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스위스라 불릴 만큼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에스와티니. 저는 작년 한 해 그곳을 다녀왔습니다. 제게 에스와티니가 특별한 이유는 ‘행복하다’ ‘아름답다’와 같이 보이지 않는 것들은 느낄 수 없었던 저에게 ‘행복’을 느끼게 해준 진짜 아름다운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아빠’라는 아픔이 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아빠를 가장이라고 부르지만, 제게 아빠는 기댈 수 없는 존재, 그리고 누구에게라도 감추고 싶은 존재였습니다.

저는 아빠를 우리 가족을 불행으로 이끄는 장본인이라고 생각하며 미워했습니다. 그리고 슬픈 일이 있어도 울지 않고 혼자서 이겨내려고 했습니다. 힘들어도 힘들지 않은 척, 상처 받아도 상처 받지 않은 척하며 늘 어려움을 감추는 법을 연습했습니다. 그렇게 누구에게도 슬픔을 공유하지 않은 채 굳게 마음을 닫고 사는 동안, 저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늘 저는 지쳐 있었습니다. 그리고 도망치듯 아프리카 에스와티니로 해외 봉사를 떠났습니다.

처음에는 함께 지내던 단원들, 현지 친구들과 잦은 부딪힘이 있었습니다. ‘나는 늘 착한 소원이로 살았고 사람들도 그렇게 여겨줬는데, 왜 이곳에서는 자꾸 사람들과 부딪히는 거지?’ 하며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힘들어하고 있는 제게 지부장님은 “소원아, 네가 사람들과 마음으로 만나봐”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는 그게 무슨 뜻인지 잘 몰랐습니다.  하루는 우리 지부에 함께 사는 현지 친구들과 마당에 앉아 수다를 떨었습니다. 별들이 빼곡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음악학교 학생인 노지포가 이야기했습니다.

“소원아, 에스와티니에 와줘서 정말 고마워. 나는 이곳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았어. 몇 년 전 남편을 잃고 우울증에 걸렸어. 늘 약이 없이는 잠을 못 자고 살아갈 힘이 없어 죽고 싶었어. 그런데 음악학교에 다니며 어느새 살아갈 목적을 찾았고, 나에게 정말 꿈이 생겼어.”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사실 노지포는 현지 친구 중에서도 인상이 너무 강한 친구여서 쉽게 다가가기 어려웠는데, 그 친구가 한 말이 제 마음을 크게 울렸고, 그 친구와 한없이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나눈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라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노지포의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문득 ‘나는 늘 내 상처를 꽁꽁 싸맨 채 나 자신을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이라고 여겼는데, 그건 내가 만들어놓은 벽이었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때, 아빠 생각이 났습니다.

저의 고등학교 졸업식에 그렇게 오고 싶어 하시던 아빠에게 “절대 오지 말라” 하며 으름장을 놨어요. 졸업식이 끝나고 집에 왔을 때 제 책상 위에 어설프게 놓여 있던 들꽃이 생각나면서 한없이 울었습니다. 그제야 아빠의 마음을 더듬어 보게 되었고, 나를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으로 만든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저는 에스와티니에 있으면서 ‘행복’이 무엇인지 배웠습니다. 현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밤늦게 까지 음악 콘서트를 준비하고, 때론 험난한 진흙덩이에 빠진 트레일러를 밀며 산골짜기에 가서 공연을 하고, 우리를 보며 행복해하는 사람들과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던 나. 지금까지는 이런 저런 형편을 탓하며 살았는데, 마음이 흐르니까 어려운 형편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빠를 피해서 에스와티니에 갔지만, 오히려 아빠 덕분에 다양한 경험을 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제 인생의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마음속에서 오는 것임을 배웠고,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아빠의 사랑을 만났습니다.

글 이소원 (에스와티니 해외 봉사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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