’ 멤버 최승민, 장은서, 김민기 (사진=박종도 기자).

달리기를 시작한 이유가 있을까요?

민기 군 제대 후 학교에 복학을 하고 보니, ‘대학을 다니는 동안 동아리 활동은 한번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렇게 학교 게시판을 찾던 중, ‘러닝 크루’를 알게 됐고, ‘크루’라는 이름이 너무 멋있어 보여서 신청했어요. 러닝 크루이다 보니까, 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달리기를 시작했어요. 매주 사람들과 모여서 달리고, 마라톤 대회도 나가면서 달리기의 매력에 푹 빠졌죠. 지금은 학교 내에 있는 러닝 크루와 96러너스처럼 외부 크루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은서 친한 친구가 ‘96러너스’에 있어서 오래 전부터 알고는 있었는데, 동참하기엔 겁부터 나더라고요. 제가 유산소 운동을 싫어하기도 했고, 워낙 장거리 달리기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거든요. 친구도 “러닝머신 뛴다는 생각으로 하면 안 된다.”라며 겁을 주기도 했고요.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 러닝 크루 안에 또래 친구들이 모여있는 걸 보니까 저도 같이 해보고 싶었어요. 재미있어 보였거든요. 처음엔 게스트로 한 번, 두 번 참석하다가, 지금은 96러너스 멤버가 된 지 벌써 1년이 다 돼가요.

승민 저는 군대에 있을 때, ‘전역을 하면 뭘 할까?’ 고민하며 버킷리스트를 적었어요. 그때 처음 동아 마라톤을 알게 됐는데, 서울과 공주, 경주 총 3지역에서 열리더라고요. 각 지역마다 완주를 하면 메달을 주고, 3지역을 완주하면 스페셜 메달을 준다길래, 제대를 하면 꼭 동아 마라톤에 출전해야겠다 싶었죠. 그렇게 전역 후 마라톤에 나가서 스페셜 메달을 땄어요. 거기서 만난 사람들 덕분에 러닝 크루를 알았고, 지금은 달리기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달리기를 시작한 이유는 각기 다르지만, 지금은 그 매력에 푹 빠지셨네요. 달리기의 매력을 꼽자면요?

민기 정답이 없는 게 매력인 거 같아요. 내가 뛰고 싶을 때, 뛰고 싶은 곳에 가서, 뛰고 싶은 만큼 뛰는 게 달리기잖아요. 거기다가 친구랑 뛰어도 되고, 혼자 뛰어도 되고요.

은서 달리기를 하다 보면 복합적인 감정을 많이 느껴요. 뛰는 동안에는 제 속에서 ‘완주할 수 있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올라오다가도 도착점에 다 다르면 그 성취감이 끝내주거든요. ‘와, 내가 이걸 해내다니…’ 싶고, 숨겨져있던 승부욕, 근성을 하나씩 발견하는 맛에 달리기를 계속하는 거 같아요. 나도 몰랐던 나의 능력을 마주하는 건, 엄청난 경험이니까요.

승민 2시간 동안 운동을 한다고 쳤을 때, 상대적으로 더 많은 풍경을 얻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게 좋아요. 그리고 목적지를 향해 가는 동안 지나치는 장소들을 하나씩 눈으로 담다 보면 제 삶이 더 풍부해지더라고요. ‘이 길에 이런 게 있었구나’ 하면서 몰랐던 것도 알아가고요.

혼자할 수 있는 운동이 달리기인데, 크루로 모여 같이 하는 이유가 있나요?

은서 옆에서 응원해 주면서 뛰면 덜 힘들어요. 제가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 너무 힘드니까 “더 이상 못하겠다. 죽겠다.” 하는 소리를 많이 했어요(하하). 그러면 옆에서 같이 뛰는 친구들이 “은서야, 네가 너를 잘 몰라서 그래. 너 스스로 못할 것 같다고 속이는 거야”라고 이야기해 주거든요. 그 이야기를 듣고 같이 으쌰 으쌰 하다 보면 어느새 고비를 넘기고, 뛰고 있어요.

요즘엔 코로나 때문에 혼자서 뛰는 일이 많아졌는데, 그 차이를 확연히 느껴요. ‘혼자라도 5km를 달려야겠다’ 싶어서 뛰다 보면 체감은 이미 5km 뛴 거 같은데, 2km 밖에 안 뛰었더라고요. 혼자 달리는 건 나와의 싸움이라서, 계속 나에게 말을 걸어줘야 해요. 그런데 그것도 한계가 있어서 어느 순간 멈출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친구들은 계속 저한테 말을 걸어주니까, 확실히 힘을 얻어요. 재밌기도 하고요.

민기 가장 큰 이유는 재밌어요. 은서 말처럼, 혼자 뛸 때보다 힘이 나요. ‘한 발걸음이 모이면 한 걸음 더 갈 수 있다’고들 표현하는데, 혼자 뛰면 한 세 걸음 갈 걸, 같이 뛰면 다섯 걸음 가더라고요. 신기해요. 저도 모르는 사이 힘이 나니까요. 승민 저는 혼자 있는 걸 잘 못해요. 그래서 운동도 같이 할 수 있는 걸 즐겨요. 최소 3~4명 이상 모이고, 협동심을 필요로 하는 운동을 좋아하죠. 그런데 질문하신 것처럼 달리기는 혼자 할 수 있잖아요.

떼어놓고 보면 개인의 발걸음이니까요. 저 같은 경우에는 혼자 하면 달리기를 오래 즐기지 못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때마다 같이 달릴 수 있는 사람들, 크루를 찾아요. 때로는 제가 이끌어주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이끌리기도 하면서요.

쉬운 운동은 없겠지만, 유독 달리기는 숨이 넘어갈 것 같은 고비가 오잖아요. 그럴 때 어떻게 하시나요?

민기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오면, 멈출 때도 있고 걸을 때도 있어요. 더 못 달리겠으면 멈춰도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멈추고 싶지 않을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느리더라도, 더디더라도 조금씩 가보자. 멈추지는 말자는 마음으로 100m, 200m를 걸어가요. 그렇게 가다 보면 또 어느새 도착해 있거든요.

은서 저도 민기랑 비슷한 거 같아요. 죽을 만큼 힘들면 멈추는 게 맞아요. 그런데 멈추기 전까지는 최선을 다하는 거 같아요. ‘오늘은 6㎞를 달려야겠다’ 나 스스로와 약속했는데, 4㎞ 즈음부터 고비가 오면 달려온 걸 생각해요. ‘반에 반도 안남았다.’ 하면서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뛰면, 그 고비가 지나가 있어요.

승민 저는 잘 몰랐는데, 제가 쇼맨십을 좋아하더라고요. 취미로 야구를 할 때도 쉽게 잡을 수 있는 공인데, 한 템포 느리게 움직여서 넘어지면서 잡았어요. 달리기를 하면서도 그냥 달리는 것보다 숫자에 의미를 부여해서 달려요. 96이라는 숫자를 정했다면 9.6㎞를 맞춰서 달리는 식으로요. 사실 달리다 보면 멈추고 싶은 순간이 굉장히 많아요. ‘오늘은 의미가 없네?’라고 느껴지면, 저는 멈춰요.

그런데 만약에 제가 96이라는 숫자에 맞추려고 했다면, 그건 어떻게 해서든 뛰어요. 뭔가 저와의 약속을 완수했다는 걸 인정받고 싶거든요.

완주를 목표로 출전했던 ‘10㎞ 마라톤’에서 은서 씨는 최고기록을 세웠다. 마라톤을 마친 후, 완주 메달을 목에 건 은서 씨.

달리기를 하면서 생긴 변화가 있나요?

민기 달리기의 매력은 정답이 없다는 거라고 했잖아요. 그게 제 삶에 큰 변화를 일으켰어요. 저는 MBTI가 ENFJ예요. 짜인 계획이나, 맞춰진 틀을 따르는 성격이죠. 중학교 시절까지 야구 선수로 활동했는데, 코치님의 말이나 감독님의 지시에 맞춰서 사는 게 당연했어요. 개인 일정도 훈련에 맞추는 게 익숙했거든요. 그렇다 보니 무얼 하든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 게 편했어요. 토익을 준비해야 된다고 하면 토익 공부를 하고, 대외활동은 이런 걸 해야 한다고 하면 그걸 하고, 어떤 자격증이 필요하다고 하면 취득하고…. 스스로 계획한 게 아닌, 이미 정해져 있는 순서대로 살다 보니 삶의 태도가 수동적이었죠.

그런데 달리기를 시작하고 나서 수동적이었던 태도가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변했어요. 스스로에게 깜짝 놀랄 만큼요. 어딜 뛰어야 한다는 정답이 없으니까 제가 원하는 코스를 짜보기도 하고, 제가 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저만의 계획을 세우는 거예요. 자유롭게 제 삶을 만들어가는 걸 보면, 저도 참 신기해요. 이게 가장 큰 변화인 거 같아요.

승민 저도 어떤 일이든 단계적으로 해나가는 걸 추구했어요. 그러다 보니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혹은 하고 싶지만 목표와는 상관없다는 판단에, 저한테 온 기회들을 많이 놓치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자유롭게 달리기를 하다 보니까, ‘내가 짜놓은 계획이 정답이 맞을까?’ 의문이 들었어요. 버킷리스트에서 시작된 달리기로 새로운 것들을 많이 경험했고, 즐거웠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저에게 오는 기회들을 그냥 놓치지 않고 최대한 다 해보려고 해요. 일정이 안 맞더라도 최대한 ‘안된다’라는 대답을 하지 않아요. 달리기로 이런 걸 배운 게 아닐까 싶어요.

은서 ‘내가 나를 잘 모르는 거야. 나는 할 수 있어’ 이걸 배운 거 같아요. 예전에 저는 어려울 것 같은 일은 ‘뭐 하러 이렇게 힘든 걸 해’ 하면서 쉽게 포기했거든요. 그런데 내가 가장 못할 것 같은 달리기를 하다 보니까, 다른 분야에도 도전할 수 있게 됐어요. ‘내가 안 해봐서 못한다고 생각하는데, 할 수 있어 해보자.’ 하면서요. 이런 태도를 삶에 하나씩 적응시키면서 살아보니까, 재밌어요. 삶의 반경도 넓어지고요.

이 운동을 하면서 소중한 순간이나 추억도 많을 거 같아요.

은서 저는 작년에 나갔던 ‘10㎞ 마라톤’이요. 사실 나가기 전부터 겁이 났어요. 포기만 하지 말자고 다짐할 만큼 완주를 목표로 출전했는데, 막상 나가니까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조금이라도 걸으면 속도에 악영향을 미치니까, 이것도 용납이 안돼서 평소보다 더 마음을 굳게 먹었어요. 그래서 평소보다 좋은 기록도 얻고, 마라톤 이후로 실력도 많이 성장했어요. 저에겐 성장의 근원이었죠.

조금은 무모했지만, 추억으로 남은 한라산 등반 당시 민기 씨. 하얀 눈이 쌓이 한라산의 절경이 사진에서도 느껴진다.

민기 저는 달리기로 만난 사람들과 함께한 순간들이 소중해요. 제가 2월에 승민이랑 한라산을 갔어요. 아침에 비행기를 타고, 도착하자마자 한라산 등반을 시작했죠. 백록담을 보고 내려왔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무모했던 거 같아요. 한라산 등반 밖에 일정이 없었거든요(하하). 그 무모한 도전을 혼자 하려면 못했을 텐데, 승민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해보고는 싶은데, 혼자서는 못하는 것들을 도전하게끔 해주는 게 좋더라고요.

달리기의 맛을 알려준 ‘동아 마라톤’에 출전했을 당시 승민 씨. 서울, 공주, 경주를 완주하며 딴 스페셜 메달이 눈에 띈다.

승민 19년도 여름에 어머니와 같이 유럽 여행을 갔어요. 제가 한창 러닝을 많이 뛰던 시절이었는데, 외국에 가니까 외국인들이랑 러닝을 너무 해보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로마에 있는 러닝 크루를 찾으려고 이탈리아어로 번역을 해가며 겨우 크루 장에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장소를 알려주셨어요. 그곳에 가보니 30명이 모여 계시더라고요. 저에게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셨는데, 제가 하나도 못 알아 들어서 대답은 하지 못했지만(하하), 말은 안통해도 러닝으로 만나 같은 풍경을 즐길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어요. 저한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에요.

운동 시작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은서 “일단 해봐라. 호기심과 흥미를 가지고.”

민기 “밖으로 나가서 한번 뛰어봐. 힘들면 멈춰도 되니.”

승민 “수영을 하고 싶다면 같이 가줄게. 러닝 한번 해볼래?” 러닝을 망설이고 있다면 같이 뛰어줄 수 있어요. 대신 저도 처음 해보는 것을 도전하는 거죠.

달리기를 시작했을 뿐인데 그들의 삶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자신도 몰랐던 숨겨진 능력을 만나기도 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용기도 생기고, 처음 달리기를 시작하는 사람의 숨소리에 귀 기울이며 완주를 돕는 페이스 메이커pacemaker가 되기도 하고 말이다.

인터뷰를 마친 뒤, ‘오늘 하루라도 달리기를 해보면 어떨까?’ 싶어 운동화를 신었다. 당장이라도 멈추고 싶다면 멈춰도 되니, 일단 시작해 보는 거다. 그럼 변화의 시작이 될 테니 말이다.

최지나 기자  4153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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