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투머로우

상단여백
HOME Special Issue
아들아, 시간되면 따뜻한 밥 한끼 먹고 가거라가족, 진심을 마주하다
최지나 기자 | 승인 2021.05.26 11:19

내가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아버지가 많이 아프셨다. 죽을 고비를 넘기실 때마다 나는 급히 휴가를 나왔고, 아버지는 세 번째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오랫동안 해외에서 근무해 아버지 없이 사는 것이 익숙해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버지의 빈자리가 유난히 컸다. 우리 가족은 가뭄에 쩍쩍 갈라지는 땅처럼 마음이 메말라 갔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나는 나대로, 동생은 동생대로 각자 힘든 시간을 보내느라 서로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나는 제대한 후 대학에 복학했다.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던 아버지가 안 계시니 스스로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해야 했다. 수업을 마치면 아르바이트를 했고, 새벽이 다 되어서야 책상에 앉을 수 있었다. 집안의 든든한 지원을 받는 친구들이 부러웠고, 넉넉지 못한 집안 형편이 원망스러웠다. 아르바이트가 늘어나고 몸이 힘들어질수록 그 원망의 화살은 자연스레 어머니를 향했다.

어머니는 나이 오십이 되도록 가정주부로 사셨다. 아버지는 출장이 잦아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집을 많이 비우셨고 마흔이 넘어서는 해외 발령으로 외국에서 근무하셨기 때문에, 그런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가 집안의 일들을 다 처리하셨다. 어렸을 때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당연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는 집안의 경제를 돌아보지 않는 어머니가 답답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답답함과 원망은 커져 갔고, 결국 어머니에게 원망을 쏟아냈다. 불만이 가득한 나에게 어머니도 답답한 심정에 화를 내셨고, 나는 질세라 더 모진 말들을 내뱉었다. 집에만 가면 다툼이 끊이질 않았다. 그렇게 싸우는 것에 지쳐 나중엔 어머니의 문자나 전화에 답하지 않았고, 집에 가지도 않았다. 내가 가장의 짐을 지길 내심 원하시는 할머니나 친척 분들의 시선도 싫어 명절에도 고향에 가지 않았다. 몇 년을 그렇게 보냈다.

어머니와 단절한 채 지내는 동안에도 동생과는 종종 연락했다. 나보다 어린 나이에 힘든 시간을 보낸 동생이었기에, ‘나도 이렇게 힘든데 동생은 얼마나 힘들까?’라는 생각에 신경이 쓰였다. 동생과 통화하면서 어머니 소식이나 집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동생은 이따금 ‘그렇게 문을 닫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니 엄마와 이야기해 보라’고 잔소리를 해주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어머니가 장문의 문자를 보내셨다.

“아들아, 요즘은 대학 근처에서 지낸다는 소식을 동생한테 들었다. 밥은 잘 먹고 아픈 데는 없는지 궁금하구나. 네가 집에 다녀가면 엄마는 며칠을 앓았다. 갑작스레 아빠도 세상을 떠나셨는데 너마저 나를 떠난다는 생각에 온 몸이 아프더구나. 엄마가 능력이 없어서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나이 오십이 넘어서 첫 직장을 구하려고 하니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아버지가 그렇게 가시고 엄마도 우울증이 찾아와 많이 힘들었다.

너희들이 오면 아픈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숨기기 바빴는데…, 너희도 힘든 시간을 보낼 때 엄마로서 먼저 다가가 이야기해주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그땐 아픈 걸 꺼내기보단 안 보이게 잘 싸매다 보면 덤덤히 이겨낼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더 상처가 된 것 같구나. 아들아, 시간 되면 집에 와서 따뜻한 밥 한끼 먹고 가거라. 엄마가 항상 기다리고 있다.”

문자를 읽고 한동안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사실 나도 어머니가 많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신 것도 충격인데, 돈을 벌어본 적 없는 분이 대학에 다니는 두 자녀를 어떻게 키울지 앞이 캄캄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하실 수 있는 만큼, 행여 우리가 굶을까봐 얼린 국과 김치와 반찬들을 다달이 보내주셨다. “하나씩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먹거라.” 함께 적어 보낸 종이쪽지는 어머니가 하실 수 있는 가장 큰 마음의 표현이었다. 그걸 알지만 내가 힘들어서 어머니의 사랑을 외면했다. 그래서 사과할 사람은 어머니가 아니라 나인데….

이튿날 나는 집으로 갔다. 어머니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따뜻한 밥을 차려 주셨다. 아무런 말도 주고받지 않았지만, 밥상에는 아들의 불효를 용서한 사랑이 차려져 있었다. 오랜만에 먹는 어머니 음식이 달고 맛있었다.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씩 시간을 내서 어머니를 뵈러 간다.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어머니가 보고 싶다. 어머니를 뵙지 못한 몇 년 동안에 곱던 얼굴에 주름이 깊어지고 흰머리도 많아졌다. 야속하리만큼 시간이 빠르다는 걸 느끼며, 그 시간 동안 어머니를 향해 문을 닫고 지낸 게 죄송하고 못내 아쉽다.

글 김석훈

최지나 기자  415362@naver.com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지나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1
전체보기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