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제 모습에 또 다시 자책하고 있을 때,  베냉 사람들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제게 큰 사랑을 주었고, 저는 그 힘으로 트라우마에서 벗어났습니다.

비극은 평범한 일상 속에 숨어 있다가 예고도 없이 찾아옵니다. 그날도 평범한 날이었습니다. 저는 졸린 눈을 비비며 친구와 통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휴대전화 너머로 ‘쾅!’ 하는 굉음이 들리더니 친구와 통화가 끊어졌습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주변에 무슨 일이 났나보다’ 생각하며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무슨 일이야? 괜찮은 거야? 내일 연락줘.”

하지만 다음 날 친구에게선 답장이 오지 않았습니다. 친구는 전날 저와 통화하던 중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숨이 쉬어지지 않고, 머릿속엔 한 생각만 맴돌았습니다. ‘내가 그때 조금만 신경을 썼더라면, 다시 전화를 걸었더라면 죽지 않았을 텐데….’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제게 ‘죽음’은 낯설고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친구의 죽음이 제 탓인 것만 같아 자책감 속에 하루하루를 살았고, 그 기억이 떠오를 때면 어김없이 술을 마시고, 담배로 저를 달랬습니다. 제 삶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습니다. 그러던 중 친척분이 굿뉴스코 해외 봉사를 권유하셨고, 저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란 생각으로 이름도 생소한 아프리카 베냉으로 떠났습니다.

베냉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샤워를 해도 1분 만에 무용지물이 되는 더위, 오토바이를 탈 때면 엉덩이가 너무 아픈 비포장도로, 거리마다 보이는 알록달록 쓰레기 더미들. 열악한 환경에 적응하는 게 참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제일 힘들었던 건 ‘인간 관계’였습니다.

같이 해외 봉사를 온 단원들은 언어, 댄스, 노래, 컴퓨터 작업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났습니다. 그에 비해 저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급하게 영상을 만들어야 할 때면 저는 못 한다고 피하기 바쁜데, 다른 단원들은 주어진 조건에 맞춰 밤을 새워서라도 세심하게 영상을 완성했습니다. 잘하지도 못하면서 피하기만 하는 저 스스로가 초라했고, 누군가가 비교라도 할까봐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하루는 마약센터에서 코리안 캠프를 마치고 지부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곧바로 다른 행사를 준비해야 했기에 바쁜 일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부에 도착하자마자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가 들렸습니다. 얼떨떨해 하며 날짜를 보니, 12월 9일, 바로 제 생일이었습니다.

바쁜 와중에 베냉 지부장님과 사모님은 맛보기 어려운 귀한 음식을 준비해 주셨고, 현지 아프리카 친구들은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고, 한국에서 같이 온 단원들은 정성스레 쓴 편지와 영상 그리고 축하 공연을 해줬습니다. 그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나’라는 사람을 위해 모두가 진심으로 축하를 해준 것이그렇게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잘 적응해 줘서, 함께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건네며 안아주는데, 저는 그 속에서 사랑을 느꼈습니다.

부족한 제 모습에 또 다시 자책하고 있을 때, 베냉 사람들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제게 큰 사랑을 주었고, 저는 그 힘으로 트라우마에서도 벗어났습니다. 앞으로도 ‘함께’를 기억하며 살 것입니다.

글 이참빛 (베냉 해외 봉사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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