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진심을 마주하다

어깨동무하며 활짝 웃은 어머니와 아들의 모습이 너무나 정겹다.
어깨동무하며 활짝 웃은 어머니와 아들의 모습이 너무나 정겹다.

내가 태어난 지 두 돌이 채 되기 전,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다리 한쪽을 잃으셨다. 갑작스러운 불행에 어머니는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가셨다. 아버지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나와 동생을 키우기 위해 백방으로 일을 다니셨고, 2년 후 새어머니를 만나 재혼하셨다.

새어머니는 우리를 친자식처럼 길러주셨다. 아버지가 일을 나가시면 어머니가 그 빈자리를 가득 채우셨다. 손이 많이 가는 우리 형제를 먹이고, 재우고, 학교를 보내시고, 부족한 것은 없는지 살피셨다. 덕분에 결핍을 경험하지 않고 자랄 수 있었다.

고등학생 시절, 나는 학교 기숙사에서 지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는 전국기능경진대회를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사건이 터졌다. 한 살 터울인 동생이 주민등록 초본을 발급받고는 어머니가 ‘새’어머니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이다. 그 충격으로 동생은 하루가 멀다 하고 어머니와 싸우고, 온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아버지가 해결해 보려고 노력했으나 혼자 힘으로는 그 싸움을 감당하지 못해 급한 마음에 내게 전화를 하셨다. 기숙사에서 전화를 받은 나는 놀란 마음에 집으로 뛰어갔다.

집은 엉망진창이었다. 집 안에는 서로 소리를 지르며 싸우고 있는 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동생을 말리는 아버지가 계셨다. 그때 처음 실의에 찬 아버지를 보았다. 불편한 몸으로 온종일 일하고 집으로 돌아오셔도 우리 형제에겐 언제나 한없이 밝으신 분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무척 존경하고 좋아했다. 그런데 고통스러워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본 순간, 나는 이 일을 어떻게든 빠르게 해결하고 싶었다. 그리고 엄마와 동생이 붙어 있으면 싸움이 끝나지 않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머니, 이 집에서 당장 나가주세요.”

“…….”

“어머니가 집에 계시면 동생과 계속 마주치고 싸워야 하잖아요. 어머니만 없으면 될 일이에요. 그러니까 어머니가 나가주세요!”

어린 나이에, 그 싸움을 멈추기 위해선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끝나지 않는 싸움에 지칠 대로 지치신 아버지도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나는 그렇게 어머니를 내쫓고, 기숙사에서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왔다.

싸움을 멈추면 아버지의 고통도 멈출 거라 생각했고, 어머니를 대신해서 아버지를 모시며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집에 들어와 보니, 남자 셋이 산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빨래며 청소며 집안일은 뒤만 돌아서면 쌓여갔다.

어머니의 빈자리가 컸음에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그것이 가족을 위한 최선이라며 나의 선택을 정당화했다. 종종 어머니가 찾아와도 힘든 내색 없이 ‘잘살고 있으니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 하며 다시 어머니께 상처를 주며 내쫓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내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나는 성인이 되어 군대에 갔고, 동생도 마찬가지로 군대에 갔다. 그리고 제대한 후에는 취업해 직장 근처로 따로 나와 살았다. 결국 아버지를 모시고 살기는커녕, 아버지는 혼자가 되셨다.

독립하고 보니, 아버지 옆에서 아버지를 보살피며 살 수 있을 거란 내 생각이 얼마나 짧았는지 깨달았다. 아버지를 혼자 있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나라는 생각에 몹시 죄송했고, 아버지를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어머니라는 걸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았다.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아들은 주말이면 어머니 가게에 가서 바쁜 일손을 돕는다.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아들은 주말이면 어머니 가게에 가서 바쁜 일손을 돕는다.

그러던 중 아버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와 다시 합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 당시 나는 강원도 지역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 소식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외모도 볼품없고 몸도 불편하신 아버지인데, 어머니가 그런 아버지 곁을 지키신다는 결정에 정말 감사했다.

나도 어느새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어머니와 가까운 곳에 살며 자주 왕래하고 있다. 어머니는 국숫집을 운영하시는데, 음식 솜씨가 좋아 점심시간이 되면 손님들로 가게가 북적인다. 덕분에 나도 쉬는 날이나 일이 한가할 때 어머니 가게를 찾아 일손을 거둔다. 그럴 때면 어머니가 손님들에게 아들 자랑을 하느라 더 바쁘시다.

며칠 전에는 어머니가 울면서 전화를 하셨다.

“사람들이 네가 내 친아들이 아니라고 하는데, 그게 맞는데…, 나는 네가 정말로 내 친아들이었으면 좋겠다.”

모질게 자신을 내쫓은 아들을 사랑하시는 어머니, 그 아들이 친아들이 아니라며 마음 아파하시는 어머니, 나는 어머니의 그 사랑에 오늘도 죄송함과 감사함을 안고 국숫집으로 향한다.

글 유용선 사진 안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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