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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도와준 나라에 찾아가서 우리가 배우는 많은 것들Cover Story
최지나 기자 | 승인 2021.08.03 16:30

지난 달, 어느 방송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푸에르토리코 용사들의 근황을 소개했다. 뉴스 내용에는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청춘을 헌정한 참전 용사들을 한국의 대학생들이 찾아가는 장면이 나왔다. 아흔 살이 넘은 그분들이 한국에 왔을 때의 나이 정도로 보이는 청년들이 푸에르토리코까지 봉사를 가서 감사의 시간을 가졌다는 게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얼마 뒤, 뉴스에서 본 청년들과 연결이 되었다. 푸에르토리코 곳곳을 다니며 한국을 알리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전한다.

8월호 표지모델은 푸에르토리코로 해외봉사를 떠난 박은유, 임현주, 박선영, 이로데 (왼쪽부터) 4명의 대학생이다. 그들은 표지 촬영을 위해 세계 10대 해변으로 유명한 쿨레브라 섬의 플라멩코 비치를 찾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해변은 생전 처음 본다’라며 즐겁게 촬영에 임했다.

Q.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을 푸에르토리코에서 만난 모습이 뉴스에 방영됐습니다. 소감이 뜻깊을 것 같습니다.

박은유: 71년 전, 이 나라의 청년 6만1천 명이 한국전쟁에 파견됐는데, 참전국 이름은 미국으로 표기되었습니다. 푸에르토리코가 미국의 자치령이어서 그랬습니다. 해외봉사를 오기 전까지 저는 이 나라에 참전 용사들이 계신지도 몰랐습니다. 와서 보니 아직도 많은 분들이 한국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젊음을 한국의 자유 수호에 바친 그분들께 감사를 표하고 싶어 단원들과 함께 한 분 한 분 찾아뵙기 시작했습니다.

임현주: 다 같이 방문해서 작은 선물을 드렸습니다. 어느 할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한국전쟁 당시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그분은 5천 명으로 이뤄진 연합군 부대 소속으로 5만 명의 적군과 맞서 싸웠답니다. 그러다 쓰러졌고 한참 뒤 정신을 차려 보니 주변에 전우들의 주검이 여기저기 쌓여 있었습니다. 함께 자고, 함께 싸웠던 전우들을 한순간에 잃은 그날의 슬픔을 할아버지는 지금까지 생생히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전쟁을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이야기를 들으며 얼마나 비통한 경험이었는지 조금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박선영: 우리는 대한민국이 잘살게 된 뿌리를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참전 용사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다 보니, 피 한 방울 나누지 않은 누군가의 희생과 사랑 덕분에 우리의 오늘이 가능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습니다. 다 갚을 순 없지만, 감사와 위로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용기 있는 사랑이 한국과 푸에르토리코의 다음 세대들에게도 알려져 잊혀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로데: 한국의 어버이날처럼 푸에르토리코에는 ‘아버지의 날’이 있습니다. 그날 우리는 바야몬 시에 위치한 국립묘지를 찾아 그곳에 안치된 참전 용사들의 묘비를 닦고 청소를 했습니다. 거기에서 우연히 참전 용사 유가족을 만났는데, 그분들이 우리의 모습에 감격하셔서 펑펑 우셨어요. 한번은 95세 된 참전 용사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혼자 사시다 보니 집안 곳곳에 손길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허락을 받고 우리는 집안과 마당을 깨끗이 청소해드렸습니다. 고마워하는 할아버지의 눈빛을 보니 이런 활동을 계속 하고 싶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65보병연대 대원들이 총격전이 끝난 뒤 기념촬영을 했다. 포즈를 취한 사람들은 주로 푸에르토리코 병사들인데, 스페인어를 구사하고 콧수염을 기르고 있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고 한다. 출처: 미 국방부 홈페이지

한국전쟁 당시 UN군 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은 “강력한 제65보병연대로 결속된 푸에르토리코 병사들은 용맹과 의지, 결단력,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영웅처럼 싸우고 승리하고 있는 그들이 내 지휘하에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라고 말해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의 뛰어난 정신과 용맹을 높이 기렸다. 국토가 제주도 다섯 배 크기로 작은 나라지만, 푸에르토리코인들의 정신력은 결코 작지 않았다. 어떤 나라인지 궁금해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Q. 푸에르토리코에 대해 각자 느끼는 바를 소개해주세요.

임현주: 북대서양과 카리브 해 사이에 있는 섬나라입니다. 영어와 스페인어가 공용어인데, 400년간 스페인의 지배를 받아서 스페인어가 더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푸에르토리코라는 이름도 스페인어로 ‘부유한 항구’라는 뜻인데요, 스페인의 정복 전쟁 당시 물류 기지로서 전성기를 누리면서 그렇게 불렸다고 합니다.

그러다 1898년에 미국과 스페인 사이에 전쟁이 있었고 미국이 승리하면서 그때부터 미국의 군정軍政을 받았습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에 미국의 자치령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박선영: 푸에르토리코는 특히 하늘과 바다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경치만큼 아름다운 사람들도 많은 나라입니다. 제가 만난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은 항상 타인을 반갑게 맞이하고, 먼저 말을 겁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누구를 만나든지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집에 있는 걸 좋아했는데 여기에 와서는 매일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납니다. 사람 만나는 즐거움과 행복을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이로데: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 나라 국민들은 자기 나라를 정말 사랑합니다.

“푸에르토리코 음식 중에 뭐가 제일 좋아?” “여기서 지내는 데 어려움은 없어?” “어떤 문화가 마음에 들어?” “푸에르토리코를 얼마나 사랑해?” 등등 우리에게 자기 나라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합니다. 우리도 “코노세 라 코미다 김치?(김치 아세요?)” 하면서 한국의 전통 음식을 아는지 묻기도 하고, 우리나라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이 유명한지 알려주곤 합니다. 우리가 한국을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은 자신의 나라와 문화를 무척 사랑하는 걸 느낍니다.

Q. 밝게 인사를 건네는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의 다정한 모습이 그려지네요. 그런데 지금은 코로나 시대라서 해외로 봉사를 가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박은유: 저는 작년에 대학에 입학했는데 수업은 온라인으로만 들었습니다.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는 것과 온라인 수업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집중도 안 되었고 성취감도 떨어졌습니다. 다음 해에도 이렇게 학교를 다녀야 할지 고민이 되더군요. 지금 같은 시기에 무엇을 해야 나에게 도움이 될지 생각하던 중에, 어머니께서 해외봉사를 추천하셨습니다. 듣고 보니, 코로나 때문에 지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을 텐데 싶어서 해외봉사를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비자가 나오지 않는 국가가 많았습니다. 제가 가고 싶었던 곳은 남태평양에 위치한 섬나라였는데 그곳도 입국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던 중 푸에르토리코라는 신기한 이름의 나라를 알게 되었고, 해외봉사가 가능하다고 해서 목적지를 바꾸었습니다.

박선영: 저는 ‘대학생이 되면 꼭 해외봉사를 가야겠다’는 버킷리스트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올해 갈 생각은 없었어요. 코로나가 진정되면 그때 가려고 했거든요. 어느 날 뉴스에서,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바이러스로 사망했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고 힘들어하는 것을 보았어요. 학교에 가지 못하는 학생들, 병원에 가지 못하는 환자들… 어려움을 겪는다는 소식에 ‘이렇게 어려운 때야말로 해외봉사를 할 때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떠날 준비를 시작했어요. 하지만 하루라도 빨리 떠나고 싶은 제 마음과 다르게, 코로나가 점점 심각해지면서 일정이 자꾸 미뤄졌습니다. 3월에 출발하려고 했는데 6월이 다 되어서야 여기에 도착했습니다.

코리안 아카데미를 마치고 참석한 학생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Q. 이제 두 달 남짓 푸에르토리코에서 지냈는데, 어떤 활동들을 하셨나요?

임현주: 푸에르토리코 본섬의 동쪽에 ‘쿨레브라’라는 아름다운 섬이 있습니다. 가끔 그곳에 사는 학생들을 만나러 갑니다. 학생들을 처음 만났을 때에는 한글로 자신의 이름 쓰는 것을 가르쳐주었고 색종이로 한복 만드는 활동을 했습니다. 학생들이 열심히 함께해주어서 고마웠습니다. 제가 스페인어가 서툴러서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걱정이 많았는데, 제 한마디 한마디에 귀 기울여주고 차근차근 따라와 준 학생들 덕분에 더 즐겁게 수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주에도 쿨레브라를 가는데요. 또 어떤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박은유: 푸에르토리코 학생들에게 한국 인기가 매우 높습니다.  K-pop 덕분 같아요. 한국 문화에 대한 궁금증도 많고, 이미 한글을 배우고 있는 학생들도 있고요. 그래서 우리는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에 ‘코리안 아카데미’ 클래스를 열고 있습니다. 한국의 놀이 문화, 전통 음식, 드라마 등 한국에 관한 영상을 만들어서 보여주고, 그외에도 한국의 여행 명소나 관광지도 소개합니다. 한글 수업 시간에 종종 우리들이 사용하는 유행어도 가르쳐주면 학생들이 정말 좋아합니다. 아직은 이 모든 수업이 줌 화상으로 이뤄지지만 코리안 아카데미에 참석하는 학생들의 행복을 느낄 수 있어요. 

박선영: 얼마 전에는 지진 피해를 입은 학교를 찾아가 학교 내부와 식당을 청소하고, 깨진 유리창을 치우고, 창틀을 떼서 깨끗이 닦았습니다. 청소 후에는 학교 벽에 페인트칠도 했고요. 우리뿐 아니라 교장 선생님과 자녀들도 함께했는데요. 서로 도우면서 이야기도 나누니 몸은 고됐지만 정말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청소를 다하고 학교를 보니 깨끗하고 깔끔해져서 뿌듯했습니다.

지진 피해가 있었던 포비아 초.중등학교를 찾아 청소를 한 뒤, 페인트 칠을 하는 봉사단원들의 모습.

Q. 하루가 매우 빠르게 지나갈 것 같은데, 가장 행복한 시간을 꼽자면요.

이로데: 저는 푸에르토리코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직접 만나지 못하는 날은 SNS로 대화를 해요.

박은유: 여기에는 한국에 없는 맛있는 음식들이 많습니다. 한국의 닭꼬치 비슷한 ‘핀초’와 코코넛과 파인애플을 섞어서 만든 ‘피냐콜라다’ 음료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입니다. 저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음식을 처음으로 한 입 베어 무는 그 순간이 가장 설레고 행복합니다.

임현주: 이곳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가지의 일들이 일어나요.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잘 기억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저녁 일기를 쓰면서 일어난 일들을 되돌아보고, 생각을 정리해보곤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제가 놓친 행복들을 발견할 때가 많아요. 그래서 일기 쓰는 시간이 가장 행복합니다. 

박선영: 저는 망고를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해요. 우리가 지내는 집 뒷마당에 망고나무가 여러 그루 있어요. 요즘이 망고가 제철이라 아주 잘 익었습니다. 뒷마당에서 망고를 따서 여럿이 둘러앉아 먹는데, 저는 망고를 원 없이 먹을 수 있는 이 시간이 기다려져요.

Q. 지금 이 순간들은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기회일 텐데요.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요?

이로데: 이곳에서는 하루를 일찍 시작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정이 빼곡히 잡혀 있거든요. 이런 생활을 하면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를 느끼고 있습니다. 분명히 많은 일을 하는데도 언어 공부를 할 시간도 따로 확보할 수 있게 되었어요. 여기에서 보낸 시간들을 나의 성장 발판으로 삼고 싶어요. 시간 활용법만 제대로 배워도 여태껏 미뤄왔던 일들을 하나씩 해나갈 수 있을 거예요.

박은유: 푸에르토리코에는 저와 성격이 다른 사람들이 많아요. 자라온 환경도 다르고 삶의 가치관도 다르니까요. 그런데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다 보면 ‘나랑 안 맞아’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저는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사귀고 싶어요. 이 시간이 아니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흔치 않을 것 같거든요.

박선영: 우리는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틈틈이 보도자료 작성법, 포토샵, 시나리오 작성법 등도 배우고 있습니다. 지부장님이 이 분야 전문가들을 화상회의로 초빙해서 강의도 듣게 해주세요. 그 덕분에 체계적으로 배워갈 수 있어요. 지금은 초보라서 어설프고 부족하지만, 꾸준히 공부하다 보면 제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이곳에서 배우는 모든 것들을 허투루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요.

임현주: 푸에르토리코에서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제 삶도 달라지고, 푸에르토리코도 달라질 거라 믿어요. 한국의 참전 용사들께서 지금도 한국을 기억하고 그 시간의 영향을 받는 것처럼, 또 그분들의 희생이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밑거름이 된 것처럼요. 그래서 되도록 가치 있게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피곤해도 달려가고, 때로는 희생도 하면서요.

미겔 카르도나 미국 교육부 장관을 만났다. 푸에르토리코 사람인 미겔 장관은 부모님의 고향인 푸에르토리코에 장관이 된 후 처음으로 방문했다. 바쁜 일정에도 한국에서 온 봉사단원들을 따뜻하게 격려해 주셨다.

도착이 지연되어 예상보다 늦게 시작한 해외봉사지만, 이들의 하루 일정은 여느 사람의 일주일과 맞먹을 만큼 밀도가 높았다. 거기서 지내는 이야기를 듣고 활동한 사진들을 보면서 시간의 길이는 행복의 총량과 비례하는 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렬한 햇살 아래서 부지런히 다니는 이들의 하얀 얼굴이 귀국할 땐 검게 그을려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행복을 누린 흔적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들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푸에르토리코 용사들을 만나 깊은 감사를 느꼈던 것처럼, 이들을 만났던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이 “봉사 온 한국 학생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라고 하며 기억해주길 바란다.

글 최지나 기자   현지 진행 윤선미 특파원

최지나 기자  4153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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