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을 지키기 위해 그 부인이 선택한 길은  단란했던 가정을 파멸하는 것이었다. 어떤 마음으로 그런 정반대의 결과에 이르렀을까.

한번은 전주교도소에서 연락이 왔다. 한 여성 수감자가 10년 동안 복역하고 형기가 끝나 가는데, 사회 적응이 가능할지 상담을 좀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수감자는 남편과 생후 3개월 된 어린 딸을 죽인 사람이었다. ‘남편이야 싸우다가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면 죽일 수 있다고 해도, 자기가 낳은 어린 딸을 어떻게 칼로 찔러 죽였을까?’ 도저히 이해가 안 갔다. 부인을 만나 어떻게 그렇게 끔찍한 죄를 지었는지 이야기를 들었다.

그 부인은 결혼해서 아이를 가졌고, 병원에서 딸을 출산했으며, 며칠 뒤 남편과 함께 아기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만 해도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이었다. 부인은 딸을 정말 예뻐했다. 남편이 아침을 먹고 출근하면, 산후조리가 필요한 아내는 잠시 잠을 청했다. 그리고 일어나서 따뜻한 물을 받아 아기를 목욕시키고, 수건으로 아기 몸을 닦은 후 마른 수건에 싸서 침대 위에 뉘였다. 부인은 딸이 마냥 예뻐서 볼을 비비고 입을 맞추고 끌어안았다. 마음에서 견딜 수 없을 만큼 아이가 사랑스러웠다.

그때 어떤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이렇게 예쁜 우리 딸을 누가 칼로 찔러서 죽이면 어떡하지?’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만, 딸의 생명과 연관되니까 갑자기 두려움이 생겼다. 부인은 허겁지겁 문을 잠갔는지 확인하고 창문도 잠갔다. 그리고 아파트 경비실에 전화해서 “우리 집에 누구 올라온 사람 없어요? 아무도 올라오게 하지 마세요!”라고 소리쳤다. 그렇게 하고도 두려워서 떨다가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나 너무 무서워.”

“뭐가 무서워? 우리가 사는 집인데 무서워하지 마.”

남편은 아내가 왜 그러는지 전혀 모르니까 가볍게 대답했다. 부인은 두려워서 견딜 수 없었고, 가슴이 마구 죄여왔다. 저녁에 남편이 퇴근해서 돌아오자 부인은 자신이 얼마나 불안한 마음으로 지냈는지 이야기했다.

“여보, 나 너무 무서워.”

“늘 지내던 집인데 뭐가 무서워?”

그 이야기를 듣고 두려움이 물러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이 부인은 남편이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보며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두려움이 더 강하게 마음을 덮었다. 이튿날 아침, 남편이 출근하는데 부인이 다시 말했다.

“여보, 오늘 직장에 가야 돼? 하루 빠지면 안 돼?”

“아기가 태어났으니까 돈을 많이 벌어야지. 그래야 우리 예쁜 아기를 잘 키우지. 내가 열심히 일해야 승진도 하니까 출근할게.”

부인은 그런 남편이 너무 야속하고 밉고 싫었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누군가 집에 들어와서 사랑스런 딸을 칼로 찔러서 죽일 것 같았다. 사실 누가 갓난아이를 칼로 찔러 죽이겠는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엄마에게는 아이가 죽는다는 것이 너무 심각한 문제니까 마음이 거기에만 쏠렸다.

어느 날, 부인은 딸을 죽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한 달 가량이 흘렀다. 이 부인이 불안해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니까 몹시 피곤했다. 처음에는 딸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에 시달렸는데 나중에는 자신이 죽을 것 같았다. 생각이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지?’ 남편이 다른 여자를 얻어서 결혼할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남편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나쁜 놈! 내가 죽었다고 다른 여자와 결혼해서 살아?’

사람들은 이런 생각이 일어날 때, 그것이 자기 생각인지 아니면 누가 넣어준 생각인지 따져보지 않는다. 우리가 이 부인을 옆에서 지켜본다면 어떤 힘에 끌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는데, 본인은 전혀 알지 못했다. 일어난 생각의 내용이 심각하니까, 그것이 사실인지 헛된 생각인지 구분할 겨를도 없이 그 생각에 휩쓸려버린 것이다. 교도소에서 재소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그때 저는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뭐에 씌었던 것 같아요. 죄를 짓고 나서 ‘내가 진짜 이런 일을 했나?’ 하고 저 자신도 믿어지지 않았어요.” 어떤 생각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마음을 끌어가고 있는데, 사람들이 대부분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그 생각에 끌려다닌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남편이 다른 여자와 살 것을 생각하니 이 부인이 분하고 억울했다. ‘그 여자가 내가 앉던 소파에 앉고, 내가 쓰던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내가 자던 침대에서 자겠지?’ 견딜 수가 없었다. 더 큰 문제는, 그 못된 여자가 자기 딸을 괴롭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그 여자와 한편이 되어 딸을 구박하는 광경이 떠올랐다. 추운 겨울날, 캄캄한 밤에 못된 새엄마가 남편과 함께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서 자기 딸은 옷을 벗겨 밖으로 내쫓았다. 부인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흐느껴 울다가 갑자기 냉정하게 혼잣말을 했다. “우리 예쁜 딸, 그 못된 여자에게 구박을 받으면서 고통스럽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

부인은 다시 생각 속으로 끌려들어갔다. ‘아가야. 엄마는 널 너무 사랑해. 엄마는 네가 그 못된 여자 밑에서 괄시 받으면서 사는 것을 견딜 수 없어. 차라리 죽는 게 나아. 내가 죽기 전에 너부터 죽여줄게. 아가야, 엄마를 용서해라. 엄마는 너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이렇게 할 수밖에 없구나.’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이 부인이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이 다 자신에게서 나온 생각이라면 생각이 통일되고 일치되어야 한다. 내가 컴퓨터 게임을 할 수 있고, 내가 원해서 하는 것이니까 문제가 안 된다. 원하지 않으면 안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게임에 빠지면, 마음이 두 가지로 갈라진다. ‘이제 그만해야겠다’는 마음과 ‘게임을 계속 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게임에 중독된 학생들은 문제가 심각하다. 게임 하느라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게임 하면 안 돼! 이러다 졸업을 못 할지도 몰라!’ 그런데도 게임을 하고 싶은 마음에 이끌려서 컴퓨터 앞에 앉는다. 둘 다 내 마음이라면 서로 다를 리 없고, 내 마음과 내 마음이 싸울 리 없다.

하나는 내 마음이 아닌 것이다. 게임을 하기 싫어하는 나를 게임을 하도록 끌어가는 존재가 있는 것이다.

딸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누가 딸을 죽일 것 같다는 생각을 일으키는 존재는 누구인가? 대부분 여기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으니까, 마음에서 일어나는 내가 원하지도 않았던 생각에 계속 끌려다닌다. 예쁜 딸을 낳고, 그 아기를 사랑하고, 남편과 사는 게 행복하고…. 도대체 이 부인이 슬프거나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그런데 두려워하고 슬퍼했다.

어느 날, 부인은 딸을 죽이기로 결심했다. 그때 갑자기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놈도 죽어야 해! 내가 죽었다고 금방 다른 여자를 얻어서 내 딸을 괴롭힐 놈!’

남편도 죽이기로 결심했다. 전혀 사실이 아니지만, 생각에 이끌려 남편과 딸을 죽일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남편이 퇴근하는 시간에 맞추어, 손에 칼을 들고 현관 문 뒤에서 기다렸다. 남편은 아무것도 모른 채 아내 주려고 맛있는 음식을 사서 손에 들고 문을 열며 “여보~” 하고 들어오는데, 문 뒤에 서 있던 아내가 느닷없이 칼로 남편을 찔렀다. 남편이 그 자리에서 죽고, 사랑하는 딸도 죽였다. 그리고 자기도 죽으려고 칼로 온몸을 자해했다. 하지만 죽는 데 실패해서 경찰에 잡혀 오랜 세월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세상 모든 비극은 악령이 주는 생각에서 시작된다

전주교도소의 사무실 한쪽에서 몇 시간 동안 이 부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힘이 그 부인을 파멸로 이끌어간 것이 또렷이 보였다. 그런데 그 존재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부인은 자기를 끌고 가는 힘을 알지 못했다. 이 부인이 조금만 생각했어도 정신을 차렸을 것이다. ‘누가 갓난아이를 죽여? 사람 죽이는 게 쉬운 일이야? 게다가 아무 잘못 없는 아이를 죽이려는 생각을 한다는 게 말이나 돼?’ ‘내가 죽지도 않았고, 남편이 새 여자를 얻은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내가 왜 우리 딸을 죽이려고 하지? 이게 말이나 되는 생각이야?’ 그런데 이 부인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채, 속에서 차례차례 올라오는 생각들에 휘말려 말도 안 되는 길을 가고 말았다. 그 부인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다.

“아주머니, 그 일은 아주머니가 한 일이 아니에요. 악령에게 속아서 그렇게 끌려다닌 거예요.”

옛날 내가 어렸을 때, 우리 가족 모두 한 방에서 잠을 잤다. 그때는 호롱불을 켜고 살았는데, 호롱불에 드는 석유를 아끼려고 불을 잘 켜지 않았다. 보통 저녁 먹을 때쯤 불을 켜서 밥을 먹고 놀다가 아홉 시쯤 되면 불을 끄고 잠을 잤다. 겨울에는 한참을 자도 해가 뜨지 않으니까 식구들이 전부 눈을 뜬 채 이불 속에 누워 있었다. 그러면 아버지가 옛날 이야기를 해주셨다.

하루는 도깨비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도깨비가 사람을 끌고 다닐 때, 가시밭을 지날 때에는 “여기는 강이니까 바지를 걷어라.” 해서 그 사람이 바지를 걷어 다리가 가시에 다 찢긴다고 하셨다. 반대로 냇물을 건널 때에는 “여기는 가시밭이니 절대로 바지를 걷지 마라.” 한다고 하셨다. 그렇게 밤새 끌려 다니다가 새벽이 되면 지쳐서 쓰러져 죽는다고 하셨다. 도깨비는 아니지만, 사람의 마음에 생각을 넣어서 사람을 끌고 가는 존재가 있다. 악한 영이다. 사람들이 악령의 존재에 대해서 정확히 모르니까, 악령이 역사하면 사람이 미쳐서 옷을 벗어던지고 머리가 헝클어진 채 뛰어다닌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미친 사람도 악령의 영향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악령이 하는 가장 일반적인 일은 우리 마음에 생각을 넣어주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속에 악령이 역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악령이 뿔이 나고 이빨이 뾰족한 흉측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우리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어떤 생각을 넣어줄 뿐이다. 그 생각에 이끌려서 사람들이 싸우고, 이혼하고, 죄를 지어서 불행해진다. 자살하는 사람들도 악령이 넣어주는 생각에 이끌린 것이다. 물론 자살한 사람과는 이야기를 나눌 수 없지만, 자살하려다가 실패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떤 생각에 이끌려 죽으려고 했다고 말한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사실은, 우리 마음에 ‘나’라는 존재가 있고 나 아닌 다른 존재도 있다는 것이다. 마음에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그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악령은 물체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카메라로 잡거나 실제 활동하는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우리 마음 안에서 악령이 일하는 것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자신이 원하지 않는데도 일어나는 생각들이 있다. 그 생각을 따라가면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난다. 나쁜 짓을 하고, 자살하고, 사람을 죽이는 비극이 일어난다. 우리는 나를 끌고 가는 나 아닌 다른 존재가 내 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그것이 넣어주는 생각을 따라가지 않을 때 우리 삶이 건전해지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전주교도소에서 만났던 그 부인은 출소한 후 재혼해서 새 삶을 살고 있다. 가끔 만나면 그 부인이 밝게 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하다.

글쓴이 박옥수

국제청소년연합 설립자이며 목사, 청소년문제 전문가, 마인드교육 권위자이다. 성경에 그려진 마음의 세계 속에서 사람의 마음이 흘러가는 길을 찾아내, 이를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나를 끌고 가는 너는 누구냐>를 비롯해 총 5권의 마인드북과 <마인드교육 교사를 위한 전문가 과정>을 집필했으며, 신앙서적도 59권을 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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