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서 소망을 가지고 행복한 눈으로 주위를 보면, 신기하게도 우리 마음은 행복한 생각을 만들어내고 삶도 행복해진다.

형제가 살인을 했다고요?

“형제, 형제는 죄명이 뭐예요?”

“저, 저, 저는 살인에 살인 미수입니다.”

“뭐라고요? 형제가 살인을 했다고요?”

믿어지지 않았다. 파리 한 마리도 죽일 수 없을 것 같은 순한 사람이 어떻게….

나는 10년 동안 수원교도소와 대전교도소에서 교화위원으로 일한 적이 있다. 하루는 수원교도소의 교무과장이 잡지에서 내 글을 읽고 나에게 전화를 했다. “목사님, 수원교도소에 한 번 오십시오.” 그렇게 부탁받은 것이 인연이 되어 수원교도소와 대전교도소의 교화위원으로 매주 월요일 오후면 교도소에 찾아가 재소자들과 사귀면서 지냈고, 또 그들을 교화하는 일을 했다.

그 일을 하면서 재소자들을 도와주기도 했지만 그들을 통해서 내가 배우는 것도 많았다. 교화 시간을 마치면 재소자들과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재소자들이 마음에 있는 문제를 꺼내놓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서로 마음을 열고 이야기하는 그 시간이 나에게 참으로 유익했다.

교도소 재소자들 중에 대대장, 중대장, 소대장이 있다. 이들은 교도소의 모범수들이다. 대대장은 상의 가슴에 벌 세 마리가 있고, 중대장은 두 마리, 소대장은 한 마리가 있다. 교도소에서는 벌 두 마리가 있으면 어디든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 소대장은 벌이 한 마리여서 혼자서는 그럴 수 없지만, 다른 소대장과 같이 있으면 벌이 두 마리가 되어 어디든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 벌을 세 마리 단 대대장은 다른 사람을 데리고 어디든 다닐 수 있다.

앞에 이야기한 그 사람은 가슴에 벌이 세 개 있는 대대장이었다. 나는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그처럼 겸손하고 마음이 고운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는 정말 조용하고 착했다. 그는 내가 교도소에 가서 강연할 때마다 재소자들을 모아주고, 또 강연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어느 월요일 오후에 둘이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이 사람은 도대체 무슨 죄를 지어서 여기에 왔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도소에서 재소자에게 죄명을 묻는 것은 실례지만 너무 궁금해서 불문율을 어기고 묻고 말았다. “형제, 형제는 죄명이 뭐예요?”

내 가벼운 입이 그만 큰 실수를 하고 만 것이다. 둘이 사이좋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분위기가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듯 바뀌었다. 그의 얼굴이 벌게지더니 모기 소리만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살인에 살인 미수입니다.”

그가 얼마나 당황해하며 답을 하던지, 듣던 내가 더 놀랐다. ‘아뿔싸, 내가 큰 실수를 했구나.’ 아무 말 없이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잠시 뒤에 내가 입을 열었다.

“믿어지지 않네요. 형제는 파리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할 것 같은데 살인을 했다고요? 거기에다 또 살인 미수라고요?”

그날은 그 정도로만 이야기하고 마쳤다. 우리는 서로 조용히 얼굴만 바라보고 있다가 헤어졌다.

그런 슬픈 사연이 있었구나

살인할 사람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든지 살인을 하면 살인수가 된다. 그렇더라도 그 사람은 어딜 봐도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게 착하고 공손하고 고운 사람이 살인을 했다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 믿어지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다시 교도소 안에 있는 어느 사무실에서 마주앉았다. 그가 한참 주저하다가 자신이 어떻게 사람을 죽였는지 울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결혼해 두 아이가 있는 가장으로서 직장생활을 성실히 했다. 행복하게 살고 있었는데 어느 때부터 아내가 뭔지는 몰라도 자기를 속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가 춤을 추러 다닌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내가 그렇게 지낸다는 사실이 그의 마음을 괴롭게 만들었다.

멀리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춤은 생활의 일부다. 누구든지 북소리만 들으면 자연스럽게 엉덩이가 뒤로 나오고 두 손이 어깨 위로 올라가면서 신나게 춤을 춘다. 남자나 여자 할 것이 춤에 젖어 있는 동안 모든 것을 잊는다. 아이가 말라리아에 걸린 일도, 다른 불행한 일도, 엉덩이를 흔들면서 한바탕 신나게 춤을 추고 나면 슬픔도 괴로움도 다 잊는다. 그들에게 있어서 춤은 버릴 수 없는 삶의 일부다.

그러나 중년의 남녀가 추는 춤에 대해 한국 사람들의 생각은 많이 다르다. 낯선 남자와 여자가 어두컴컴한 홀에서 서로 맞잡고 춤을 춘다고 생각하면, 별별 상상이 다 떠오른다. 그 사람도 자기 아내가 낯선 남자와 그렇게 맞잡고 춤을 춘다고 생각하니 분노가 치밀었다. 그래도 마음을 가다듬고 아내에게 춤을 추러 다니지 말라고 조용히 부탁했다. 아내는 그렇게 하겠다고 여러 번 대답을 했지만 춤을 추러 다니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다. 춤 때문에 부부 사이에 다툼이 자주 일어났다. 그렇게 아내와 다투면서 알게 된 사실은, 처형이 자기 아내를 데리고 춤을 추러 다닌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매일 처형과 전화 통화를 했구나.’

그는 처형 집으로 달려갔다. “처형, 부탁이에요. 제발 우리 집사람 집에 있게 놔두세요.”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처형이 “내 동생 데려다가 고생만 시키는 주제에 네가 뭔데 나보고 이래라저래라 그래?” 하고 경멸하는 말을 그에게 퍼붓기 시작했다. 처형은 평소에도 그 사람을 무시했다. 처형이 자기에게 쏟아내는 경멸의 소리를 들으며 그는 순간 머리가 핑 돌았다. 안 그래도 무시당해서 마음에 맺힌 것이 많았기 때문에 이성을 잃고 말았다.

얼마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처형이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고, 그는 손에 피 묻은 칼을 들고 있었다. ‘내가 사람을 죽였구나, 내가 사람을 죽였어….’ 그는 칼을 든 채로 집밖으로 나와 소리쳤다.

“다 나와! 다 죽여 버릴 거야!”

그렇게 떠들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고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니 어떻게 살인자가 되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랬구나. 그런 슬픈 사연이 있었구나.’

왜 그렇게만 생각을 해요?

그 사람이 자신이 어떻게 죄를 지었는지 이야기한 뒤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제가 교도소에서 나가면 쉰 살이 됩니다. 그 나이에 교도소에서 나가면 사람들이 다 살인수라고 손가락질하겠지요. 그런 사람에게 누가 직장을 주겠습니까? 그러면 사는 게 말이 아니겠지요. 그래서 저는 ‘이런 세상 살아서 뭐해? 어차피 망친 인생, 내 인생을 이렇게 망친 인간들에게 본때나 보이고 죽자’라고 생각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나가서 제 인생을 이렇게 엉망으로 만든 사람들에게 복수하려고 모범수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는 성품이 정말 곱고 조용한 사람이었지만, 마음에는 쉽게 말하지 못하는 분노가 있고 악한 생각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또 다른 죄를 계획하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왜 그렇게만 생각을 해요? 아이들이 아버지를 얼마나 기다릴지 생각해 봤어요? 아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 꽃다발을 들고 가서 ‘장하다, 우리 아들!’ 하면서 축하해 주면 아들이 얼마나 행복해 하겠어요? 아들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손자가 생겨요. 할아버지가 되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알아요?”

그는 사랑하는 두 자녀가 행복하길 바라지만,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생각하면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아들이 몇 살이에요? 출소하고 얼마 지나면 아들이 장가갈 나이가 되겠네요. 그때 아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해 봐요. ‘너도 결혼할 나이가 되었지? 사귀는 여자가 있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야? 바이올린을 연주한다고? 그래, 이번 주말에 내가 두 사람에게 점심을 사고 싶다. 어느 식당이 좋을까? 그때 바이올린을 가지고 와서 내게 연주를 해주면 좋겠구나. 이제 우리가 아름다운 음악을 종종 듣겠지? 여자 친구에게 우리 교회에 와서도 연주하라고 하면 좋겠다. 내가 목사님께 우리 며느리 될 사람이니 찬송을 연주하게 해달라고 부탁드릴게. 결혼하면 아이는 몇 명을 낳을 생각이니? 아들, 딸, 아들 이렇게 셋을 낳으면 좋겠다.’ 그렇게 아들과 대화를 해보면 얼마나 좋아요?”

내 이야기를 듣고 그가 새 마음을 가졌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좌절과 분노 속에서 살았는데 나도 다시 앞날의 행복한 삶을 꿈꿀 수 있구나…’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돌이켰다.

그를 만날 때마다 나는 소망스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당장 좋은 일들이 생기지는 않겠지만, 편지로라도 ‘아들아, 너는 나에게 이렇게 기쁨을 주는구나!’ 하고 희망을 적고 꿈을 담아서 아들에게 보내 봐요. 그러면 아이들이 얼마나 기뻐하겠어요?”

행복한 눈으로 주위를 돌아 보면

그는 몇 년을 감형 받아서 예상보다 일찍 출소했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좋은 모범수였기 때문에 주위에서도 다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뒤 그는 아주 착한 여자를 만나 결혼했다. 아내는 어렵게 살다가 만난 그를 무척 사랑했고 서로 사이가 좋았다. 언제 우리 인생에 어두운 날들이 있었냐는 듯이 부부는 행복하게 살았다. 부부 사이에 낳은 아이들도 훌륭하게 성장했다. 어쩌다 한 번씩 그를 보면, 지금도 여전히 조용하고 곱다.

어두운 밤이 되면 ‘밝은 날이 다시 찾아올까?’ 싶지만, 아침이 오면 밝은 날이 어김없이 찾아오듯이, 그 사람은 언제 불행한 날들이 있었느냐는 듯이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다. 성실하게 일해서 큰 부자는 아니어도 차도 사고 집도 마련했다. 교회에 가서 사람들과 대화하며 즐겁게 지낸다. 세월이 제법 흘러 흰 머리카락이 하나 둘 보이고 있지만 조용한 성품은 여전하다. 누구보다 좋은 가정을 이루어 과거에 생각지 못했던 복된 삶을 살고 있다. 그가 행복해 보이고, 아름다워 보인다.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이다. 절망적인 면을 보면 절망만 생각한다. 반대로 소망을 가지고 보면 우리 마음이 매일 소망과 기쁨을 만든다. 마음에서 소망을 가지고 행복한 눈으로 주위를 보면, 신기하게도 우리 마음은 행복한 생각을 만들어내고 삶도 행복해진다. 하지만 절망을 생각하면 마음이 어두운 생각을 계속 만들어내 삶도 절망적으로 만든다.

글쓴이 박옥수  

국제청소년연합 설립자이며 목사, 청소년문제 전문가, 마인드교육 권위자이다. 성경에 그려진 마음의 세계 속에서 사람의 마음이 흘러가는 길을 찾아내, 이 내용을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나를 끌고 가는 너는 누구냐>를 비롯해 5권의 마인드북과 <마인드교육 원론 >을 집필했고, 60권의 신앙서적을 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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