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하디 <환상을 좇는 여인>

우리는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는 삶을 그리고, 거기 이르기 위해 노력하며 산다. <환상을 좇는 여인>에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무명의 남자 시인을 만날 날을 고대하는 부인 ‘엘라’가 등장한다. 엘라에게 삶의 희망이었던 그가 죽자 엘라 역시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만다. 엘라의 삶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은 것은, 그가 말도 안 되는 꿈을 꾸었기 때문인 걸까?

<환상을 좇는 여인>은 영국 작가 토마스 하디가 1893년에 발표한 단편 소설이다. 19세기 영국의 여자들은 경제활동을 거의 할 수 없었기에 결혼해야만 안정적인 미래를 확보할 수 있었다. 주인공 엘라는 체구가 작고 우아했으며, 영혼이 드러나 보이는 밝은 눈동자를 가진 여인이었다. 그녀 또한 어머니에게서 여자에게는 평생을 함께할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기에, 키가 크고 긴 얼굴에 갈색 수염을 기른 적당한 남편감이었던 ‘마치밀’과 결혼한다.

신혼이 지나고 아이를 낳고 살면서 엘라와 마치밀은 서로 다른 점들을 발견한다. 가난한 시인의 딸인 엘라는 감수성이 예민하고 시를 좋아했지만, 총기 제조업을 하는 마치밀은 무기가 필수품이라고 생각하며 무기가 필요한 세상에 매우 만족했다. 마치밀은 엘라에게 친절하고 너그러웠지만 늘 고지식하게 말했다. 엘라는 그런 남편을 천박하고 세속적이라고 생각했고, 마치밀은 아내가 감상적이고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두 사람은 각자의 생활에 몰두하며 산다.

부부는 여름휴가를 맞아 세 아이들과 함께 휴양지인 솔렌트로 가고, 운명의 장난인지 엘라가 좋아하는 시인 ‘로버트 트리위’의 빈 집에 머문다. 엘라는 답답한 일상에서 좋아하는 시를 쓰는 것으로 삶의 생기를 유지하며 지냈다. 예전에 자신이 쓴 시를 ‘존 아이비’란 필명으로 발표하기도 했는데, 한번은 신문에 트리위와 자신의 시가 함께 실리면서 그에게 남다른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클로드 모네,Camille Monet and Child in a Garden, 1875
ⓒ클로드 모네,Camille Monet and Child in a Garden, 1875

잠시 다른 곳에 간 트리위의 집에 머물게 된 엘라는 관광도 하지 않고 요트도 타지 않고 거의 집에서만 지낸다. 트리위가 적어놓은 메모를 보고 그리움에 젖고, 트리위의 옷을 입고 ‘그의 영감이 내려서 멋진 시를 쓰게 해달라’고 기도하기도 한다. 엘라는 트리위가 쓴 시를 다시 읽고 생각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는 진정한 내 모습과 더 가까워.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진정한 내 모습과 더 친밀하다고.”

행복하기 위해 결혼했지만 자신과 너무 다른 마치밀을 보며 마음이 남편에게서 점점 멀어진 엘라는, 만난 적은 없지만 자신과 닮은 트리위에게 마음이 갔다. 트리위를 한 번 만이라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휴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엘라는 트리위의 시를 읽고, 필명으로 그와 편지를 주고받는다. 아는 화가를 통해서 트리위를 자신의 집에 초대하려고도 했지만 무산된다. 만날 수 있는 기회가 계속 어긋나자 엘라는 더욱 애가 탄다.

한편 트리위는 새 시집을 출간해 언론의 주목을 받지만 그것도 한순간, 그는 자신의 시에 대한 혹평을 견디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한다.

엘라는 트리위의 묘를 찾아가 비통해하고, 하숙집 주인에게 부탁해서 트리위의 머리카락과 사진을 받아 간직한다. 엘라는 넷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지만 슬픔에 빠져 몸이 점점 약해져 갔고, 결국 아이를 낳고 죽는다. 마치밀은 죽은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트리위의 사진과 머리카락을 발견하고, 갓 태어난 넷째가 트리위와 닮았다고 느낀다. 그래서 소리친다. “그랬었군. 저리 가라, 이 못된 놈아! 넌 나와 상관없는 놈이다!”

엘라의 고독한 삶, 그 삶의 황량함에 대해

이 소설을 처음 읽고,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에 빠져 살 때 인간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에 빠져서 현실을 외면하고, 현실을 사실과 다르게 어둡게만 치부할 때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소설을 다시 읽으면서 문득 ‘엘라가 환상에 빠지지 않고 현실에 맞추어 살았다면 행복했을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을 비극적으로 마치지는 않았겠지만 행복했을 거라고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의 고독한 삶이 환상에 끌릴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엘라를 만들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 가깝든 환상에 가깝든,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려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꿈꾸며 산다. 엘라는 아름다운 시를 쓰고 싶었고, 자신을 꼭 닮은 시인 트리위를 만나고 싶었다. 트리위는 자신이 쓴 시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되기를 바랐다. 우리 인생이 바라는 대로만 흘러가지 않듯 소설 속 인물들도 그랬다. 트리위는 자신이 쓴 시들에 혹평이 쏟아지자 모멸감을 견디지 못해 죽음을 택했고, 엘라는 트리위를 만나고 싶다는 꿈이 사라져 살아야 할 의미를 잃어 죽고 말았다.

ⓒ클로드 모네, By The River At Vernon, 1883
ⓒ클로드 모네, By The River At Vernon, 1883

꿈이 깨질 때 사람은 휘청거리고, 심하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 각기 모양과 방법은 다르지만 행복을 얻기 위해 여행을 한다. 공부를 하고, 돈을 벌고,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들을 채우고, 좋은 사람을 만나고…. 그리고 자신이 꿈꾸던 것이 무너져내릴 때 좌절한다. 오랫동안 준비한 시험에서 떨어졌을 때, 사업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좋아하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을 때…. 좌절은 엄청난 슬픔과 고통을 가져다준다. 어떤 때에는 죽음과 바꿀 만큼 강한 슬픔과 고통을 남기기도 한다.

이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행복을 향한 우리의 여행은 대부분 고독하다. 엘라나 트리위처럼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죽어버릴 만큼 외롭다. 거꾸로 생각하면, 외롭고 고독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얻기 위해 목숨을 거는 여행을 하는 것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행복을 스스로 얻지 않으면 누구도 자신을 생각해주지 않는다고 여겼기에 행복을 얻기 위한 여정을 외롭게 이어갔다.

나를 향하던 햇볕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다면

하지만 엘라나 트리위가 그들이 행복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행복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야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 없이도 가질 수 있다고 말하며, 마음으로 행복을 느끼면서 사는 법을 하나하나 가르쳐주는 사람을 만났다면 그들의 삶은 달라졌을 것이다. 자신을 향한 연민으로 치닫지 않고 자신을 향하는 따듯한 마음에 연결되어 기쁨을 지닌 채,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위하며 밝고 보람된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따스한 햇볕을 무수히 받으며 산다. 그런데 그 볕의 따스함을 느끼지 못하고 살 때가 많다. 햇볕이 주는 따스함을 생각할 여유도 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생각하며 무언가에 쫓기듯 정신없이 달려갈 때가 많다. 그래서 자신이 꿈꾼 행복으로 가는 길이 막히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모든 것이 끝이라고 여긴다.

잘 둘러보면 우리 주변에는 햇볕 같은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라며 우리를 사랑하는 이들이 있다. 그 따스함을 느끼고 알 때, 우리는 넘어져도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따뜻한 사람들의 손을 잡고 다시 일어나 새롭게 살아간다.

살다가 ‘이젠 정말 끝이다!’라는 생각이 들 만큼 슬픔과 고통과 좌절을 느낄 때, 잠시 숨을 고르고 조금만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자. 나에게 따뜻한 마음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보자. 그들과 연결될 때, 우리는 인생의 고독한 여행길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아주 새로운 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 아무 조건 없이도 마음에 잔잔히 흐르는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다.

소설 속 이야기지만, 엘라나 트리위가 이제 행복은 산산조각이 났다며 절망 속으로 끌려들어갈 때에도 그들이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은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그런 사람을 만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쉽기만 하다.

글쓴이 심문자

도서관에서 북클럽 멘토링과 한국 마사회 문화센터에서 인문학 특강을 하고 있으며, 예루살렘 라디오 ‘북적북적 북클럽’ 진행자이다. 독서지도사, 청소년상담사, 독서논술교사 등 책과 관련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19세기 영국 소설가이자 시인인 토마스 하디의 단편소설이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테스>, <귀행> 등이 있다. 심리묘사에 뛰어난 그의 작품을 일관하는 철학은 비관주의적 운명론運命論이다. 1893년에 발표된 작품 <환상을 좇는 여인> 또한 비극으로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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