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너는 어쩜 이렇게 밝아?”

나는 쾌활한 성격 덕에 어릴 적부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와도 쉽게 친구가 되었다. 나를 처음 보는 어른들은 밝은 성격을 칭찬하시곤 했다. 공부에는 썩 소질이 없었지만 발표를 잘해 많은 상을 타기도 했고, 긍정적인 성격 덕에 웬만한 어려움엔 잘 넘어지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지난해 1월, 나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캐나다로 해외봉사를 떠나면서도 걱정이 없었다. 물론 낯선 나라에서 단체생활을 하며 지내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맡은 바 최선을 다해 완벽한 봉사활동을 하고 오겠다고 다짐했다.

아토피와의 재회

처음 캐나다에 도착하고 얼마 되지 않아 코로나 단계가 심각해졌고, 많은 활동이 취소되고 말았다. 그때만 해도 나는 ‘그래,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온라인으로 활동하면 되지!’ 하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며 지냈다.

그런데 얼마 후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입술과 몸에 아토피가 다시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살이 옷에 닿을 때마다 가려웠고, 잠이 들면 나도 모르게 긁어 상처가 나기도 했다. 부모님이 한국에서 보내준 아토피 약도 먹어봤지만 차도가 없었다. ‘캐나다에서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어!’라고 외치던 자신감은 어느새 사라졌다. ‘내가 여기서 도대체 뭐하고 있는 거지… 망했어!’라는 생각만 들었다.

아토피에 좋은 토마토 야채 샐러드. 해나 이모의 사랑이 담긴 음식이다.
아토피에 좋은 토마토 야채 샐러드. 해나 이모의 사랑이 담긴 음식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해나’라는 한국 교포를 만났다. 내가 지내던 봉사 센터에 종종 와서 일을 도와주시는 분이었다. 나는 그분을 친근하게 ‘이모’라고 불렀다. 그날 늦은 시각에 일을 마친 해나 이모는 우리 숙소에서 하룻밤을 지내야 했다. 같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아토피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이모는 “그렇구나, 많이 아프지?”라는 말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 와 살면서 겪었던 어려움, 돈을 벌기 위해 일하다 실명될 위험에 처했던 일 등 걸어온 지난 삶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다.

“정말 어려운 시기에는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단다. 그런데 그때 내 마음을 붙잡아준 분이 계셨어. 절망밖에 보이지 않으니까 절망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소망을 바라보며 살 수 있다고 하시더라고. 신기한 건 소망을 바라보며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딜 때 실제 삶도 좋게 바뀌었다는 거야. 서영아, 낯선 타지에 와서 아토피를 앓느라 힘들겠지만 1년간 이곳에서 네게 주어진 감사와 행복을 바라보며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그날 밤, 이모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왜 나만 이런 어려움을 겪어야 해!’ 하며 마음에 원망이 가득 차 있었는데, 이모가 겪었던 어려움에 비하면 나의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어려움을 만날 때 내가 이곳에서 힘들어하고 불평하며 살 수도 있지만, 감사하며 살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 해나 이모는 종종 센터를 찾아와 요리를 해주셨다. 아토피에는 야채가 좋다며 갖은 야채로 반찬을 만들어주고, 매운 음식이 아토피에 치명적이라며 항상 몸에 좋은 찌개나 해산물 요리를 해주셨다. 고맙고, 감사했다. 실제로 아토피가 낫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지만, 나는 그 시간 동안 원망하기보다 나를 위하는 분들에게 감사를 느끼고 새로운 일을 경험하는 기쁨과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행복을 만끽하며 살기 시작했다.

최악이 아닌, 최고의 룸메이트

9월 즈음, 인디언 마을로 찾아가 며칠 동안 머무르며 청소년들을 위한 캠프를 진행했다. 나는 한껏 기대에 부풀어 한 달 전부터 열심히 인디언 캠프를 준비했다. 그리고 행사 전날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인디언 마을에 도착했다. 하지만 숙소 배정표를 보고는 바로 한숨이 나왔다. 나와 숙소를 함께 쓰게 된 친구가 ‘로라’였기 때문이다.

토론토에서 행사를 같이 준비하면서 알게 된 ‘로라’는 나보다 두 살 어린 동생이었다. 나는 캐나다에서 만나는 누구와도 친하게 지내려 했지만, 로라는 예외였다. 늘 제멋대로인 아이였다. 다른 사람들이 일하고 있으면 도와줄 생각은 하지 않고 물건을 들고 도망치는 등 오히려 방해를 했다. 제멋대로 행동하는 로라에게 나는 일부러 말 한번 걸지 않고 지냈다. 그런데 ‘나의 소중한 인디언 캠프 기간 동안 로라와 함께 방을 써야 하다니!’ 머리가 지끈해지는 것 같았다.

처음으로 내 기준을 내려 놓고, 인디언 아이들과 뛰어놀던 날. 우리는 금세 친구가 되었다.
처음으로 내 기준을 내려 놓고, 인디언 아이들과 뛰어놀던 날. 우리는 금세 친구가 되었다.

나는 최대한 로라와 부딪히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잠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설레는 마음으로 인디언 아이들이 앉아 있는 교실로 들어섰다. 그런데 그곳은 며칠을 밤새우며 준비해온 아카데미를 진행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아이들이 계속 뛰어다니고 물건을 던지고…. 심지어 나에게 우유를 던지는 아이도 있었다. 내 옷에 튄 우유를 보며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나는 지부장님에게 달려가 “이 아이들은 안 돼요! 더 이상 이 캠프를 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지부장님은 정색을 하며 “그게 인디언 아이들의 매력이야! 네 기준을 내려놓고 그냥 아이들과 같이 즐겁게 놀아봐” 하고 말씀하셨다.

다음 날, 나는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결국 지부장님의 말씀대로 아이들과 뛰어놀았다. 그러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아이들이 내 눈을 보며 웃고, 뛰며 정말 즐거워했다. 알고 보니, 아이들은 단지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몰라 거칠게 행동했던 것이었다. 나는 인디언 아이들과 놀면서 친한 언니 동생 사이가 되었다.

그날 밤, 숙소로 돌아온 나는 로라를 보며 문득 ‘어쩌면 내가 로라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갑자기 로라가 내게 다가와 야외에 있는 화장실을 가야 하는데 무섭다며 함께 가달라고 했다. 그날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에 로라와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로라는 부모님이 무척 바쁘셔서 혼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었고, 집에서 휴대폰만 하며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그런데 우연히 인디언 캠프를 알게 되었고, 캠프 준비를 위해 봉사 센터에 왔을 때 사람들과 함께 색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무척 즐거웠다고 했다.

로라의 이야기를 들으며 ‘로라도 함께 있고 싶은데 사람들에게 표현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구나’ 하며 그를 이해하게 되었다. 로라는 나보다 키도 크고 영어도 잘하지만 마음은 꼭 아이 같았다.

매주 온라인으로 코리안캠프를 비롯한 키즈캠프, 청소년캠프, 마인드캠프 등 다양한 온라인 행사를 진행했다. 캐나다 정부에서 이를 알고, 봉사단원들에게 국회의원상을 수여했다.
매주 온라인으로 코리안캠프를 비롯한 키즈캠프, 청소년캠프, 마인드캠프 등 다양한 온라인 행사를 진행했다. 캐나다 정부에서 이를 알고, 봉사단원들에게 국회의원상을 수여했다.

그때부터 나는 로라와 조금씩 가까워졌다. 어느 날엔 로라가 숙소로 돌아와 인디언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며 속상해했다. 나는 며칠 전에 겪었던 이야기를 하며, 마음을 열고 아이들과 놀아보라고 조언해 주었다. 로라는 “아, 그렇구나!” 하며 금세 밝아졌다. 다음날 나는 로라가 아이들과 행복하게 노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인디언 캠프를 마치던 날, 로라는 “언니 너무 좋아!” 하며 나를 꼭 안아주었다. 그렇게 로라와 나는 친구가 되었다. 머리가 지끈지끈해질 것 같았던 2박 3일 간의 인디언 캠프는 나만의 기준으로 사람을 대하던 나에게 인디언 아이들과 로라의 진면목을 만나게 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는 어떤 어려움도 긍정으로 이겨내는 감동적인 봉사 스토리를 꿈꾸며 캐나다로 떠났다. 하지만 그곳에서 내 예상을 벗어나는 일들을 만났고, 어려움 앞에 쉽게 좌절하고 내 기준과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닫는 나를 발견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내 마음의 폭은 넓어졌고, 잊지 못할 추억이 더해졌다.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나는 예상치 못한 일을 수없이 만나고 있다. 그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기억에 남을 추억은, 완벽한 상황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일을 만날 때 생기는 거지!’

글쓴이 윤서영

영상디자인학을 전공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을 꿈꾸고 있다. 최근 영화 공모전 준비를 하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그와 중에도 캐나다에서 지내던 즐거운 나날들을 회상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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